상황

행복하고 싶어요

“소장님, 이건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아! 이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어찌 된 건지 다 이해는 하는데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현장 소장님이 실수를 했다. 어떤 실수인지 설명하기는 참 복잡하다. 글의 분량을 무작정 늘릴 수 없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부러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고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조금 더 편하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요리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못 먹게 되어버리는 정도의 실수?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그런 실수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근데 나의 말투에 조금 짜증이 섞인 이유는 그런 일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건물 설계를 하는 사람이고 설계가 끝나고 나면 설계대로 시공이 되고 있는지를 감리하는 사람이다. 현장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수정하라고 이야기하고, 수정하기 어려우면 그 방법을 함께 찾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수정할 방법이 없을 때는 했던 걸 부수고 다시 시공하는 수밖에 없다. 참 속상한 일이고 원망스러운 일이다.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속상한 건 남에게 모질게 굴어야 한다는 점이다. 천사 같은 내가 말이다.

“소장님, 그래도 이 부분은 다시 하셔야 돼요.”
“네….”
“한 번만 더 확인하고 발주 넣으시지 왜 발주부터 넣으셨어요….”
(번역: 한 번만 간을 보고 소금을 넣으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한 번 더 볼멘소리를 했고, 현장 소장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건설 현장은 갑과 을이 서로 먹고 먹히는 동물의 왕국이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아무리 세상이 수평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몸속에 밴 을의 피는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누군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예, 곧바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하며 어깨를 굽신거리게 된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표정으로, 아무리 좋은 말투로 좋게 말하려고 해도 어깨가 올라가고 머쓱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현장 소장이 아니어도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빈번하다. 물론 나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공무원의 비위를 맞추거나 건축주의 표정을 살펴 가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꺼내는 일은 흔하디흔하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설계를 이따위로 했냐고 소리 지르기도 했고,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서 감리가 이것도 모르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뭐가 틀렸는지 알려주기나 하고 소리를 지르던가…. 소리치는 사람이 누군지는 일단 관심 없다. 어디서든 먼저 소리치면 소리치는 사람 말이 맞다. 뭔가 잘못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때는 주눅 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남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곳에 앙갚음하려는 돼먹지 못한 심리는 아니다. 이 글을 통해 물고 물리는 뻔한 세상사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다. 싫은 소리 듣고도 싫은 티 내지 않던 현장 소장님이 약간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그때 내가 조금 까칠하게 말했던가? 그래, 소장님께 조금 짜증을 냈다 치자. 그렇지만 그건 속상하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했는데 그걸 다 부수고 새로 하게 되었으니 나도 속상하지 않겠는가? 나만 괜찮다고 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을 눈감아 주지 않아서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지 않는다. 짝다리 짚고 말하지 않고, 제 딴엔 편하게 대한다면서 껄렁거리며 말하지 않는다. 마치 완장이라도 찬 것처럼 현장을 돌아다니며 지적질하는 싹퉁바가지들을 여러 차례 봤기 때문이다. 

“이것도 몰라요?”
“이건 도대체 왜 그려놓은 거죠?”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싹퉁바가지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소장님에게 나는 어떤 바가지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저 녀석 티(T)야….’ 속으로 생각하실지도.
“아이구, 그나저나 건축사님 추운데 이것 좀 마셔요. 상황버섯 차인데, 우리 현장 목수가 매주 산에서 버섯을 캐 와서 이렇게 차를 달여서 먹거든요. 이게 참 몸에 좋아요.”

자칫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그랬을까? 혹은 너무 주눅이 들어 보일까 봐 그랬을까? 소장님은 친근한 표정으로 차를 한 잔 건넸다. 한겨울 컨테이너에 조성된 현장 사무실은 무척 춥다. 사무실 가운데에 전기 난로가 하나 있고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늘 달궈져 있다. 주전자에는 버섯을 달여 만들었다는 차가 끓고 있다. 저기 수줍게 서 있는 목수가 근처 산에 올라가서 캐 오는 귀한 버섯이라며, 적어도 다섯 번째는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버섯을 우려 만든 차의 맛은 늘 미안하다. 상황버섯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버섯인가 보다. 차라리 차가 쓰면 좋겠다. 내가 고생시킨 만큼 쓴맛으로 되돌려 받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회사로 돌아오는 길, 추운 정류장에서 왼발 오른발 동동 굴러가며 한참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나와 동행한 신입 직원은 추위를 참지 못한 건지, 무엇을 참지 못한 건지, 참지 못하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현장 소장님은 처음부터 일을 제대로 했으면 됐을 일 아니냐며, 왜 확인을 안 해서 다시 시공을 하게끔 하는 것이냐고. 새로운 싹퉁바가지의 탄생을 목격한 거 같다. 그는 현장 소장님이 안쓰러운 것이지만 실은 안쓰러운 것도 미운 것이다. 왜 나만 나쁜 사람 만드냐며 투덜거리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현장에서 사무실까지는 꽤 거리가 멀다. 어쩌다 보니 뜨거운 차를 담은 종이컵을 하루 종일 들고 다녔다. 종이컵에 조금 남은 물이 흐를까 봐 주머니에 넣지 못했다. 왼손에 쥐었다가 오른손에 쥐었다가 계속해서 바꿔 쥐었다. 길가에 쓰레기통이 없으니 그 복잡한 기분을 하루 종일 간직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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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