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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 — 모악산의 아침
몇 해 전, 모아의 앞으로 덜컥 집이 생겼다. 전주를 감싸안은 형상의 모악산과 나란히 앉은 그 집은 가족의 오랜 기억이 스민 곳이었다. ‘모악산의 아침’이라는 이름 아래 부지런히 쓸고 닦으며 이곳에서의 달가운 밤을 보내는 이들을 맞이하는 모아는 그 집에서 몇 가지를 빼기로 한다. 바로 필요 이상으로 쓰이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이윽고 생긴 틈에는 초록을 바라보는 휴식과 건강한 삶의 방식을 채웠다. 나아가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터 ‘불모지장’, 각자의 시선이 존중 아래 공유되는 ‘지향집’을 꾸리는 그의 씩씩한 걸음을 보며 예상했다. 그건 분명 자신의 삶과 나고 자란 이 뭍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바로 여기가 모악산의 아침이군요. 들어서자마자 나무 냄새가 풍기는 게 좋은데요?
그런가요? 저도 얼마 전까지 호주에서 휴가를 보내고 한 달 만에 집에 온 거라 반갑네요. 일단 노래를 좀 틀고…. (거실에 자리한 오디오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곧 음악이 흐른다.) 아마 마지막으로 숙박하신 분이 넣어둔 시디일 거예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모악산의 아침을 한번 같이 둘러볼까요?
좋아요.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독채죠?
맞아요. 모악산의 아침은 모든 이의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보다 접근성을 원활하게 만들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오른편에는 환경 관련 아이템이나 모악산의 아침이 나온 기사를 모아두었는데 여기, 88호 《AROUND》도 보이네요(웃음). 부엌 맞은편, 안방에 큰 장롱을 비롯해 어릴 적부터 집에서 쓰던 가구를 많이 남겼어요. 부엌 왼편엔 서재방이 있고요. 제가 책과 기록을 좋아하다 보니 모든 방에는 책상과 책이 꼭 있어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사진들이 붙어 있네요.
저와 동생들의 어릴 적 사진이에요(웃음). 이 집에 누가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2층에는 시인의 방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2018년도쯤 이곳에 머문 한 사진작가님이 아늑한 공간과 책장, 창 밖의 대나무들, 단출한 침대를 보고 시인이 쓰는 방 같다며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아서 그대로 쓰고 있어요. 또 한편엔 새소리가 잘 들리는 넓은 테라스와 비밀 공간처럼 빈백과 책장을 가진 방도 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악산의 아침에 놓인 가구는 쓰던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환경적인 관점에서도 물론이고 집부터도 사연이 있는데 번쩍번쩍한 새 가구가 있다면 어색할 것 같았어요. 스스로 ‘당근’ 첫 번째 이용자라고 생각할 만큼 가입하자마자 이 집과 잘 어울리는 중고 가구들을 구해 왔죠. 혹여 실수로 가구가 상해 너무나 미안해하는 손님들에게는 마음 쓰지 말고 편안하게 머무시라고 해요. 사람이 쓰는 가구라면 사용감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한 바퀴 같이 둘러보니 재미있어요. 모악산의 아침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그 전에 가벼운 소개를 부탁해요.
저는 전주에서 제로웨이스트 숙소인 모악산의 아침을 운영하는 모아입니다. 이외에도 전주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공간 ‘지향집’,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을 꾸리고 반려동물 임시 보호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오늘 제가 입은 옷 어떤가요? 이 대화가 독자분들께는 10월쯤 닿는다고 해서 아직 좀 덥지만 가을옷 입고 기다렸어요. 계절마다 인터뷰나 사진 촬영할 때 입는 옷이 한 벌씩 있거든요. 아마 찾아보시면 전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웃음) 가을 그리고 집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호주에서의 휴가는 즐거우셨나요?
호주에 머무는 가족들이 있어서 곧잘 다녀오곤 해요. 갈 때마다 자연스레 존재하는 다양성을 보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느 식당에 가든 비건이나 알레르기, 이동 수단의 접근성 등 선택지가 주어지고, 강아지나 아이들의 입장에 ‘노’를 말하지 않아요. 숲과 바다, 맑은 하늘을 보면서 자연의 힘도 느끼고요. 갈 때마다 제가 전주에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영감을 받게 돼요.
모아 씨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나요? 머무는 동안 동네 풍경의 변화를 전부 지켜봤을 것 같아요.
저는 바로 옆 완주에서 태어났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전주에서 살았어요. 2층 유리창 너머로 여기 중인동 마을이 다 보이는데요. 이사 올 때만 해도 ‘중인리’라고 불렸고, 우리 가족이 이 동네의 첫 이방인이었다고 해요. 어머니가 고른 이 땅에는 원래 작은 초가집만이 있었는데 집 앞으로 너른 전경이 펼쳐지는 게 마음에 드셨대요. 당시에는 빌라나 아파트 같은 건 물론이고 편의점도 없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냇가에서 놀다가 해가 지면 바로 잠들었고,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방앗간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 맡고, 절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 듣는 게 소소한 재미였죠.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방앗간이나 절은 사라졌고 냇가는 막혀서 길이 되었죠. 오래 살던 사람으로서 변화를 지켜보는 게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편의시설 등이 생기면서 손님분들이 좀더 편하게 지내시게 되어 그 점은 다행이에요.
볼을 맞대는 것만큼 가까운 자리에 모악산이 있더라고요. 말 그대로 이곳에서 맞이하는 모악산의 아침 풍경은 어떤지 궁금해요.
모악산은 굉장히 큰 산이에요. 이름에 ‘어미 모母’를 써서 전주를 끌어안는 형상이라고도 말한대요. 그 덕에 전쟁이나 큰 재해가 없던 평화로운 곳이지 않겠느냐면서요. 저는 특히 비 오는 날의 모악산을 좋아해요. 산과 안개, 구름이 어우러지면서 새랑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침이라 인기척이 없으니까 혼자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좋거든요. 근처 편백나무 숲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길 때도 있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거실에 앉아 산 바라보며 오디오를 듣기도 해요. 피아노도 뚱땅뚱땅 치고요.
그러고 보니 이곳의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건가요?
어머니가 10여 년 넘게 약학 블로그를 운영하셨는데 그 이름을 따온 거예요. 아침에 거실 큰 창 앞에 앉아 컴퓨터를 하시다가 문득 올려다본 자리에 있는 모악산을 이름으로 쓰신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본격적으로 스테이를 열기 전에 써도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 ‘쿨’하게 그러라고 하셨어요.
가족이 살던 독채를 개조해 스테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죠?
어머니가 일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시고 이 큰 집의 관리도 도맡으셨어요. 벅찬 일상이셨을 텐데 정말 대단하시죠. 첫째인 저와 둘째가 성인이 되니까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둥이를 생각해서 아파트로의 이사를 고민하시더라고요. 저희는 적극 찬성했는데 이 집을 파는 건 주저하셨어요. 그러던 와중에 어머니가 친구들과 난생처음 프랑스 여행을 가셔서 ‘에어비앤비’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갑자기 카톡으로 “수연아, 너 에어비앤비 해라.” 이렇게만 보내셨어요. 아, ‘수연’은 제 본명이고요.
어머나! 그런데 그 마음도 조금 알겠는 게, 해외에는 살던 이의 취향이 보이는 에어비앤비가 많잖아요. ‘이거다!’ 싶으셨나 봐요.
당시 스물두 살 대학생이던 제가 미래에 무얼 하며 살까 고민하던 때라 무엇이든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셨대요. 처음엔 조금 주저했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장녀’의 책임감이 발동되었달까요(웃음)? 그 이야기를 나눌 때 저도 배낭여행 중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더라고요. 집의 뼈대는 그대로 두었지만 데크를 넓히고 화장실을 손보고, 잔디를 깔고 가구를 빼거나 채우고 벽지 색깔이며 싱크대, 타일 등… 무수한 일을 해나갔어요. 인테리어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니까 제 취향을 빠르게 찾아가려 노력했고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초이까지 손을 보태주어서 문을 여는 데 3개월 정도 걸렸죠.
모악산의 아침은 다른 곳과 비교해 ‘없는 게’ 눈에 띄어요. 제로웨이스트 숙소로 운영되기에 삼푸나 바디워시를 담는 통은 보이지 않고 티백이나 새하얗게 표백된 휴지도 없죠. 흔히 제공하는 페트병 물도 없어요.
운영을 시작한 뒤 가장 놀랐던 게 한 팀이 머물고 간 숙소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쓰레기였어요. 숙소에 누구든 쓸 수 있는 그릇을 두어도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수북해요. 바비큐를 하고 나온 음식물이나 플라스틱 등을 한 봉지에 넣고 가버리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 안을 보면 먹다 남은 쌈장이 한데 뒤엉켜 묻어 있고요.
아, 상상만 해도….
그걸 제가 공강 시간에 잠시 들러 수돗가에 앉아서 전부 닦고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데요. 그 시간도 마음도 아까웠어요. 당시 저는 환경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고려하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이만한 쓰레기를 보는 게 너무 버겁더라고요.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누구든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보면 죄책감이 느껴지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꽤 오래 고민하다가, 하나를 없애면 하나를 드리는 방식의 부드러운 제안을 떠올렸죠.
지난 88호 《AROUND》에 기고하신 글을 보면 사라진 것 중 한 가지를 알 수 있죠.
“바비큐로부터 해방되었다.”(웃음).다른 펜션만 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제로웨이스트 숙소에서도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탄소 배출 원인 중 하나인 축산업에 일조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대신 요가 매트와 싱잉볼, 소분된 잎차나 무포장 커피 원두처럼 초록을 보며 온전한 휴식을 취할 방법을 마련했어요. 덩달아 손님들께 드릴 페트병 물 대신 정수기도 설치했죠. 쓰레기는 없이 원하는 만큼 먹고 돈을 아낄 수 있도록요. 삼푸나 린스, 바디워시는 용기 대신 바 형태의 제품을 적당량 잘라 나누어 드렸고, 남은 조각은 휴지갑에 가져가시거나 저와 동료들이 사용해요. 주방과 세탁 세제는 ‘꽃마리’라는 제주 브랜드를 사용하는데 별도 포장이 없는 벌크 통으로 받은 후 다 쓰면 햇볕에 말려서 다시 브랜드로 보내는 방식이에요. 락스 대신 과탄산소다나 구연산 등을 활용하고요.
하나를 없애면 하나를 준다는 모아 님만의 제로웨이스트 방식이네요. 포기하거나 금지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제안하는 거죠.
맞아요. 누군가에게는 살기도 바쁜데 이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귀찮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거든요.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이 다 다르다는 걸 알기에 부드러운 방식으로 대안을 제안하고 싶어요. 제로웨이스트의 사전적 정의는 “폐기물이 전혀 발생되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건 개인의 선에서 가능한 게 아니잖아요. 마트에만 가도 모든 제품이 다 포장되어 나오는데 내용물만 쓱 빼서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탓하기보다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면 좋겠어요.
그 생각에 공감하며 와주는 손님들을 보며 기쁨을 느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잠시 생각한다.) 정말 많은데요. 저기 옆에 모악산의 아침 로고를 담은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보이세요? 여기서 두번 정도 머무신 손님이 계신데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셨는데 지내는 동안 위로를 받은 기분이라며 작은 선물을 보내주셨어요. 또 어떤 작가님은 시인의 방에서 원고의 퇴고 작업을 하셨고 출판된 후에는 그 사인본을 선물해 주기시도 했죠.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하루든 며칠이든 묵는다는 게, 추억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여기서 즐거웠다는 후기를 보면 제가 누군가의 삶 속 추억 한 장면을 만들어 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람을 느껴요. 언제까지나 모악산의 아침은 어른과 아이, 반려동물까지 모두가 환영받는 곳일 거예요.
나의 자리를 만든 모아 씨의 이후 행보는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해요. 불모지장을 시작했잖아요.
불모지장이라는 이름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장’이라는 의미에 환경 불모지 전주를 비옥지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까지 담은 거예요. 2020년 모악산의 아침 앞마당에서의 1회를 시작으로 열한 번째 장터가 열렸고, 최근엔 전남 영암으로 향해 ‘영암숲숲환경영화제’와 함께 진행하기도 했죠. 사실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고요. 가까운 사람들끼리 1인 가구로서 장을 볼 때 양이 과한 점,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장터를 열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마침 지원 사업이 올라온 걸 보고 겁도 없이 지원했고 운이 좋게 선정되어 1회를 열게 된 거죠. 비건 먹거리와 제로웨이스트 생활용품, 중고 소품을 구할 수 있고 캠페인, 장기자랑까지 열려서 와글와글 재미있어요.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의 맥주도 있고요(웃음)!
그렇다면 불모지장에 오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장터를 즐기나요?
장터에서 판매되는 모든 것은 무포장이 원칙이라 알맹이를 제외한 부가적인 포장은 전부 벗겨내야 해요. 그렇기에 손님들은 다회용기나 장바구니, 먹거리를 즐길 수저 등을 챙겨야 하죠. 만약 준비하지 못했다면 현장에서 대여하거나 구매하면 되니까, 불모지장을 둘러보다 보면 곳곳에서 자신의 용기와 사고 싶은 것의 크기를 요리조리 맞춰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어요. 잘 익은 사과나 오이 같은 식재료를 원하는 만큼, 딱 한 개라도 살 수 있고요. 불모지장은 단순히 많이 사고 많이 팔기 위한 장터가 아니에요.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물건 중 필요한 걸 적당히 사면 되는 거죠. 이 장터의 운영이 기획자인 저와 동료들, 자원해서 참여해 준 스태프의 몫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바탕에 있는 공통의 진행 의도를 이해해야 하니 실은 판매자와 구매자까지 함께 운영하는 거예요.
환경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전주 안에서도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엇 한 가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커뮤니티’라는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뒤늦게 돌아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모으고 우리답게 즐길 거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커뮤니티더라고요. 불모지장의 운영 매뉴얼을 정리해서 배포한 이후로 전국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장터가 늘었어요. 전주에서 비건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식도 높아져서 ‘오트 옵션’을 찾아보기 쉬워졌고요. 우리가 지향하는 것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힘을 실어준다는 걸 선명하게 느껴요.
어떤 이들에게 제로웨이스트나 비건은 ‘포기하는 것’으로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 두 가지를 삶의 지향점으로 삼는다면 반대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일단 삶이 단순해져요. 그게 일상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아끼는 일인지 아세요. 먹는 게 정해져 있고 소비할 수 있는 걸 정해둔다면, 나아가 오늘 제가 입은 것처럼 쓰임이 명확한 옷가지가 많을 필요도 없이 몇 벌만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한 삶 속에서도 방향성이 조금은 또렷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챙긴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좀더 쏟을 수 있잖아요. 취미나 휴식, 자기 개발 같은 거나 하물며 ‘오늘 저녁에 어떤 영화를 볼까?’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죠. 저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런 삶을 사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환경이나 지구의 실체를 본 적도 없으니 그저 이웃을 위해, 사실은 나를 위해 하는 거죠.
그럼 모아 씨는 아낀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있나요?
음… 전주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쓰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잘 살기 위해 안전 지대를 만드는 거예요. 이제는 커뮤니티를 꾸리고 굴려가는 일에 점점 요령이 생겨서 처음보다 덜 어렵기도 하고요. 만약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꾸린 커뮤니티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고 싶다면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모인 이들에게 분명한 역할을 나눠 줘서 주인의식을 갖고 도움이 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이렇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말보다 ‘이거 한번 해볼래요?’가 훨씬 설득력 있으니까요.
이 지점에서 인터뷰에 앞서 들른 모아 씨의 두 번째 공간 지향집이 떠오르네요. 지향하는 가치들을 모은 공간이자, 누구나 운영자가 될 수 있는 곳이라 설명하셨죠. 노란색 대문과 현관이 활짝 열려 있어서 놀랐어요, 보통은 닫혀 있기 마련인데.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무인 공간이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활짝 열려 있어요. 그곳은 어머니가 어릴 적 사시던 집을 이어받아 가꾼 공간인데요. 안에는 화장실과 주방, 냉장고, 가벼운 세면도구와 세탁기, 책과 넓은 테이블이 있고 요가 매트나 빈백, 한 사람분의 침구도 있어요. 비건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도 꾸려두었고요. 만약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다면 당황하지 말고 그 공간에 있는 것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즐기면 돼요. 그 집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자율적인 후원과 재능 기부로 교환하면 되고요. 머무는 동안 공간 수리나 정리는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고 자유로이 할 수 있는데요. 식물에 물 주는 거랑 청소는 적극적으로 해주면 해줄수록 더욱 좋아요(웃음). 얼마 전엔 서울에서 이사 오신 분이 칼 가는 취미가 있다며 지향집에 있는 모든 칼을 갈아주셨어요.
재미있네요(웃음). 사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을 쓰는지 상상하지 못했어요.
사람마다 지향하는 게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비건이나 단순함을, 또 다른 이들은 함께하는 것 아니면 혼자 살아가는 것을 지향할 수도 있죠.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어떤 경계나 주저 없이 꺼내 두고 교류하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이를 테면 한 사람의 재사회화 경험이랄까요. 그래서 지향집 안에서는 서로 나이와 신분을 묻지 않는 게 규칙이에요. 누구나 모임을 만들 수 있는데, 지향집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카톡방에 200명이 넘게 들어와 계시거든요. 저는 그분들을 일일이 다 알지 못하지만 ‘해볼까?’ 싶은 것들을 서로 쉬운 마음으로 제안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독서 모임이나 북토크, 전주로의 이주를 꿈꾸며 한 달 살이를 하는 분들도 계셨죠. 자신이 그저 참여자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소속감과 소속된 곳에 대한 애정을 더욱 크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나누는 오늘이 월요일이잖아요. 지향집에서 월요일은 요가 모임에 이어서 ‘지향집밥’이 열리는 날이에요. 아까 비건 월남쌈을 다 같이 준비하고 먹는 거 보셨죠?
저희를 위해 챙겨 주신 월남쌈도 정말 맛있었어요. 제 건 두부랑 채소가 듬뿍 들어 있었거든요.
아침에 간단히 밥을 먹었는데도 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더라고요(웃음). 지향집밥은 지향집의 오래된 프로그램인데 한 끼에 3천 원을 내면 구비된 재료들로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어요. 오늘처럼 원하는 날짜를 정해 한자리에 모여 재료를 썰거나 볶고, 수저를 놓고,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하기도 하죠. 뒷정리는 물론이고 메뉴도 투표해서 함께 고르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전주에서 더할 나위 없이 북적이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문득 삶과 지향점이 움튼 이 도시는 모아 씨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 궁금해요.
전주는 볼수록 애정이 생겨요.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는 걸 깨닫게 해줬어요. 제가 한옥마을 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땐 그 동네가 매번 시끄러우니까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불모지장 같은 활동을 하면서 다시 그곳으로 가 포스터를 붙이고, 그 동네에 있는 가게들과 안면도 트고 그분들이 우리 장터의 판매자로 나오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요. 관계의 폭이 두터워지면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는 감각이 없으면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연결됨’을 느끼면 저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느껴져요. 다시 보니 한옥마을도 어찌나 예쁘던지(웃음).
우리가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준 도시인 거군요.
맞아요. 여길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정말 많아요. 요즘은 사람이 돈을 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전주에는 도서관이나 공원 같은 공공시설이 많아서 문득 쉼이 필요할 때 앉을 수 있는 벤치의 역할을 해줘요. 독립 서점도 많은데 그들끼리의 연대도 두텁고요. 그뿐인가요? 바다는 없지만(웃음), 산이 있고 기후가 온화하고 큰 천이 세 갈래로 흘러서 산책하기도 좋고 콩나물도 유명하죠. 맛집도 얼마나 많은데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렇든 저렇든 저는 전주를 굉장히 좋아해요.
긴 목록을 듣다 보니 저도 덩달아 좋아질 것 같네요(웃음). 언젠가… 여길 떠나고 싶은 날도 올까요?
(아주 잠시 고민한다.) 없을 거예요. 제가 사는 집이 여기 있는걸요. 살아갈 터전을 고르고 그 위에 집을 하나 세우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어딜 봐도 이만한 데가 없는데…. 제가 있는 곳이 곧 집이니까 어디서든 잘 살 수 있겠지만, 전주가 좋아요. 정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면 좋아하는 여행으로 달래볼래요.
끝으로 문턱에 들어선 가을, 전주에서 느낄 수 있는 모아 씨만의 즐거움에 대해 알려주실래요?
가장 먼저 전주천에서 자전거를 타보세요. 전주시의 공유자전거 이름이 ‘꽃싱이’인데 천 원이면 하루 종일 빌릴 수 있어요. 커플용 자전거도 있고요. 천천히 달리면서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도 보고 물소리나 새소리를 듣는 거죠. 김밥 같은 거 챙겨서 벤치에 앉아 먹어도 좋고요. 가을의 향교도 좋고 아침 4시부터 9시까지만 반짝 열리는 도깨비시장도 있어요. 맛있게 생긴 흙당근에 가지, 사과… 온갖 식재료가 보기 좋게 손님들을 기다리는데 거기가 정말 장관이에요. 모악산의 아침 말고도 아름다운 숙소가 많으니까, 근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골라 하얀 침구에서 뒹굴거리며 읽는 가을 휴가도 즐거울 것 같아요.
오늘의 대화를 읽은 독자분들이 잠시라도 전주로 훌쩍 향해보길 바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멀리서 오셨는데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출출하지 않으세요? 초이의 부모님이 끓여주신 단호박죽이 있는데 같이 먹을까요?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요? 좋아요!
1. 여전히 흐르는 집의 시간
모아의 어머니와 조부모님이 살던 집을 지향집의 공간으로 가다듬었기에 그 흔적이 보이는 게 반갑다.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본 것만 같은 유리창의 무늬도, 나무로 만든 큰 장롱과 뻣뻣해진 그 문도 사라지지 않고 여태 자리를 지킨다. 그때와는 달리, 이 집은 더 이상 어떤 이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이 오가며 여전히 이곳에서 흐르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
2. 어디에서 왔건 우리가 만나는 곳
하교 후 쉬러 오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비롯해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 서울에서 먼 길 달려와 전주에서의 한 달 살이를 꿈꾸는 이들, 내 친구의 친구까지. 어디에서 왔건 그들은 모두 지향집에서 만난다. 현관 옆쪽에 걸어둔 메모 패드에는 이곳에 머물다 간 이들의 메모지가 빼곡히 붙여져 있다. 하나씩 짚어주는 모아의 손가락을 따라 수수한 기록들을 읽다 보면 낯설던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해진다.
3. 단란하고 맛있는 한 그릇
공간 한편, 펼쳐진 노트에는 오가는 방문자들이 기록한 기부 목록이 쓰여 있다. 보이차, 메리골드, 김과 식용유, 오렌지 등 나에겐 필요 이상이던 게 지향집에 도착하면 부족한 것을 채우는 몫이 된다. 매주 월요일 점심, 지향집밥 동료들은 기부 받은 음식과 식권에 포함된 재료비를 바탕으로 미리 요리를 정해 일손을 나눈다. 뚝딱뚝딱, 척척,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금세 부엌에는 맛있고 따끈한 음식 내음이 흐른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