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의 시선

만드는 사람들: 김이경, 이주연

우리의 대화법

이경 주연은 언제 처음 《AROUND》를 봤어?

주연 이거 면접 때도 들은 질문인데(웃음),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다니는 곳곳에 심심치 않게 있던 잡지거든요. 카페나 서점, 공연장 같은 데요. 한두 장 펼쳐보면서 패션 잡지랑은 다르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요. 그때만 해도 패션, 뷰티 아이템을 소개하는 잡지가 많던 때라 ‘이게 잡지인가?’라고 생각했죠. 잡지 같은 에세이집 같았달까.

이경 연예인이나 명품 브랜드는 이미 기존 잡지에서 많이 다루던 때였지. 한 페이지에 아이템 열 개 이상이 소개돼 있고, 이건 어디 제품에 얼마짜리고…. 나는 그런 잡지들을 보면서 좀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주연 근데 쉽게 살 수 없는 수백만 원대고(웃음).

이경 모든 아이템이 너무 화려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는 이런 거였어. 친구가 나한테 “야, 그 카페 가봤는데 되게 좋더라!” 하는 듯한 잡지.

주연 말을 걸어주는 잡지네요.

이경 응. 물론 명품이나 연예인을 다루는 잡지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냐. 거기서 재미를 찾고, 그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야. 다만, 그런 잡지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 거지. 내가 하고 싶던 건 어쩌면 잡지 형태보다는 잡지가 아닌 것이었는지도 몰라.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단행본… 같은 거였지.

주연 《AROUND》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거슬러올라가 봐야겠네요. 《AROUND》가 탄생하기 전에 출판사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가 있었고, 편집장 김이경 전에는 북디자이너 김이경이 있었죠.

이경 난 대학생 때부터 북 아트를 참 좋아했고, 책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데 관심이 있었어. 뭘 하는지 확실하게는 몰랐지만 출판사 미술팀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때만 해도 북디자이너라고는 부르지 않을 때지. 근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일하는 게 너무 재미가 없는 거야.

주연 왜요?

이경 책의 형태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었거든. ‘책은 이렇게 내는 거다.’라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해 봐.

주연 책 만드는 로봇… 기분….

이경 내가 그랬어(웃음). 그러다 일본 여행 중에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많이 보게 됐어. 비주얼적으로도 그렇지만 콘텐츠에 특히 눈이 가더라. ‘별걸 가지고 책을 다 만드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일본은 도시락을 가지고 책 한 권을 만드는 나라잖아. 나도 자유로운 주제로 직접 기획부터 하고 싶어서 출판사 다니면서 독립 출판을 시작했지. 그 당시엔 필름 카메라를 워낙 좋아할 때라 고양이 사진 찍고, 여행 사진 찍으면서 책을 냈어. 《Playground》라는 이름이었지.

주연 북디자이너지만 출판·기획에도 관심이 많았군요.

이경 책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 회사에선 디자인만 하는데, 독립 출판으론 그 밖의 것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출간 일정이 비정기적이다 보니 좀 힘들더라고. 비정기적이란 게 한계처럼 작용했거든. 난 규칙적으로, 어떤 면에선 좀 강제적으로 발행하고 싶었어. 그래야 책으로서 생명력이 생길 것 같아서. 내가 잡지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해.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정기적으로 내자.’

주연 그러려면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겠어요.

이경 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고마워하고 있어. 당시 내 이야기를 듣고 돈을 떠나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항상 하는 말인데, 《AROUND》를 함께 만들던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에 앉혀준 거라고 생각해. 지금 함께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주연 10년 동안 함께해 온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다들 어땠어요?

이경 나는 처음부터 기술적으로 유능한 에디터를 찾진 않았어. 오히려 직무를 벗어나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던 거지. 처음 모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했어. “이건 A도 되지만 B일 수도 있어.” 하는 성향. 사실 내가 너무 열려 있다 보니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던 직원도 있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기 색을 찾아가더라고. 그런 걸 보면서 단정 지어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일상의 발견

주연 올해가 《AROUND》 창간 10주년이어서일까요, 2022년은 우리를 정의하는 데 집중한 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머리로 그릴 순 있지만 문장으로 말하지 않다 보니 정의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 우리의 정체성(웃음).

이경 10년을 이어온 나조차도 정의를 내리기 힘들었어. 그러다 올해 브랜드 캔버스를 조금 세세하게 그리면서 알게 됐어.

주연 그럼 이참에 정의해 볼까요?

이경 ‘일상의 발견.’

주연 오…!

이경 우리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매체야. 처음엔 회사 가치가 일상의 발견이라는 건 너무 소소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잘못된 생각이더라고. 이번 팬데믹 시기를 생각해 봐. 일상을 잃어버리면서 사람들이 일상의 중요함을 깨달았잖아. 근데 《AROUND》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일상을 이야기해 왔어.

주연 좀 간지러운 느낌도 들지만(웃음) 사실 《AROUND》는 일상 그 자체죠. 여행이라고 하면 흔히 일상의 탈출구라고 생각하잖아요.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경험을 꿈꾸고요. 그런데 《AROUND》에서 다루는 여행은 그런 게 아니에요. 타지에서, 이국에서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형태죠.

이경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특별하고 비범한 걸 다루는 일은 많더라고. 박물관 같은 곳을 생각해 봐. 오래된 유물, 굉장한 물건을 전시하잖아. 근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 사소하고 소소한 물건은 만날 수가 없어. 그걸 우리가 책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핵심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

주연 1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간직해온 가치이기도 하죠. 그 안에서 이것저것 바뀌기도 했고요.

이경 어떤 게 바뀌었다고 생각해?

주연 일차원적으로는 디자인. 리뉴얼하면서 시각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있었죠. 콘텐츠적으로는 초기에 비해 인터뷰가 확실히 많아지기도 했고요.

이경 초반엔 문학적인 베이스를 가져가고 싶어서 인터뷰보다는 에세이가 많았지. 근데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어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도 수년을 쓰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기 마련이잖아.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우려했어. 그럼 분명히 에디터가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 바깥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형식을 늘리게 된 거야.

주연 사실 《AROUND》에 들어오면서 부담이 좀 있었어요. 《AROUND》에서는 유독 에디터가 도드라진다는 인상이 있었거든요. 제가 너무 도드라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내가 그만큼 눈에 띄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부담도 컸어요.

이경 그땐 인터뷰가 아닌 에세이 위주였기 때문에 에디터가 누구냐가 중요했고, 독자들도 에디터를 더 궁금해했던 거야. 반대로 지금은 인터뷰이가 에디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주연 듣고 보니 그렇네요. 생각해 보면 저 또한 그렇고요. 인터뷰이가 인터뷰를 만족스러워할 때 만족감이 크고, 그런 대화를 나눴을 때 독자 반응도 좋은 것 같거든요.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하루를 산다는 걸 자주 느껴요. 그래서 인터뷰로 누군가의 일상을 담는다는 게 늘 흥미로운데요, 아쉬운 점도 있어요.

이경 어떤 게 아쉬워?

주연 인터뷰가 늘어나면서 에디터가 직접 해보는 기획 기사가 줄었다는 거. 늘 ʻ시간만 더 있으면 더 재미있게 해볼 텐데.’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이경 기획이야 말로 에디터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한때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여기저기 활발하게 돌아다니던 에디터가 많던 시절도 있었거든. 그땐 유독 밖에서 뭔가를 해오는 기획이 많았어.

주연 제 기획들과는 반대지요(웃음). 저는 거의 글을 베이스로 기획해 온 것 같은데.

이경 어느 순간 내향적인 에디터가 많아졌는데, 그러고 나서부터 밖에서 뭔가를 하기보다는 머리 쓰는 데 집중하는 일이 많아졌지. ʻ일상의 발견’이라는 뿌리에 닿아 있다면 상관없어. 나는 자기 일상에서 뻗어 나오는 기획들이 좋아. 내 일상을 독자에게 소개해 보고 싶다는 마음인 거니까.

주연 그렇다면 중요한 건 에디터의 일상일 수도 있겠어요.

이경 맞아. 에디터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인터뷰 리스트에 들어가는 거니까.

주연 저는 인터뷰를 기획할 때 보통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첫째,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인가. 둘째, 이번 호 주제와 잘 맞는가. 셋째, 《AROUND》랑 잘 어울리는가. 제가 관심이 없다면 인터뷰가 성사되어도 정성껏 질문을 준비하기 어려울 테고, 이번 호 주제와 맞지 않는 인물은 애초에 기획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고, 《AROUND》랑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결과물이 좋지 않겠지요.

이경 나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기 취향과 《AROUND》의 지향점을 이해하고 그 중간점을 잘 찾는 거. 주연이 말한 첫째 항목과 셋째 항목의 타협을 이뤄내는 거지.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나도 에디터 취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잖아. 그게 점점 ʻ어라운드스럽게’ 맞춰지더라고. 균형이 잡히는 거지. 주도적으로 책을 기획해 가는 게 에디터니까, 에디터들 취향이 책에 드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아.

나의 주변에서

이경 주연은 《AROUND》를 만들면서 우리가 어떤 단계에 가장 힘을 쏟는다고 생각해?

주연 기획?

이경 모든 단계에 물론 공을 들이고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부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기획인 것 같아. 사실 우리가 연간 주제를 촘촘하게 짜는 편은 아니잖아.

주연 완전 아니죠. 뭉뚱그린 단어로 기획회의를 하고, 거기서 조금 좁힌 주제로 취재하고, 취재하면서 집중한 부분을 통해 인쇄 며칠 전에야 주제를 정하곤 하니까.

이경 86호도 기획회의는 ʻ영상의 장면들’로 해보자고 했다가 ʻ드라마’로 좁혀지고, 드라마에서 또 다양한 영상 장르로 확장됐지. 그러다 인터뷰이에게서 메시지가 파생되다 보니 ʻ영상으로 전하는 사람들Video Storyteller’이 주제가 된 거잖아.

주연 맞아요. 덩어리진 단어를 조금씩 다듬어서 좁혀가고, 깊이를 더해가는 식이지요. 너무 추상적이거나 범위가 클 땐 기획회의 전에 “어떤 지점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까?” 하고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요. “《AROUND》는 주제를 어떻게 정해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듣지만 사실 특별할 건 없잖아요(웃음). 1-2년 주기로 비슷한 주제가 도는 형식이니까요. 다만 거기서 시각을 조금 비틀어 제시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다르게 보이긴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르게 보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요.

이경 좀더 들어보자.

주연 같은 ʻ공간’을 다루더라도 어떤 때는 ʻ예술가의 방’을 주제로 하고, 어떤 때는 ʻ집의 시간들’을 찾죠. 어떤 때는 그 안에서도 ʻ문구’나 ʻ도구’에 초점을 맞추기도 해요. 어쩌면 사람들은 주제 그 본질이 아니라 주제어를 정하는 방식을 궁금해하는지도 모르겠어요. 71호부터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죠. 이전엔 ʻ도시’, ʻ영화’처럼 단어로 표현했다면 71호부터는 ʻ오늘의 기분Now Is Good’처럼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같은 단어로 기획회의를 해도 다른 콘텐츠가 나올 수 있던 것 같아요.

이경 나는 우리가 세상에 없는 걸 다루길 바라지 않아. 다른 잡지에서 다뤘다고 피하고 싶지도 않고. 모두가 다룬 도구, 모두가 이야기한 사람에 관해 다뤄도 괜찮으니 정면이 아닌 쪽을 보고 싶어.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생기거든. 그래서 시선이 중요한 거지.

주연 그 시선이라는 것 또한 일상에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경 우리는 뭘 만들든 그 기준이 ʻ나’야. 같은 바리스타를 다루더라도 기술자로서의 바리스타가 아닌 ʻ내가 보는 바리스타’를 다루지.

주연 맞아요. 86호 주제가 ʻ드라마’로 좁혀졌을 땐 솔직히 좀 아득했어요. 제가 드라마를 안 보니까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만화영화, 뮤직비디오… 이렇게 뻗어나가게 된 거죠.

이경 그렇지. 주연의 일상에서 이번 호를 바라본 거지. ʻAROUND’는 주변이란 의미지만 그 기준은 나야. 모든 이야기의 중심엔 내가 있어.

주연 그러니까 그냥 ʻ주변’이 아니라 ʻ나의 주변’.

이경 응.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이야기하고, 읽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다시 보게 되는 거지.

주연 그래서 에디터의 상황도 중요한 것 같아요. 딱 그 시점에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에 솔깃하는지에 따라 콘텐츠가 달라진다고 보거든요.

이경 내 주변을 드러내는 역할이다 보니까 취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아. 아무 취향 없이 기계처럼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자신의 취향, 관심사에 관한 고민을 유독 많이 하는 것 같아. 주연 《AROUND》를 제 책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걸 만들 때 내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특별한 에피소드 말고, 정말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요. 내 이야기에서 모든 콘텐츠가 출발하거든요. 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어때?”라고 묻는 식이니까요.

이경 내가 인터뷰 문장에 별을 그리는 것도 나한테 질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야. 누군가의 답변을 보면서 ʻ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고 동의하거나 ʻ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고 또 다른 답변을 하게 되거든.

주연 사소한 사물 하나를 이야기하더라도 형태보다 이야기에 집중하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을 계속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물건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더 좋은 태도를 배우기도 해요. 이번에 인터뷰이가 저한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해주었거든요. 이래저래 한창 힘들 때라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이경 그럴 때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아?

주연 물론이죠. 그 말 덕분에 세상이나 사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이경 나도 이 일을 할수록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돼.

주연 만들 때도 그래요. 꾸려 나가면서 제 일상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달까요. 77호 기록생활자My Record 만들 때가 특히 그랬어요. 인터뷰이의 일기장 수십 권을 보면서 “우와􏚅” 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제 서랍장에도 수십 권의 일기장이 있더라고요. 그럴 때 제 일상이 좀 달리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러고 보면 인터뷰이도 일상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 일상적인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사람. 없는 걸 있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내가 가진 걸 보여주기 위해 과하게 행동하지 않죠.

이경 맞아.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꾸준히 해온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지.

너 뭘 입고 있는 거야?

이경 난 어릴 때 학교랑 집이 가까웠는데 굳이 멀리 돌아가곤 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집 근처 시장을 그렇게나 돌았어. 떡볶이집, 이불 가게, 생선 가게, 채소 가게… 그냥 매일매일 보면서 걸은 거지. ʻ어젠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오늘은 처음 보는 아저씨가 있네?’ 하는 식으로 일상을 관찰한 거야. 이런 발견은 내가 며칠, 몇 달 그곳을 지나면서 관찰했기 때문에 알 수 있던 거라 생각해. 발견이라는 건 결국 반복에서 나오는 거더라.

주연 그러네요. 계속 본 풍경이 아니라면 바뀌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없으니까. 그런데 세상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요. 반복되는 일상이 현대인을 지치게 만든다고 하죠. 그래서 특별함이나 탈출구 같은 걸 강조하고, 여행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반대로 일상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매체예요.

이경 너무 좋다(웃음). 좋아하는 대만 작가 지미의 그림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 “학교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어디로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지.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돌아와야 할 자리는 여기인 거잖아. 그러니까 벗어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새로운 거, 재미있는 걸 계속 발견해야 해.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연 그래서 또 재미있는 걸 해보자고 하셨죠. 이름하여 ʻ월간 티셔츠’.

이경 응! 티셔츠야말로 가장 일상적인 아이템이 아닐까 싶었어. 남녀노소 누구나 티셔츠는 가볍게 입잖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뭐랑 입어도 잘 어울리고. 티셔츠의 시초는 작업복이래. 예전에는 우주복을 작업복으로 입었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위아래로 나누어 입기 시작하면서 티셔츠가 되었다는 거야. 그럼 지금처럼 글자나 그림, 사진이 들어간 티셔츠로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나 궁금했거든. 찾다 보니까 영화 얘기가 나오더라고. 이전에는 티셔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티셔츠로 뭔가를 해봐야지 싶으니까 여러 가지가 궁금해졌어.

주연 영화에서는 어떻게 활용한 거래요?

이경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Napoleon Dynamite>(2004)에서 주인공이 학생회장에 도전하는 것을 돕기 위해 티셔츠를 만들어 학생들한테 나눠줘. 티셔츠에는 투표해 달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지. 티셔츠를 홍보 용도로 활용한 거야. 티셔츠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나 사례가 재밌더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어. 티셔츠라는 일상의 물건에 우리의 스토리를 기록하고 싶다고. 우리가 공들여 만들어온 메시지를 격월로 내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걸 일상으로 가지고 온다면 어떨까? 단순히 패션 사업을 하자는 게 아니야. 콘텐츠를 더 넓게 전달하자는 거지.

주연 처음엔 낯선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맥락을 파악하니 익숙한 일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우리가 지금껏 AROUND라는 이름으로 책에 담아온 걸 티셔츠라는 물성으로 바꿀 뿐인 거니까요. 다만, 시각적인 메시지가 훨씬 간결하고 핵심적이어야 하니 그걸 다시 찾아내는 게 저한텐 숙제예요. 이번에 나올 티셔츠가 나름 창간호인데 뭘 담아야 멋이란 게 있을지(웃음). 게다가 잡지는 격월간인데 티셔츠는 월간이잖아요.

이경 월간 티셔츠는 2022 F/W 같은 시즌 상품이 아니라 Volume1, 2, 3, 4…로 기록해 보자.

주연 책의 연장선이 되는 거네요.

이경 응. 그래서 디자인도 근사해야겠지만, 그보다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구매자들이 동의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어.

주연 월간 티셔츠 분명히 재미있을 거예요.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겠죠?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이 아직은 어렵고 모호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겠어요. 어떤 메시지를 담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소외하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일상에서 발견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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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 Editor in Chief & Art Director

이주연 Senior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