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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루 제이콥슨 — 디자이너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소피 루 제이콥슨Sophie Lou Jacobsen이 만드는 사물에는 친절함이 배어 있다. 물결 모양의 컵, 컬러풀한 화병, 꽃을 닮은 샴페인 잔이 가진 우아한 형태와 투명한 재질이 뽐내는 순수한 미감 앞에서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는다. 단순한 물건을 넘어 생활을 풍요롭게, 그리고 패셔너블하게 만들어주는 사물의 배경에는 문학적 감성과 상업성을 모두 지닌 디자이너가 있다. 제품 못지않은 아름다운 비주얼의 룩북, 섬세한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표본을 제안하고 있는 소피 루 제이콥슨이 처음으로 파리 아파트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오브제와 빈티지 가구로 채워진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 매체와는 첫 인터뷰예요.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소피 루 제이콥슨입니다.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프랑스 분이세요. 2018년 제 이름으로 된 브랜드를 론칭했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일상에 작은 감동과 기쁨을 주는 테이블웨어를 만들고 있어요. 브랜드가 탄생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사이즈가 더 큰 예술적인 제품이나 수집을 위한 제품 제작에도 집중하고 있고요. 뉴욕에서 함께 일하는 유리 공예 장인들과 수년에 걸쳐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직접 유리를 불지는 않지만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유리와 사랑에 빠졌고 전문 지식을 쌓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유리 제품을 소개하는 그룹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유리 공예 작업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게 계기가 됐어요. 장인의 ‘블로잉Blowing’ 기술로 액체였던 재료가 살아나는 광경을 보고 유리의 가능성을 실감했죠. 제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고 이에 딱 맞춰 반응하는 소재를 찾은 것 같아 무척 신이 났어요. 그렇게 전시를 시작했는데 관람객들이 제품 구입 문의를 해주시는 거예요. 제 디자인의 상품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고, 그렇게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소피 루 제이콥슨’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유리는 매우 로맨틱한 재료예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만드는 사람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도 똑같이 시적이면서 감성적인 느낌을 가진다는 게 특별해요.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지내고 있어요. 매력적인 두 도시를 반반씩 경험하는 삶은 어떤가요?
베이스는 뉴욕이고, 60 대 40의 비율로 뉴욕과 파리에서 지내요. 지난 몇 년 동안 파리의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생기면서 점점 50 대 50으로 지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프랑스는 가족들이 있는 곳이라 정기적으로 오는데요, 제가 파리를 정말 좋아해요. 두 도시의 차이점은 삶의 속도 같아요. 항상 쉬지 않고 굴러가는, 그래서 모든 일이 빠르게 추진되고 많은 잠재력을 가진 곳이 뉴욕이라면, 파리는 반대의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은 뉴욕이 아니라 파리예요. 가족들과 함께하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그런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곳이죠. 삶의 질이 더 건강하게 유지되는 느낌이랄까요.
프랑스인 부모님 덕에 그 문화가 당신의 뿌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기서 얻은 영향 또는 영감이 작품에도 반영되었을 것 같아요.
미국보다 프랑스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해요.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프랑스와 유럽이라고 해야겠네요.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받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뉴욕으로 옮겨 가 결과물로 만드는 게 제 일이니까요.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이 연상되는 작업들은 무척 여성적이에요. 라이프스타일 또한 동일한지 궁금하네요. 옷 입는 방식을 포함해서요.
페미닌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스럽다는 단어로 저를 묘사하는 것에도 동의해요. 장식과 핑크 컬러, 꽃, 굴곡진 라인의 섬세한 형태를 제 디자인에서 발견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옷 입는 방식은 의외로 장식적이지 않아요. 옥스퍼드 셔츠를 가장 즐겨 입고, 청바지를 정말 좋아해서 몸에 딱 맞는 디자인부터 하이 웨이스트, 배기 스타일 등 많은 종류를 가지고 있어요.
즐겨 입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옷은 따로 있을 것 같아요.
물론이에요. 어머니께서 20대 때 산 ‘조르단Jourdan’ 브라운 스웨이드 롱 스커트가 있거든요. 지금도 상태가 좋고 이걸 입으면 제가 완벽해 보여요.
지난봄에는 ‘제이 크루J Crew’의 캠페인 주인공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유명 패션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매우 즐겁고 흥미로운 기회였어요! 유명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의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다니, 만약 제가 10대였다면 이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들이 저를 선택했다는 것이 감동이었죠. 제이 크루 팀과 유리 공방에서의 작업 과정을 기록화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기간 내내 사진, 의상 등 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팀 전체가 노력해 준 것 또한 감사했어요.
옷을 살 때 자신만의 특별한 철학이 있나요?
옷에 관해서는 꽤 본능적이에요. 옷장을 유행에 맞춰 종류별로 채우기 위해 쇼핑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아이템 몇 가지를 꾸준히 구입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옥스퍼드 셔츠 스무 벌 정도와 청바지가 옷장에 가득하죠(웃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결국 사게 되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옷들이에요. 그래서 다른 옷을 입어도 항상 비슷해 보이는 편이에요. 거의 유니폼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단순함이요. 그리고 편안함, 우아함, 시대를 초월한 퀄리티. 단색 의상만 입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 주얼리 몇 개와 잘 어울리는 신발을 착용하면 아웃핏이 완성돼요. 단순함이 핵심이죠. 작은 디테일을 더하는 것이 특별함을 가지는 방법이고요.
혹시 인생에서 뮤즈로 삼고 있는 인물들이 있나요?
현재의 소피 루 제이콥슨을 존재하게 한 이들요. 특유의 미적 매력 덕에 영화를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아름다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저에겐 중요한 영감으로 다가와요. 그들의 행동과 옷 입는 방식, 움직임까지 진지하게 관찰하곤 하죠. 뮤즈라고 부를 만한 특정 인물을 꼽자면 멤피스 그룹의 창립 멤버로 알려진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alie Du Pasquier라고 대답할래요. 그녀의 작업이 보여주는 특별함, 강한 비전 그리고 매체와 유형 사이에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겸손하고 침착한 태도를 간직한 모습이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경력을 우아하게 대변하거든요.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며 놀라운 에너지를 전달받고 있어요. 다른 뮤즈로는 아티스트 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건축가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디자이너 앙드레 퓌망Andree Putman 등을 꼽고 싶어요. 이들은 모두 빛나는 경력, 독립심, 아름다움과 우아함, 강한 정신력을 가진 여성들이에요. 제가 학생 때부터 디자인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향을 준 인물로는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ph Hoffman과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있겠네요. 그들의 작업은 제 디자인 전반에 걸쳐 큰 가르침을 주고 있어요.
본인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일상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인터뷰 중인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컵과 실버 트레이도 그렇고요.
맞아요. 꽤 많은 제품을 실생활에 사용 중이에요. 제 디자인만 쓰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피 루 제이콥슨 제품을 직접 써보는 게 좋아요. 제가 즐기고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제품들과 믹스매치해서 사용하죠. 그래야 덜 지루하잖아요.
창작자에겐 모든 제품이 다 사랑스럽겠지만 특별히 애정이 더 가는 오브제가 있나요?
하나만 고르는 건 너무 어렵지만… 굳이 선택하자면 유리 제품 중 첫 번째로 제작한 ‘리플 컵Ripple Cup’이요. 컬렉션 중 가장 먼저 탄생한 제품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잘 사용하고 있고, 쥐었을 때 손에 딱 맞는 느낌이 좋아요. 리플 컵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 또한 즐거워요. 아이와 어른 모두 이 컵을 볼 때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데, 기쁨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느낌이라 행복해요. 이런 반응은 제가 디자인을 통해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리플 컵 외에 실버 컬렉션도 정말 좋아하는데요. 유리를 벗어나 실버라는 새로운 재료를 접하고 제작하는 것이 또 다른 도전이기도 했지만, 위트를 간직하면서 좀더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보이기에는 실버만큼 완벽한 재료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최근에 작업한 ‘부케Bouquet’ 컬렉션 또한 자랑하고 싶은 제품들이에요. 야생화의 리드미컬한 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유리잔들은 장식적인 오브제와 기능성 물건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제품들 하나하나 생각할 때마다 정말 흥분되네요. 그만큼 컬렉션 전부를 사랑해요. 이제는 제 삶에 없으면 안 될 정도로요.
아름다운 오브제가 주는 기쁨은 삶의 질을 올려주는 좋은 수단이 된다고 생각해요. 소피 루 제이콥슨의 디자인이 오늘날 라이프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봤나요?
뉴욕에서는 가끔 미국인들의 생활 방식 때문에 좌절하곤 해요. 작은 순간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 관습화된 습관 같은 거요. 예를 들어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식사가 평범한 일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일정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등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죠. 저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작은 의식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하루 루틴의 시작이면서 마음을 정돈하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제가 물건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실제로 매우 의례적이에요. 와인 잔, 칵테일 잔 등 특정 음료에 특화된 디자인에는 그 음료를 준비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순간의 특별한 주의도 필요하고요. 그리고 저만의 작은 디테일이 있는데, 줄기에 이슬방울이 맺힌 것 같은 섬세한 장식 표현은 사용할 때마다 시각과 촉각에 흥미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디자인을 통해 사물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현재의 행동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어요. 그들의 삶과 일상을 기존의 틀에서 끌어내고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하도록요. 이런 작은 의식에 흥미를 갖고 라이프스타일을 계획하는 것은 행복 지수와 연결될 테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브랜드와 타 유리 브랜드의 차이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소피 루 제이콥슨 제품은 유리잔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용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사는 거니까요. 그런 소비를 거쳐 소유하게 된 오브제는 즐거운 순간의 의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게 되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줄 거예요.
지금은 파리에 몇 주간 머물기 위해 와 있는데, 올 때마다 쇼핑 가는 장소가 있나요?
정말 좋아하는 가게가 있어요. ‘라 본느 피오슈La Bonne Pioche’라고 빈티지와 디자이너 옷이 섞여 있는 곳인데, 거기 자주 가요. 그리고 뉴욕에는 없는 ‘마가렛 호웰Margaret Howell’, 마레지구에 있는 편집숍 ‘브로큰 암The Broken Arm’도 좋아해요. 저한테는 뉴욕보다 파리가 쇼핑하기 좋은 도시예요.
그럼 이번엔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공유해 주세요.
6구, 7구, 14구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은 부르델 뮤지엄이고, 클뤼니 뮤지엄에 가는 것도 좋아해요. 그 근처에 ‘로즈버드Rosebud’라는 작은 바가 있거든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에요. 갤러리들이 즐비한 6구와 7구를 거닐면서 오래되고 특별한 물건들을 감상하는 일, 사랑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천천히 식사하는 순간이 파리가 좋은 이유예요.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Céline S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