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아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세상에 유해한 것이 없어 이 자체가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사랑과 이해, 너그러움과 온화. 어떤 단어들은 그녀로부터 생생한 풍경이 되었다. 우리가 만난 날은 세 시간 만에 8도가 떨어진 차가운 겨울밤이었다. 망원동의 근사한 식당에 들어가서 조금 더 유난스럽게 수다를 떨기로 했고, 금세 얼굴이 벌개졌다. 몇 가지 질문을 건네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사랑을 빼놓은 채, 그녀를 말하기는 영 힘들 것이다.

Interview
수필가 이슬아

“알면 알수록 글쓰기는 무서운 일이에요. 오히려 문장에 대한 지적은 덜 창피하고, 내 태도가 실패했음을 깨달을 때 부끄러웠어요. 내가 얼마나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얼마나 끝없이 고쳐야 하는 건지 배웠죠.”

인터뷰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왔다고요.
글쓰기 수업이에요. 영등포구청 근처 ‘하자센터’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프리랜서는 아무래도 다음 달 수입을 예측할 수 없으니까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한데, 아무리 바빠도 놓치지 않고 하는 일이기도 하죠. 여수에서도 글쓰기 수업을 5~6년 했어요. 보통 10살부터 19살까지 아이들을 만나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나뉘죠. 아이들을 보면 어떤 부분들은 닮고 싶어지기도 해요. 짧고 명쾌하고 좋은 문장을 많이 배우게 되거든요.

아이들한테서 영감도 많이 받았겠어요.
애들은 낭독할 때 엄청 울기도 하고 엄청 웃기도 해요. 속상하던 경험을 쓰고 앞에 나와서 읽을 때, 잘 울어요. 그때 가만히 기다려주는 게 제 일이에요. 그리고 오늘 글쓰기에서 네가 이렇게 쓴 게 좋았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았고, 왜 좋았는지 말해주는 것도 제 일이고요. 뭐가 별로였는지는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말하지 않는 편이에요. 부족한 점보다는 잘한 일을 더 많이 말하죠. 

아이들이라서 그런 건가요?
제 글을 보거나 친구들이랑 합평할 땐 신랄하고 꼼꼼하게 말하고 경계해야 할 것들을 잘 살펴봐요. 하지만 초·중생들은 그렇게 하면 글쓰기에 진이 빠질 것 같아요. 꼭 이때가 아니어도 앞으로 그런 시간은 많이 있을 테니까요. 어릴 때 글쓰기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고, 내가 결국 잘할 수 있었다는 밑천이 있어야 계속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전부터 너무 힘 빠지면 안 되잖아요. 안 그래도 애들이 학원 다니느라 너무 힘들어하는데….

전부터 슬아 씨가 글을 쓰게 만든 요인이 궁금했어요. 사실 무언가를 하겠다거나 되겠다고 결심할 때 어릴 적에 칭찬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경우가 많잖아요.
열 살 때 학교에서 일기를 쓰라고 했어요. 그런데 일기를 써 가면 담임 선생님이 일기보다 더 긴 답글을 써주시는 거예요. 일기를 쓸 때마다 다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죠. 편지죠, 편지. 선생님은 내가 뭐라고 쓰든 아주 열심히 읽어주시고 잘 들어주시는구나 싶었어요. 선생님이 뭐라고 답글을 달아줄지 너무 궁금해서, 어떤 하루를 보내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빨리 일기에 쓰고 싶더라고요. 선생님한테 보여줘야지, 하면서요. 너무 좋은 독자였던 거죠. 제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이야기를 만들어 쓰면 피드백을 해주니까 이 사람하고 얘기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어요. 당시 한글97인가 있을 때였는데 오이체랑 엽서체로 쓰고 출력해서 일기장에 붙여서 냈어요. 일기장이 엄청 뚱뚱해지고(웃음).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담임 선생님이 없어도 이미 글쓰기와 친해져 있더라고요. 그 시기가 결정적이었어요. 그 뒤에는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게 됐고요.

좋은 선생님이네요.
글쓰기는 아름답게 공부하는 게 결코 아니고, 오히려 치열하게 많이 혼나면서 훈련되는 거잖아요. 특히 무지한 채 쓴 글 때문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상처 줄 때. 그런 건 따끔하게 혼나고 반성해야 고쳐지는 거니까요. 이런 견제는 중·고등학생 때 배우는 것 같고, 유년기 땐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까 친구들과 합평할 때 신랄하게 비평한다고 했어요. 내용과 기술, 어떤 부분을 다루나요?
둘 다요.

글 자체는 도구잖아요. 내용을 비판한다는 건 결국 생각을 비판한다는 의미 같아요.
그렇죠. ‘너’라는 사람의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지적하는 거죠.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런 문장을 썼을 때, 이 사람의 인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쓴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고요. 

글쓰기의 무게를 알고 책임을 지는 거죠. 함부로 쓰는 일에 대한 위험성도 말하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글쓰기는 무서운 일이에요. 제가 십 대 후반에 배운 건 글쓰기가 무섭다는 거였어요. 오히려 문장에 대한 지적은 덜 창피하고, 내 태도가 실패했음을 깨달을 때 부끄러웠어요. 내가 얼마나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얼마나 끝없이 고쳐야 하는 건지 배웠어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일간 이슬아’가 친구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걸로 기억해요.
동료 만화가 잇선 님의 생각이었어요. 그때 잇선 님이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라고 하시면서, 저한테도 조심스럽게 오픈을 해주신 거죠, 너무 감사하게도. 슬아 씨도 해볼 수 있는 방식 같다면서 ‘데일리 일기 배달 서비스’를 말씀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화제가 될 거라는 예상은 못 했죠?
알았으면 무서워서 못 했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포스터를 만들어서 올리기까지 빠르게 지나갔어요. 머리가 엄청 빨리 돌아갔죠. 그 전까지는 한 달 동안 매일 글 쓰는 일을 시도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과연 매일 쓸 수 있나? 망할 수도 있겠지 뭐. 한 달만 해도 성공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구독자가 모이고 돈이 들어오니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세이브’도 하나도 없고요. 매일의 이야기를 매일 썼죠.

세이브가 없는 상태로 시작한 거군요.
뒤지는 줄 알았어요(웃음).

구독자 중에 유명인도 있었나요?
종종 있어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덕원 씨와 시인 오은 님, 요조 언니와 이랑 작가님, 수신지 작가님이 읽어주셨어요. 그런데 구독자를 일일이 살피면 제가 겁을 먹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안 보려고 해요. 보면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요.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어려워지고요. 구독자한테 적당히 무심하려고 해요. 꼭 수영 같죠. 너무 물에 뜨려고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무조건 가라앉아요.

그래서 학자금은….
다 갚았어요(하이파이브). 엄청 열심히 일해서 갚았죠. 

이전에 스쳐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도 메일링 서비스 형태의 프로젝트를 하는 걸 봤어요. 슬아 씨가 허용해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포맷을 하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게 제가 허용할 문제는 아니에요. 아이디어의 기원은 잇선 씨한테 있고, 무엇보다 많은 창작가들이 활용해도 문제될 게 없거든요. 저한테 허락을 구하지 않으셔도 되고, 응원한다고 하지요.

저도 예전에 하자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하자센터의 중요한 일곱 가지 약속 중에 ‘정보 때문에 치사해지지 말자’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슬아 씨가 정보를 주는 건가 싶었거든요.
맞아요, 화장실에 그 약속이 붙어 있죠. 정보 때문에 치사해지지 말자, 아는 것을 서로서로 나누자는 내용이죠? 근데 저도 공유해준 사람 덕분에 하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중요한 플롯은 저만 알아도 되겠지만, 방식 자체는 다들 기꺼이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매일매일 마감이라니. 마감 있는 삶, 버겁진 않나요?
마감도 매일 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글쓰기가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요. 매일 해가 지고 글을 써야 할 때마다 안색이 안 좋아졌어요. 표정이 없어지고, 초췌해지고, 살짝 곤두서 있죠. 순하고 아름다운 글이라도 그 글을 써야 할 땐 예민해지잖아요. 혼잣말로 “아, 누가 이거 시작했냐.” 하면서(웃음). 윗몸 일으키기는 매일 해도 힘들잖아요. 그래도 하루 20개 하다가 조금만 더 쌓이면 50개를 금방 하죠. 근데 또 50개를 하면 아프긴 아프고요. 그렇게 해온 것 같아요. 그러다가 주말에 쉬잖아요? 너무 좋아. 근데 너무 빨리 가.

그래서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그렇게 슬아 씨는 부자가 됐습니까?
음, 그렇진 않고요. 일단 빚이 너무 큰 부분이었죠. 학자금 2500만원 다 갚은 게 기적 같아요. 누가 연재로 빚을 갚아요. 저는 정말이지 운이 좋고, 감사해요.

곧 부자 될 것 같은데요. 슬아 씨 부자 되면 저 맛있는 거 사줘요.
세 번 사줄게요. 근데 어디부터가 부자일까요? 전셋집 살면 부자인가? 1억 모으면 부자인가?

제 기준은, 카드 값을 내고도 현금이 남아 있을 때.
저는 음, 아프거나 슬플 때. 그래서 “아, 일 못 하겠다.” 하면서 반 년 이상 쉴 수 있을 때.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슬플 때. 슬픈 게 사치가 아니라 슬퍼서 쉴 수 있을 때.

저요, 저. 저 20대에 정말 힘들었어요. 아주 치열했다고요.
30부터는 그러지 않기를….

저 지금 30살인데요?
31세부터….

엄청난 셀럽이 됐잖아요. 컬래버레이션도 생각해본 적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나이키 러닝화. 꼭 이거 써주세요. 정말 좋은 스토리로 서사를 쓸 수 있어요. 꼭 나이키 희망한다고 적어주세요.

셀럽 하니까 생각나는데 길 가다가 슬아 씨 알아보는 사람도 있죠?
가끔씩? 음. 가끔보다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종종 가는 중고 옷가게가 있어요. 신나서 막 잔뜩 집어서 입어보려는데 눈으로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제가 너무 작아 보이더라고요(웃음). 책에 제 사진으로 띠지를 박아버려서 얼굴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연예인은 아니니까 불편한 정도는 아녜요.

원래 성격이 차분해요? 저였으면 이미 마음 붕 뜨고 들떠서 태도 논란도 났을 것 같은데.
‘일간 이슬아’ 하면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마음이 붕 뜰 새가 없기도 했어요. 급급하게 반성하느라 바쁘고 그럴 겨를이 없기도 했고요. 대신 가족들 만나면 아빠가 “오늘의 자랑거리는 뭔가요?” 하고 물어보면 오늘의 자랑거리는 뭐뭐입니다, 하면서 기념하기는 해요.

북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 UE10에서 엄청난 애정공세를 받았죠. 줄이 아주 길었다고 하던데.
온라인 연재를 하니까 독자를 만날 일이 없잖아요. 가끔 이게 거짓말 같기도 하거든요. 다 뻥 같아요. 그런데 책을 내고 실제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환경에 처음 가본 건데, 사람이 많아서 충격받았어요. 인터넷 열혈 구독자님들이 시간 내서 와주신 것 같아요. 원래 그 행사가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겸사겸사 와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기억에 남는 분도 있나요?
아무래도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광주에서 와주신 분도 있었어요.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러 멀리서 오는 게 정말 큰일이잖아요. 

얼마 전 한 매체와 촬영한 영상에서 수필 안의 ‘슬아’와 실제 ‘슬아’가 다른 사람이라는 내용이 의외였어요.
일단 ‘일간 이슬아’ 수필은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다 지어냈다기보다는, 하나의 모티프를 실제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가공하거나 과장하고 축소한 거죠. 현실에 있는 진실성을 그대로 옮기려는 마음은 없고 이야기로 가치가 있기를 바라거든요. 가공하는 과정에서 엄마에 대해서 쓰거나 나에 대해서 쓰면 실제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인물들이 실제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는 거군요?
실제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죠. 글 안에서는 제가 쓰는 실력에 한계도 있고 이야기 흐름 때문에 생략하거나 극단적으로 과장하는 것도 있으니까요. 이왕 가공할 거면 잘 가공하기를 바라는 거죠.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풀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아무 데나 펼쳐서 나오는 일화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 이런 거 처음이에요. <편지의 주어>가 나왔네요. 이 일화는 애들한테 쓰는 편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어느 날 한 친구랑 연애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누군가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받은 경험을 말했죠. 그럴 때 편지를 쓰면 ‘나’나 ‘내가’로 시작하는 말은 잘 안 쓰게 되고, ‘너’가 주어인 말을 더 쓰게 되지 않냐면서요. 근데 최근에 이 친구가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너무 ‘나는’밖에 없던 거예요. 둘 다 아쉽다고 생각했죠. 그때 취해서 “야, 사랑이란 게 주어가 바뀌는 거 아니냐. 어?! ‘나’밖에 관심 없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냐.”고 얘기를 했어요. 사랑이 약간 모자르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여수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때도 “자연아, 자연이 너는 이렇지. 너가 그렇게 할 때 이랬어.” 하면서 주어가 모두 ‘너’인 거예요. 그러면서 맞아, 내가 여수 애들을 무척 사랑하는구나, 새삼 깨달았죠.

재미있다. 또 해주세요.
또 펼쳐 볼게요. <픽션의 불발>이 나왔어요. 이 일화는 제가 왜 소설을 쓰지 못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저는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닌 인물을 다루는 게 힘들어요. 일단 이름 짓기부터 어렵고요. 가보지 않고 들어보지 않고 목격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데 큰 두려움을 느껴서 아주 어설픈 문장이 나오게 돼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필에서 조금 더 구성이 쫀쫀해지면 그게 소설이 되는 것 같거든요. ‘일간 이슬아’ 수필 중에도 오히려 소설과 더 닮아 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제가 한국에서 통용되는 소설이라는 개념에 너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내년에는 ‘일간 이슬아’ 연재에 수필을 보낸다는 말을 안 하고 어떤 날에는 소설도 보내고 인터뷰도 보내면서 여러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가 많이 성장할 것 같아요.

예전에 글값에 관한 이야기를 봤어요. 원고지당 만원 이하는 동종업계 동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꼭 지키려고 한다면서요.
옛날에 원고료 못 받은 경우도 많았고, 종종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와 닿을 때가 있더라고요. 이런 프로젝트가 있어서 작가님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죠. 근데 돈 얘기는 어디에도 없고, 할 일은 정말 많고요. 작업료에 관한 이야기가 없을 때, “원고료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게 저도 피곤하거든요. 그걸 물어보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저 자신을 ‘연재 노동자’라고 칭하는 것도 노동에 힘을 줘야 할 것 같아서였어요. 노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내 일상을 쪼개 일을 해야 하니까, 돈으로 환산되는 부분이 중요한 거죠. 20대 ‘열정페이’도 너무 많으니까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앞장서서 말하고 싶기도 했어요.

‘연재 노동자’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죠.
글쓰기를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예술의 영역으로만 남겨 두니까요. 근데 글쓰기는 정말 몸과 시간과 마음과 영혼을 들여서 하는 일이잖아요. 몸도 상하고요.

슬아 씨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만화도 그리고, 노래 편곡도 해요. 자기를 표현하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노래는 취미이자 스트레스 풀기에 가까워요. 공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는데 동생이 작곡을 하니까 믹싱하는 작업이 재미있어서 한 거예요. 만화는 생계 유지를 위해 했었고요.

만화도 배운 거예요?
양영순 선생님 권유로 시작했는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정확히 1년 뒤에 레진코믹스 연재를 시작했어요. 매일 그렸어요. 제 만화가 잘 그리는 그림은 절대 아니고 무척 쉬운데 그것도 잘 그리지 못했으니까요.

아, 저 기억나요. 아주 예전에 SNS에 맨날 드로잉 올렸잖아요. 주인공 ‘슬아’가 점프하는 거 올리면, “슬아야, 많이 늘었다.”는 댓글도 달리고.
원래는 선만 그렸는데(웃음). “이 책을 따라 그려라!”, “저 책을 따라 그려라!” 하는 조언을 받고 그런 식으로 연습했어요. 매일매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거죠. 만화 하기 전에도 이야기 하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어서 도구만 바뀐 느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어요. 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게 왜 필요할까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긴 해요. 모두 글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이 다 해소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만화랑 수필의 차이를 느끼나요?
만화는 일단 조금 불편해요. 저한테 익숙하질 않거든요. 반면 글쓰기는 훨씬 익숙한 도구라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편이에요. 지금의 제 드로잉 실력으로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도 못 하는 것 같거든요. 그렇다 보니 스토리가 쉽고 간단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 실력에 한계가 있는 거죠. 텍스트 없이도 이야기가 잘 전해져야 하는데, 말 없이는 전달을 잘 못 하는 편이에요. 좋은 만화 연출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슬아 씨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세 개의 단어로 꼽아줄 수 있어요?
너무 어려운데…. 담담, 명랑, 씩씩이요. 슬픔이나 불행에 아주 오래 머물지 않고 다음 날에는 다음 날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친구가 써준 추천사 중에 제 글이 시트콤 장르에 가장 가깝다는 말이 있어요. 시트콤은 하루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어도 다음 날에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기잖아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중에는 좋은 슬픔이 추가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슬아 씨의 작가가 궁금해요. 작가의 작가를 말해주세요.
가장 최근엔 《해가 지는 곳으로》가 충격적으로 좋아서, 최진영 작가님이요. 이 책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이걸 읽었다는 게 저를 충만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무엇보다 정말 잘 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다면》의 제임스 설터도 좋고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신형철 작가님도 좋아요. 요즘은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는데, 정세랑 작가님 글을 읽으면 작가의 말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독자로만 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거 읽기만 하고.

저의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 세상엔 땡땡땡이 너무 많다.” 빈 칸을 채워주세요.
오해. 제일 쉬우니까요. 이해는 어렵잖아요.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공을 못 들이고 있기도 하고요. 모두에게 정확히 이해받고 싶은 건 아닌데 어떤 오해는 참을 수 있지만 어떤 오해는 참기 어렵기도 해요. 타인을 글에 데려와 옮겨 쓸 때 안 좋은 방식으로 오해해서 쓰면 괴로운 게 문제 같아요. 내가 나를 오해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오해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오해의 방식이 좋지 않았을 때 너무 창피하거든요. 나나 남이나 오해가 너무 많아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미색의 편지를 받은 어떤 오후같은 수필집. 매일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어떤 무게를 지닐까. 지나간 시간을 되짚고 점검하는 일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돌아본 풍경은 마냥 그립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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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