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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ㅡ 배우
한입 가득 음식을 밀어 넣고 냠냠 먹는 것도, 썰지 않은 김밥을 한 손에 쥐고 우걱우걱 씹는 것도, 풍선껌을 한 통 가득 입에 넣고 오물오물 혀를 굴려 풍선 부는 것도, 미처 다 씹지 않은 음식물을 한쪽에 두고 또 다른 음식을 밀어 넣어 함빡 먹는 것도, 최강희에겐 재미이자 사랑에 다름 아니다.
강희 씨 집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설렜어요(웃음). 티브이에서 보던 거랑 똑같은데, 향도 나고 훨씬 따듯한 느낌이에요. 반려묘 ‘우리’가 가장 먼저 반겨주네요.
와, 우리가 되게 좋아하네요. 최근에 취재 때문에 외부 사람이 몇 번 집에 왔는데 우리 반응이 각양각색이더라고요. 며칠 전엔 몇 명 오지도 않았는데 어딘가에 콕 박혀서 얼굴도 안 보여줬고, 티브이 촬영 때는 스태프가 꽤 많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돌아다녔거든요. 우리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은 냄새도 맡고 잘 돌아다니네요.
환대받는 거 같아서 기뻐요. 라디오 〈최강희의 영화음악〉들으면서 왔는데 그래서인지 내내 같이 있는 기분이에요. 매일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11시엔 라디오 하러 가실 테고 오늘처럼 인터뷰하는 날도 있을 것 같아요.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최근 한 달은 그간 해오던 거랑은 완전히 다르게 살았어요.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고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대중은 저를 좋게 봐주는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한테는 걱정을 많이 샀어요. 제 모습이 좀 불안정해 보였는지 검사받아 보자는 권유도 있었고, 병원 소개해 주는 지인도 있었거든요. 푹 쉬고 좀 자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요즘은 5시 15분 기상 알람도 끄고, 운동도, 예배도 쉬고,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생활을 해봤어요. 근데 똑같더라고요(웃음). 새벽형 인간이라 5시쯤 되면 저절로 몸이 깨요. 푹 자든 그렇지 않든 낮잠 자고 조는 것도 똑같고요. 원래 루틴은 5시 15분에 일어나서 새벽 예배를 갔다 운동하러 가는 거였어요. 그사이 졸리면 30분 정도 자기도 하고요. 저는 ‘호랑이 트레이너’로 알려진 양치승 관장님 헬스장에 다니는데요. 운동 끝나면 관장님이 맛있는 걸 해주시거든요. 그거 먹고 부랴부랴 급히 라디오 하러 가는 게 일상이었지요. 라디오 끝나면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해요. 제일 좋아하는 일과는 라디오 끝난 낮에 한가하게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거예요. 라디오 하는 CBS 건물 바로 옆에 메가박스가 있거든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교회 사람들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요. 아, 요즘엔 금요일마다 유튜브 촬영도 하고요.
유튜브 채널 〈나도최강희〉! 저도 챙겨 보고 있어요. 여러 직업을 체험하고 주변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콘텐츠가 참 좋더라고요. 동네 사람들 다루는 편에서 “우리 동네 대흥동!” 하고 소리치는 거 보면서 ‘이렇게 동네를 공개해도 되나.’ 걱정하기도 했어요. 한편 그 모습이 강희 씨 같아서 반갑기도 했고요.
우리 아래층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올라왔잖아요. 보셨죠? 새하얀 옷을 위아래로 차려입고 카페에 들어가도 아무도 말 걸지 않고,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웃음).
그러고 보니 저만 깜짝 놀란 것 같기도 해요(웃음). 물병 두 개에 음료를 한가득 포장하셨죠.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오시니까 오전에 미리 물병을 맡겨 두었어요. 물병에 담아서 포장하면 쓰레기도 안 나오고 따라 마시기도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떤 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커피랑 차 두 종류로 준비했어요. 하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는 요즘 제가 즐겨 마시는 아이스 자몽허니블랙티예요.
물병 받자마자 흰 바지에 아메리카노 ‘철철철’ 다 흘리셨잖아요. 엘리베이터에서는 릴레이처럼 찻물을 쏟고. 집에 올라오자마자 바지 빨래 대잔치였죠(웃음).
오늘 차림에 맞춰 머리도 길게 풀고 온 건데,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는 바람에 스타일링한 보람이 없어졌어요. 이따 사진 찍을 때 뭐가 더 잘 어울리는지 봐주셔야 해요(웃음).
물론입니다(웃음). 〈나도최강희〉 ‘동네 두 바퀴’ 편 보면서 지금 사는 동네를 참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좋아하는 동네 김밥집 사장님을 인터뷰하기도 했죠. 그때 가게에 오가는 손님들이랑 자연스럽게 이야기 섞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원래 동네를 좀 누비고 다니는 스타일인데,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 이 동네에 더 애정을 품게 돼요. 특히 김밥집 촬영 땐 ‘김밥’이란 공통 주제가 있으니까 더 할 말이 많았고 편하기도 했어요.
그 콘텐츠 재미있게 봤는데, 김밥을 안 썰어 드신다고요?
통째로 들고 우걱우걱 씹어 먹는 게 좋아요(웃음). 다들 어릴 때 그렇게 먹지 않았나요? 엄마가 집에서 김밥 싸주시면 고소한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서 썰기도 전에 통째로 들고 먹곤 하잖아요. 저는 시골 애처럼 뭐든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게 좋아요. 나무가 있으면 올라가 보고 싶고, 돌담이 보이면 기어오르고 싶고 그래요. 실제로 어릴 때는 그렇게 지내기도 했고요. 한창 술 마실 땐 기분 좋아지면 길바닥에 앉아서 맥주랑 과자를 먹기도 했어요. 프링글스랑 맥주, 잘 어울리잖아요(웃음). 저는 제가 영화 같은 이미지 속에 있기를 바라요.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제 모습이 좋아서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운동 끝나고 양치승 관장님이 해준 떡볶이 먹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통째로 조리된 어묵을 그대로 씹어 드시고, 기다란 떡볶이도 입안 가득 담고, 물도 벌컥벌컥 드시더라고요. “나는 내가 복스럽게 먹는 게 좋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저도 예쁘게 먹을 수만 있다면 예쁘게 먹고 싶어요. 근데 예쁘게 먹는 건 저한테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또, 저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게 좋아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애들이 우걱우걱 먹는 장면 자주 나오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힐링되지 않나요? 제가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을 만든 사람도 좋아할 거란 걸 아니까 더 복스럽게 먹고 싶어져요. 제가 이 사람이 해준 떡볶이를 입안 가득 넣고, 어묵을 더 먹고 싶어서 입안 가득한 데다 또 넣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싶은 거죠. 서로 한 번 더 웃게 되기도 하고요.
강희 씨가 만든 음식도 우걱우걱 먹어요?
저… 요리 못해요(웃음). 자취하면서 이제 요리 좀 해보자, 해서 밥통을 샀는데요. 저건 그냥 밥통일 뿐이에요.
그럼 평소에 식사 어떻게 하세요?
저는 먹는 것에 예민하지도, 까다롭지도 않아요. 누가 주는 거면 다 먹어요. 챙겨주는 언니들이 많아서 받아오는 음식도 잘 먹고, 냉장고에 유통기한 임박한 거 있으면 그것부터 꺼내 먹고. 있는 걸 다 잘 먹으니까 냉장고가 거의 비어 있는 편이에요. 근데 또 누가 챙겨주지 않고, 냉장고에도 먹을 게 없으면 안 먹기도 해요. 음식은 누가 챙겨주면 먹고, 아니면 마는 거!
세 끼를 제때 챙겨 먹는 스타일은 아니군요.
저한테 ‘끼니’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밥은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예요. 재미가 있겠다, 싶으면 먹거든요. 이를테면 ‘지금 오다리랑 갈배 사이다 먹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나가서 사 먹어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먹으면 재미있겠다.’ 같은 생각도 종종 하고요. 편의점 옥수수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도 맛있고 재미있잖아요. 이렇게 음식에서 오는 재미도 있는데요, 사실 저한텐 같이 먹는 사람의 재미가 가장 커요. ‘지금 누구랑 뭘 먹으면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친구한테 연락해요. 보통은 재미를 따라 식사를 챙기는 편이죠.
음식을 맛으로 즐기지 않아요?
네. 맛보다는 재미! 그래서 풍선껌 좋아해요. 집에 항상 있는 것 중 하나가 풍선껌이에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무조건 통째로 먹죠. 하나씩 하나씩 까서 한 통을 다 먹고, 신나게 풍선 불고, 딱딱해지면 뱉고, 또 먹고 싶어지면 한 통 다 씹고, 한참 불다가 딱딱해지면 뱉고. 아, 저 자다가도 많이 먹는 편이에요.
자다가요?
네(웃음). 그래서 양치를 언제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유전인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가 저 어릴 때 항상 머리맡에 미제 과자들을 두셨어요. 지금이야 쉽게 살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오레오가 귀했거든요. 머리맡에 잔뜩 두고 주무셨는데, 자다 말고 일어나서 드세요. 드시다 말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바로 주무시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자다 말고 일어나서 뭐 드셨어요?
귤이요. 귤 진짜 많이 까먹어요. 그걸 먹으려고 일어나는 건 아닌데요, 눈뜨면 눈뜬 김에 뭔가 먹어야지 싶어져요. 먹다 뭔가 보고 싶으면 볼 걸 틀어놓고 보다 잠들기도 하고, 먹자마자 그냥 자기도 하고요.
자다 일어난 김에 목 축이는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가 봐요. 저는 물보다 귤 먹는 걸 좋아해요. 수분 섭취도 과일로 하는 편이에요. 물은 마셔야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니까 챙겨 마시기는 하는데요, 재미는 없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식탁 위에서’예요. 가장 이야기하기 쉬운 ‘맛집’부터 얘기해 볼까요? 〈나도최강희〉에서 소개해 주신 ‘롤앤롤김밥’도 궁금해요.
이따 같이 가요. 제가 김밥 사드릴게요. 음… 그럼 맛집 추천 한번 해볼게요! 《AROUND》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곳인데요. 술 좋아하시면 자양동에 있는 ‘신춘’! 사장님이 알려지는 걸 싫어하셔서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다 지웠어요. 지도 앱에서 리뷰도 못 보게 해놨고, 검색하면 분식집으로 분류될 텐데 술집이에요. 영화 〈후아유〉(2002)에서 조승우 씨가 부른 노래 만든 분이 사장님이세요. 〈고고70〉(2008) 음악감독도 하셨고요. 저녁 5시에 문을 여는데 재료를 딱 적당량만 사 와서 다 떨어지면 영업을 끝내요. 떡볶이도 맛있고, 튀김도 일품이에요. 술은 일본에서 맛보고 사장님 마음에 든 술이 있으면 가지고 와서 판매하고, 언더록 주류도 많아요. 아, 아이스크림에 시나몬 가루 얹어 주시는 게 진짜 맛있는데, 옛날엔 메뉴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거든요. 해달라고 하시면 해주실 거예요. 알려지는 거 싫어하시는데 막 추천하고 있네(웃음).
개인적으로 떡볶이랑 튀김은 최고의 안주라고 생각해요(웃음). 밥 먹기 좋은 식당도 추천해 주실래요?
광진구에 ‘날일달월’이라고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생식 식당이 있어요. 생채소를 썰어서 내놓으시는데요. 쌈이랑 같이 나와요. 쌈에 채소를 싸 먹는 거죠. 근데 채소가 너무 맛있어서 아무 조리 없이 쌈만 싸 먹어도 맛있어요. 사장님이 항상 단정하고 정갈한 차림으로 웃고 계시는데, 음식이 나오면 “진지 드세요.” 하시거든요. 그 말이 정말 듣기 좋아요. 소품도 전부 자연 친화적이에요. 재생지를 잘라서 올려놓고, 빵도 돌로 구워서 빵집에서 사 먹는 거랑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암 환자와 식사할 일이 있어서 처음 가게 됐는데 제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음료도 정말 맛있는데… 아, 콩물! 콩물 꼭 드셔 보세요.
어떻게 될지 몰라서 소속사에 들어갈 생각은 아직 없다고도 하셨는데요. 지금은 외부에서 정의 내릴 수 없는 고유의 최강희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뭐 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소개하고 싶어요?
오히려 지금은 배우라고 소개할 것 같아요.
어? 의외네요.
연기를 하고 있어야만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 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평소에 연기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특히 〈나도최강희〉는 다른 삶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직업 체험도 하고, 질문도 하는 콘텐츠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눈에 꾹꾹 눌러 담는 장면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생긴 직업병 같아요. 이를테면, 누군가의 몸짓을 보면서 ‘저런 표정으로 저 손짓을, 저런 각도로 하면 저런 느낌이 나는구나.’ 하고, ‘문을 저런 세기로 두드리면 진짜 마음 다해 사람을 찾는 것 같구나.’ 하면서 장면 장면을 담아두게 돼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진짜 배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졌어요. 사실 연기 활동할 땐 청개구리처럼 나는 배우 같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연기에서 조금 떨어져 보니까 제가 아티스트라는 걸 실감하게 돼요. 여러 사람과 섞여 살면서 오히려 정확하게 구분되는 것 같아요.
새삼스레 고백하건대, 강희 씨 정말 좋아해요(웃음). 강희 씨 처음 본 게 〈여고괴담〉(1997)이거든요. 볼 수 있는 나이가 안 돼서 부모님 통해 비디오로 빌려 보고, 그때 강희 씨 존재를 처음 알게 됐어요. 강희 씨 데뷔가 1995년도죠. 거의 30년간 이 직업을 갖고 있는 건데, 감회가 어때요?
아니, 그 무서운 게 왜 보고 싶었어요(웃음)? 30년이나 이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좀… 멋있어요. 제가 연기 활동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연기에 빠졌다가 금세 사라지고,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어요.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는데, 저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제가 높은 자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잘나서, 잘해서가 아니라 같이 출발한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려서 저만 남게 된 건데요. 문득 제가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저한테 반했어요(웃음). 거의 30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한 거니까… 이 정도면 멋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럼요. 〈나도최강희〉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어요’ 편에서 소각장에 가서는 추억 박스를 하나 태우셨지요. 그러면서 “인생 제2막 시작!”이라고 하셨어요. 최강희의 인생 1막과 2막에 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유튜브를 굉장히 해보고 싶었는데, 연기 관두고 몇 년 만에 하게 됐어요. 단순하게 그 의미에서 새로운 막이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때 소각한 게 추억이 담긴 박스거든요. 옛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라든지, 함께 본 영화표, 기념이 될 만한 것들 같은 걸 모아둔 거예요. 근데 그 존재를 느낄 때마다 찝찝하더라고요.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닌데 어쩌다 눈에 띄면 찝찝한 느낌?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계기가 없어서 못 버리는 상자였어요. 근데 마침 환경미화원 콘텐츠 찍는 날, PD가 “선배님 오늘 소각장도 가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오늘이다!’ 싶었어요. 제가 자유로워지는 날이란 생각이 든 거죠. 살면서 점점 과거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져요. 옛날에는 떠나는 사람, 멀어지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너무 아쉬웠거든요. 근데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알아요. 시절 인연이라는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친한 친구가 연인이 되기도 하고, 친하지 않던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인연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제가 또 한 번 성장했다는 걸 느꼈어요. 나이가 무색하게요.
방금 이야기하시면서 “연기를 관뒀다”고 하셨는데요. 연기를… 그만두셨어요?
사실 관뒀었죠. 언니들이 “야 이것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 너만 알고 있어!” 그러거든요(웃음). 그래서 쉽게 말하고 다니지 못했는데, 가족과 상의하고 매니저랑 논의한 뒤 계약을 종료했어요. 모든 대본을 일절 검토하지 않겠다고 회사에 전달해 둔 상황이었죠. 관둔 거 맞았어요.
과거형이네요.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연기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 차례 리프레시된 상태예요. 그간은 시야가 좁아서 지금의 나를 잘 못 봤어요. 사실 잘 맞는 다른 직업이 있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방송 작가 학원도 다녀보고, 편집도 배워봤는데요. 하고 보니까 제 성격에 잘 어울리는 건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이더라고요.그 표현 방식은 절대 언어나 글은 아니에요. 저는 저 자체로, 제 몸과 목소리와 표정으로 표현하는 게 제일 잘 맞는 사람이에요.
쉬는 기간 동안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했다고 들었어요. 이번 호가 먹는 것과 관련있다 보니 궁금해지는데, 먹기 위해 찾는 고깃집과 일하는 곳으로서의 고깃집은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고깃집에선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설거지는 사람들이 먹고 난 걸 뒤처리하는 일이잖아요. 먹는 목적으로도 고깃집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할 땐 더욱더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더러워진 식기들을 보면서 연료 찌꺼기가 남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 음식이 연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경유가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을 움직이는 재료 같아서요. 쓰이고 나면 이렇게 찌꺼기가 되고.
그런 말이 있잖아요, “무엇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강희 씨는 어떤 음식이 나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 그럼 저는 ‘아무거나’가 저를 이루는 사람인데요(웃음). 매일 먹고 싶은 음식도 잘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도 없어요. 열이면 열, 남이 좋아하는 걸 먹고 싶어요. 함께 먹는 사람이 선호하는 음식이요.
그럼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도 없어요?
없어요. 정말 이상한 것도 먹을 수 있어요. 제가 절대로 먹지 않는 게 있다 해도, 같이 먹는 사람이 “한 입 먹어 봐.” 하면 먹을 수 있어요. 넷플릭스에서 문어와 우정을 쌓는 〈나의 문어 선생님〉 보면서 문어는 절대 못 먹겠다 생각했는데요. 만약 그때 누가 문어를 썰어서 저한테 “먹어 봐.” 한다면 먹었을 거예요. 제가 먹는 음식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음, 그래도 절대 못 먹는 음식은 있네요. 보신탕. 아, 그리고 개불도 먹어 본 적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주면… 먹긴 먹을 것 같아요.
개불…. 저도 안 먹어 봤어요. 맛있다고는 하는데 생긴 게 불어 터진 지렁이 같아서….
그렇죠? 저만 그런 게 아니죠? 어디가 얼굴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온 애인지 정체도 잘 모르겠고….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흔히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의식주라고 하잖아요. 강희 씨 삶에서 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예요?
단순히 ‘먹는 거’로만 생각하면 그 비중은 거의 없어요. 근데 먹는 일을 관계이자 사랑으로 생각하면 달라져요. 저한테 음식은 사랑이거든요. 제가 음식에 관심이 없다는 걸 느낄 때가 더러 있는데요. 특히 함께할 사람이 없을 땐 정말로 음식에 관심이 없어요. 어떨 땐 껌만 몇 통씩 씹고 있을 때도 있고, 유통기한 임박한 거 아무거나 꺼내 먹을 때도 많죠. 그래도 요즘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예쁜 그릇에 소담스럽게 음식을 담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해요. 사람들이 예쁜 식기나 아름다운 식탁에 관심 두는 걸 보면서 이해를 못 했는데, 그런 게 이해되는 요즘 제 모습이 좋아요.
최근에 예쁜 식기를 들이기도 해요?
아직 거기까진 못 갔어요(웃음). 저 의외로 옷도 전혀 안 사고, 물욕이 거의 없어요. 자기한테 지원할 줄 모르는 편이에요.
아, 강희 씨가 집에 오는 사람들한테 뭔가를 그렇게 주신다면서요. 자기 물건을 바리바리.
맞아요. 다 주고 싶어요. 물건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장기든 뭐든 다 주고 싶어요. 누가 커튼이 없다고 하면 저희 집 커튼 떼서 주고 싶고, 귀여운 소품 생기면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한테 갖다주고 싶고. 근데 주변에서 다들 말려요. “강희야, 하지 마. 진짜 하지 마.” 그래서 참는 거예요. 저는 욕심이 정말 없거든요. 얼마 전에 간단한 욕구 테스트를 했는데 수치가 정말 낮더라고요. 이렇게 욕구가 없기도 쉽지 않대요(웃음). 요즘 사람들은 자기 욕구를 잘 모른대요. 기분이 나쁘면 나쁜 걸로 끝이지, 어떤 욕구가 인정이 안 돼서, 어떤 욕구가 넘쳐나서 그런 건지 인지를 못 한다고 해요. 근데 저, 생존 욕구가 진짜 낮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의식주가 생존에 관한 거잖아요.
그중 가장 높은 욕구는 뭐였어요?
사랑 욕구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거. 그나마 그건 정상 범주더라고요. 저는 남한테 관심이 참 많아요. 옛날에 싸이월드 미니홈피 할 시절엔 온갖 사람 사생활을 다 알고 지냈어요. 팬들 사생활까지도요(웃음).
〈나도최강희〉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한단 인상을 받았어요. 인터뷰 콘텐츠인가 싶을 정도로 질문을 엄청 많이 하시더라고요. 라디오 들어봐도 한 번 읽은 사연은 곧잘 기억하시고요.
저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웬만해선 사람이 다 좋아요. 어떤 사람을 묵상하다 보면 매력이 무궁무진해서 마음만 먹으면 삽시간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아무리 까칠하다는 배우들하고도 사이가 좋아요. 제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저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양치승 관장님도 다들 호랑이 트레이너라고 하지만 저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아파서 운동을 못 갈 거 같아도 굳이 헬스장까지 가서 “저 오늘 너무 아파요. 운동 못 할 거 같아요.” 그러거든요. 그럼 관장님은 왜 왔냐고 묻는데,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죠(웃음). 그게 사람에 대한 제 관심이고 애정이에요.
생존 욕구로서의 먹는 행위보단 사람과 같이 먹는 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네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을 향한 호기심이기도 하고요.
먹는다는 건 건강이랑도 직결되는 요소인데, 건강 면에선 어때요?
건강은 좀 무심한 편이고, 유전자가 그렇게 좋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다행히 타고난 것 같아요. 불면증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고… 일단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요. 실연을 당했을 때 스트레스 지수를 잴 일이 있었는데, 없더라고요(웃음). ‘아, 너무 보고 싶다.’ 거기서 끝이에요.
엄청난 장점 같아요.
근데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처음 밥 먹을 땐 무조건 체해요. 저는 이 사람이 좋은데 상대방이 저를 불편해할까 봐 걱정돼서요. 제가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노잼’이어서 저 사람이 곧 이 자리를 뜰 것 같다고 생각하면 두통이 와요. 속이 메슥거리면서 먹은 게 얹히죠. 근데 체할 걸 알면서도 굳이 그 자리에 가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밥 먹는 게 너무 좋아서요. 좋아하는 걸 숨기지도 않아요. 주변에서 “넌 자존심도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해도 타격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없어요. 계산도 없고요. 한번은 코미디언 김기리 씨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처음 만났을 땐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드라마 끝나고 보니까 누나는 대배우랑 보조 출연자한테 똑같이 긴장하는 사람이더라.” 그 말이 되게 좋았어요.
그냥, 다 좋아요. 사람이라면.
얼마 전에 방송에서 “작품 활동할 때는 관리하는데 작품이 끝나면 관리를 안 해서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잔 이야기는 계속 있어왔지만, 화면에 얼굴이 나오는 이상 외모에서 완전히 관심을 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배우들이 대부분 그럴 텐데, 작품 할 땐 정말 힘들어요. 신인이든 중견이든, 20대든 50대든 똑같이 그래요. 다들 먹을 거 못 먹고, 안 먹고 관리해요. 그렇게 안 먹으면서 운동만 엄청나게 하다가 작품 끝나면 마구 먹고 운동도 안 하거든요. 그럼 몸이 많이 상해요. 저도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작품 활동을 안 하면서 식단을 관두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운동이 좋아서 하고,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을 때 먹고…. 그게 행복이라는 걸 알았어요.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근육도 더 잘 생기더라고요. 양치승 관장님은 운동이 끝나면 요리를 곧잘 해주시는데 꼭 탄수화물을 먹여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보통 단백질에 집중해서 식사하곤 하는데요. 관장님은 영양소가 한쪽으로 몰리는 게 오히려 더 안 좋다면서 영양소를 골고루 담아 차려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더 이상 탄수화물을 안 미워하게 됐어요.
탄수화물이 미웠어요?
네. 작품 할 땐 영양소 따질 겨를도 없어요. 무조건 살 안 찌는 것만 먹었으니까 탄수화물은 적이었죠. 근데, 많은 배우가 소식보단 안 먹는 쪽을 택해요. 조금 먹는 것보다 아예 안 먹으면 살이 더 빠질 것 같으니까요.
식욕이 없는 편인데도 활동할 땐 식단이 힘들었군요.
식욕이 없는데도 억지로 절제해 놓으니까 이상한 식욕이 생기더라고요. 식탐이 생겨요.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먹는 거예요. 막 먹어요. 자포자기한 것처럼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보니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이렇게 좋은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어요. 먹기 싫을 때가 있다는 걸 느끼는 것도 좋고요.
먹는 기쁨도, 운동하는 기쁨도 알게 된 거네요. 강희 씨 등 근육 진짜 멋있어요.
나이가 들면 몸이 처지잖아요, 원래 모양대로 유지가 안 되는데요. 운동으로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을 유지해 나간다는 게 솔직히 좋아요. 건강에도 좋지만 옷값을 아끼는 데도 도움이 돼요. 연기 그만두고 살찌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어떤 옷도 안 어울리게 됐다는 거예요. 핏이 안 나오더라고요. 근데 운동을 시작하고 나니까 온갖 옷이 다 어울리는 거예요. 몸이 단단해지니까 태가 잡히고… 옷값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이란 걸 알았어요.
단백질만 먹는 게 아니라 골고루 챙겨 드신다고 했는데, 운동하고 나서 어떤 음식 특히 자주 드세요?
단백질을 채워주지 않으면 운동이 노동이 되기 때문에 단백질 섭취는 필수인데요. 프로틴으로 먹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제가 잘 안 챙겨 먹거든요. 그래서 관장님이 요리해 주실 때마다 단백질을 엄청 챙겨 주세요. 냉면 한 그릇을 만들어도 달걀 세 알 올려주시고(웃음). 떡볶이 해주실 때도 마찬가지고요. 관장님 떡볶이가 진짜 맛있거든요. 제발 딴 거 하지 말고 떡볶이 사업하라고 항상 얘기해요. 제가 1종 면허라도 딸 테니 대형 푸드트럭이라도 하자고(웃음). 꼭 사업이 아니더라도 이벤트로라도 하고 싶어요. 사람들한테 이 떡볶이를 꼭 먹여주고 싶거든요.
강희 씨 눈이 반짝거려요(웃음). 혹시 관장님 떡볶이가 소울 푸드예요?
어? 맞아요. 정말 그래요. 질문지를 미리 읽어보면서 소울 푸드 묻는 질문에 떠오르는 게 없었거든요. 저를 위로해 주는 음식…은 없어서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러네요, 관장님의 떡볶이가 제 소울 푸드예요. 관장님을 만나기 전의 저는 젤리를 달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기분이 다운돼 보이면 사람들이 젤리를 쥐여줄 정도였기 때문에 처음엔 소울 푸드로 젤리를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위로를 준다기보단 약 같은 거였어요. 제가 하도 젤리를 먹으니까 한번은 매니저가 차에서 젤리를 다 치워버린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밥 먹으러 가자는데 관리해야 하니까 안 먹겠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매니저가 그럼 젤리도 먹지 말라면서 다 가지고 내려버렸어요. 저를 워낙 위해주던 매니저여서 턱 아픈데도 젤리 씹고 있거나 젤리로 배 채우는 게 걱정돼서 그랬던 거였죠. 젤리로 끼니 때우느니 밥 한 끼 잘 먹는 게 낫다고 하는데, 제가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그때 젤리를 다 치워버린 건데, 아직도 젤리 생각하면 그때가 자꾸 떠올라요. 음… 혹시 출출하지 않아요? 우리 잠깐 롤앤롤김밥 갔다 올래요? 매운 거 좋아해요? 서강김밥이 대표 메뉴인데 매운 잡채로 채워진 김밥이거든요. 먹어 보실래요?
(김밥집에서 김밥을 한 줄씩 먹고 돌아온다.) 저는 오리지널을 좋아해서 퓨전 김밥을 먹어 본 적은 없는데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어요. 메뉴에 없던 호두크림바질김밥도 만들어 주셨잖아요, 진짜 맛있었어요. 저의 최고 메뉴는 유부김밥. 생각나서 또 올 것 같아요.
맛있죠! 회전초밥 집처럼 접시 쌓아가면서 먹는 거 너무 재미있었어요(웃음). 매운 거 못 드신다는데 제가 계속 서강김밥 드셔 보라고 했잖아요, 그런 게 저한테는 재미예요. 김밥의 맛도 재미지만, 같이 먹는 사람에게 매운 김밥을 추천하고 반응을 보면서 함께 먹는 재미.
〈나도최강희〉에서 좋은 가게는 딱 문 열고 “안녕하세요!” 할 때 느낌이 오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셨지요. 그 ‘느낌’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말로 꼭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끼는 기운일 거예요. 기본적인 예의, 자신을 낮추면서 손님을 환대하는 태도. 꼭 인사를 소리 내서 하지 않더라도 얼굴과 공기에서 풍기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잖아요. 문을 열면 그런 게 확 느껴지고, 가게를 둘러보면 사장님이 이 가게에 얼마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보여요.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인데 구석구석 먼지가 많다거나 일회용 컵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 좋은 가게란 느낌은 잘 안 들죠. 예쁜 쿠키가 쌓여 있어도 사 온 쿠키라는 게 눈에 보이면 요리와 커피에 관심 없는 사람이 하는 카페라는 걸 알게 되고요. 롤앤롤김밥은 항상 같은 시각에 문을 열고, 항상 같은 분위기로 손님을 맞아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가게예요. 그런 걸 보면서 요즘엔 성실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 2009년에 나온 강희 씨 책 가지고 왔어요.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여기 ‘나에게 반짝이는 것들’이라는 글이 있는데 먹을 게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라임 주스, 여름에 동아냉면, 칠리 덕 세트, 던킨의 플레인 베이글.
와, 2009년 판이네요. 오랜만이다(웃음). 던킨의 플레인 베이글은 사실 그냥 베이글인데요. 그걸 먹으면 외국에 촬영 나가서 먹던 베이글이 생각나서 좋아요. 영어를 잘 못해서 아침에 혼자 식당 가긴 부담스럽고… 그럴 때 베이글 집에 가서 베이글이랑 커피를 주문해서 먹곤 했어요. 새벽에 나가서 사 먹던 그 맛과 낯선 외국 느낌이 떠올라서 베이글을 좋아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베이글을 먹으면 약간의 모험심과 용기가 생기는 기분이에요. 위로 같기도 하고요. 여름에 동아냉면은 제가 에디터님한테 서강김밥 먹어 보라고 했을 때의 재미랑도 비슷해요. 동아냉면이 되게 맵거든요. 아는 사람을 데려가서 “이거 먹어 봐.” 하는 게 저한텐 재미였던 거죠. 항상 그 맞은편에 있던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 가지고 가선 “사장님, 김밥이랑 같이 먹어도 돼요?” 묻곤 했어요. 매운 거 못 먹는 친구한테 냉면 먹이면서 매울 때마다 김밥 하나씩 먹으라고 했거든요(웃음).
강희 씨 기억 속 음식은 맛보다도 기억의 비중이 크네요.
정말 그래요.
이번 호에서 먹는 걸 다뤄서 그런지 책에서도 먹는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띄었어요. “기억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말한다. ‘그래도 끼니는 알아서 챙겨 먹어야지, 그래야 착하지.’”라는 대목이 있지요. 스스로 끼니를 챙길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당부로 먹게 되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
보통 엄마가 그러죠.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고요(웃음). 저도 항상 “엄마, 나 뭐 먹었는지 궁금해하지 마! 알아서 잘 먹었어!” 그러거든요. 말씀해 주신 문장은 제가 겪은 걸 쓴 건 아니고, 상상하면서 쓴 문장인데요. 제가 어릴 때 출연한 〈광끼〉라는 드라마를 생각하면서 썼어요. 대학생 드라마였는데, 원빈, 배두나, 양동근 배우가 같이 출연한 작품이었어요. 제가 성연, 원빈 씨가 민 역할이었는데 극 중에서 성연과 민이 좋아하게 되면서 항상 서로의 끼니를 챙겨요. 대학 생활이 바쁘니까 잠깐씩 마주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 잠깐 “밥 먹었어?” 하고 묻고, 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멀리서는 밥 먹는 시늉을 하면서 “밥 먹었어?” 하고 입 모양으로 묻고. 그런 표현을 유난히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사랑엔 많은 언어가 있지만 상대의 끼니를 챙기는 게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끼니를 걱정해 주면 왠지 더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강희 씨는 뭔가를 먹을 때 쓰레기 걱정을 하신다고요. 〈나도최강희〉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어요’ 편에서 “밥 먹을 때 이게 어디로 가는지 안 궁금해?” 하고 쓰레기의 행방을 궁금해하기도 했죠.
한동안 쓰레기 모으는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네 달 동안 제가 쓴 쓰레기를 모았던 적이 있어요.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제 밑바닥을 보고 싶었어요. “진짜 사랑해? 너 가짜지?” 하는 마음으로요. 제가 먹은 거, 버린 거… 쓰레기를 모아보니까 깨끗이 닦아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지 않으면 엄청 지저분하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됐어요. 그대로 두면 금세 부패하고 냄새도 나고 흉측해지더라고요. 그 당시엔 제가 만든 쓰레기들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악취 때문에 힘들다고,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이타적으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도 그 체험 끝에 좋은 습관이 생겼어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연스럽게 환경을 지키는 태도를 갖추게 됐거든요. 텀블러를 꼭 챙겨 나가고, 쓰레기 많이 나오는 건 피하게 되고. ‘아, 나 지금 진짜구나.’라는 걸 깨달을 때 쾌감이 커요.
먹는다는 건 결국 책임이랑 관련 깊은 일 같아요.
맞아요. 사랑이랑도요. 나를 사랑해야 내 먹거리를 챙기니까요.
현대사회를 표현하는 말로 “바쁘다, 바빠.”라는 말이 자주 쓰이죠. 바쁠 때 제일 먼저 소홀해지는 게 밥이랑 잠인 듯한데, 바빠서 먹는 거에 소홀해질 때 있어요?
아니요. 저는 바빠서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돼요. 저는 바쁘면 잽싸게 김밥 한 줄 사서 통째로 뜯으면서 이동하거든요. 이에 뭔가 낄까 봐, 그거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안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저는 그럼 잽싸게 먹고 잽싸게 이를 닦아요(웃음). 맘이 바빠서 다 쏟고, 엎으면서도 어쨌든 먹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뚝딱 해치우는 딸이었어요.
최근에는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먹방이 유행하는 등 흥미와 관심거리로 먹거리를 다루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식사가 절실한 일이기도 하죠.
참 어려운 이야기예요. 글로벌 NGO ‘월드비전’에서 계속 활동해 오고 있는데 월드비전의 비전선언문이 “우리의 비전은 모든 어린이가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는 모든 사람이 이 비전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예요. 한번은 ‘풍성한 삶’이 뭔지 물어봤는데 기본적으로 먹고, 기본적으로 배우는 삶이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것만 하고 남에게 베푼다면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였죠. 근데, 남한테 베푼다는 게 쉽지 않아요. 제가 한창 쓰레기 모을 때 저만의 챌린지를 진행했는데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가 먹지 않음으로써 모은 금액을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커피를 한 번 사 먹지 않으면 쓰레기도 안 나오고, 그 돈을 기부도 하는 챌린지였던 거죠. 통장에서 일정 금액 기부하는 거랑은 다른 기부이자 일종의 도전이었어요.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모든 사람 입에 음식이 들어가게 하는 거, 타인의 풍성한 삶과 기본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먹는 이야기를 하자고 만나서는 먹고 사는 이야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유튜버로서의 삶도 새롭게 시작되었는데요.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만들어 가고 싶은 구체적인 정체성은 없지만 큼직하게 보자면 ‘먹기 좋은 건강한 음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껏, 특히 요즘은 사람들이 저를 더 좋게 봐주는데요. 저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에요. 제 기준에서 나쁜 짓도 많이 했고, 좋지 않은 면도 있는데 사람들이 보는 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더라고요. ‘무해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요. 정말 무해한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 볼 순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성경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그런 삶을 살고자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싶어요. 남을 위해 바지런함을 보일 수 있고, 내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타인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은 무해하고 유익한 사람이에요.
유익하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으면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근데 유익한 사람은 못 되겠죠. 제 무해한 모습이 시청자에겐 힐링일지라도 제 주변 사람들에겐 걱정거리가 되잖아요. 그런 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무해하고 유익하게, 조금 더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오늘 대화가 무해하고 유익하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최강희의 인생 2막도, 이어질 3막, 4막도 계속 응원할게요.
좋아요, 든든해요(웃음). 또 김밥 먹으러 오세요.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