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도

NOWWE — 일러스트레이터

편지 봉투 모양 책갈피가 있다. 투명하게 만들어져 책 어디에 꽂든 새로운 편지가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책갈피는 또 다른 편지가 되고, 편편의 편지를 모두 읽으면 한 권의 책이 끝난다. 매일매일 내용이 달라지는 이 편지는 손짓과 몸짓을 연구하며 사랑의 정도를 읽는 섬세한 사람, NOWWE로부터 출발했다.

이번 호 주제어에 NOWWE를 떠올린 건 편지를 모티프로 한 책갈피 덕분이었어요. 

고맙습니다(웃음). 저에게 편지는 기록이에요. 말은 기억 속에 있지만, 글은 손에 쥘 수 있어서 평소에도 작은 쪽지나 편지를 소중하게 생각해요. 저도 자주 쓰는 편이고요. 작은 말이라도 편지글을 통하면 기분이 좋고 새로운 마음이 들게 해요. ‘러브레터’ 책갈피와 ‘레터’ 책갈피는 편지를 보았을 때의 진심과 작은 감동을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책방 유어마인드에서 진행한 책갈피 특집전에 참여하면서 만들었는데요. 책갈피가 단순히 읽은 부분을 표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의 지표를 표시해 주는 매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의 어느 곳에든 지표를 놓을 수 있는 편지를 생각했지요. 러브레터 책갈피에는 글귀가 적혀 있고, 레터 책갈피는 투명해요. 레터 책갈피는 책 어느 곳에든 꽂아 놓아 자신을 위한 편지글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했죠. 

 

러브레터 책갈피엔 이러한 문장이 쓰여 있죠. “잊히지 않는 대화가 있어. 내가 건넨 말에 너는 얼굴로 답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어. 우리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하고 변했지만 잊지 마, 여전히 난 그날의 너의 손을 잡고 있어.” 

‘NOWWE DRAWING PAPER’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제 그림과 사진, 김지나의 글을 함께 전송하는 메일링 서비스인데, 그때 쓴 편지글이에요.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대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대화가 자주 오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잊을 수 없는 대화가 말이 아닌 얼굴과 마음이고,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글이 좋아 드로잉 페이퍼에 넣고 책갈피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편지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요? 

음…, 문득 ‘모든 책이 편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옛날에는 메일이나 SNS가 없어 모든 걸 편지로 대신한 게 생각났어요. 지금은 SNS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듯한데 편지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던 때는 ‘모든 책이 사실 편지로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모든 책이 편지 같기도 하고요. 

 

편지 이야기를 하느라 소개를 빼먹었네요(웃음). NOWW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죠. Now와 We가 결합된 단어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 같기도 해요. 

NOWWE는 독립출판물 행사인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처음 참가할 때 지은 이름이에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을 생각해 보니 지금, 그리고 무언가와 함께하는 것이었어요. Now, We 두 단어의 합성어지만 NOWWE 하나의 단어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죠. 독일에서는 ‘노베’라고 읽힌다고 해서 재미있었어요. 

 

독일어로 읽으니 사람 이름 같기도 하네요. 홈페이지에 페인터, 아트북 메이커라고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는 것, 아트북을 만드는 게 저한테 가장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아트북을 만드는 것보다는 관심 있는 주제인 정체성, 신체, 언어를 그림과 책의 물성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손짓과 몸짓 언어를 이미지로 연구하고,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의 가치를 드로잉 합니다.”라고 소개하고 있군요. 손짓과 몸짓 언어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우리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손짓과 몸짓을 통해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적절한 몸짓과 손짓을 통해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구사해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어떤 때는 몇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토닥거림이 위로될 때가 있어요. 축하한다는 말보다 최고라는 손동작이 더 와닿을 때가 있고요. 손짓과 몸짓에는 말보다 강한 전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고유하다는 점이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개개인의 개성과 가치를 드러낸다고 보고요. 신체 언어는 중요하면서도 흥미롭고, 이미지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한 언어이기에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선보이는 방식 중 책이라는 도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면서 이루어지는 시각 전환과 손으로 느껴지는 물성을 특히 좋아하고요. 아트북을 작업할 땐 그림을 담은 책이 아니라 책의 물성을 이용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진행해요. 책 제작 자체를 하나의 작업 도구로 생각하는 거죠.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목적에 맞게 전시하거나 캔버스에 그려서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책만큼 매력적인 소재는 찾지 못했어요. 제 작업은 아트북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아트북에서 시작된 거예요. 제본이나 종이, 구성, 넘김 등을 그림과 의도에 맞게 적절히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좋은 실험을 해나가면서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아트북 《Hand, Hand, Hand, Hand, Poetry》를 흥미롭게 보았어요. 손짓과 관계를 엮어 진행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요. 대화로 진행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미지를 통해 대화를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의 손동작이나 몸짓을 수집하죠. 보통 사진으로 찍어두고, SNS에 올라오는 이미지를 보기도 하고요. 수집한 이미지에서는 손동작의 모양보다 표현되는 느낌을 관찰해요. 그리고 그걸 최대한 담아 그림으로 그려요. 선이 매끄럽지 않거나 왜곡되어도 개성이나 느낌을 잘 담고 있다면 좋은 그림이 된다고 믿거든요. 《Hand, Hand, Hand, Hand, Poetry》는 손짓과 몸짓을 그려 얇은 종이에 겹쳐지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손짓을 이용한 대화가 마치 시처럼 보이도록 차곡차곡 쌓아서 겹치는 책으로 만들었죠.

손동작이나 몸짓을 수집하면서 새롭게 깨닫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몸동작이 있어요. 멀리서 걸어와도 친구는 바로 알아볼 수 있듯, 표현하는 모든 동작이 그 사람의 개성이죠. 꾸준히 관찰해 보니 사람들의 손짓, 몸짓은 그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더라고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동작도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여요. 불안한 사람은 강박적인 동작을 자주 하고요. 또, 자신감이나 자존감도 동작이나 태도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치듯 지나갈 몸짓들이죠. 

 

때로는 말보다 몸짓이 더 많은 걸 표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손짓과 몸짓을 하게 돼요. 손짓이나 몸짓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는 사랑의 정도라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대화할 땐 몸을 좀더 기울여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몸짓은 직접적인 발화가 아니기 때문에 해석하기 위해 좀더 생각하게 되는 점도 사랑의 정도 같고요. 그런 몸짓을 담고 있어서인지 NOWWE 작업도 시간을 들여 해석하게 돼요. 

작업을 통해 정체성과 언어, 신체에 관한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보는 사람들이 개인의 가치를 알았으면 해요. 개인이 있어야 온전한 사회와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요. 개인의 가치를 아는 것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내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 나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거군요. 

맞아요.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죠.

앞으로 손짓과 몸짓으로 어떤 이야기를 건네주실지 무척 기대돼요. 

지금까지 드로잉 작업과 채색 작업에 구분을 두지 않고 그때에 맞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는데, 선으로 그린 그림이 많아지면서 드로잉 비중이 커진 것 같아요. 선으로 그려진 그림엔 직접적인 시선과 감정이 개입된다고 생각해요. 손의 감각이 그대로 전달되어 그려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로잉 작업을 좋아하지만, 페인팅도 그만의 매력이 있답니다. 두 작업을 구분하지 않고 의도와 방향에 맞게 앞으로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림과 아트북을 꾸준히 이어 나가며 계속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요. 책의 물성을 빌린 새로운 작업도 계속해 나갈 거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좋은 작업들을 많이 보여드릴게요.


저는 아트북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 넣으며 계속 NOWWE만의 언어를 읽어 나갈게요.

좋아요!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주연

사진 NOW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