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외우는 사람의 말들

박참새—독립자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자 질문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자 사랑을 기록하는 사람. 그의 책장에는 자신과 꼭 닮은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방 벽에는 문장들이 줄을 이었고 잠자리 머리맡에도 작은 책장이 있다. 마음에 들어온 문장은 뼈에 새기듯 외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독립자 박참새를 만났다.

오늘 인터뷰어와 인터뷰하게 됐어요. 조금 긴장되네요(웃음).

저도 그래요(웃음). 인터뷰할 때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미리 질문들을 보고 나니 떨렸어요.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이라서요. 원래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곧 긴장이 풀리겠죠. 본명은 따로 있지만 ‘박참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참새는 SNS를 통해 불리게 된 이름이에요. 에디터로 일할 때 쓰던 계정이 따로 있었는데 새로운 계정을 만들 때 아이디를 정하다가 참새가 떠오르더라고요. 원래 새 이미지를 좋아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참새로 불리기 시작했고 저의 또 다른 이름이 됐어요. 한 독자분이 알려 주셔서 나중에 의미 부여를 하게 됐는데요. 참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살지 않는다고 해요. 참새에게 사람은 다른 동물들의 위협을 물리쳐 주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근데 또 가까이 가면 확 날아가 버리는 게 참새잖아요(웃음). 그런 면이 저와 닮아서 잘 맞는 이름을 지은 것 같아요. 

 

참새 님은 혼자인 걸 좋아하는 편일까요? 

항상 누구와 같이 있을 순 없으니까 혼자 잘 있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 있는 걸 즐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타인을 만나서 얻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일이 더 중요해진 것 같기도 해요. 일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요.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에요. ‘모이moi’라는 서점을 운영하며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 모이를 소개해 볼까요?

모이의 공식 소개 명칭은 ‘가상실재서점’이에요. 지금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북 큐레이션을 전개하고 있지만 처음엔 오프라인 공간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잠시 지방 도시의 카페 안에 있는 서점에서 일할 때였는데요. 아주 작은 곳이라 서점의 존재감이 약한 점이 아쉬워서 그 공간에 제 목소리와 색을 더해 꾸려 갔어요. 다행히 점점 서점으로서 역할이 공고해지기 시작했죠. 그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제 브랜드를 열어도 되겠단 확신이 생겨서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모이를 오픈하게 됐어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흐름이 인상적이네요. 북큐레이터 역할은 어때요? 신뢰성이 중요한 위치라 부담도 될 것 같아요.

항상 긴장해요. 책을 고를 때 무척 신중해지고 날이 갈수록 기준이 깐깐해져요. 제가 추천한 책에 독자가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는 상황이 늘 염려되어서요. 아마 이미 실망한 독자들도 있을 거예요. 오히려 더 주관적으로 책을 고르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론 무섭기도 해요. 위험이 따를 게 분명하니까요. 이제 순수한 독자가 아니게 됐다는 것도 북큐레이터로서 아쉬운 점이기도 해요. 독서할 때 이 책을 모이에서 소개할지 말지, 계산적인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요.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는 제가 아끼는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이 즐거워서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또 우리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단순한 바람이죠.

좋아하는 걸 나누는 일은 참 즐겁죠. 그럼 책을 소개할 때는 어떤 기준을 두나요?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고요. 재미가 중요해요. 초반 20-30페이지를 읽으면 감이 와요. 단시간에 빨리 읽고 재미없다고 느끼면 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순수하게 제가 읽고 재미있었던 책을 소개해요. 지금까지 늘 이런 식으로 독자분들과 만나와서 그런지 이젠 모이와 독자들은 취향 공동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좋았으니까 독자분들도 좋아하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책을 골라요. 

 

‘취향 공동체’가 되었다니 든든한 메이트가 생긴 느낌이겠네요. 모이의 취향은 어떤 걸까요?

모이의 취향이 곧 제 취향인데 사실 저는 제가 책 취향이 따로 있는 줄 몰랐어요. 모이를 통해서 특히 일본 문학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깨달으니 조금 무서워지더라고요. 북큐레이터로서 취향이 확고해진다는 게요. 편독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재미만 있으면 고민 없이 골랐는데 어느 순간 모이를 찾아주시는 독자분들이 많아지면서 책임감이 생긴 거죠. 이제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미치게 좋은 책을 골라야 해요(웃음). 다양성과 동시에 오히려 확고한 취향의 방향을 고려하기도 해요.

 

독자에게 받는 피드백도 많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메시지가 있나요?

전에는 제가 쓴 글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뻤는데요. 요즘은 저를 통해 좋은 독서 방식을 배웠다는 피드백이 가장 좋아요. 책을 소개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확고히 하게 된 것 같아요. 한 독자분이 저에게 ‘살아갈 힘을 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뭐라고…. 책을 소개하는 작은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힘이 된다는 게 참 값진 일이죠.

 

그런 피드백을 받다니… 부럽네요(웃음). 참새 님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책벌레는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면서 책에 재미를 붙였어요. 해리포터 같은 책을 달고 살았죠. 엄마도 신기해하세요. 네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냐 하시면서요(웃음). 본격적으로 책과 연이 닿은 건 대학교 때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예요. 외국 희곡과 소설, 시 문학을 읽고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아요.

 

책을 읽고 필사하는 방식도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자 위에 그대로 겹쳐 쓰는 방식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처음에는 노트에 따로 필사를 했는데 적고 싶은 글이 많다 보니 번거롭게 느껴졌어요. 예쁘게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요(웃음). 그러다 어느 날 시를 읽다가 너무 좋아서 뼈에 새기고 싶은 문장을 본 거예요. 다 외워버리고 싶고 이 감각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꾹꾹 눌러 적었어요. 그렇게 습관이 된 거죠.

 

필사하는 문장들에서 공통점을 찾을 때도 있나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에 관한 것이나 사랑에 관한 문장이요. 꼭 이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범사랑적인 의미를 말하는 문장들이 많아요. 황인찬 시인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라는 시집에서 작가의 말 끝에 “사랑 같은 것은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사랑을 너무 사랑처럼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줘버리면 되는 건데요. 작년을 기점으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힘든 일을 겪으면서 주변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젠 사랑도 말로 잘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말로 표현하는 게 참 쉽고도 어렵죠. 특히 사랑 같은 감정은 더 그런 것 같아요. 혹시 사랑을 고백해 본 적이 있어요?

최근에요. 제가 처음으로 한 고백이었는데 차였어요. 차인 게 아니라 씹혔죠(웃음). 말로 고백을 전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닿질 않아서 긴 글로 고백했어요. 마지막엔 답장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정말 답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냥 친구할 걸 그랬나…. 최근에 가장 후회했던 말이에요(웃음).

 

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괜찮아진 거겠죠.

그렇겠죠(웃음).

이번 호 주제어가 ‘말’이에요. 참새 님은 1년간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인터뷰어이기도 하죠. 말하기에 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는 말하는 게 굉장히 무섭게 느껴져요.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늘 실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마 오늘도 저는 말실수를 했을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것도 말이 기록된다는 면에서 걱정될 때도 있어요. 저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오늘 말한 생각이 내일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 자신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계속 말하는 일을 해왔던 건 많은 노력이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노력일까요?

혼잣말을 정말 많이 해요.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누군가가 제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말하는 거예요.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는 말의 어미까지 세세히 고쳐가며 대본을 짰어요. 글을 그대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에요. 오늘도 인터뷰가 있기 전에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혼자 리허설하듯 말을 연습했어요(웃음). 혼잣말이라는 게 어떨 땐 일종의 테라피처럼 작용하기도 해요.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극복한 저 자신이 되어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거죠. 그러면 좀 나아지기도 해요.

 

자신과 대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네요. 타인에게 어떤 말과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제가 다자이 오사무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분은 외로움이 무척 많았지만 사람과 같이 있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대요. 그래서 항상 술에 기대서 취해 있어야 했고 남을 웃기려고 막 농담을 했다고 해요. 일종의 방어 기제였던 거죠. 오사무의 이런 모습을 두고 한 문예평론가가 ‘그건 다자이에게 있어서 혼신의 서비스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오사무는 자기 안에서 분출하는 감정을 막아가면서 타인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관계가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말을 잘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오사무는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었네요. 참새 님이 진행한 인터뷰를 읽다가 느낀 건데, 유독 ‘용기’라는 단어를 자주 말하는 것 같았어요. 참새에게 용기란 어떤 걸까요?

포기할 줄 아는 것,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예측하는 게 용기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용기에 관한 말을 자주 하는 이유는 저한테 용기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각은 말로 했을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생각에는 실체가 없는데 이걸 실재로서 존재하게 만들어 주는 게 말인 거죠. 그래서 용기를 더 말로 내뱉고 있어요. 저에게 부족해서 그걸 너무 가지고 싶은 마음이죠. 계속 말하다 보면 언젠가 조금은 용감해지지 않을까, 바라고 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 지면에 남기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어떤 문장일까요?

이 질문을 받고 계속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생각난 문장이 있어요. 어디서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 이 문장을 주기도문처럼 외운 적이 있어요. “마음속 미움은 칼날과도 같으니”라는 문장이에요. 처음에는 그 칼날이 누군가를 향했다고 생각했는데 끝맺음도 없는 이 문장을 계속 쓰다가 그 칼날이 결국엔 나를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가끔 저 자신이 사랑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그게 미워질 때가 있거든요. 마음속 미움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살아가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지 못할 사람일 수 있어요. 반대로 저한테도 용서하지 못할 만큼 미운 사람이 있죠. 그런데 그 칼날이 결국 나를 향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하고 싶어져요. 훗날 오늘 인터뷰에 담긴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지금 제가 했던 다짐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번 기사의 제목을 정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참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사람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 없이는 가질 수 없는 생각이다. 좋아하는 걸 나누는 기쁨, 자신이 가졌던 긍정적인 경험을 전하고 싶은 바람. 순수하게 자신의 것을 공유하고 그것을 행복해하는 마음은 무엇보다 귀중하다. 나는 그 마음을 그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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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