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엮어 입는 사람

히요정 — 콘텐츠 크리에이터
겨울을 누리는 네 가지 방법

스스로 옷을 지어 입는 사람을 만났다. 레이스 무늬가 가득한 조끼를 입고 환히 나를 맞는 사람. 그 옷을 피어싱과 펑퍼짐한 바지에 어울리게 입은 사람. 뜨개 콘텐츠 크리에이터 ‘히요정’이다. 인터뷰가 무척이나 긴장된다며 말문을 열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뜨개를 향한 애정만 가득하다. 히요정의 편물은 사랑과 노력을 먹고 오늘도 조금씩 자라난다.

만나서 반가워요.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히요정이라는 이름으로 뜨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도안과 실을 골라 옷을 뜨고 코디하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있답니다. 유튜브는 그저 도전하는 마음으로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평소 실행력이 약하다는 생각에 작년은 뭐든 저질러보는 해로 삼았거든요. 당시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기도 했는데요. 재미와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제게는 그 일이 뜨개라는 걸 깨달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유도 해서 용기를 갖고 시작하게 됐죠.

 

영상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짧은 기간 동안 크게 늘었는데, 어땠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지금 구독자가 5만 명이에요. 처음에는 1년 동안 천 명만 구독해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요.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상 자막으로 일상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죠. “뜨개 함 (앉아 있음), 뜨개 안 함 (누워 있음).” 히요정의 하루가 궁금해요.

자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요. 올해 들어 ‘앉아 있음’의 비율이 크게 늘었지만요(웃음). 작년까지는 학교에 다니느라 바빠 영상 업로드 주기가 길었는데, 올해부터는 2주에 한 편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눈 떠서 자기 전까지 하루 열 시간 정도 뜨개를 하는데, 중간중간 편집도 하고 새로운 콘텐츠도 고민하면서 알차게 살고 있어요.

 

그렇게 오래 작업한다니… 대단해요. 잠깐 외출할 때는 뜨개 관련 물품을 종종 사러 가던데요(웃음)? 잠시 후에도 근사한 뜨개실 가게를 같이 가보기로 했죠.

네. 타래상점은 몇 번 방문해 본 곳인데요. 주로 수입 실을 취급해요. 흔하지 않은 실을 만날 수 있고 공간도 예뻐서 제가 좋아하는 곳이랍니다.

 

뜨개는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공예에 관심이 많았지만, 뜨개는 어려워서 로망으로만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겨울 방학 때 영상 하나를 따라 처음으로 목도리를 떠봤어요. 그렇게 매년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목도리를 만들다가 고등학교 입학하고는 손을 놨죠.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건 코로나가 한창일 때예요. 동생이 코바늘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데, 잊고 있던 만들기에 대한 욕망이 올라오더라고요(웃음). 동생한테 배워서 반년 동안은 가방만 열심히 떴죠.

 

오늘 메고 온 가방도 직접 만든 거죠?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요.

네. 뜨개 키트 브랜드 ‘마이 리틀 피스’의 러플 스트링 백팩이에요. 러플이 은근한 포인트라 옷이 심심할 때 이 가방을 메면 분위기가 살아나요. 이것저것 잘 들어가기도 해서 자주 들고 다니고요. 원래 도안은 끈까지 뜨게 되어 있지만 저는 통통한 끈을 달았어요.

잘 어울려요. 그런데 가방보다는 옷을 주로 만들죠?

맞아요. 가방을 너무 많이 떠서 뭘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하던 무렵에 우연히 뜨개 작가 ‘수민’ 님의 ‘마들렌 자켓’을 보고 반했어요. 작품을 소장할 방법이 직접 만드는 것뿐이라 도안대로 따라 했는데, 해보니까 또 되더라고요(웃음). ‘이게 된다고? 내가 옷을 만들 수 있네?’ 싶었죠. 성취감이 정말 컸어요. 그 후로 다양한 의류를 만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만든 작품이 몇 벌이나 될까요?

소품까지 세면 너무 많고, 의류만 스물여섯 벌이에요. 스웨터, 조끼, 가디건부터 지난겨울 유행하던 코위찬(캐나다 원주민으로부터 유래된 스웨터. 사슴, 단풍 등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수놓은 것이 특징)도 떴어요. 뜨개인 사이에서는 ‘무한 메리야스 뜨기’라고 부르는 과정이 있는데요, 대바늘의 가장 기본적인 뜨개 방법으로 민무늬 편물을 만드는 걸 말해요. 저는 그걸 지루해하는 편이라 무늬를 계속 바꿔 뜰 수 있는 옷이나 여러 색이 섞인 편물을 좋아하죠.

 

이야기를 나눌수록 손으로 의류를 만드는 일이 신기하게 느껴지는데요. 옷 한 벌을 짓는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요.

도안마다 다르지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뜨는 방법이 있어요. 조각조각 떠서 잇기도 하고, 어떤 옷은 소매부터 뜨기도 하죠. 가장 중요한 건 ‘게이지Gauge’인데요. 게이지는 편물 가로세로 10센티미터 안에 들어가는 단수와 콧수를 말해요. 만약 도안에서는 가로 게이지가 10코인데, 내가 만든 편물은 20코가 들어간다면 도안보다 더 촘촘히 짜여졌으니 결과물이 의도한 것보다 작게 나오겠죠? 작은 오차 때문에 옷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어서 게이지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영상에서 완성된 작품을 평소에 입는 의류와 매치해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히요정만의 스타일링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코디 장면을 넣은 이유는 저 같은 사람도 뜨개옷이 잘 어울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1-2년 전만 해도 뜨개인 중 제 또래인 이십 대가 많지 않아서, 흔히 접하는 뜨개 작품의 분위기와 제가 소장한 옷들의 간극이 정말 컸어요. 저는 피어싱도 많고 벙벙한 바지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뜨개옷은 대체로 동화적이고 우아한 느낌이 나잖아요. 그러니 뜨개가 좋아서 정성과 노력을 다해 옷을 만들어도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도안을 내가 좋아하는 핏, 패턴으로 변형하기 시작했어요. 옷에 나를 맞추기보다 내가 잘 소화할 만한 옷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영상에서는 한 작품을 다른 식으로도 입을 수 있고, 이런 스타일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옷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편물을 뜨나요?

뜨개는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에요. 겉보기에는 정적이지만, 편물과 싸움을 할 때가 많거든요. 오류를 복구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요. 저는 뜨개에 몰입하면서 감정과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해요. 매일 가만히 있기보다 체력을 써야 건강하듯이, 감정을 건강하게 소모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걱정이 생기더라고요.

문득 뜨개를 좋아하는 이유도 궁금해졌어요.

뜨개는 정직해요. 내가 시간을 쓴 만큼 편물이 자라거든요. 저는 이 세상에서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뜨개는 예외예요. 누군가는 한 코씩 떠서 언제 옷을 짓나 싶겠지만, 오히려 그 점이 위안이 되죠. 또 노력을 만질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원래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지만 편물은 노력을 엮어서 만든, 손에 닿는 결과물이잖아요.

 

그 시선으로 바라보니 뜨개가 더 특별해 보여요.

더 기분 좋은 점은 성취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었던 실 뭉텅이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자기 효능감을 줘요. 사실 제가 휴대폰에 몇 개 더 써 왔는데… 잠시만요(웃으며 메모장을 연다).

 

(웃음) 얼마든지 더 이야기해 주세요.

나눠주는 즐거움도 배웠어요. 소품이나 가방을 만들어서 선물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취미가 많지 않은데, 이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마지막 장점은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다! 뜨개는 역사가 깊어서 제가 죽을 때까지 뜨개 콘텐츠의 5퍼센트는 즐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 세계에 뜨개인이 많아요.

 

무언가에 진심인 모습이 좋아 보이네요.

즐겁지만 사실 괴로움도 있어요. 직접 영상을 제작해 보니 책임감도 생기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힘들 때가 있죠. 20분이 넘는 영상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다 보면 많은 고민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이 일이 너무 좋고 재밌어서 괴로움도 견뎌져요.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성취감 때문에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거요. 영상 하나하나가 자식 같아요.

 

저는 책 만드는 일이 그러해요(웃음). 이 질문을 해볼게요. 히요정에게 뜨개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존재요. 그동안은 다가올 날이 두렵기도 했어요. 나는 나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미래가 오면 어른이 되어야 하잖아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 될 자신이 없어서 대학 시절 내내 무력감이 컸어요. 그런데 이 취미를 시작하고서는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옷 앞판을 떠야지.’, ‘모레는 실을 사야지.’ 하면서 다가올 하루하루에 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럼 다음으로… 히요정에게 옷이란?

이 질문에 멋있는 답변을 하고 싶었어요(웃음). 옷은 나를 대신 설명하는 존재 같아요. 지금 입은 티셔츠, 신발, 목걸이 모두 스스로 골랐잖아요. 수많은 선택지 중 굳이 그 아이템을 고른 이유가 분명 있을 거예요. 색이나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 브랜드와 자신의 가치관이 맞아서 골랐을 수도 있죠. 결국 아이템 하나하나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뜨개로 의류를 제작하고 싶은 사람은 무엇부터 시작해 보면 좋을지도 알려 주세요.

구독자분들에게도 그 질문 정말 많이 받는데요. 저는 일단 시작해 보라고 이야기해요. 뜨고 싶은 작품을 고르고 모르는 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뜨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했거든요. 뜨개는 호흡이 길기 때문에 완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마음이 뚜렷해야 해요. 그래서 초보더라도, 처음이더라도 뜨고 싶은 걸 뜨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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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 장소 제공 타래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