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넘은 당연함으로

샐리 — 기획자

기획자 샐리는 통통 튀는 본인을 닮은 재밌는 일을 만들어 왔다. 운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시작한 온라인 마라톤 프로젝트 ‘길 만드는 시스터즈’부터, 수영장 등록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수영장 등록비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전화 영어 수업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운동과 책, 글과 하나 되어 사는 그가 궁금해졌다. 그의 집 문을 두드린 날, 사랑의 다음 단계는 당연함이라는 사실을 마주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집이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예요. 

반가워요.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 10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해요. 12월엔 크리스마스 스웨터만 입고 다녀요. 어글리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매년 하나씩 사서, 올해로 5년째예요. 

 

크리스마스 정말 좋죠!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저는 기획하는 사람이에요. 풀타임 프리랜서였다가, 올여름부터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풀타임 직장인이 됐어요. 제일 처음 만든 일은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영어 이력서 워크숍 ʻ수영장 등록비 프로젝트’예요. 성인 영어 회화 스터디 모임장으로 커리큘럼을 기획한 경험도 있어요. 무언가를 혼자 기획하는 일을 잘하고 재밌어해서 조금씩 해오다가, 프리랜서의 길을 걷게 됐어요. 프리랜서로 제일 오래 한 일은 전화 영어 수업이에요. 

 

전화 영어 수업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중이었어요. 반삭을 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개성 넘치는 이미지를 가진 때라 서비스직 면접에서 자꾸 떨어졌어요. 카페 알바조차도요. 마냥 알바 합격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뭔가를 기획해서 일하는 게 더 빠르겠다 싶었어요. 그때 친구가 전화 영어를 했는데, 옆에서 몇 번 들어보니 제가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하루 만에 뚝딱 기획해 시작했는데, 이렇게 3년이나 할 줄은 몰랐어요.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평일 주 5회, 하루 15분 영어로 대화해요. 10분은 짧고 20분은 은근히 길어서 15분이 딱 좋더라고요. 그날 대화는 문장으로 정리해서 참가자에게 이미지로 보내주고 있어요. 참가자를 직접 만나서 친구가 되기도 해요. 재밌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참가자들도 여러 운동을 했더라고요. 

 

기획한 일 중 온라인 마라톤 프로젝트 ‘길 만드는 시스터즈’도 있죠. 

코로나 때는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밖에 없었어요. 야외에서 혼자 하는 운동만 가능했으니까요. 당시 혼자서 1년에 1,000킬로미터 정도 달렸죠. 그러다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온라인 마라톤을 열어보기로 했어요. 각자 사는 동네에서 저마다 달릴 수 있을 만큼 달리고, 합산한 총거리를 ʻ우리가 만든 길’로 불렀죠. 함께 기획한 윤주 님이랑 참가자도 모집하고, 디자인도 했어요. 코로나 때 즐겁게 운동할 방법이었죠. 

 

요즘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요. 

회사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담당하고, 브랜드 앰배서더 관련 콘텐츠를 기획해 인터뷰하고 글도 써요. 영어로 제품 소개를 번역하기도 하고요. 오프라인 숍에서 제품 진열을 확인하기도 해요.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것 같아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프리랜서 때와 또 다른 생활일 텐데요. 하루 일과는 어때요? 

퇴근하면 농구 코트에서 혼자 연습을 하거나, 한강 달리기를 해요. 겨울엔 손이 시려서 야외 코트에서는 연습하기 어렵고요. 달리기는 장갑을 끼면 되니까 상관없어요. 따릉이도 타는데, 매년 6개월 정기권을 끊어서 4월에서 10월까지 타요. 겨울엔 방학이지만요. 주로 잠들기 전까지는 책을 읽어요.

운동하고 책 읽는 일상이라니! 지금까지 다양한 운동을 해왔다고요. 

달리기, 자전거, 농구를 포함해 체조, 발레, 요가, 등산, 트레킹, 폴댄스, 크로스핏, 클라이밍, 배드민턴, 수영, 헬스, 복싱…. 그 정도예요. 국토대장정을 한 적도 있어요. 

 

그 기간이 얼마나 돼요? 

10년 정도요. 체조와 발레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운 이후로 고등학생 때까지는 어떤 운동도 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었거든요. 허약해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체육 평가도 턱걸이 점수로 통과했어요. 의지를 갖고 스스로 운동을 하진 않았죠. 그러다 고등학교 때 이스라엘에 살았는데, 학교에서 함께 마라톤을 나간다는 거예요. 그때 혼자서 연습하다가 재미를 붙였고, 쭉 달리기를 했어요. 

 

현재도 하는 운동은 무얼까요? 

달리기, 자전거, 농구 딱 세 개예요. 가끔 등산도 해요. 농구는 스물여섯 살에 시작해서, 제 농구 유니폼 등번호가 26이에요. 

 

농구는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통해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해보고 싶어서 당근마켓으로 농구 모임에 들어갔어요. 모임에서 제가 유일한 여자였고, 저처럼 농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가서 하기에는 어려웠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동네 경기에 참여했으니,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배우면 좋을까 하다가 여자들이 쓴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중 하나가 지금 소속된 돌핀즈 농구단의 코치님이 쓴 《나의 첫 번째 농구책》이에요. 책에 적힌 팀 소개를 보고 가입했어요. 

 

뭔가를 해보고 싶으면 바로 시작하는 편인가 봐요. 

일단 해보고 안 맞으면 그때 생각해요. 맞는지 알려면 먼저 해봐야 하니까. 

 

그렇게 시작한 농구는 어땠어요? 

농구는 배워야 하는 스포츠라는 점이 재밌었어요. 달리기는 연습하다 보면 할 수 있는데 수영과 농구는 수업을 들어야 하더라고요. 개인 위주의 운동만 하다가 코치도 있고 팀원도 있는 농구를 하니 소속감을 쉽게 느끼기도 했어요. 코치님, 함께하는 친구들도 좋았죠. 

 

코치님은 어떤 분이에요? 

스승님 같은 코치님이랄까요? 카페에서 따로 커피 마신 적도 있고, 이사 간다고 하니 이 의자도 코치님이 사주셨어요. 제가 골라서 링크를 보내드린 거지만(웃음). 코치님은 콘텐츠 스타트업 ʻ노사이드 스튜디오’도 운영하시는데, 매거진 관련 일을 함께 하기도 했어요. 많은 도움과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돌핀즈 농구단에서 즐거웠던 일이 궁금해요. 

대회를 나갔던 일이요. 작년에 올스타전이라고 돌핀즈 농구단 안에서 첫 번째 토너먼트 대회를 열었는데 저희 조가 1등을 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대회는 경쟁적이고 열정적으로 임하게 돼서 땀을 한 바가지 쏟아요. 

 

조심스럽게 물어볼게요. 조에서 에이스였나요(웃음)

에이스는 아니지만 에이스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웃음). 저는 되게 빨라요. 키가 작을수록 더 빨라지거든요. 처음에는 드리블조차 못 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제일 멀리서 쏘는 3점 슛도 잘 넣고, 레이업도 잘해요. 전에 한 의류 브랜드에서 길거리에서 짧은 시간 안에 골을 많이 넣는 농구 챌린지를 한 적이 있어요. 제 앞에 있던 남자분들은 잘 못했는데, 저는 해내서 뿌듯했어요. 다들 농구 하는 여자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예요.

평소에 여자들의 운동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요? 

숨 쉬듯이 생각해요. 농구 하는 여자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평소 자주 가는 코트에서 남자들끼리는 게임을 권유해서 같이 운동하는데, 저한테 같이 하자고 제안한 남자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여자는 아직 운동하는 사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그런 점이 늘 아쉬워요. 

 

장거리 연애 중인 애인 웅희 씨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연애 초반에는 같이 몇 번 클라이밍을 했어요. 저에게 농구가, 남자 친구에게는 클라이밍이에요. 웅희는 제가 농구에서 느끼는 좋은 것들을 클라이밍에서 느껴요. 저는 클라이밍은 한 시간이면 지루해하던데 웅희는 예닐곱 시간을 타요. 폐장 시간까지 타는 걸 보면 참 대단해요. 웅희는 저보다 더 단순해서 하루 동선이 회사 그리고 클라이밍뿐이에요. 

 

서로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네. 각자 열정을 쏟는 스포츠가 확고하게 있다는 점이 좋아요. 웅희가 서울에 놀러 올 때는 저와 농구 연습도 해보고, 제가 부산에 내려가서 클라이밍을 해보면서 각자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경험해요. 같은 ENFJ인 것도 좋고, 둘 다 집 꾸미는 것도 좋아해요. 다른 점은 웅희는 독서를 안 해요. 독서가 웅희의 사랑은 아닌 거죠. 각자에게 맞는 걸 하는 게 좋아요. 연애한다고 모든 걸 똑같이 좋아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운동과 책은 다른 성향의 취미인 것 같은데, 모두 좋아한다니 신기해요. 

저에겐 둘 다 당연한 일상이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책은 산소 같은 거고,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는 정적이고 하나는 동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한테는 둘 다 적당히 동적이고 정적이랄까요. 모두 그냥 일상 자체예요. 그리고 전 제가 하는 모든 운동에 대한 책을 읽어봐요. 농구를 해보기 전에는 농구 책을 먼저 읽고,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수영에 관한 책을 읽고. 저한테는 너무 당연한 거예요. 

 

운동에 관한 관심을 책으로 확장하는군요. 

맞아요. 웅희를 처음 만나고 클라이밍을 사랑하는 걸 알고 나서 클라이밍에 관련된 모든 책을 다 빌려서 읽었어요. 다큐멘터리도 책 같아서 보게 돼요. 농구 관련 다큐멘터리도 다 봤어요. 

 

작년엔 책을 이백 권 넘게 읽었죠. 샐리 씨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책이 곧 저예요. 좋아한다, 사랑한다를 넘어 당연한 거죠. 자식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요. 이제 그런 경지에 오른 거예요. 

 

좋아한다, 사랑한다 다음이 당연하다라니. 멋진 말이에요. 

웅희도 당연하고요(웃음). 올해는 오늘까지 159권을 읽었어요. 매일 출근 전, 회사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정도 책을 나눠서 읽어요. 이동할 때는 넷플릭스를 보기보다 책을 읽고요. 웬만한 사람도 이렇게 하면 책을 많이 읽게 될 거예요. 짬짬이 시간을 활용하면 돼요. 

 

운동과 거의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요. 

팁을 드리자면 모든 운동을 한 번씩만 해보는 거예요. 웬만한 운동은 하루짜리 수업이 있어요. 해보고 싶은 운동을 한 번 하면 세 번 하게 되고, 열 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씩 해보고 나면 자신의 인생 스포츠를 찾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일단 다 해봐야 해요. 저는 내년에 서핑을 해보고 싶어요. 

 

블로그 글은 육백 편이 넘었어요. 운동이 삶의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블로그는 제 삶의 모든 걸 담아내는 창고예요. 운동에 관한 글도 여러 편 썼어요. 운동, 책, 글이 곧 제 삶이죠. 결국 다 하나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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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이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