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덮어지는 것들을 사랑해

아니와노노 — 일러스트레이터

삼대째 이어져 내려온 어느 작업실의 한쪽 창가에 기다랗게 책상이 놓여 있다. 그 책상 앞에 앉아 아니와노노는 그날그날의 발견을 그린다. 부정과 부정을 합쳐 긍정을 만들고, 웅크리고 있는 나날들에 꿈을 들여놓으며, 수줍고도 씩씩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간다.

신촌에 이렇게 멋진 작업실이 있는지 몰랐어요. 소개 먼저 해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니와노노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반려견 심바랑 같이 지내면서 주변에서 보는 좋은 마음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작년 초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이것저것 해보면서 찾아가는 중이에요.

 

전업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지는 얼마 안 된 거네요. 그동안 취미로 그림을 그려왔던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일기와 그림은 당연한 일이었고 기쁨이었어요. 그렇지만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도 낙서하고 일기 쓰는 거 좋아한다고 했지 그림 그리고 글 쓴다고 표현하지 않았거든요. 그게 도피성 표현이라는 걸 직시하고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자고 마음먹은 건 얼마 안 돼요. 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애초에 거기서부터 타협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미술로 돈을 벌려면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계획적이지 못하고 즉흥에 기대어 사는 편이라 사실은 순수 미술이 더 잘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어요. 늘 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예명에서부터 이야기가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니와노노’가 한국어 ‘아니’와 영어 ‘nono’를 합친 거 맞나요?

맞아요. 대학교 때 단짝 친구랑 같이 지은 이름이에요. 그 친구는 저를 ‘아니’, 저는 그 친구를 ‘노노’라고 불렀어요. 둘이 불평불만이 많아서 언제나 부정적인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결론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더라고요.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처럼, 의구심도 불만도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삶을 긍정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러니한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죠. 졸업 후에 친구는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그림 그리면서 이름을 하나 가지고 싶어서 둘의 이름을 합쳐서 쓰기로 한 거예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출판사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했다고요.

출판사에서 3년 정도 일했어요. 책도 좋아하고 이야기도 좋아해서 책 만드는 일에 동경이 있었죠. 꿈꾸던 일을 하게 되니 행복했고, 동료들도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저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들뜬 시기가 지나고 일에 익숙해져야 할 때쯤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옷을 입히는 것도 즐거웠지만, 점점 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여러 장르를 매번 다른 색깔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고요. 판권 수정할 일이 있어서 파일을 열었는데, 작가 소개에 ‘그림책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그림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났다. 이후 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문구가 써 있는 걸 보면 막 미치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차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퇴사를 결정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많은 걸 배웠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덕분에 다음 스텝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월급, 소속감, 성취감 같은 걸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직장을 다닌다, 어떤 일을 한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직장에 다녀보니 저답게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하고, 안정은 그다음에 찾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후련한 기분으로 그만뒀는데, 그다음엔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계획이 없었어요(웃음).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정도? 일단 뭐든 그려보고, 한 발짝 떨어져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림이 모여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바라보고 추려봤어요.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보니 어땠어요?

한동안은 뭘 해야할지 몰라 마음이 텅 비어 있었어요. 주변을 둘러볼 에너지도 없었죠. 특출 난 시선을 가진 건 아니지만 시시각각 잘 느끼고 잘 표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무기력하게 지내다 보니 무뎌지더라고요. 평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감정과 감각을 더 이상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사서 다시 일기를 썼어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서 그날 먹은 걸 썼어요. 맛있는 걸 안 먹으면 적을 말도 없었죠. 그래도 계속 쓰려고 노력했고 심바랑 산책도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 편의점에서 계산하면서 점원의 눈을 쳐다보게 됐고, 버스 기사님께 인사도 할 수 있었어요. 자다가 눈이 떠졌을 때 쓰고 싶은 말을 막 적으면서 아, 이제 내가 돌아왔구나 싶었어요. 여전히 불안하긴 하지만, 지금은 즐거워요. 회사 다닐 때는 매일이 이대로 끝인 것처럼 느껴졌다면 앞으로는 나를 찾아갈 시간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돼요.

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미술 도구도 많지만 음악 장비와 책의 비중도 커요.

이곳은 뮤지션 라이브 촬영을 하는 신촌전자라는 공간이에요. 저와 제 남자친구인 뮤지션 류준의 작업실이기도 하고요. 그보다 전에는 남자친구 할아버지인 류경채 화백의 작업실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가족들이 다 같이 살 집을 만드셨대요. 3층은 작업실이고 아래층엔 가족들이 모여 산 거죠. 조각가인 아버지가 작업실을 물려받으셨는데 두 분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텅 비어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여기 거주하게 되고 작업 장비와 살림살이를 들여놓으면서 다시 온기가 생긴 거예요. 남자친구와는 6년 전 대학생일 때 만났는데, 학교 과제 겸 제가 신촌전자 로고를 만들어 줬어요. 남자친구가 이 공간을 운영하니 옆에서 디자인과 촬영을 거들었고, 같이 일하고 먹고 놀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죠. 겉모습은 라이브 촬영만 하는 곳처럼 보이지만 저는 이 공간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예술가를 모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작업 패턴을 정해두는 편인가요?

그날그날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그리고 싶을 때 그려요. 그리다가 좀 누워 있다가 밥 먹고 딴짓하다가 또 그리고 싶어지면 새벽 네다섯 시까지 그리고 오후까지 자고 그래요. 좀 너무한가요(웃음)? 작업 시간과 할당량을 정해보려고도 해봤는데, 그럴수록 경직되더라고요. 의무감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것들이 더 마음에 들어요. 루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좀더 자유롭고 싶어요.

 

주위에 늘 음악이 있으니 영향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음악보다는 음악가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늘 쓸모를 걱정하는 사람이었어요. 가족들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주위에 현실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꿈보다는 현실을 보고, 무용한 일은 되도록 멀리하려고 했거든요. ‘나는 이렇게 엉망이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데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못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으로 살았는데, 남자친구를 포함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와 다르게 모두 자기답게 살고 있었어요. 그들을 보면서, 같이 지내고 대화하면서 억지로 쓸모를 따라가는 것보다 나다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꽃은 햇볕을 받고 비를 맞으면서 활짝 필 뿐인데, 그냥 그렇게 생생하게 피어 있는 것 자체로 주변이 환해지잖아요.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됐어요.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된 거네요. 저는 좋아하는 일로 일도 하고 돈도 버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저도 방법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친구와 함께 브랜드를 구상하고 있고, 이야기책과 전시도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어떻게 벌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전에 달력이랑 작은 그림책을 제작해서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 이래서 책을 대량 생산하는구나. 그렇게 전형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구나.’ 납득하게 됐어요. 아코디언북 형태인 《잠든 열매씨》라는 책을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만들었거든요. 모든 게 노동이더라고요. 표지를 따로 붙였는데 삐뚤어지면 버리고 다시 붙이고, 버리고 다시 붙이고… 걸음마부터 배우는 기분이었지만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저의 해로 만들어 보려고요. 왜냐하면 제가 2월 22일 2시 22분에 태어났거든요. 그런데 올해가 2022년이니까….

 

정말요? 이건 의미 부여 안 할 수가 없는데요!

그렇죠(웃음)? 원래 생일에 별거 안 하고 보내는 사람인데, 올해는 행복할 거예요. 기억에 남는 해로 만들고 싶어요.

작가님 그림은 사랑스럽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요?

대부분 일기에서 온 작업들이라서 처음부터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신 가장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다가 기록해두고 싶은 장면, 꿈에서 본 잔상,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이나 사물 같은 걸 그려 놓고 나서 나중에 ‘내 상태가 이랬구나.’ 하고 돌아보는데요. ‘나 너무 아무거나 그리나?’ 고민할 때 들은 말이 “그렇다고 네가 죽은 개미를 그리는 건 아니잖아.”였어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우는 것들을 그리게 되나 봐요.

 

그림에 동물과 자연도 많이 등장해요.

우리는 동물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잖아요. 무언가와 함께하는 마음을 소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심바가 저를 많이 바꿨어요. 심바는 식용견으로 사육되다가 구조된 유기견 출신이에요. 이렇게 사랑스럽고 살아 있는 애가 사람에게 먹혀서 사라질 뻔했다는 게 너무 이상해요. 지금은 다행히 저랑 함께지만요. 같이 산책하면 심바가 가는 대로 따라 가는 편인데, 숲 냄새가 조금이라도 더 나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다 보니까 덩달아 알지 못하던 자연을 보고 느끼게 돼요. 마치 저를 자연의 틈새로 인도하는 것 같아요. 음… 또 저는 귀여운 것들에 시선이 많이 가요. 좀 어설프고 촌스럽고, 근데 또 씩씩한, 사랑으로 덮어지는 부족함을 가진 귀여움이요. 의도적으로 귀여움을 발산하는 것들이 아니라 의도치 않게 우연히 귀여워져 버리는 것들에 애정이 가요. 예를 들면… 비둘기가 그래요.

비둘기요…?

비둘기를 보면 좀 슬퍼요.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를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비둘기가 우리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게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보다 쉬우니까 자유롭게 날 수 있으면서도 걸어다니게 된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귀엽고 애달파요.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요…. 시선을 달리해 봐야겠어요. 사물이나 풍경에서 눈, 코, 입을 발견하거나 그려서 얼굴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대학교 때부터 하던 놀이예요. 전에는 하얀색이랑 검정색 스티커를 들고 다니면서 벽에 막 붙이고 다녔어요.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그리기도 했죠. 무생물에서 표정을 발견하면 되게 반가운 기분이 들어요. 표정을 만들어 붙이면서 제가 살아 있다는 게 다시 한번 환기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컨디션이 좋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너무 피곤하거나 예민하면 갈 길 가기 바쁠 텐데,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럼 우울할 때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거예요?

감정이 아주 무뎌지거나 비어 있을 때는 잘 안 그리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나 슬퍼질 때는 그리기도 해요. 수채화로 그리던 시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잠들어 있거나 포개져서 꿈꾸고 있는 동물들을 많이 그렸거든요. 이유도 모르는 채로 그리고 싶어서 그렸는데, 한참 지나고 나서 봤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더라고요.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지만, 나는 지금 꿈꾸고 있는 거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슬플 때는 기쁨의 순간과는 분명 다른 아름다움이 나오기는 하지만 거기에 기대 작업하고 싶지는 않아요. 계속해서 즐겁고 힘차게 살고 싶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에요.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 담고 싶어요? 

음… 제 그림에 이야기를 더하면 말 그대로 그림책이 되는 거잖아요. 보편적인 그림책처럼 기승전결이 있으려면 스토리보드를 짜고 작업 과정을 계획하고 그림 톤도 일정하게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일단 그려보고, 입체물이나 영상으로도 만들어보고 있어요. 이야기가 꼭 책 형태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작년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크베타 파코브스카Květa Pacovská의 《Flying》이라는 그림책을 선물해 줬는데, 원래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이 책을 보고 이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두 개의 성이 등장하고, 그중 하나의 성이 나머지 하나에게 나는 법에 관한 비밀을 이야기해 주는 내용이에요. 그 비밀을 듣고 어떤 친구는 풍선을 달아 날고, 다른 친구는 기구를 타고 날고, 또 다른 친구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날아요.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게 된 거죠. 비밀은 이거였어요. “나는 건 쉬워.” 훨훨 나는 데 엄청난 비밀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쉽다’는 말 한마디였던 거예요. 내용도 좋지만 그림과 글씨도 장난스러우면서 페이지마다 제각각 자유로워요. 이렇게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보면 쓸모에 관해 덜 고민하고 싶어져요.

 

쓸모를 찾다 보면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타협하지 않은 것의 힘은 정말 대단해요. 이런 작업을 하려면 당장 결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좀더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물이나 작업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걸 좋아하는 거죠? 

맞아요. 낙서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이름을 붙여요. 성격이 어떤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살을 붙이고 말을 지어내면 조금씩 생명력이 생기죠. 그럼 금세 친구가 돼요. 제 무의식에서부터 만들어진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렇게 만든 아이 중에 ‘부베’라는 친구가 있어요. 파랗고 커다란 병아리인데, 병아리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험을 떠나요. 대학교 때 과제로 만들었는데 그때는 부베가 살아 있는 애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정말 그렇게 믿었고요. 이후에 현실 감각이 생기면서 멀어졌다가 퇴사하고 나서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진짜 현실이 뭔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와의 우정이 왜 인간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아했어요. 부베처럼, 제가 더 시간을 쏟고 애정을 부으면 그림도 더 오래 살아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이런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왠지 뭉클하기도 해요. 작가님이 사는 세계와 그림이 태어나고 머무는 세계가 다르지 않아 보여서요.

펼쳐놓고 보면 중구난방 같지만, 그림과 그림, 저와 그림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겨자씨보다 조금만 크게 살면 돼.”라고 쓰신 글에서 작가님이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느껴졌어요. 욕심 내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을 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봤거든요.

성미정 시인의 시 제목이에요. “여보 우린 그저 조그맣게 살자 /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려고 아등바등 / 살지 말고 자가용 같은 거 끌지 말고 / 나는 게송 같은 시 절대 쓰지 말고 / 그렇게 살자”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조그맣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공감 가지만, 더 좋아하는 부분은 화자가 겨자씨보다 조금만 크게 살자고 얘기했을 때 그러자고 기꺼이 답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본문의 ‘살자’가 제목에서는 ‘살면 돼’가 된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좋아서 제 곁에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밑에 적어 둔 말이에요.

 

작업에도 삶에도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네요. 조그맣지만 단단히 살아갈 모습이 그려져요.

많이 이루고 많이 가져서 성공하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지만, 가진 것보다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도 완벽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상태를 저는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러자고 하는 사람이 제 곁에 있으니까, 저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고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훗날의 제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길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열심히 해볼게요. 이런 저를 미리 알아봐 주셨으니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위해 새로운 길을 나서며, 자신이 얼마나 크고 묵직한 용기를 낸 건지 그녀는 알까? “생생하게 살아 있”으므로 누군가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는 것도. 나는 그녀가 더 이상 쓸모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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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