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기억하는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랑으로 기억하는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인간으로 태어나서 종종 사람을 선물 받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선물 받았다. 우리는 모두 그녀와 삶의 궤를 함께했다.

우리가 사랑한
예술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 빔메르뷔Vimmerby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두 명의 여동생과 함께 농가에서 천진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서 3년 정도 일했다. 열여덟이 되었을 때, 편집장의 아이를 임신했고, 집을 떠나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편집장의 청혼도 거절한 채 그녀는 아들 라르스를 낳았다. 홀로 버텨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어려움을 등지고 비서로 일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튼튼히 꾸려갔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1931년 직장에서 만난 다정한 남편과 결혼해 딸 카린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글 솜씨가 좋았지만 자신의 글 쓰기 활동을 이어나갈 환경이 충분하지 못했다. 나날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폐렴에 걸려 침대에 누워있는 일곱 살 카린이 다짜고짜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삐삐 롱스타킹은 카린이 그때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름이었다. 린드그렌은 삐삐의 정체를 묻지 않고, 곧바로 삐삐 이야기를 풀어 내려갔다.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여자아이의 요상하고 소란스러운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의 호기심으로 등장한 삐삐는 린드그렌의 목소리와 그녀만의 단어를 타고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딸 카린과의 관계를 삐삐 이야기로 단단히 묶어가던 중, 몇 년 뒤 린드그렌은 미끄러운 눈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발을 크게 다친 그녀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침대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니 글쓰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그때부터였다. 비로소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항상 카린에게 말로만 해온 삐삐 이야기에 조금씩 살을 붙여 갔고, 1945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출간과 동시에 대중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린드그렌은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속의
어떤 어린아이

그녀는 항상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자기만이 오롯이 느끼고 경험한 감정과 소소하지만 유쾌한 에피소드를 디딤돌로 사용하곤 했다. 그것이 그녀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방식이면서 사람들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법이기도 했다. 삐삐가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기상천외한 놀이들도 실제 린드그렌이 어릴 적 친구들이랑 즐기던 놀이였다. “모든 작품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다.” 자기 마음 안에 숨 쉬고 있는 어린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즐거움을 타인과 함께 충분히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쓴다는 린드그렌의 모습을 통해 마냥 해맑고 천진한 아이가 보이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아이 같다’는 말의 정의는 무얼까. 그것은 아마 ‘터무니 없음’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 아닐까. 좀 엉뚱하고 상식에 맞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즐겁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의 세계 안에서는 모두 허용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을 반추하는 일이다. 린드그렌은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돌봤을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눈을 맞추면서 아이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함께하면서 말이다. 카린이 느닷없이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그날 밤, 그녀는 자기 안에 있는 그 아이를 꺼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삐삐 이야기를 만들어간 사람은 린드그렌 안에 있는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말 없는
대화를 나눈다

린드그렌은 100권이 넘는 작품을 완성했다. 수많은 국가에, 80여 가지의 모두 다른 언어로 소개되기도 했다.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동화였지만, 《바다 건너 히치하이크 – 미국에 간 카티》, 《베네치아의 연인 – 이탈리아에 간 카티》,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 프랑스에 간 카티》처럼 린드그렌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꾹꾹 눌러 담은 여행 소설도 있다. 삐삐를 비롯한 다양한 동화에 린드그렌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듯이, 이 여행 소설에는 린드그렌의 20대 모습이 담겨 있다. 주인공 카티의 톡톡 튀는 독특한 면모가 꼭 이제는 나이가 든, 현실 속 삐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받은 린드그렌은 어린이 책의 노벨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2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스웨덴 정부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만들었다. 또한 2005년에는 린드그렌의 필사본과 여러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기록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힘세고 우악스러운 소녀의 모험기가 아니라,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소중한 매개가 되어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동시대를 함께 보낸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기도 하고, 어떤 시절을 돌이켜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웨덴의 20크로나 지폐에는 그리운 그녀의 얼굴과 귀여운 마스코트 삐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한편에는 그녀의 동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깊고 진한 영향을 받았고, 또 대중의 사랑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와 나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화가 있듯이 그렇게 말이다.

그녀의 길을
걷다 보면

가수 이적의 동화책 《어느 날,》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딘지 모르는 ‘그곳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어디로 가신 걸까 궁금해하다가 차츰 할아버지의 부재를 알게 되면서 죽음의 실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어떻게 죽음에 관한 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어느 인터뷰에서 이적은 이렇게 말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두 형제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는 내용이에요. 어릴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 세상이 있다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겠네? 가면 다 만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채널 예스 인터뷰 중에서).”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천국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이 동화에서는 사뭇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사후 세계에서 다시 만난 주인공 형제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막연히 죽음이 공포로 다가오던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 더 이상 극악의 공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소설가 한강도 역시나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노르웨이 문학의 집’의 행사에서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5.18에 대한 기억,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쓰던 무렵의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그녀가 이 책을 처음 마주했던 열두 살 무렵,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 거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폭력적이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요.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면서 단단한 씨앗이라고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말하는 책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시공주니어

두 갈래로 땋은 귀여운 빨간 머리와 주근깨투성이 얼굴, 그리고 매력적인 짝짝이 긴 양말까지. 뒤죽박죽 별장에 새로 이사 온 소녀는 삐삐 롱스타킹이다. 삐삐의 엄마는 천사고,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나? 삐삐는 힘이 얼마나 센지 덩치 큰 어른도 한 손으로 번쩍 들어버린다. 새로 사귄 친구 토미와 아니카는 삐삐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꼬마 백만장자 삐삐 | 시공주니어

삐삐는 큰 가방 한가득 금화를 갖고 다닌다. 혼자서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백만장자라니! 마음만 먹으면 사탕이나 장난감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돈을 준 삐삐의 아빠가 뒤죽박죽 별장을 찾아왔다. 진짜로 식인종의 왕이 되어서 말이다. 삐삐가 식인종의 공주가 되는 건 좋지만, 이대로 아빠를 따라 떠나버리면 어쩌지?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 | 시공주니어

식인종의 왕인 삐삐 아빠가 초대장을 보냈다. 단짝 친구 토미, 아니카와 함께 아빠가 다스리는 쿠르쿠르두트 섬으로 놀러 가서 진주로 구슬치기도 하고 아슬아슬 절벽도 기어오른다. 때늦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며 문득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삐삐는 어른이 되지 않을 방법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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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자료 협조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