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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많은 K씨의 일상
빵의 도시 대전에서 열 시간을 보냈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빵에 미친 사람과 함께.
‘빵배(별명)’는 지독한 디저트 마니아다. 뷔페에 가도 첫 접시부터 디저트를 담아 온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디저트 먹고, 차 마시고, 케이크 먹고, 그렇게 4차까지 간 적도 있어.”, “카페로만 4차?”, “카페로만 4차.” 한곳에 쭉 있으면 되지 왜 자리를 옮기느냐고 묻자, “너도 술 먹으면 4차까지 가잖아.” 하고 대답했다. 하기야 1차에 고기를 먹고, 2차는 배가 부르니까 해산물을 먹고, 3차는 산뜻하게 과일을 먹고, 4차는 입이 심심하니 먹태를 뜯는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 빵배는 해물찜 대짜에 볶음밥까지 먹고 바지 버클을 잠글 수 없어 끙끙대는 와중에도, 카페 진열장에 놓인 디저트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고 했다. “배가 불러 토할 거 같아도 디저트는 들어가거든. 아무래도 빵 배가 따로 있는 거 같어.” 빵 배가 따로 있다? 빵을 위한 내장 기관이 더 있다는 건가?
대전 여행을 계획하며 빵배에게 연락했다. “‘빵지순례’라고 알아? 그런 걸 해볼까 해.” 이번 기회에 빵이라는 장르에 취미를 붙여볼 생각이었다. 빵배는 기다렸다는 듯 빵집 리스트를 쏟아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짧은 여행 동안 우리가 갈 곳은 열 군데가 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건 빵집 투어지, 빵 먹다 기절하는 콘셉트가 아니라고.” 빵배가 대답했다. “잊었어? 빵 배는 따로 있어.”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빵배의 첫 목적지는 역 근처의 구움과자 맛집이었다. 왜 빵집이 아니라 과자집에 가느냐 물었더니, 무식한 소리 하지 말라며 발효빵과 구움과자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수도원의 역사까지 들먹이는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일반 빵이 효모를 발효시킨 식사빵 위주라면 구움과자는 커피나 차와 함께하는 간식에 가깝다는 거였다. 우리는 ‘휘낭시에’라는 단어를 세 번 정도 발음한 뒤에 빵집에 입성했다. 커다란 창고형 상점에 대기를 위한 라인이 있고, 좁은 간격마다 사람들로 꽉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골인 지점인 카운터 진열장 안에는 금괴 모양의 휘낭시에와 작은 굴뚝처럼 생긴 까눌레, 층층이 쌓인 에그타르트가 가득했다. 우리는 한 시간의 지루한 대기 끝에 빵을 배식받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고른 건 솔티카라멜 휘낭시에와 홍차 까눌레, 이곳의 시그니처라는 에그타르트였다. 처음 솔티카라멜을 먹기 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각에 집중한 채 한 입! 글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빵배가 말했다. “이건 솔티카라멜이라는 테마를 굉장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만든 디저트예요. 캐러멜의 깊고 묵직한 단맛이 먼저 들어오고, 뒤이어 소금기가 짧고 선명하게 치고 나옵니다. 그 순간 입안이 한 번 정리돼요. 여기서 버터의 고소한 향이 뒤에서 받쳐주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줘요. 짠맛은 자극을 주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단맛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였고요. 이 포인트에서 만든 사람의 의도가 읽힙니다.” 그는 거의 안성재 셰프였다. 한편 홍차 까눌레는 겉면의 딱딱함과 꾸덕하고 쫀득한 속면의 촉감 대비가 포인트였다. 겉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실은 저만의 향으로 가득 찬 것이 인간으로 치면 INTP의 전형 같은 맛이었다. 에그타르트는 이곳의 시그니처답게 손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 컸다. 오픈하고 한 시간이면 품절될 정도로 인기라고 했다. 겹겹이 쌓인 바삭한 표피를 지나, 몽글몽글하고 진한 커스터드 크림의 진피층, 단단하게 바닥을 받치는 피하조직까지 한 번에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달걀 크림이 퍼지며, 텁텁함 없이 주르륵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어쩐지 ‘오늘의 단백질은 이걸로 종결!’ 같은 카피를 붙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 빵배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적었다. “휘낭시에는 나쁘지 않고, 까눌레는 망원동에 더 맛있는 집이 있으며, 에그타르트는 너무 커서 배부름.” 다소 비판적인 평가와는 반대로 그의 손에는 5만 원어치의 빵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다음 향한 곳은 ‘성심당’이었다. ‘대전은 성심당 원툴One Tool’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대전 그 자체인 곳이었다. 마침내 성심당 건물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대기 줄의 끝을 찾기 위해 건물 한 바퀴를 통째로 돌아야 했다. 전국의 빵배들이 정모라도 여는 걸까? 빵배는 검색을 하더니 흥분한 듯 조잘댔다. “미친, 여기 작년 매출이 2,600억이라는데? 그럼 하루에 7억이야, 7억! 진짜 미친 거 아냐?” 그의 말에 따르면 연간 천만 명 이상이 이곳을 다녀간다고 했다. 그걸 하루로 환산하면 3만 명꼴이라고. 이미 휘낭시에를 먹으려고 한 시간 줄을 섰던 나는 빵배의 설명에 더욱 지쳐버렸다. “근처 다른 곳을 먼저 공략하고 보스는 나중에 처치하는 게 어때?” 빵배는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얼른 그의 손을 이끌고 인파 밖으로 빠져나왔다.
네임드 빵집의 대부분은 지하철 중앙로역 근처에 모여 있었다. 성심당을 이기고 빵 축제에서 1등을 했다는 곳부터 MZ 원픽이라는 곳, 딸기 케이크의 성지, 로컬 고수의 집, 소금빵의 끝판왕, 미친 맛집, 또 간 집 등등 온갖 수식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든 빵집에는 대기 줄이 길었다. 아아, 어째서 사람들은 이리도 빵에 열광하는가. 다들 빵에 얽힌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협박이라도 받은 걸까. 그다지 빵을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어쩌자고 빵지순례 같은 무책임한 발상을 한 걸까. 나는 누구고 또 여긴 어딘가. 그렇게 아득한 자아 성찰 끝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빵 진열장 앞에 서 있었다. “여기 시그니처가 뭔가요?” 그렇게 물은 뒤 빵을 추천받고 계산을 하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혹시··· 피자빵 같은 건 없겠지요?”
대전에 도착해 열 시간 동안 여섯 곳의 빵집에 들러 20만 원어치의 빵을 샀다. 휘낭시에, 까눌레, 에그타르트, 더블초콜릿바게트, 레몬마들렌, 명란버터소금빵, 피스타치오크림페스츄리, 생우유크림소금빵, 명란마요소금빵, 마늘퐁당소금빵··· 난생 듣도 보도 못한 빵들을 쓸어 담았다. 처음엔 신나서 엉덩이춤을 추던 빵배도 점점 과묵해졌다. 우리는 다리를 절며 걷다가 대전천이 보이는 천변에 앉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남은 빵을 씹었다. 이것이 빵인지 가죽인지, 생크림인지 면도크림인지, 맛은 둘째 치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턱관절만 움직이는 자동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코를 풀었는데 콧물에서도 버터 향이 났다. 나는 서러워졌다. 배가 불러서 슬퍼진 건 난생처음이었다. “여기까진 거 같아. 빵 같은 건 이제 그만두고 싶어.” 나의 항복 선언에 딸기 케이크를 베어 물던 빵배가 말했다. “넌 패배자야.”, “그래, 난 패배자야.”, “넌 나약해.”, “난 나약해.”, “넌 쓰레기야.”, “그건 아니지!” 우리는 화해의 악수를 끝으로 순례를 종료하기로 했다.
빵지순례를 통해 뭘 이루고자 했더라? 빵의 도시 대전에서 ‘맛없는 빵’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단한 경험인 양 호들갑 떨며 미식 평가도 해봤지만, 한편으론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성심당 역시 끝내 못 갔다. 세 번 시도했고 세 번 다 줄 앞에서 돌아섰다. 거리에는 온통 성심당의 연두색 쇼핑백으로 가득했는데 나만 빈손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빵배가 조용히 메모를 적고 있었다. 다음에 올 빵집 리스트였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빵에도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아무래도 소질 쪽에서 좀 멀리 태어난 것 같고, 빵배는 반대로 너무 가까이 태어난 것 같다.
“다음엔 성심당 꼭 간다. 너도.” 빵배가 경고하듯 말했다. 빵배의 빵 봉투에서 나는 버터 향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실은 말이야. 처음 에그타르트부터 힘들 거 같다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난 이쪽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빵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욕을 하는 거 같기도 했는데,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눈이 감겼다. 여전히 위장에서 사투 중인 빵의 잔당들··· 급격히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에 나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