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채운 맛 ‘소식’

11월 15일, 나는 자꾸 엄마의 왼쪽에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엄마는 부엌이 토 나오게 지겹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고 나를 가지면서 시작된 생활. 그 시절 아빠가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었을 리 만무하고 부엌일이 온전히 그녀의 몫이 된 지 어언 40년이다.
“엄마, 밥 줘”와 “엄마,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살던 하나밖에 없는 딸도 장성해 시집을 갔다. 책임져야 할 입이 하나 줄었나 싶기가 무섭게 그 딸이 또 딸을 낳아 저는 출근할 테니 자신의 딸을 맡아 달라는 부탁까지 얹는다. 그 부탁, 거절도 못 하고 다시 또 우리를 옆구리에 끼고 늘어난 식구들을 먹이는 데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보수 없는 중노동. 그나마 보람은 좀 있을까 모르겠다.

부엌 노동의 탓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몇 년 전 엄마의 오른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왔다. 오른편에서 하는 말은 아무리 지척이라고 해도 잘 듣지 못했다. 대학병원부터 한의원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가보았지만 고치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얻어먹은 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엄마에게 갑자기 닥친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괴로워만 하면서 나는 엄마의 귀를 방치했다. 자꾸 “뭐라고?” 하고 되묻는 엄마에게 짜증이나 내면서. 잘 들리지 않는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엄마의 오른쪽 청력이 장애등급으로 판정할 수 있는 정도라는 걸 알게 됐다. 그나마 들리는 왼쪽 귀도 이제 과부하가 걸려 정상의 절반 수준이라고.
더는 미룰 수 없어 나보다 살뜰한 사위가 조심스럽게 보청기를 알아보고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뜻을 전달했다. 무엇보다 당신이 지금 돌보고 계신 어린 손녀가 나중에 딸처럼 할머니는 자꾸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낼까 그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 말이 자극이 된 걸까. 엄마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떨치고 보청기를 맞추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자, 그동안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이만큼 살아온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시력이 좋지 않으면 안경을 끼듯 그간 우리 가족은 왜 자연스럽지 못했을까. 엄마는 두 귀에 보청기를 끼고 나타났다. “우와, 겉으로 보기엔 하나도 티가 안 나!” 일부러 오른편에서 작게 말해보았는데 엄마가 얼른 대답을 하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엄마가 세상의 소리를 더 많이 듣고 더는 삶에서 아름다운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업무적인 이유 반, 개인적인 호기심 반, 이태원 해방촌의 ‘소식’이라는 비건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이곳은 퓨전 사찰 음식을 표방하는 곳이다. 퓨전이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찰’ 음식인데 들어서자마자 테크노 비트의 클럽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읽은 주인장의 인터뷰에서 반복적인 비트가 목탁 소리와 흡사하여 마음의 안정을 준다고 했던 것 같다(참고로 소식은 요즘 흔히들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 창작자, 뮤지션, 셰프 이렇게 3명이 합작하여 만든 곳이다). 그 배경음악만 제외하고는 영락없는 절간의 모습이다. 일인용 개다리소반과 스태프를 부르는 용도로 놓인 진짜 목탁, 절 마당에나 있을 법한 돌탑 등 여러 인테리어 요소를 보고 있으면 잠시 속세를 떠나온 듯 마음에 선득선득 바람이 분다. 솔잎을 넣은 물병과 물 한 모금도 소중하게 먹었으면 하는 취지로 내어준다는 소주잔보다 작은 물잔. 갈증이 났지만, 조급한 마음도 한 김 식어 어느새 나는 그곳에 완벽히 적응했다.

그렇게 요새 젊은 비건들에게 힙하다는 이곳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는데, 이내 분위기에 압도되어 다소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곧이어 예약할 때 미리 주문해 놓은 메뉴들이 하나씩 개다리소반 위에 놓였는데, 직원은 모든 테이블을 다니며 무릎을 굽혀 앉아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그릇 대신 돌멩이 위에 한 편의 수묵화처럼 플레이팅 된 음식들은 굉장히 트렌디하고 고급스럽고 정갈했다.

드디어 한입 떠먹는데, 도대체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현듯 엄마가 생각났다. 요리 두 가지와 후식을 먹는 시간 내내 그랬는데, 마주 앉은 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시던 엄마 또래의 중년 여성 두 분 때문이었는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나를 얼마쯤 순하게 만들었는지 혹은 또 다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부엌데기 우리 엄마를 생각하며 꼭꼭 씹어 먹었다. 사찰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리듯 적당한 감칠맛은 혀의 온 미각을 두드려 깨웠고, 그러면서도 속이 편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자꾸만 입맛이 당겼다.

나에게 앞으로의 소명이 있다면, 엄마를 부엌에서 탈출시키고 집 밖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책임감에 가까웠다. 소식에 다녀온 다음 날 엄마는 45년 지기 친구들과 인생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고, 나는 3박 5일 동안 들뜬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엄마를 기다렸다. 그녀가 돌아오면 왼편에 서서, 소식에 꼭 함께 가자고 큰 소리로 말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집에 돌아온 엄마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 샘킴이 하는 레스토랑이 그렇게 맛있고 고급스럽대. 엄마 거기 한번 가보고 싶어.” 그래요, 엄마. ‘소식’도 가고 ‘오스트리아 샘킴’도 갑시다!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소식

A. 서울 용산구 신흥로 57
T. 010 264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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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분명히 먹은 것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저녁 식탁을 치우면서 내일 점심을 고민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마음에 선명히 남는 한끼의 식사가 있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의 대화를 적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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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지향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