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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 영화감독
뷰파인더 너머에서
우리는 일생이라는 긴 길을 걷는다. 걸음은 쉬이 멈추는 법이 없는데 끝내 무엇과 닿을지는 오리무중이다. 저벅저벅 내딛기만 하던 일생에 감독 유지영은 영화로 물음표를 남겨둔다. 〈수성못〉(2017)에서 살거나 죽기 위해 열심인 ‘희정’과 ‘영목’, 〈나의 피투성이 연인〉(2022)에서 각자의 우선순위를 따라 맹렬하게 어긋나는 ‘재이’와 ‘건우’도 삶 어딘가에서 물음을 마주했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됐다. 감독의 집에서 만난 우리는 삶에서 마음 둘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 유지영은 나에게 말했다. “대구에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제가 아는 사람이 될게요.” 나긋한 목소리로 전해진 진심을 나는 덥석 붙잡았다. 생경한 얼굴을 한 이 도시에 비빌 언덕이 생긴 순간이었다.
길을 헤맸는데 마중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여기까지 와주셨는걸요. 시원한 걸 드릴게요. 커피 괜찮으세요?
좋아요. 올여름 대구도 많이 더웠죠? 이제는 좀 선선해진 거 같네요.
무척 더웠죠. 여름이 끝나갈 즈음엔 대낮에 비 한 번 내리더니 점점 시원해지더라고요. 아, 먼저 소개를 해야 할까요? 저는 대구에 살면서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연출하는 유지영입니다. 오늘은 늦게까지 자다 일어났어요. 보통은 열한 시 되면 눕고 일고여덟 시쯤에 일어나는데, 요즘 잠을 잘 못 이뤘더니 새벽에 잠드는 일이 많아서요.
그럴수록 피곤할 텐데,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아요(웃음). 집에는 저와 고양이들이 살아요. 열 살인 쿤과 여름, 다섯 살인 리지, 이렇게 세 마리인데 전부 새끼 때 길에서 구조했어요. 한번 보실래요? (침실로 안내한다.) 저기 침대 위에 있는 친구는 쿤이고, 여름이와 리지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척 경계해서 이불 속에 숨어 있어요. 그동안 집에 온 사람 그 누구도, 심지어 우리 엄마도 저 둘을 못 봤으니까 오늘 만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오늘은 쿤이랑만 인사를 나눌게요. 그런데 쿤이는 옛날로 표현하면 장군감 같달까요(웃음).
키도 크고 덩치도 크죠? 병원 가서 주사 맞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다리가 근육질이라면서 칭찬해 주세요. 제 친구들은 쿤이가 전국은 몰라도 아마 대구에서는 가장 큰 고양이일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고요. 가장 먼저 집에 온 첫째라 혼자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어떤 사람이 와도 좋아하고 의젓해요. 여름이와 리지한테 화장실 가는 법처럼 고양이다운 행동도 잘 가르쳐줘서 그 둘이 쿤이를 무척 따라요. 리지는 ‘껌딱지’ 수준이라, 쿤이가 같이 먹어야지만 밥을 먹는데 그 바람에 쿤이가 더 살찌고 있죠.여름이는 10년 전 7월, 한창 더운 계절에 본가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있다고 해서 어렵게 구조한 친구고요. 리지는 개구쟁이에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당시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리틀지영’이라면서 붙인 이름이에요. ‘리지 보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여성 살인마를 다룬 영화도 좋아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식구들 소개까지 잘 들었어요. 이야기를 나누기 전, 감독님 근황을 찾아보다 노트북이 폭발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앞에 놓인 건 새 노트북인가요?
맞아요. 7년 가까이 쓰던 노트북인데 글을 쓰거나 웹서핑 정도 하는 거라 크게 고장 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갑자기 노트북이 막 뜨거워지기 시작하니까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들고 복도까지 나갔는데 그러다 불이 나면 건물이 다 타버릴 것 같은 상상이 들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어요. 그 와중에 노트북은 부풀어서 완전히 타버렸죠. 그 안에 작업이 다 있는데 복구도 전혀 안 된다고 하고요.
(이마를 짚는다.) 아, 생각만 해도….
그간의 시간을 날렸다고 하면 너무나 허망하고 속상할 것 같아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거나, 잠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깨어났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때 위안이 된 말도 들었는데요. 제 최근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의 타이틀은 돌아가신 정미경 작가님의 소설에서 따온 거예요. 제목을 쓰기 위해 허락받을 때 남편 김병종 화백님과 통화를 했는데, 정미경 작가님도 10년 동안 쓴 글을 하루아침에 날린 적이 있대요. 너무나, 정말 너무나 힘들어하셨는데 결국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서요. 영화를 개봉할 때쯤 저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 영화의 제목을 안겨주신 작가님 또한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니까 큰 위안이 됐어요. 결국엔 다시 썼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무척 괴로웠을 거예요.
올해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본심위원으로 활약했는데 그 소회를 듣고 싶어요.
본심위원은 저를 포함해서 총 세 명인데요. 예심작 40편 정도에서 경쟁 부분의 대상과 우수상, 애플 시네마 부문(대구, 경북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지역 경쟁 부문을 의미)의 대상과 우수상을 뽑는 역할이에요. 단편 심사는 거의 2년 만에 하는데, 20-30대가 선호하는 영화 경향을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있어요. 최근에는 레트로라는 문화가 부흥하다 보니 1990년대, 2000년대를 소재로 둔 것도 곧잘 보이던데요. 예를 들면 화면 비율이 4 대 3이라든가, 핸디캠으로 찍거나 또는 핸디캠으로 찍지 않았는데 후반 작업으로 비슷하게 만든 것도 많았어요. 거친 필름의 느낌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뉘앙스가 느껴진달까요.
그 외에도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나요?
이건 특이하다고 말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퀴어’ 소재물을 찾기 어려웠어요. 항상 존재하던 것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그 안에 어떤 단절이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조심스레 그 답을 예상해 보자면, 나 자신에 대한 검열이 심해졌기 때문 아닐까 해요. 당사자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전에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세계를 상상하고 의미를 도출해 내곤 했어요. 물론 당사자들이 활발하게 이야기를 풀어두는 경우도 많았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검열, 나아가 본의 아닌 아웃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까지 안다 보니 이런 소재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당사자여도 어려운 이야기라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하기에는 더 쉽지 않은 거죠.
창작물을 통해 창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되곤 하니까요.
다양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내가 창작물을 통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게 좋은 자세인지는 모르겠어요. 또 자신에 대한 검열은 이런 이유도 있을 텐데요. 세상에 정보가 쏟아지잖아요. 인간관계 잘하는 법, ‘손절’당하지 않는 법, 아픈 사람 도와주는 법, 미운 사람 되지 않는 법…. 유튜브나 SNS만 봐도 이럴 땐 저렇게, 저럴 땐 이렇게 하라는 지식이 넘쳐나고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해 두고요. 그렇다 보니까 내가 무언가에 대해 말하기에는 공부가 덜 된 것 아닐까,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꺼내지 않는 게 낫겠다 생각하게 되죠.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위축되고 두려움이 많아지는 건 같은 행동을 하는 타인에게 좀더 엄격해지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는 그간 어떤 말을 하고, 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네요. 도시 이름이 붙은 지역 영화제가 열리다 보니 대구의 창작 생태계가 궁금했어요. 보통 영화인으로서의 입문은 어떻게 해요?
대구 대학에는 영화 전공 학과가 없어요. 제가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다닐 때만 해도 연극영화과가 있었는데, 2학년이 되는 해에 영화과는 사라지고 연극과가 예체능이 아닌 신문방송학과와 통합되어 버렸죠. 이후에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선배 감독님들을 따라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자생적으로 영화계가 만들어졌어요. 지금도 영화과가 없는 건 여전하지만 영화학교가 있고,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단편 영화 제작 워크숍을 통해 배울 수 있죠. 동료애가 끈끈한 편이라 서로 작품을 만들 때 품앗이를 해요. 감독이나 연출하는 친구들이 다른 작품에선 미술 감독이 되거나 마이크봉을 들기도 하는데, 촬영할 때 “컷!” 하면 각자 할 일을 안 하고 전부 모니터로 모여들어요(웃음).
사공이 많은 현장이겠어요(웃음). 감독님은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관심 있던 전공이 아니라 그냥저냥 학교를 다니다가 ‘영상 예술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듣게 됐죠. 7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중 네다섯 명씩 팀을 나눠서 10분짜리 단편 영화를 하나 만들어야 했는데요.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팀원들이 하나도 열심히 안 하는 거예요. 결국 제가 시나리오 쓰고 캐스팅도 하고 촬영 콘티에 카메라까지 준비했어요. 저도 다 처음 해보는 거니까 촬영 때만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고요. 그런데 그 모든 게 재밌더라고요. 이후에는 당시에 있던 연극영화과 수업 들으면서 영화가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퇴하고 홍익대 세종캠퍼스로 편입했죠.
원래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보는 걸 좋아하거나요.
음, 편입을 준비하던 1년 반 동안이 제대로 영화를 본 시기예요. 명작과 감독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부하듯이 봤거든요. 아침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영화 관련 책을 읽고 정오부터 네 시까지 글을 쓰고, 그 이후에는 영화를 본 후 정리하는 걸 1년 반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았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절박하게 했죠. 창작을 하는 데 영향을 준 건 제 이모라고 생각해요.
이모는 어떤 분이셨는데요?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이모네 놀러 가면 시집도 많고 늘 턴테이블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거기서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읽었죠. 학생 때는 시험에 나오는 문학을 공부해야 하잖아요. 향토시라든지 목가적인 특징이라든지… 그런 걸 외우기보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 같아요. 울컥하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던 걸 떠올리면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나 봐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학교에선 책을 읽고, 집에선 툭 튀어나와 있는 옛날 컴퓨터 켜두고 항상 무언가를 썼어요. 지금도 비슷한 일상이고요.
첫 장편 영화 〈수성못〉은 대구가 배경이에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서울 대학 편입을 준비하는 희정과 죽기 위해 동반 자살 모임을 만드는 영목, 전혀 다른 두 사람은 같은 모습으로 열심이지만 결국 전부 실패로 끝나버리죠. 이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어요?
서른 살에 서울에서 영화 아카데미 1년 정규 과정을 듣고 다시 대구행을 선택했어요. 다른 분들이 절대 내려가면 안 된다고, 가면 영화 못 한다고 만류하셨는데 저는 할 수 있다고 막 웃었거든요. 사실은 서울에 있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됐어요. 이만한 캐리어 끌고 오면서 엄청 울었죠. 한동안은 방황하면서 수성못에 자주 갔는데, 비가 오거나 아침 안개가 끼면 분위기가 좀 묘해져요. 음습한 기운은 아니지만 수상하고 안개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거든요. 그리고 둥둥 떠다니는 오리배를 보니까 저 같은 거예요. 아무리 열심히 떠다녀도 여기가 못인 건 모르겠지, 절대 나갈 수 없는 건 모르겠지 싶고요. 신이 날 본다면 아등바등 살아도 대구에 갇힌 내 모습이 저 오리 같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저한테는 대구에 발을 딛은 현실이 지긋지긋하게 와닿았기 때문에 오히려 판타지 같은 그때가 좋기도 했어요. 거길 걸으면서 생각했죠. 여기를 배경으로 영화를 써봐야겠다. 유원지에서 일하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를.
스스로 영화를 소개할 때 20대의 자전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희정과 영목 중 감독님은 어느 쪽을 닮은 거예요?
희정과 영목이 분리되어 보이지만 모두 제 안에 있어요. 희정이는 오리배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목표를 향해 매일 공부하고 운동하며 치열하게 살아요. 깡다구도 있고 하나를 물면 안 놓고 끝까지 달려보는 캐릭터죠. 영목은 밝게 죽음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무기력한 인물일 거예요. 여자친구가 자신보다 먼저 죽은 걸 알고서는 큰 등짝을 숨기려는 듯 공벌레처럼 방구석에만 있잖아요. 열심히 살려는 마음과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마음이 제 안에 공존하기 때문에 20대 때는 늘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어요.
희정과 영목은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잖아요. 열심히 해도 실패한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인생이에요.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인생 별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꼭 이루어야 할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할 게 주어진 것도 아니죠. 어찌할 바가 없는 것들에 연연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밖에 남는 게 없더라고요. 오늘의 할 일을 정해두었다면 그중에서 몇 가지라도, 하다못해 고양이들 놀아주는 거라도 해내면 돼요. 〈수성못〉을 꽤 오래전에 만들었고 처음 만든 영화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은데, 거기에 담긴 삶을 보는 가치관은 지금이랑 변한 게 없어요. 한편으론 저는 아직 성장을 못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정을 맡아 말간 얼굴로 서슴없이 욕을 하거나 막춤을 추는 이세영 배우가 인상적이었어요.
세영 씨가 어릴 때 새침하고 서울깍쟁이 같은 역할을 자주 했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반대 모습을 보여줘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당시에 세영 씨는 연기 대신 대학교를 열심히 다니면서 ‘에이쁠’을 받던 친구였는데 직접 만나 보니 성격도 털털해서 희정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확신했죠. 제가 영화에서 사투리를 꼭 쓰지 않아도 되지만 쓴다면 대구 말씨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세영 씨가 해보겠대요. 같은 영화에 출연한 대구 출신 배우를 사투리 선생님으로 붙여 주니, 저와 여자 조감독의 사투리까지 세 가지 버전을 연구할 정도로 열심히 해줬어요. 영화를 보고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게 진짜 대구 말씨예요.
미디어에서 과장된 억양이 사투리처럼 쓰이다 보니 오해도 있네요. 그러고 보니 감독님도… 출연하셨죠?
네. LP바에서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는 장면으로요. 예산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스태프들이 작은 역할로 출연했어요. 겹치면 안 되니까 돌아가면서 하는데 그날은 조감독이 제 차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수성못〉의 이스터에그를 발견한 기분이라 재밌었어요(웃음). 앞서 말한 20대의 대구는 방황과 고민으로 채워졌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이제는 대구를 안전하고 집다운 곳으로 생각해요. 영화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어느 정도 조성되었고요. 지금은 영화 작업으로 서울에 머물러야 할 일도 많은데, 오히려 서울이 더 적응하기 어려운 느낌이에요. 늘 목적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니까 아무리 오래 있어도 그 도시에 흠뻑 젖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어요. 강남, 종로, 연남 어딜 가도요. 단순히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분위기가 저랑 안 맞나 봐요.
지난해 11 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을 선보인 후로 시간이 흘렀잖아요.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작업은 내려두고 일상과 마음을 되돌아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4년이 걸렸거든요. 세상에 내보일 때는 당연히 기분 좋고 관객들을 만나니까 반가웠는데, 이후로 인간관계에서 부침이 있는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다시금 돌아봐야겠더라고요. 처음에는 나를 칼로 찌른 사람을 탓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칼에 대고 원망한다고 없던 상처가 되는 게 아니었어요. 더 찔릴지도 모르죠. 상대방과 상처에 매달려 있기보다 다른 쪽으로 치유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타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 되려 자신을 살필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제가 유성호 법의학자를 좋아하는데, 유튜브 채널 ‘유성호의 데맨톡’에서 사람은 버킷리스트도 중요하지만 일생에서 하지 않을 걸 정하는 ‘더킷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대요. 본인의 첫 번째 리스트는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일하지 않는 거라면서요. 어쩌면 창작자들의 취약점 같기도 한데, 가치를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까 재거나 계산적인 게 어려워요. 일로 다가오는 사람을 한없이 믿을 때도 있어서 고민의 시작이 인간관계였다면 결국 나는 어떤 걸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까지 닿더라고요. 마음 정리는 현재진행형이에요.
살면서 꼭 필요한 시간일 거예요.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한데 시나리오는 어떻게 물꼬를 터요?
예를 들어 제가 A라는 주제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면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찾아보고, 생각을 노트나 아이패드에 써 내려가요. 그게 무르익으면 글로 옮기는데 마인드맵처럼 형식이나 구성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는 거죠. 거기까지 완성되었다면 시나리오는 술술 써져요. 왜냐하면 시나리오는 문학적인 작품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오해가 없는 글이거든요. 이 글을 바탕으로 모든 스태프와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도면처럼 정확한 치수가 있어야 누가 보든 하나의 건물을 올릴 수 있어요. 글쓰기 양식이나 형식도 고유하기 때문에 단순히 글을 많이 썼다고 시나리오를 잘 쓰는 것도 아니에요.
오해가 없는 글이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어느 정도 쓰면 꼭 출력해서 본다고 들었어요.
오래된 습관이에요. 저는 시나리오가 시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설명이 되는 문장들이 이어지지만 시는 단어나 문장 사이의 간극이 리듬을 만들잖아요. 시나리오도 장소가 바뀔 때마다 ‘신Scene’이 넘어가는데, 그 리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출력해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내가 숨기려고 한 것, 보여주려고 한 것들이 만드는 리듬이 와닿아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주목받는 신인 작가 재이와 학원 강사로 성실히 일하는 건우의 연인 관계가 서로 다른 삶의 우선순위로 뒤틀리는 내용이에요.
함께라는 가치에 대해 고민할 때 쓴 이야기예요. ‘우리 안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까, 함께하는 와중에 내가 좀더 나답게 살아도 이 관계가 유지가 될까.’라는 일종의 두려움에서 시작됐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오랫동안 만나면서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같이 살던 연인이 있었어요. 양가 부모님도 뵙고 가구나 가전도 다 마련해서 살았으니 결혼 생활이나 마찬가지였죠. 저는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쓰고 남자친구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는데, 자연스레 제가 ‘집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이 퇴근하면 함께 저녁 있는 삶을 보내고 같이 있고 싶으니까 나와 맞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도 기꺼이 따랐어요. 작업을 하다가도 퇴근 시간에 맞춰서 급하게 청소나 빨래를 하고 저녁을 준비했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요. 좋아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던 게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그런 삶을 비난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함께이기에 타협해야 할 부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요. 영화를 쓰기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다 보면 답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한 편의 영화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네요.
독립 영화의 특징 아닐까요? 자본에 대해 자유로우니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부분 내가 겪었고 지나왔던 것들 또는 천착하는 화두에서 비롯되고요. 작업을 통해 떠오르는 질문을 해소하려고 하고, 매듭을 짓다 보면 변화된 나를 보기도 해서 이야기 속에 자신이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더라고요. 독립 영화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초반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영화 제목을 정미경 작가의 소설에서 따온 이유가 있다면요?
시나리오를 한창 쓸 때 우연히 김병종 화백님이 아내의 소설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제목으로 쓴 추모글을 읽게 됐어요. 글에는 정미경 작가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작가로서 끊임없이 전투적으로 임한 삶이 기록되어 있어요. 김밥 한 줄, 계란이나 사과를 작업실로 챙겨 가서 먹지도 않고 가져온 적도 많았대요. 아내로서도 작가로서도 너무나 멋있고 존경했다면서요. 그 글을 읽는데 왠지 모르게 힘을 얻어서 작업 내내 책상 위에 올려두다가,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목으로 정했어요.
이 영화에서 감독님은 재이와 더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이고 여성이라서요.
그럴 거예요. 재이를 창작인으로 설정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장 잘 이해하는 직업이 작가였어요. 재이는 자기가 공들여 쓴 글이라도 별로면 세상에 내놓지 않을 거라고 고지식하게 말하는데 그런 점이 닮았죠. 이상을 추구하는 재이에게 현실에 발을 딱 딛고 사는 건우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건우에게도 재이가 그랬겠죠? 관계의 민낯을 드러낼 트리거가 없었다면 둘은 영원히 잘 지냈을지도 몰라요.
그 계기가 예상치 못한 임신이에요. 재이는 엄마나 아내 대신 작가로 살고 싶지만, 건우는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죠.
한 화면에 잡히던 두 사람이 그때부터 단절된 숏에서 한 사람씩만 보여요. 서로 다른 욕망을 가졌는데 한 화면에 잡힐 이유가 없잖아요. 잡혀야 한다면 둘이 싸울 때일 테고요. 관객분들이 이 지점에서 왜 재이와 건우가 대화를 하는 장면은 없냐,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파멸까진 가지 않았을 거라며 물어보셨는데, 실제로 갈등 상황일 때 저부터도 대화를 안 했더라고요. 밥은 먹었냐, 어떤 하루를 보냈냐 같은 일상적인 대화 말고 보다 솔직하게 내심을 털어놓는 대화 말이에요. 봉태규 배우와 함께 영화 행사를 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우리는 배려를 좋게 여기지만, 배려한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는 말들이 가장 큰 싸움과 문제를 만든대요. 저마다의 관계에서 함께하는 순간의 좋음을 해치기 싫으니까 말하길 피한 게 분명 있을 거예요. 그걸 꺼내두지 않는 것부터 ‘진짜 대화’가 아닐지도 모르죠. 내가 이 사람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게, 실은 이 사람은 바라지도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욕망을 깨달으면서부터 헤어짐을 예상했지만, 고투 끝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별을 말하는 결말이 슬프기도 했어요.
그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어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으면서도 거짓으론 쓸 수 없었죠(웃음).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작업을 통해 내가 어떤 답을 내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내 욕망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그걸 따라가는 게,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거죠. 누군가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게 옳은가에 대해 묻는다면, 되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백 퍼센트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순간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어요. 선택은 명확할 때만 내리는 게 아니잖아요. 재이와 건우는 그게 무엇이든 선택을 했고, 이후에 이어질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수성못〉을 비롯해 〈나의 피투성이 연인〉까지, 결국 나의 터전, 나의 비빌 언덕은 어디인가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지가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그럼요. 늘 내 자리가 어딘지 고민해요.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흔히 마음 둘 곳 없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어디에 안착해서 살아갈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어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잖아요. 눈앞에 보이는 걸 해결해도 또 다른 어려움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요. 그런 와중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어디인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계속 변하고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바뀔 수 있는 존재니까, 쉬이 규정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감독님에게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돈을 주고 극장에 입장하면 두 시간 동안 갇혀 있어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빛나는 스크린을 보면서 영화적인 체험을 하게 되죠. 영화가 끝나면 불이 켜지고 다시 바깥으로 나가고요. 좋은 영화란 깜깜한 순간의 경험이 환한 바깥으로 나갔을 때도 그림자처럼 쭉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둠에서 얻은 질문이 나의 꼬리를 물고 따라붙어서 삶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요. 나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괴롭힐 수도 있지만 반대로 행복함을 떠올리고 좋은 생각으로 이끌 수도 있죠.
오래 따라붙는 영화가 많아지면 좋겠네요. 긴 이야기 마쳤으니 잠시 걸을까요?
좋아요. 동네 골목들이 걷기 좋거든요. 작은 공원도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볼까요?
〈수성못〉
S#01.
오리배 안내원의 작업실 안, 담요를 두른 채로 책상에 엎드려 자던 희정이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 사장님의 무전을 받고 일어난다. 한숨을 삼키며 “지금 갈게요.”라 답하는 희정.
S#02.
텅 빈 화장실 한 칸. 희정은 담배를 피우며 재를 변기에 털어 넣는다. 바깥 세면대에 올려둔 무전기에는 희정을 찾는 영목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S#01.
교도소로 면회를 온 재이. “별일 없지?”라며 묻는 재이에게 건우는 건조한 얼굴로 “여기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 그래서 좋아.”라고 답한다.
S#02.
미안하다는 건우. 재이는 건우를 바라보며 “우리 악몽을 꾼 것뿐이야.”라 말한다. “맞아. 꿈꾼 것 같아. 근데 나 꿈 잘 안 꾸잖아.”라던 건우는 고개를 떨군 채로 숨을 고르다 말문을 연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