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한 도시의 유산

성심당

70년 전, 서울로 향하던 기차가 대전역에 멈춰 서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전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연히 내려앉은 땅에서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된 이 오래된 빵집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다.

기적의 배에서 시작된 약속

성심당의 뿌리는 1950년 12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시작된다. 함주에서 사과 과수원을 일구며 살아가던 임길순·한순덕 부부는 한국전쟁 속 남하하는 중공군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가톨릭 신자인 부부에게 피란은 단지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의 목숨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정든 터전을 뒤로한 채 바닷가 흥남부두로 향했다. 당시 항구는 철수하는 미군 수송선에 오르려는 피란민으로 아수라장이었다. 부부는 정원 60명뿐인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몸을 실은 14,000여 명 중 한 가족이었다.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려가며 사람들을 태운 그 기적 같은 항해 속에서 임길순은 간절히 기도했다. “살아서 돌아간다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멈춘 기차와 밀가루 두 포대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사흘 만에 거제에 닿았다. 거제와 진해를 거치며 함흥냉면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부는 하루 장사를 마칠 때마다 가난한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곤 했다. 그러나 냉면의 주재료인 감자 수급마저 어려워지자, 이들은 다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포화가 조금씩 잦아들 무렵, 부부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운명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서울로 향하던 기차가 대전역에서 갑작스레 멈춘 것이다. 수리가 시작되면 언제 다시 출발할지조차 알 수 없던 막막한 시간, 부부는 낯선 도시 대전에 발을 디뎠다. 가진 것 없이 대전에 내려선 부부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흥동성당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고아들의 아버지’ 오기선 요셉 신부는 그들의 사연을 들은 뒤 구호물자 밀가루 두 포대를 건넸다. 당시 미국의 무상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였다. 훗날 성심당의 시작이 된 것도 바로 그 밀가루 두 포대였다.
부부는 대전역 광장 한편에 천막을 세우고 작은 찐빵집을 열었다. 그리고 ‘예수 성심’의 마음을 담아 가게 이름을 ‘성심당聖心堂’이라 붙였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흥남부두에서 다짐했던 약속은 대전의 작은 천막 안에서도 이어졌다. 장사가 끝난 뒤에는 역 주변의 배고픈 이들을 찾아 빵을 나누었고, 훗날 대전을 대표하게 되는 빵집은 그렇게 밀가루 두 포대에서 시작되었다.

잿더미 위에 다시 켠 오븐

제과점으로 규모를 넓힌 성심당은 1980년대 임영진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나눔의 철학 위에 새로운 감각이 더해졌고, 훗날 성심당의 상징이 되는 ‘튀김소보로’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성심당 앞에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이어졌고, 성심당은 어느새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도시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시청과 주요 공공기관이 둔산 신도시로 이전하며 사람들의 생활권 역시 원도심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은행동 골목에도 빈 점포가 하나둘 늘어갔고, 그 사이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빠르게 자리를 넓혀갔다. IMF 외환위기와 내부 경영난까지 겹치며 성심당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1월의 어느 토요일 밤, 성심당 본점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빵을 만들던 공장이 대부분 타버린 큰불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직원들이 하나둘 매장 앞으로 모여든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잿더미 속의 우리 회사,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우자”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검게 그을린 벽을 닦아냈다. 그리고 불과 엿새 뒤, 멈췄던 오븐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단팥빵과 소보로 몇 종류뿐이었지만, 사람들은 다시 따뜻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화재는 건물을 태웠지만, 대신 그 시간을 지나며 성심당 안에는 ‘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더 단단한 마음이 남았다.

70년, 도시와 함께 굽는 빵의 시간

2026년, 성심당은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현재 대전 성심당문화원에서는 70주년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 한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자신의 일을 통해, 자신이 속한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성심당은 지금까지 서울이나 수도권으로의 대규모 확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빵을 더 많이 팔기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대전이라는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대전역에 우연히 멈춰 선 한 대의 기차와 밀가루 두 포대. 예정에 없던 정차와 그곳에 남기로 한 사람들의 시간이 겹치며 지금의 성심당이 만들어졌다. 이제 누군가는 빵을 먹기 위해 대전을 찾고, 누군가는 빵을 들고 다시 기차에 오른다. 70년 전 불시착했던 그 대전역에서, 성심당은 여전히 도시의 다음 시간을 굽고 있다.

세월을 지나온 얼굴들

1967년

대전 은행동에 자리한 성심당

1970년대

성심당 본점

1980년대

두 배 확장

1990년

확장 이전

2000년대

2005년

성심당 화재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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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일러스트 세아추 자료 제공 성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