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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쉴 새 없이 꼬르륵거리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곧장 달려간 식당.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음식 사진은 놓칠 수 없지! 셔터를 누르던 같은 시각, 일본의 한 음식점에도 시노다 부장이 들어온다. 그런데 이 남자 조금 수상하다. 앞에 놓인 음식을 한동안 물끄러미 관찰하는데…. 시노다 부장님, 지금 뭐 하고 계세요?
‘시노다 나오키篠田直樹’는 일본의 한 여행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33년째 이어온 별난 취미만 빼면. 취미는 1990년 스물일곱의 시노다가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면서 시작됐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현지 음식을 기록해 보고 싶었던 것. 그는 노트를 펼치고, 기억을 더듬어 그날 먹은 음식을 그려냈다. 식사 일지는 사원에서 과장이 된 후로도 계속됐다. 어느덧 두툼히 쌓인 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한 건 NHK의 방송 〈사라메시サラメシ(샐러리맨의 점심)〉에 투고하면서다.
수험 생활 중인 두 딸을 격려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방송 출연을 계기로 미식 일지를 모아 출간한 책도 어느덧 세 권이다. 음식은 카메라가 아닌 두 눈으로 찰칵 담는다. 그릇과 음식을 30초간 뚫어져라 본 뒤, 그날 저녁 집에서 기억만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무리 취했어도 접시의 무늬는 30종류까지 기억할 수 있다.”는 시노다 부장.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그가 그린 요리는 고명까지 세밀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재밌는 의식을 해내며 그가 바라는 건 하나다. “저의 은밀한 꿈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어딘가의 식당에서, 제 책을 보고 오셨다는 분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입니다.” 혹시 모른다. 그가 기록한 음식점에 찾아간 날, 요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남자를 마주치게 될지. 그럼,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보는 거다. “저…시노다 부장님이 맞나요?” 그는 허허 웃으며 푸근한 얼굴로 반겨줄 테다. 그는 누군가에게 식사 일지를 보여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직도 갸우뚱하지만, 재밌게 읽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위장과 머릿속도 보여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두 번째 책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에는 기록이 요일별로 나눠 담겼다. 회사 근처 식당을 찾은 월요일, 거래처 사람과 술을 마신 화요일, 마을 자치회 회식이 있던 주말. 여행사 일로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 음식도 맛본다. 누구와 무얼 먹었나 보는 일이 지루하지 않은 건 시노다 부장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 덕분. 롯데리아는 “엉뚱한 짓을 하는 점”이 좋다든지, 좋아하던 반찬이 사라져 “부활시켜 주면 안 될까”라든지. 나도 한 번쯤 떠올려본 생각에 역시 사람 사는 건 똑같다고 생각한다.
시노다 부장의 기록을 살피다 그의 의식을 따라 해보고 싶어졌다. 밥 먹을 때 늘 틀어놓던 드라마도 끄고, 오로지 음식과 접시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김밥이 맛있던 연희동의 한 분식집은 예쁜 접시를 내어주는 곳이 됐다. 화면을 곁눈질하며 젓가락질 몇 번으로 듬성듬성 채우던 식사 시간은 그릇의 무늬와 재료의 색, 맛으로 채운 밀도 높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시노다 부장은 하루를 이렇게 촘촘히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그간 툭 찍어 두고 갤러리 깊숙한 곳에서 꺼내 보지도 않던 많은 음식 사진이 기억난다. 소중한 사진이지만, 그때의 감동과 흥분은 조금 바래져 있다. 한편 시노다 부장은 기억을 노트에 새겨 웃음과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좋지만 다르고 싶”은 사람이어서. 어떻게 해서든 남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은 특유의 성향이 원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이 내밀하고 별난 기록이 사랑받는 건 시노다 부장의 독특한 면모를 발견하면서도, 어쩐지 그와 묘하게 닮아 있는 나를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마케터 H와 회사 근처 백반집을 찾은 날이었다. 옆 팀 동료 G가 무척이나 자주 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식사하다 고개를 돌리니 멀찍이 그가 보인다. 잠시 후 탕비실에서 마주친 나와 동료 G, J 팀장. 오늘 식당에서 G를 보았다고 하니 J 팀장이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여기 바로 앞인데, 백반이 괜찮아요.” “오, 그래?” 다음번엔 J 팀장을 그곳에서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회사 동료들을 식당에서 마주치는 건 시노다 부장도 마찬가지. 동료 추천 식당은 어디서나 믿음직한가 보다.
‘다이파이톤(현재 폐점)’은 시노다 씨가 자주 찾는 음식점이다. 먹는 순서도 정해둘 만큼 익숙한 곳이라면, 맛집이 분명하다. 그럼 그럼.
팀원들과 자주 가는 한식당은 반찬이 푸짐하고 뜨끈한 국물 요리 중심이라 먹고 나면 늘 배가 가득 부르다. 회사로 돌아가며 매번 우리끼리 “이러다 졸리겠어.” 이야기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는 계속 찾게 된다. 시노다 부장도 그 굴레를 헤어 나올 수 없나 보다. 오후에 눈꺼풀이 조금 무거워져도, 허기진 배는 따뜻하게 채워줘야 하는 법.
시노다 씨는 평범한 일본식 요리부터 양식, 인스턴트 음식까지 다양한 점심 식사를 즐겨 그림일기가 다채롭다. 여느 직장인처럼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의 음식을 찾는다.
글 차의진
자료 제공 앨리스(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