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다카마쓰

친구 많은 K씨의 일상

나는 꽤나 충동적이다.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그 기질이 더 세게 발동되곤 한다. 이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어떤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연휴를 맞아 오랜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메뉴를 정했는데 내가 이겼다. 냉채족발을 고르자 친구들은 죽상이 됐다. 코가 따갑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의 가위바위보는 콘클라베만큼이나 신성한 의식이어서 무를 수는 없었다. 나는 잔뜩 신이 난 채로 소주를 들이켰다.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술을 마셨고,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두가 취해버렸다. “야, 부산 가자!” 얼마 전에 부산 애인과 헤어진 친구가 소리쳤다. 그 사실을 아는 우리는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거 추태야!”, “그럼 제주도 가자!” 이번엔 컨버스만 신고 한라산에 오르다가 조난 직전에 발견된 친구가 말했다. 그는 에어쿠션이 있는 나이키를 신고 있었다. “신발 샀네?” 우리는 오래 신으라는 의미로 그의 흰 신발을 밟아줬다. 어쩐지 나도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일본은 어때? 요즘 환율이 괜찮대.” 친구들 눈빛이 반짝였다. 우리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내일 점심 출발, 2박 3일의 일본 여행이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다만 나는 피부과에서 점을 빼기로 예약이 잡혀 있어서 친구들과 따로 출발하기로 했다.

다음 날 느지막이 눈을 떴을 때 숙취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해장을 하려고 냄비에 물을 올리다 문득 떠올렸다. ‘아차! 오늘 일본 가기로 했지?’ 친구들에게 연락하자 이미 공항에 있다고 했다. 토할 거 같다고, 늦게 출발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피부과에 전화해 약속을 어겨 죄송하다고 한없이 굽신댔다.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올랐다. 술 냄새를 풍기면 탑승이 안 된다는 얘길 들은 터라 가그린 한 통을 다 썼다. 그렇게 2시간여의 비행 끝에 일본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와이파이를 잡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야? 너네 안 보여.”, “우리도 너 안 보여.”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 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뉴욕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다카마쓰에 도착했다. “다카마쓰가 어디냐? 너 왜 거기 있어?” 친구들은 후쿠오카에 있다고 했다. 술에 취해 항공권을 따로 예매한 게 화근이었다. ‘다카마쓰, 후쿠오카, 그래도 한 글자는 닮았네.’ 나는 갑자기 터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낯선 공항 한가운데서 좀비 같은 몰골로 후레쉬민트향을 퐁퐁 풍기며 깔깔대는 한국인, 그게 바로 나였다. 내친김에 매끄러운 공항 바닥을 뒹굴며 흔들어 젖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불쑥 서러움이 밀려왔다.

“안 돼, 정신 차려!” 기합을 넣었다. 곧 해가 질 거였기 때문에 서둘러 숙소를 검색했다.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숙소입니다. 방문객은 단체 침대를 사용하십시오.’ 어색하게 번역된 한국어를 보자 그제야 여행이 실감 났다. 번화가 숙소보다 저렴한 걸 보니 변두리 지역인 듯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바로 예약했다. 그 와중에 맛집을 검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카마쓰는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이라고 했다. 해장으로 생생우동을 끓여 먹으려다 못 먹은 게 오히려 나이스였다. ‘이런 행운이 다 있군!’ 생각하며 우동집으로 달려갔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시게)!” 일본어 메뉴판만 있는 현지 맛집. 택시 기사들 틈에서 쫄깃 탱탱한 우동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나루호도(역시)···.” 나는 유일하게 아는 일본어를 중얼거리며 계획한 일이라는 듯 으스댔다.

빵빵해진 배를 문지르며 거리로 나왔다. 이번 여행에선 비위를 맞출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으므로 내키는 대로 걸었다. 좁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골목, 저녁놀이 스며든 아케이드, 그라피티 거리와 보드 타는 청년들, 분홍색 모자가 귀여운 할머니의 뒤를 쫓다가 이름 모를 공원에 닿았다.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이 발을 하나로 묶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분명 어젯밤엔 친구들과 ‘뉴진스와 에스파 중에 누가 더 최고인가?’ 그런 찐따 같은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니···. 그런 와중에 친구들이 자꾸만 메시지를 보내왔다. 뭘 먹었고, 어딜 갔는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어쩐지 시끄러워서 단톡방을 나와버렸다.

조금은 쓸쓸하고 또 충만한 혼자만의 저녁을 만끽하다 숙소로 갔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개울가에 화려하지 않은 일본식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벨을 누르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일본어로 무언가 말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살면서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번역기를 열어 겨우 대화하며 숙소를 안내받았다. 좁고 짙은 나무 복도,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일본식 욕조, 침대 여섯 개가 있는 방의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문득 이런 곳에 시끄러운 친구들과 함께 묵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나오자 털보 아저씨가 함께 맥주를 마시자며 불렀다. 다른 방에 묵고 있는 중국인 여행객도 함께했다. 그녀는 일본에 사는 중국인이었는데, 한국말도 제법 알아들었다. 일본어를 못하는 한국인과, 한국어를 못하는 일본인과, 한국어와 일본어를 알아듣기만 하는 중국인의 조합.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더듬더듬 여행 계획을 공유했다. 털보 아저씨는 보여줄 게 있다며 집 밖 개울가로 우릴 안내했다. 그가 돌멩이 하나를 주워 새까만 개울에 던지자 무언가 터지듯 반짝였다. 발광 플랑크톤이라고 했다. 국적도 언어도 세대도 다른 우리는 개울에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다. 물속 발광 플랑크톤이 반짝거릴 때마다 “대박”, “스고이”, “타이빵러” 각자 모국어로 ‘짱’을 외쳤다. 나는 대박을 더 세게 표현하기 위해 “디에-박”이라고 발음했고, 일본 남자는 “스게”라고 고쳐 말했다. 중국어는 너무 빨라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중에는 발음 임팩트 경쟁이 붙어서 아무 말이나 막 했다. ‘아, 진짜 완전 유치하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보짓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도시 구석구석을 혼자서 여행했다. 친구들은 자꾸만 후쿠오카로 넘어오라며 재촉했다. 나는 코를 파는 셀카를 전송했고, 그걸로 우리의 연락은 끝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 후,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했는지 다들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모두 지어낸 얘기 같았지만, 그저 듣고만 있었다. “건태 너는?” “나는 뭐, 별로.” 말을 하면 금세 빠져나갈 것 같아서, 이번 여행을 입속에 아껴두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혼자서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딱히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라는 사소하지만 기억할 만한 사실도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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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