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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섬으로
보라보라 사람들
주말엔 섬으로
주말 동안 바다 건너에 있는 작은 산호섬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들과 만나기로 했다. 한 집 걸러 한 집 모터보트나 제트스키 그도 아니면 쪽배라도 있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다른 섬에 가는 것이 무척이나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저기 저 섬? 어떻게 가야 되나?” 곤란해하는 내 얼굴을 향해 남편은 씩 웃으며 말했다. “패들보드 타자.”* 패들보드(Stand Up Paddle board)는 기본적으로 크고 두꺼운 보드다. 물에 잘 뜨는 판떼기라는 말이다.
그 위에 서서 기다란 패들, 즉 노를 저어 이동하는데 이게 간단해 보여도 파도에 넘어가지 않게 제대로 서서 균형을 잡으며 노까지 저으려면 상당한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덕분에 누군가에게는 운동이고, 누군가에게는 명상이고, 남편에게는 취미지만, 내게는 극기훈련이다.
바다를
건너는 방법
보라보라의 지형을 생각하면 완전히 미친 생각은 아니었다. 섬을 넓게 둘러싼 환초 지대의 작은 섬들이 남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에, 바로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편이었다. 체력이 좋은 남편에게는 정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데? 나는 뭐랄까, 넷플릭스 보며 마실 맥주를 사러 집 근처 마트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과연 패들보드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주말 아침,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했다. 바람도 파도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산호섬에 마리도 온다는 소식에 용기를 낸 참이었다. 마리는 나의 불어 선생님이자 많은 이들의 춤 선생님이며, 지구와 동물을 위해 채식을 하고, 여행을 갈 때마다 현지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공정여행을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마리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단단한 얼굴이 좋았다.
몸보다 커다란 보드를 남편과 앞뒤로 나눠서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4층 계단을 내려가니 그새 티셔츠가 땀에 젖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준비운동이 필요 없었다. 바로 바닷물에 들어갔다.
움직이면
나아간다
산호섬은 야자수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다.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워 보였지만 분명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을 터였다. 보드를 물에 내려놓고 노를 꺼내든 내게 남편이 말했다. “한 시간은 안 걸리겠지?” 남편이 패들보드의 앞쪽에 먼저 올라가 앉은 후, 내가 마저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일어섰다. 휘청, 몸이 흔들렸다. 내가 흔들리니 패들보드도 흔들리고 덩달아 남편도 흔들거렸다. “어어어.” 얼른 노를 물에 담그고 뒤로 밀어내니 보드가 앞으로 쑤욱 나아갔다. 남편은 무사히 출발한 내게 엄지를 올려 보이며 말했다. “우리 말 그대로 한 배에 탔네. 이게 결혼한 부부지.”
얼마간 노를 젓자 어깨, 배, 다리의 근육이 땅기는 게 느껴졌다. 괜히 전신운동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노 젓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자, 보드가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노를 저으니 제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패들보드는 이런 운동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딱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이면 나아간다. 움직이면 나아간다. 움직이면 분명히 나아간다. 이 단순한 사실이 반가웠다.
바다의 색도 계속해서 달라졌다. 처음엔 보드의 그림자마저 보이는 투명한 유리색이었다가, 곧 우유를 푼 듯한 에메랄드색이 되었다가, 선명한 청록으로 바뀐 뒤 그대로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검파란색이 되었다.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속이 전혀 보이지 않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물에 빠지기 싫었다. 빠르게 노를 저었다. 산호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다의 색도 다시 밝아졌다. 마침내 투명해졌을 때, 바닷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마리도 그곳에 있었다.
바다
건너의 사람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려는데, 마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고기가 우리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주지만, 대신 소를 기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도 오염시킨다는 말을 머리가 희끗한 남자에게 하고 있었다(내가 알아들은 단어를 조합해보면 그랬다). 남편도 나도 난감해졌다. 마리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자리에서, 굳이 이런 설명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생선이나 야채는 그럼 왜 먹어? 그냥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제야 분위기를 짐작할 만했다. 고기를 구웠을 테고, 마리에게 권했을 테고, 그녀는 자신이 채식주의자라 말하며 직접 가져온 생선과 야채를 먹겠다고 했을 테고, 끝없는 질문들이 시작되었겠지. 이번엔 남편이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에 뭘 타고 왔는지 맞춰봐요.” 다행히 남자는 보드 쪽으로 흥미를 옮겼다. 두 사람이 보드를 보려고 이동하자마자 마리가 물었다. “진짜 패들보드로 온 거야? 어디서부터?” 내가 아주 집에서부터 노를 저어서 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제야 볼에 비쥬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서로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구워 먹고, 나는 맥주도 3캔이나 마신 다음에야 야자수 그늘에 함께 앉았다. 마리는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 더블치즈버거 못 먹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했다며 웃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리는 어딜 가든 말이 쏟아진다며 손으로 입 모양을 만들어 자기 눈앞에서 흔들었다. 왜 고기를 안 먹느냐 이유를 묻는 사람부터, 건강에 안 좋으니 균형 잡힌 식단을 짜라고 조언하는 사람, 유별나다며 눈치 주는 사람, 오늘처럼 생선도 식물도 고통을 느낄 텐데 그럼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사람까지.
마리는 그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기를 점점 모르겠단다. 선의로 하는 행동이 꼭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자꾸만 확신이 없어진다고 했다. “내가 채식을 한다고 정말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나 뭐 하는 거지?” 마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정말 몰랐다. 다만 조금 슬퍼졌다. 왜 늘 자신을 의심하고 고민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인 걸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곰곰 단어를 고르다, 보드를 타고 오며 느낀 것을 말해보았다. 엉성한 불어로.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마리는 눈썹을 까닥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난 그냥 칭찬받고 싶었는지도 몰라. 멋진 사람이라고. 너무 이기적인가?” 네 번째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하며 칭찬받고 싶어 하는 건 꽤 괜찮은 거 아닌가? 여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세계 제일의 영화감독이라고 칭찬만 받고 싶은 나도 있는데.
다시
집으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남편이 노를 저었다. 가만히 앞에 앉아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불쑥 뾰족한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급하게 상어를 외치는 내 비명에 남편도 바다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저건 만타레이야.” 만타레이가 대체 뭐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정말 모르냐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엄청 큰 가오리인데 몸무게가 2톤이 넘고 날개 너비가 6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정말 모르는 거냐고 여러 번 되물었다. 또 신났네. 내가 모르는 걸 찾아내고 놀리는 일이 어째선지 남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났던 모습만으로는 크기가 그려지지 않았다. 내 키의 세 배가 넘는 가오리라니. 상어가 아니어도 무서운 크기였다. 하지만 만타레이는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시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남편이 노를 저을 때마다 긴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을 따라서 햇빛이 굴절되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에 떠서 바라보는 노을은 오랜만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꼭 보라보라섬이 내가 지구를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 그것도 아주 작은 하나라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다. 물론 이 모든 것, 섬, 바다, 파도, 바람, 만타레이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을 터였다. 그저 그렇게 그곳에 그냥 있는 것을. 어느 책에서 보았듯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인간의 어리석은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이 모든 것을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모래에 발을 내딛자마자 잊어버리겠지. 뭐 어떤가. 그래서 우리는 매번 바다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