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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식
우리가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식
보라보라 사람들
차 유리에 기대어 자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가까스로 눈을 떴다. “잘 도착했냐.” 언니에게 온 문자였다. “아니. 엄청 밀리네.” 답을 보내고 느리게 몸을 일으켜서 고속도로를 보니 여전히 자동차들이 빼곡했다. 오후 두 시. 원래대로라면 속초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두세 시간은 더 가야 한다고 홍인이가 말했다. 다시 진동이 울렸다. “그러게 왜 뮤직 페스티벌을 거기까지 간다고 난리. 지금 서울에서도 두 개나 함.” 나는 잠시 대답을 못 하다 이내 의아해졌다. 그러게. 우리는 왜 그곳에 가는 걸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추는 춤은
어디서 배우나요?
명란젓의 알처럼 차로 꽉 찼던 고속도로를 벗어나 속초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잡아탔다. “칠성조선소로 가주세요.” ‘칠성조선소 뮤직 페스티벌’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으쌰으쌰 해서 만든 작은 페스티벌로 고수들이 많이 올 거라고 미소가 말했다. 함께 온 미소와 홍인이 그리고 L만 봐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음악을 몰랐다.
이어폰을 꽂는 순간 모든 풍경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뮤직 플랫폼을 켜고서도 뭘 듣고 싶은지 떠오르지가 않아서 결국 검색창을 열고 이렇게 써넣는 쪽이다. 청소할 때 듣기 좋은 음악, 공부할 때 듣기 좋은 음악, 심지어 우울할 때 듣기 좋은 음악까지. 내가 아는 건 취향을 가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나는 그런 에너지가 늘 부족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인가?” 홍인이가 웃으며 말했다. “나 두근거려.” 그 마음만은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종이 팔찌를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선소라는 이름답게 호수를 바로 앞에 마주 보고 무대가 있었다. 친구들을 따라 무대 쪽으로 갔다.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가 커졌다. 몸이 다 울렸다.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윤기가 돌았다. 관객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몸을 움직였다. 누구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바다 냄새가 났다. 햇살도 공기도 바람도 사람들도 자유로웠고 또 자연스러웠다.
그 속에서 나만이 홀로 엉거주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도,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색했다.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니 자꾸만 더 어색해졌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같은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나를 다그쳤지만, 역시 신경 쓰였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신경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신경 쓰였다.
그때 홍인이가 소리쳤다. “술 마실 사람?” 미소와 나는 동시에 손을 들었다. 술 마시는 손동작을 보고 L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모든 것이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달라지는 것들
무대 오른쪽에 마련된 음식 부스로 갔다. 작은 나무 테이블과 캠핑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고수가 태국처럼 듬뿍 담겨 나온 음식들을 먼저 먹고, 샴페인을 마시고, 맥주를 마셨다. 그제야 호수 가까운 쪽에서는 사람들이 캠핑 의자나 돗자리를 가져와 느슨하게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은 다시 무대 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멀찍한 곳에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조선소였을 적, 배를 나르는 데 쓰였을 구조물에 자리가 있어 비스듬하게 기대어 앉았다. 편안했다. 무대에서 거리가 멀어졌는데 어쩐지 음악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렸다. 숨통이 트였다.
먼저 공연을 마친 밴드가 관객이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다를 떨고 웃고 어깨동무를 하고 다른 관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올해 막 시작된 아기자기한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밴드도 다른 곳에서보다 편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계속 그 밴드를 따라가다가 한쪽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붙잡혔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앞에 나와 양손으로 가위를 만들어 허공을 잘랐다. 할머니들은 한쪽 발만 들고 뛰었다가 비볐다가 또 총총총 뛰었다. 어르신들의 사이사이로 조그만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할머니 한 분이 타조 흉내를 내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다른 할머니들이 몸도 가누지 못하고 웃었다. 보고 있는 나도 웃음이 났다. 작은 질투와 커다란 부러움을 느꼈다. 이 장면이 책이라면 나는 밑줄을 죽죽 그으면서 읽었을 것이다.
훌쩍 비켜선 햇빛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느슨해졌다. 고개를 까닥이며 몸을 양옆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아직 몸짓에 가까웠지만 처음처럼 어색하지는 않았다. 미소가 맥주를 들고 달려왔다. 투명한 잔에 담긴 맥주가 찰랑거렸다. “언니 저기 할머니 할아버지 봤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다며 웃는 미소와 맥주, 사람들의 머리 위로 햇빛이 설득력 있게 쏟아졌다.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노래는
힘이 세다
금세 해가 졌다.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모두 마셨다. 친구들이 내 옆자리와 무대 앞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녀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춤을 추거나, 다음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나는 모르는 노래가 많았다. 독일에서 온 L이 가사도 모를 음악을 나보다 더 잘 이해했다.
나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가장 게으르게 앉아서 듣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체력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음악은 힘이 셌다. 내 둔한 귀도 뚫어주는 카랑카랑한 노래가 들려 친구들에게 물어 검색을 했다. 그런 장르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른여섯에도 아직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 것이 남아 있다니. 취향을 늦게 발견하는 일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자,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귀에 익은 기타 소리를 내며 튜닝을 했다. 강산에였다. 아무리 나라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뒤섞여 무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몇 곡의 노래가 지나가자, 영혼이 기억하는 멜로디가 나왔다. 중·고등학교 때 만 번도 더 들었을 노래.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
울컥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눈물. 얼른 닦아내며 옆을 보니 홍인이도 울고 있었다. 팔을 길게 뻗어 홍인이의 어깨를 감쌌다.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닦지 않았다.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모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울먹이며 노래를 불렀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서울의 나였다면 낯 간지러워했을 위로의 말이 그곳에서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담백하게 스며들었다.
그 밤에 몇 번의 앙코르가 나왔는지 벌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방방 뛰던 사실만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노래하면서도 웃으면서도 소리 지르면서도 울면서도 뛰었다. 낮에 택시로 왔던 길을 걸어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꾸만 뛰었다. 밤의 속초가 우리 곁을 성큼성큼 지나갔다. 갑자기 홍인이가 편의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왜?”, “맥주.”,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도 편의점 있던데, 미리 사면 무겁잖아.”, “아니 거기까지 가는 동안 마시려고.” 홍인이의 말에 미소가 먼저 웃었다. 궁금해하는 L에게 통역을 해주다 나도 웃음이 터졌다.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는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시 거리로 나갔다. 시장에도 가고 골목도 들여다보며 잔뜩 한눈을 팔며 걸었다. 그때, 왜 우리가 서울을 떠나 거기까지 가야 했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는데 까먹었다. 하지만 뭐. 백 명의 여행자가 있다면 백 개의 속초가 있을 테니. 다들 자신만의 이유를 발견할 거라 믿는다. (무책임)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