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보라 사람들

군산 사람이 여행한 군산

군산 사람이 여행한 군산

보라보라 사람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모두 군산에서 다녔다. 대학을 가면서 떠나왔지만, 부모님은 아직도 군산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보라보라섬에서 사는 내게 오히려 군산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았다. “현지인이 가는 맛집 알려줘.”, “이성당 빵 먹어봤어?”, “히로쓰 가옥 어때?”, “복성루 짬뽕 맛있냐?”, “적산가옥 어디가 괜찮아?”, “술 마실 만한 곳 추천 좀.” 아는 곳도, 알려줄 것도 없었다. 군산에 살 때는 미성년자였으니 술집이야 당연히 모를 일이고(헛기침), 그중에 가본 곳도 이성당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주제를 들었을 때 군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홍인이는 마침 쓰고 있는 영화의 배경이 군산이라서, 이화 언니는 맛있는 걸 먹고 기력을 회복하고 싶어서, 나는 군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또 마감을 하기 위해서) 함께 군산에 가기로 했다.

건축물의 월요일들
게스트하우스

예보대로 비가 쏟아졌다. 시야가 흐려질 정도의 비가 차 유리창을 가리자 와이퍼도 버거운지 빡빡한 소리를 냈다. 운전대를 잡은 홍인이가 다시 한 번 아주 천천히 내려가겠다고 말했고, 나는 안전벨트를 다시 채우며 그러자고 답했다. 뒷좌석에 앉은 이화 언니가 우리 사이로 고개를 쏙 내밀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 뭐부터 먹어?” 홍인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간장게장 먹자.”, “간장게장 아냐?”

그래서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한주옥으로 가서 간장게장을 먹었다. 이화 언니는 소주를 땄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진 다음에야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출발 전, 세월이 느껴지는 건축물에서 자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이화 언니가 곧바로 링크를 몇 개 보내왔다. 그중에서 적산가옥(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소유하던 가옥)을 리노베이션했다는 곳이 눈에 띄었다. “여기 괜찮다.”, “어떤 방이 좋을까?”, “205호가 넓어 보이는데?” 홍인이랑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 동안 잠깐 말이 없던 이화 언니가 다시 나타났다. “예약 끝. 205호.” 순간 핫- 하고 웃다가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이화 언니는 늘 빠르다. 홍인이도 행동파인데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참 닮았다. 나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버스와 지하철 같은 사소한 선택도 오래 하고 매일 하는 성격이라 이렇게 시원하게 결정하고 확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들이 가끔은 당황스럽고 자주 부럽고 또 늘 고맙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이화 언니가 예약한 곳은 거리 뒤쪽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월요일 휴무’라고 적힌 식당이 보여서 일단 차를 세웠다. 한 손에는 1박 2일간 지낼 짐이 담긴 가벼운 배낭, 다른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우산을 들고 먼저 내렸다. “체크인 하고 있을게.” 

길모퉁이를 돌아가니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안쪽으로 일본식 기와 아래 유리로만 이루어진 가옥이 보였다. 다양한 크기의 나무 프레임이 채우고 있는 유리는 창이면서 동시에 문이었다. 서둘러 들어가려다가 빗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발을 헛디뎠다. 마침 통기성이 좋아지도록 구멍이 숭숭 난 러닝화를 신고 있어서 물이 엄지발톱 안까지 한 번에 주욱 들어왔다. 덕분에 제대로 둘러볼 정신도 없이 신발을 세워두고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양말을 벗었다. 적산가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양말 말리기라니.

고양이 발소리가 들렸다. 이화 언니였다. “하아 따뜻하다.” 이화 언니는 들어오자마자 방에 누우며 말했다. “체기 있는 것 같아.”, “좀 쉴래?”, “아니. 나가야지.” 말과는 달리 언니의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사실은 내가 졸렸다. 여행 간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평소보다 피곤했다. 이대로 누워서 잤으면 싶었다. 홍인이는 생각보다 쌀쌀하다며 옷을 갈아입었다. 홍인이가 겉옷까지 입자, 이화 언니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일어났다.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고오오오.” 이렇게 만사 귀찮은 게으른 내가 여행은 왜 하는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게으름을 이겨낼 만큼 여행만은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아직 젖은 운동화에 발을 넣고 군산의 오래된 거리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건축물의 월요일들
초원사진관

가장 먼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에 갔다. 사진사인 정원(한석규)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스스로 찍은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혼자 남겨지게 될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알려주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을 나가버리는 장면은 지금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고 보면 정원이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이지 않았나? 홍인이와 이화 언니가 안으로 들어가 앉았고 나는 두 사람의 증명사진을 찍어주었다.

건축물의 월요일들
마리서사, 신흥동 일본식 가옥, 폐가

다시 거리로 나와 걸었다. 사람이 없었다. 얼핏 봐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깊이 잠든 마을 같았다. 동네 서점인 마리서사도,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가옥)도 모두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월요일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굳게 잠긴 문 안쪽을 잠깐 살펴보던 홍인이가 말했다. “내일 다시 오면 되지 뭐.” 그때부터는 뚜렷한 목적지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저쪽으로 가볼까?”, “그럴까?” → “이번엔 여기?”, “좋아!” → “?”, “!” 결국엔 다들 걷는 것이 즐거워져 별말도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엄청 멀게 느껴지던 곳들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성큼 내 앞에 나타났다. 허무할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이것보다는 훨씬 컸던 것 같은데, 이것보다는 덜 낡았던 것 같은데.

일본 사람들이 살다가 해방 후 한국 사람들이 살았을 집,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는 집들이 번갈아 가며 나왔다. 드물게 신축인 집도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건축물이 많았다. 그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공존’, ‘시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낭만 도시가 되었지만, 곰팡이가 사라지지 않는 낡은 건물에서 살아가는 부모님이 떠올라 마음이 묘해졌다. 우리의 결핍이 누군가의 낭만이 될 수도 있구나.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홍인이는 가끔 멈춰 서서 말했다. “주인공이 사는 집 같아.” 그러다 이화 언니가 멀리 보이는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홍인아. 저기는 어때?”, “어. 가보자.” 아무도 자르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풀을 지나쳐 가까이 가보니 폐가들이었다. 사자로 된 문고리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여기 촬영 협의도 가능할 것 같은데?” 홍인이와 이화 언니는 한참 동안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곳에 어떤 사람이 살다가 어떻게 떠나게 되었을지가 궁금했지만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얼른 활기찬 영화 촬영장을 그려보았다. 여기쯤에 밥 차가 들어오겠지. 저쪽에 벽지를 다시 해야 할 거고. 배우 대기실은 안쪽이 좋겠군. 폐가 주인도 이 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지만 모를 일이었다. 다만 나는 기다릴 거다. 홍인이가 저 안의 어딘가에서 “레디- 액션.”을 외치는 날이 오기를. 나는 그 영화를 완벽하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건축물의 월요일들
이성당

지친 다리를 풀어주려고 이성당에 들어갔다. 홍인이는 단팥빵을 고르고, 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이화 언니는 아직 소화가 덜 되었단다. 어릴 때 “나이가 들어 그런지 여기 아이스크림이 별맛이 없다.”는 아빠를 보며, 나는 아빠 나이가 되어도 계속 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거라고 맹세했었다. 그게 뭐라고 그랬는지. 숟가락을 가져와 두 사람에게 떠 먹어보길 권했다. “맛있다. 느끼하지 않고 되게 시원한 맛이야.”, “이거 무슨 맛이지? 나 이거 분명 아는 맛인데?” 홍인이와 이화 언니가 많이 좋아해줬다. 뿌듯했다.

건축물의 화요일들
신흥동 일본식 가옥

다음 날 아침 다시 가보았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푸른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아침까지 비가 와서 그런지 화요일에도 사람이 없었다. 고요했다. 한쪽으로 꽃나무와 석등이 있는 일본식 정원이 있고 다른 쪽에 오래된 2층 목조 가옥이 있었다. 이곳은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이 처음 건립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주변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대부분은 쌀을 강제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했기에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근대 한국사에 적응한 주택의 한 형태로 보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우리의 국가등록문화재다. 아침까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해 어제 둘러본 다른 적산가옥들과 비슷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뿜어내는 에너지가 아예 달랐다. 뭔가 무서워서 온몸의 솜털이 슈슈슈 섰다. 

우리 세 사람은 어제처럼 따로 또 같이 구경하기 시작했다. 홍인이는 집 주변을 구석구석 살폈고, 이화 언니는 정원에 만개한 꽃나무를 보았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태연아. 이 꽃나무 이름이 뭔지 알아?” 이화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름을 궁금해했다. 분홍색 꽃잎 수십 개가 겹쳐서 피어 있는 나무였다. 전혀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화 언니는 “만첩홍매화인가?” 하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머님께 여쭤봐. 이런 거 잘 아시잖아.” 

결국 이화 언니는 꽃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는 이렇게 봐서 확실하진 않지만 교목을 보면 ‘만첩벚나무’일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벚나무 중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나무였다. 그런 점이 조금 내 취향이었다. 아, 자세히 보니 꽃이 예뻐 보였다. 적산가옥을 보면 뭔가 역사에 대해 깨우침이 생기고 그걸 또 글로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나 이런 의식도 있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하지만 실패했다. 대신 바라지도 않았던 꽃 이름을 하나 얻었다. 어마어마하게 예쁜. 이화 언니의 엄마처럼 꽃과 나무의 이름을 잘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언니는 “응. 우리 엄마 잘 늙었어.”라며 웃었다. 함께 만첩벚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건축물의 화요일들
다시 마리서사

입구에 촬영 자제 부탁드린다는 메모가 붙어 있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식 가옥과 옛 마리서사를 재현하려 고심한 흔적이 가득했다. 진열대나 책상도 예스러운 멋이 있었다. 매거진으로는 유일하게 《어라운드》가 보였다. 《어라운드》에 쓴 글을 엮은 한수희 작가의 책도 있었다. (무려 작가님이 남기고 간 쪽지도 있다.) 친구들한테 나 이 사람 글 엄청 좋아한다고 말하려다가 그 아래에는 나도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혼자 민망해져 입을 다물었다. 그놈의 허세. 마음을 가다듬고 책 구경에 집중했다. 어렵지 않았다. 섬세한 시선으로 고른 책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게 잘 진열되어 있었다. 동네 서점이나 독립서점에 가면 늘 느끼는 기분이지만 마리서사에서는 특히나 그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아 여기 있는 책 다 사고 싶어.” 이화 언니가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엄청나게 자제했는데도 양 손이 무거워져 나왔다. 앞으로 군산에서 어딜 가야 되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마리서사를 추천할 거다.

*사진은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찍었다.

군산을 여행하는 내내 이미 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건축물을 봐서 그런지 그게 아무리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간에 어떤 집을 나의 안식처로 만들겠다는 바람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른 돈 벌어 내 집을 구하고 싶었는데, 그건 사람에 기대는 것 이상으로 고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집은 사라지고 사람들도 변해간다. 하지만 당신이 여전히 지속 가능한 안식처를 찾고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어디든 누구든 건투를 빈다. 나?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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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