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서른다섯에 영화학교라니
보라보라 사람들
서른다섯에 영화학교라니
“나는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졸업할 때가 다 돼서야 깨달았다. 대신 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자연스럽게 NGO나 정부 단체의 계약직으로 이어졌다. 일을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바닥에 떨어져 있던 꽃을 선물해줬고, 스케치북 가득 수십 개의 내 얼굴을 그려주었다. 함께한다고 가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라면 가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혼식 없는 결혼을 했고 검은 고양이 ‘주드’와 함께 보라보라섬에 살고 있다. 현재 직업은 자책하면서도 계속 게으른 주부.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몇 년 전 《어라운드》에 처음 쓴 글의 에필로그다. 그대로 옮겨왔다.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않던 ‘내일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 나이 서른다섯. 다시 한국에 돌아와 영화를 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자책하면서도 게으르지만, 이제는 주부 더하기 대학원생이다(절규).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
또 정전이었다. 인터넷이 사라지고 심심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파인애플 잎을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겠다고 했다. “파인애플 다시 나려면 얼마나 걸려?” 내 물음에 남편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들었다. “두 달?” 되묻는 내게 남편은 고개를 흔들더니 웃으며 말해주었다. “2년.” 고거 하나 열리는 데 2년이나 걸리다니. 놀라고 말았다. 현관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우리 고양이 주드가 햇빛에 흔들리는 꽃 그림자를 잡으며 놀고 있었다. 이 나른한 하루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비해 놀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이 놈의 섬은 글을 쓰는 데만큼은 최적의 환경일 거라고. 영화를 전공한 내게 글이란 시나리오다. 늘 다시 영화를 시작하라고 (그래서 돈 벌어오라고) 말해오던 남편과 내가 뭘 하든 좋아해주는 주드에게 선언했다. “나 시나리오 쓸게.”
남편의 말은 맞았다. 정말 파인애플 잎이 다시 파인애플로 자라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단 하나의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즐겁게 썼다. 하지만 진지하게 쓰기 시작하자마자 근원적인 열등감도 다시 찾아왔다.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그럴싸해 보이던 소재들이 재미가 없어졌다. 오랫동안 감추고 있던 비밀이 다시 드러났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두려움에 질려 노트북을 껐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남긴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영화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결코 영화를 만들려 하지 말고 관객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싫어하게 되었다. 아니지. 영화가 나를 싫어했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말해보자면 대학을 졸업하면서 영화를 그만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영화가 나를 밀쳐냈다. 나는 그저 떠밀려서 다른 세상으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지 않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대한민국의 한 강의실에서 시나리오 전공 지원자라는 명찰을 달고 구술 면접을 보고 있었다.
재능과
노력과 운
구술 면접을 보기 여러 달 전으로 다시 돌아가자. 재능 없음에 대해 토로하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정도의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재능이라는 말은 쓰면 안 되지 않을까? 재능은 짧은 기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일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건 다르잖아. 평생이 걸려 하나를 써내도 상관없잖아. 지금 네가 시나리오를 못 쓰는 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십 대부터 꾸준하게 노력하지 않아서야.” 가끔 남편은 정말 맞는 말을 한다. 그리고 맞는 말일수록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 남편은 내 볼을 쭈욱 잡아당기며 다시 학교에 가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적어도 사십 대에는 잘 쓰려면 지금부터 노력해야지 않겠어? 혼자 하기 힘들면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가 봐.”, “이 나이에? 바로 들어가도 졸업하면 서른일곱이야.”, “학교 안 가면 뭐 서른일곱이 안 돼?” 뭐지. 뭔가 이상한데 설득이 되는 이 논리는.
하지만 내가 원한다 한들 학교에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프랑스의 영화학교는 나이 제한에서 먼저 걸리고, 한국의 영화학교도 절차가 까다롭다. 입시를 치러야 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무엇보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행기 값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아주 드물게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모든 일이 순풍을 단 듯 흘러갈 때. 전 우주가 나를 도와줄 때. 이때가 그랬다(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가장 위기였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감독(들)이 한국에서 촬영하는 동안 일해줄 연출부를 구하니 생각이 있으면 인터뷰를 보라고 했다. 페이스타임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일정을 보니 촬영이 끝나는 시기에 딱 맞물려 대학원 입시가 시작되었다. 이게 되면 시험도 보고 돌아올 수 있겠군. 물론 학비도 벌 수 있었다.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한국에 갔다. 배우 담당 연출부가 되었다. 워쇼스키 감독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배우들, 스태프들과 한 공간에서 촬영을 했다. 입시가 시작되었다. 포트폴리오를 내고 글쓰기 시험을 봤다.
구술 시험이 이어졌다. 회색 벽이 가득한 곳에 노란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 명의 교수가 앉아있었다. 여러 질문을 받았다. 대답했다. 나이 이야기를 하자 교수 한 명이 서른다섯은 이 학교에서 많은 나이가 아니라고 했다. 합격했다. 희한할 정도로 행운이 이어졌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영화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삶과 직업을
구분할 것
“학생이 쓴 시나리오는 앞으로 30년간 충무로에서 만들어질 일이 없습니다. 사망선고를 내리겠습니다.”
내가 바로 어제 수업에서 담당 교수님에게 들은 말이다. 그러니 영화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에는 아직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더 나빠졌지. 사망선고라니. 하지만 웃어넘겼다. 이번에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재능 탓을 하지 않고 노력이란 것을 하고 있다. 평일에는 조교실에서, 주말에는 레스토랑에서 생활비를 벌며 매일 영화를 공부한다. 여전히 외롭고 불안하고 두렵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괜찮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옮겨보면 이렇다.
“물론 영화가 나에게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어떤 예술도 인생 그 자체보다 가치 있지는 않아요. 영화의 실패가 내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늘 상기하도록 노력해요. 그걸 잊지 않아야 잘 해나갈 수 있어요.”
“긍정적인 친구를 옆에 두세요.”
“저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믿어요. 몸이 건강해야 영화도 하는 거니 건강하세요.”
“고민돼요. 아직도. 그때마다 영화를 봐요. 그리고 생각하죠. 나 저거보다 잘 찍을 수 있는데(웃음). 항상 누가 나를 곧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자신을 채워가고 있으면, 조금은 견뎌낼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때로는 혹독한 선생님에게, 언제나 좋은 동지들에게 이렇게 하나씩 배워나간다. 학교가 좋은 점은 그런 것 같다.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만약 이미 그 사람들이 있다면 학교에 올 필요가 없겠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이십 대에 영화를 만들지 못한 건, 영화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해서 거리 조절이 안 된 거였다. 극장만 가도, 현장에 서있어도 몸이 바르르 떨렸다. 너무 좋아서. 그래서 더 괴로웠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니 모든 것에 조금씩 시큰둥해지고, 영화도 예전만큼 사랑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편해졌다. 세상의 수많은 일처럼 영화를 만드는 일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노력은 필수다. 그리하여 나의 재능 없음에 대해 전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그냥 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말은 멋들어지게 했어도 제작사와 계약해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동생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나는 내가 찍은 단편영화 사진을 봐. 그때의 나를 기억하려고 해. 그 마음을. 그럼 언제나 다시 상업영화를 해나갈 힘이 나.” 큰 도움이 되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슬럼프에 빠진 영화인들에게 반짝거리는 단편영화 현장의 스틸 사진을 보내고 싶다.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