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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 김씨네과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직접 만든 티셔츠를 길거리에서 빨간 바구니 위에 턱 올려둔 채로 판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사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김씨네과일’ 대표 김도영과 하얀 다마스의 발자취를 노린다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티셔츠 한 길만 뚝심 있게 바라보는 그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용과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아무리 봐도 별 볼 일 있다.
간판이 멋진데요? 한국적인 느낌도 물씬 나고요. 여기가 ‘김씨네과일’ 쇼룸이죠?
안녕하세요. 대표 김도영입니다. 더운 날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여기는 올해 3월 문을 연 김씨네과일 쇼룸이자 작업실이에요. 외부에서 팝업을 진행할 땐 쇼룸을 오픈하지 않아서, 지금은 직원 친구들이 손님을 맞이하기보다 열심히 티셔츠를 만드는 중이죠. 별도로 마련한 다른 작업실을 쓰지 않을 때는 저도 여기로 와서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이태원에는 어떻게 닿게 된 거예요?
집이 근처에 있어요. 다른 동네도 돌아다녀 봤는데 썩 맘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이 자리에 원래 슈퍼가 있었대요. ‘김씨네과일’이라는 이름이 이어받기에 알맞다고 생각했어요. 자리가 저렴하기도 했고요.
오늘은 머리색이랑도 잘 어울리는 용과 티셔츠를 입고 오셨네요(웃음). 티셔츠를 만들기 시작한 시절부터 들어봐야겠어요.
얼마 전에 염색했는데 사실 의도한 머리는 이게 아니거든요…. 핑크색으로 처음 물들여 본 거라 많이 어색한데 용과와 색을 맞춰봤어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취미로 티셔츠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텍스트만 넣다가 다음에는 사진만 넣어보고, 이후에는 텍스트와 사진을 함께 넣어봤죠. 별다른 기술 대신 포토숍으로 조금씩 했던 거예요. 그렇다 보니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입기 위해 만들었는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도 띄었나 봐요. 한두 명씩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더라고요.
공급보다 수요가 먼저 나타난 옷이었네요. 입대한 후에도 만들었다고요.
맞아요. 일과가 끝나면 남는 시간이 틈틈이 있거든요. 청소 전이나 저녁 점호 마친 후에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는 컴퓨터를 쓸 수 있어서 내내 했어요. 작업물을 제작 업체로 넘기면 휴가 나와서 직접 보고요. 실물로 보고 만질 때의 감동이 또 달라요. 맞지 않는 군대 생활에서 유일한 해소 방법이었죠. 전역 후에는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을 위해 달릴 때인데 브랜드 창업, 그마저도 옷을 다룬다는 게 걱정되진 않았어요?
엄청나게 겁이 난 상태였죠(웃음). 회사에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고, 규칙을 잘 따르면 보장받는 생활을 할 수 있잖아요. 홀로 선다는 건 규칙도 보장도 없는 거고요. 그런데 짧게나마 취업 준비를 하면서 든 생각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이만큼 노력을 쏟아도 떨어진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었어요. 오기가 결심으로 변한 거죠.
옷 중에서도 티셔츠인 이유가 궁금해져요. 티셔츠를 왜 좋아해요?
티셔츠는 입기도, 만들기도 쉬운 옷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다가가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질리지가 않죠. 또 그 위에 무엇이든 펼쳐놔도 옷이라는 기능을 잃지 않으니까 창작욕을 해소할 수 있으면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표현 창구가 되어줘요. 어떤 메시지가 있는 티셔츠를 입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보여줄 수 있잖아요.
옷장에도 티셔츠가 많은가요? 작년에 출간한 책 《김씨네과일》에서는 패션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써 두었더라고요.
요즘에는 관심이 좀 생겼어요(웃음). 티셔츠는 일 년 동안 매일 갈아입어도 될 만큼 많고 청바지도 옷장에 가득해요. 청바지는 처음엔 작업복으로 만들었다는데 적당히 캐주얼하면서도 포멀한 느낌을 줘서 즐겨 찾게 돼요. 직접 만든 티셔츠와 청바지, 거기다 목걸이를 주로 하죠. 이외에는 힙합 아티스트가 입는 것처럼 통이 넓은 옷을 좋아하고요. 저는 옷에 대해서 마이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명품 브랜드도 좋아해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갖고 싶은 브랜드니까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사는 거잖아요. 김씨네과일도 대중에게 일차원적이기보다는 설득력 있는 브랜드로 다가가길 바라요. 예전에 누군가가 댓글로 “너무 매력적인데 입기에는 좀… 잠옷 아닌가?”라고 남긴 적 있어요. 그걸 본 이후로 매일 제가 입은 사진을 올려요. 일종의 가이드라인, 모범 답안을 제시해서 보는 이들에게 김씨네과일이 안전한 영역임을 알려주는 거죠. 우리의 티셔츠를 일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그럼 김씨네과일의 대표작들을 소개해 줄래요?
스테디셀러로는 단연 ‘과일티’를 꼽아요. 지금 입고 있는 용과를 비롯해 토마토, 사과, 복숭아, 레몬, 키위, 체리처럼 맛있게 생긴 과일이 그려져 있죠. 두리안이나 아보카도, 가지 등도 있었고요. 이외에는 ‘요일티’(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만든 일곱 개의 티셔츠로 “월요일 좋아”, “수요일 끝내줘”, “금요일 날아갈 것만 같아” 등이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다.)나 국내외 도시 이름이 적힌 ‘새끼티’도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어요.
프린팅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데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 걸까 궁금했어요.
우선 아이디어의 방향을 하나 떠올려요. 예를 들어, 일주일이나 지역이라는 소재로 티셔츠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이요. 그 고민을 머릿속에 넣어둔 채로 계속 곱씹어 보는 거죠. 운동을 하거나 길을 걷거나 밥을 먹다가도 생각을 굴리다 보면 명확한 답이 떠오르더라고요. 거창하게 기획 회의를 열어서 몇 시간 내내 논의하는 건 저한테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빨간 바구니에 넣어둔 옷들, 종이 상자를 뜯어 매직으로 적은 가격표, 옷을 담아주는 검은 비닐까지…. 티셔츠의 판매 전략도 꽤나 파격적이었는데요(웃음). 어떻게 기획하게 됐어요?
재미있게 팔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시장에 가면 과일을 보통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두고 파는 게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김씨네과일’ 가게 사장이니까요. 상상한 대로 바구니를 구해서 티셔츠를 올려두는 순간, 완벽한 귀여움을 느꼈죠. 그래서 비닐봉지와 가격표를 준비해서 구색도 맞춘 거예요. 처음에는 명확한 판매처가 없을 때니까 다마스를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팝업을 연 건데,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어요. 좋아하는 걸 직관적으로 따르다 보니까 생긴 감사한 일이죠.
이런 꽉 찬 세계관이 보는 이에게 재미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요. 그럼, 김씨네과일 티셔츠의 매력을 딱 세 가지로 정리해 볼까요?
(잠시 고민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공감’이에요. 저는 쉽고 직관적인 표현을 좋아해요. 예술 작품을 봐도 기하학적인 건 질색하거든요(웃음). 무언가에 통달하거나 이론을 알아야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누가 봐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게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냄새로 풍기기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죠. 둘째는 ‘전달력’인데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을 선택해요. 더 나아가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한 번 더 바꿔서 전하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는… 역시 ‘재미’가 아닐까 싶네요.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일 테고 그 자리에서 각자만의 이야기가 탄생하고 순환될 거예요.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죠. 얼추 정리하긴 했지만, 사실 김씨네과일의 매력은 세 가지 이상이에요.
책에서 한 부분이 떠올라요. “나만의 즐거움은 그저 내 안에 생겼다 사라지는 존재감 없는 바람 같다. 다른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걸 만들어야 비로소 그게 나에게도 의미 있는 즐거움인 것 같다.”라고 하셨죠.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을 혼자서만 안고 있기에는 좀 아쉬워요. 누군가와 공유하면서 더 커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양날의 검처럼 느껴져요. 상대방에게 과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나만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쉽거든요. 내 즐거움이 다른 것보다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도록 균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검이 양날인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을 잘 다뤄보려고요.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겪는 상황과도 연결되나요?
그럴 거예요. 올해 초에 좋은 소재와 많은 시간, 비용을 투자해서 ‘입춘 컬렉션’을 발표했어요. 티셔츠 이외에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5분 만에 뚝딱 디자인한 요일티보다도 수익이 나지 않더라고요. 아마 경험이 부족해서 저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간 탓일 거예요. 운동할 때도 무의식중에 쓰면 안 되는 근육에 힘이 들어가곤 하잖아요. 처음엔 좌절했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고, 더 나아가면 배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느낀 건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패해도 추억이 되거든요. 남이 좋아할 것 같은 일 또는 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다 실패하면 낭패가 되고 원망이 되어버리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단순하고 쉽게만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치열한 고민이 성장의 토대가 된 것 같아요.
일상에서 혼자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해요. 비록 지금 머리 색깔은 화려하지만… 저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이에요(웃음).
(웃음) 내향적인 도영 씨가 만드는 티셔츠로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깃거리가 생겨나고 있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입기도 하고, 세대나 성별에 크게 상관없이 즐기세요. 제가 생활 정보 프로그램 같은 데도 출연했어서, 젊은이들보다 부모님 세대가 먼저 알고 계신 경우도 있고요. 언제나 감사하죠. 김씨네과일을 좋아하는 손님들끼리 친해지거나 동료가 되기도 하고, 그 친구들까지 한데 모여 가깝게 지내는 데요. 우리는 패션을 팔지만 크게 보면 문화를 다룬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포토숍에서 이미지 다룰 때를 떠올려 보면 레이어가 있잖아요. 레이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입체적으로 보이고 완성도가 높아지죠. 나다운 모습들을 각각의 레이어에 담아 두면, 합쳤을 때 무얼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사는지가 보일 것 같아요.
이후로 김씨네과일, 김도영이라는 사람의 걸음도 기대돼요.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걸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이 중에서도 좀더 하고 싶은 일을 추려내 보고 싶거든요. 진득하게 자기 일을 파는 멋있는 사람으로 살래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