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곧 에서 보게 될 얼굴들
배우들의 취중농담
곧 <라디오스타>에서 보게 될 얼굴들
네 명의 이름 모를 배우들과 술을 마셨다. 농담이나 조금 해볼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새벽 가까이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머지않아 이들을 TV 브라운관, 짓궂은 네 명의 MC 앞에서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네 명의 배우와 강남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뜯었다
나는 최광제라는 배우를 안다. 군대에서 만났으니 벌써 10년도 넘었다. 단순히 아는 건 아니고 가끔 만나 새벽까지 놀다가 라면을 먹고 헤어지는 사이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여자 얘기만 따로 모아도 아마 몇 트럭은 될 거다. (물론 문화와 정치, 예술인의 마음가짐 같은 얘기를 더 많이 나눴다.) 광제는 나를 만날 때마다 늘 이렇게 말했다. “헤이, 껀태. 부라더 우리 잘 하자.” 황정민도 아니고 그놈의 부라더는. 다소 과한 표정과 발성과 느끼함과 정열과 알 수 없는 교태가 있었지만 나는 광제의 순수함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광제는 내게 전화해 술에 취한 듯 아주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에 출연하면 뭘 해. 그 흔한 보도자료 하나 써줄 곳이 없는데.” 700만 영화에 출연하고도 소속사가 없어 많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당장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잘 하고 있어.’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식으로 ‘배우 최광제’에게 연락했다. 700만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술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들과 시원하게 농담 한판 때리면 어떻겠느냐고.
어느 야심한 밤, 네 명의 남녀가 강남의 한 전기구이 통닭집에 모였다. 어디서 봤더라? 길에서 마주쳤다면 잠깐 눈길만 주고 1초 만에 다시 제 걸음을 갈 법한 아주 평범한 얼굴들이었다. 최광제, 김문주, 인선호, 정지혜. 그들은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했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무대 위에 섰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전기구이 통닭과 계란탕, 소주와 맥주를 시켰고,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한 잔을 비웠다. “야, 이거 다 채워. 왜 따르다 말어.” 아주 오랜 사이인 듯 만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입을 털었다(?).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행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 그러니까 여자 이야기, 헤어스타일 이야기, 누나 참 예뻐요, 갑자기 떨어진 선풍기 이야기, 선풍기가 참 개방적이야, 무대 뒤편 배우들의 규율 이야기, 욕, 더 센 욕, 그러다 갑자기 개그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철학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규칙 없는 수다에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리액션은 과했으며, 언제라도 토크에 끼어들 준비를 하는 그들은 영락없는 라디오스타였다. 그러다 한 명의 배우가 무의식중에 코를 파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배우들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의 아닌 배우, 최광제
1985년생 | 영화 <마스터>, 뮤지컬 <온에어>
나는 처음 그의 연기를 대학로에서 봤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연극에서 광제는 베레모를 쓴 노인 역할을 맡았다. 커다란 배에서 끌어올린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했다. 다양한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연차의 배우들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시작한 뮤지컬 <온에어>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했고, 또 본의 아니게 연기한 영화에서도 큰 존재감을 발휘하며 꿈에 그리던 소속사를 얻었다. 그는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 인터넷 콘텐츠를 넘나들며 끼를 발산했는데, 어느 매체에 있든지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광제는 캐릭터가 대단해. 모든 역할을 광제화하거든. 강남 한복판에 있어도 최광제가 보이고, 카페에서 막 들어오는데 바로 내 앞자리에 있는 듯한 원근감. 아, 머리가 크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고백컨대 10년 이상 곁에서 지켜본 광제는 단순히 얼굴이 크고 목소리가 큰 사람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건 자신감 넘치는 눈이다. 광제는 그 큰 눈으로 꾸준히 연기한다. “나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좋아. 최고의 악역이잖아. 그런데 <파이란>의 강재도 좋아. 부둣가에 앉아서 오열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 나는 종종 광제가 벙어리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큰 눈에 담기게 될 것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할지 소리 없이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뮤지컬 루키, 김문주
1991년생 | 뮤지컬 <정글북>,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이 배우 꽤나 진지하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데뷔한 그녀는 자주, 그리고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이끈다. 다른 세 명의 배우에 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롤모델이라고 한다면 홍지민 선배님이나 최현선 선배님이 떠올라요. 그분들의 작품을 다 찾아보고 제 캐릭터를 잡는 데 참고하거든요.” 앞서 말한 롤모델처럼 그녀 역시 노래가 특기다. 오죽하면 군악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할 정도였을까. “문주는 노래를 겁나 잘해요. 노래 레슨으로 버는 돈이 무대에서 버는 것보다 더 많지 아마?”
특출한 재능이 있다는 것에 우쭐해질 법도 한데, 의외로 그녀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앙상블’이다. 뮤지컬 무대에서 앙상블이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호흡’ 쯤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합창을 하거나 연기를 할 때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장면에 ‘희생하는 태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느 신인 배우들처럼 단번에 눈에 띄는 연기를 욕심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천천히, 담백하게 연기한다. “<정글북>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경험 많은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더 서로를 배려하며 연기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슬픔 전문 액션 배우, 인선호
1983년생 | 뮤지컬 <라이온킹>, 뮤지컬 <스페셜레터>
아주 오래전, 방송에서 비보이 크루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학생들이 모여서 헤드스핀을 돌고, 배틀을 붙고, 부상을 당하고, 우승도 하는, 아무튼 여러모로 가슴 뛰는 휴먼다큐멘터리였다. 그때 그 대단한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여기 슬픔 전문 액션 배우 인선호가 그 대단한 친구 중 하나다. 스트리트 댄서였던 그가 뮤지컬배우를 선택한 건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춤을 추다 고등학교를 1년 꿇었는데(?), 마침 군대 영장이 나와서 조금만 미뤄볼 생각에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춤추는 재능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대학에 있었다.
“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가게 됐는데, 어찌된 일인지 교수님이 연기를 아예 모르던 내게 큰 관심을 주셨다는 거야. 얼굴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 신선했나 봐.” 할 수 있는 게 텀블링밖에 없었다는 그가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배우가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을 버텼다. 작품이 엎어지길 수차례, 심지어 성공을 약속했던 영화 관계자는 이민을 가버렸다. “문주가 스스로를 루키라고 했잖아. 나는 10년째 루키야. 어디 가면 ‘어, 좋아. 잘되겠어.’ 하는 얘기만 10년째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지. 노력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니까. 어, 좀 재수 없었나?” 아주 평범한 멘트를 진지하게 하는 그에게 오만석을 닮았다고 얘기해주자 그는 아주 좋아했다. “맞아, 얼굴 까만 게 좀 닮긴 했지.”
1.75세대 신인배우, 정지혜
1982년생 |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뮤지컬 <파리넬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주변에는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다. 특히 대배우 나문희는 그녀에게 아주 큰 영감을 줬다. “선생님은 자기 공연이 있는 날에 절대 늦는 법이 없어. 하루는 팸플릿을 보고 배우들 이름을 다 외워서 ‘지혜야 대사 맞추자.’ 하시는 거야. 매일 똑같은 공연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대사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로서 느낀 점이 많아.” 그녀는 축구로 치면 박지성 같은 배우다. 본능적인 재능으로 연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공부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1세대 윤복희 선생님부터 남경읍, 남경주 선생님 계실 때부터 했으니까 뮤지컬 1.5와 2세대 정도의 중간? 1.75세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
그녀는 대학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뒤 숨가쁜 현장을 오가며 묵묵히 기초를 다졌다. 그러던 그녀에게 시련이 왔다. 공연 중 부상으로 허리를 다친 것이다. 허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점점 위로 올라와 턱까지 닿았고,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됐다. 뮤지컬배우로서 치명적이었다. “몸이 다치면서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나 좌절하게 됐어. 그러다 문득 이 일을 아주 오래 할 거니까 지금 상황에 크게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거지.” 의외로 밝게 웃으며 그녀는 자신을 다시 고쳐 소개했다. “세상에 잘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 그렇지만 나 역시 내 위치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누가 몰라주면 어때. 아직 신인 배운데.”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는
여기까지
저녁부터 아주 깊은 밤이 오기까지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셨다. 소주 네 병과 맥주 스무 병 정도를 마셨는데, 거의 취하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한 탓이었다. 우리는 지하도로 내려가 텀블링을 하고 각자 자신 있는 표정을 연기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웃었으며, 박수를 쳤고,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짓기도 했다. 함부로 꺼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그들의 웃음 속에는 알 수 없는 보랏빛 감정도 섞여 보였다.
. 아마도 그건 ‘불안’일 것이다. 어제의 불안, 당장의 불안, 그리고 내일의 더 큰 불안들. “야, 이거 평생 직업이잖아. 안 그래?”동의를 구하는 그 말속에 담긴 아주 추상적인 적막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들은 자신 앞의 적막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래서 마냥 달지도 쓰지도 않은, 아주 오래 곱씹을 수 있는 배우가 될 것 같았다. “아까 그 말 좋았어. 우리가 10년 전에 지금과 다른 고민을 했던 것처럼 10년 후에는 또 달라져 있겠지. 생긴 거 봐라. 우리가 뭘 하겠니? 다른 데 가면 욕먹어. 연기, 오래 하자.”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