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 도처에 있다

이기준

방이 필요할 땐 방을 나가자.

얼떨결에

사방이 막힌

20대 나의 꿈은 한 나라에서 5년씩 지내며 떠돌이로 사는 생활이었다. 난 식물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지역도 아닌데 단지 거기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생 뿌리내리고 산다는 개념이 이상했다. 인터넷이 인간의 삶을 이토록 바꿀 줄 몰랐던 그 시절엔 떠돌이로 살 수 있는 유일하고도 바람직한 직업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떠돌며 보고 듣고 먹는 모든 것이 작업에도 유용할 터였다. 하지만 졸업 후 내가 한 선택은 나를 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유명한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건 곧 일에 파묻혀 지내야 한다는 뜻이라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고, 여러 해 동안 스스로 고갈시켰고, 결국 남은 건 피로에 찌든 몸뚱이뿐이었다. 영혼은 탈곡하여 메마른 땅에 떨어졌다. 물 한 모금 없이 쪼그라들어 싹을 틔울 가능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달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열다섯 해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작업 마감일을 세 달 넘기고서도 죄책감이 들어설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나를 위해 뭔가 해야 했다.

나를 찾아

방방곡곡

모아 둔 돈을 탕진하며 떠돈 반년은 나를 되살렸다. 밀라노에서 방문한 카사 무세오 보스키 디 스테파노는 처음 접하는 예술 애호가의 집이었다. 한국에선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 것도 진귀한 경험이거니와 당대의 현대미술이 벽면을 가득 덮은 집을 보니 내내 설렜다. 이런 집에서 살았다면 나는 지금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막 용솟음쳤을까? 빈궁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그림다운 그림 한 점 본 적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나다. 하긴 낙서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난 계속 그렸고 그 파생 기술로 지금도 생계를 유지한다.

페기 구겐하임의 베네치아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지상 낙원(해상 낙원이라고 해야 하나)이었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굉장했지만 집 안 곳곳에서 작업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둘러보는 것도 공간을 향유하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토스카나의 부드러운 구릉지대를 운전하는 상쾌함은 어떻고. 운전이 즐겁기는 처음이었다. 한국, 특히 서울에서의 운전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불쾌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시골 농장의 소박한 방엔 호사스러운 물건이 필요 없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나를 방에 가두는 대신 방을 끝없이 확장하는 느낌이었다. 들판에 드리운 구름 그림자와 길고 뾰족한 사이프러스 나무는 내 의식에 스며 뭔가를 작동시킨 게 틀림없다. 스스로 지키기 위해 무의식이 설정한 단 모드에서 벗어나 모든 항목이 활성화된 기분이었다. 창작하는 사람의 ‘방’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을 마친 나는 새로이 작업실을 꾸렸고, 파트너와 눈여겨보던 디자이너에게 가구를 의뢰했다. 내 공간을 위해 의식적인 투자를 한 첫 경험이었다. 그전까지는 가능한 한 싸게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걸 임시라고 여겼다. 작업실이든 집이든 옮기면 그만이니까 그냥저냥 지냈다. 그런 생각이 결국 내 일상을 지배하고 결국 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방을 찾아

골골샅샅

인도 체류를 앞두고 작업실을 없앤 지 1년이 되어간다. 반년 예정이던 디자이너 레지던스 생활을 두 달 만에 그만두고 돌아와 매일 카페에서 작업한다. 예전에 꿈꾸던 대로는 아니지만 나름 떠돌이 생활을 하는 셈이다. 몸만 멀쩡하면 어디에서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가뿐한 상황이 기껍다. 반면 피곤하다. 아주 많이. 그럴 수밖에 없다. 카페는 남의 공간이니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참거나 떠나거나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시끄러운 대화와 괴로운 음악을 노이즈 캔슬링 기술로 덮어쓸 수 있다는 점이다. 테크놀로지 만세. 그래도 투정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정신을 단련해 어떤 상황에서든 당면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 도처를 내 방처럼 쓸 수 있다.

사실 방을 공간에 한정할 이유가 없다. 빨강머리 앤을 보라. 고아원에서든 얹혀살든 어떤 집에서든 앤에게는 공상이라는 자신만의 방이 있었다. 그 방이 앤을 예술가로 키웠다. 방은 추상 개념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자신을 다른 시공간에 옮기는 일은 의외로 쉽다. 이어폰 끼고 노동요 재생, 노트북 모니터에 시선 고정, 끝. 탁자의 나무판자 틈에 낀 빵 부스러기, 위생 상태가 의심스러운 화장실, 맛없는 커피, 억지로 들리는 끔찍한 대화 등 온갖 고난 속에서도 마치 내 방인 양 진득하게 앉아 작업하면 된다. 공간만 잘 고르면 타인의 취향을 통해 한 수 배우고 내 안목을 키우는 기회도 덤으로 생긴다.

요새 내 방으로 자주 쓰는 곳엔 지옥처럼 진한 커피, 고막이 겨우 버티는 음량의 음악이 있다. 시야를 채우는 박력 넘치는 거대 식물이 우뚝한 탁자에서 반나절을 보낸다. 작업에 필요한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 다른 동네로 넘어가기도 한다. 또 한 곳은 주인장이 자신의 작업 공간으로 쓰면서 카페를 겸하는 곳인데, 그래서인지 작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그윽하다. 한눈팔고 싶을 때 서가를 훑으며 주인장의 취향을 짐작하는 놀이도 흥미롭다. 늘 재즈가 흐르는 편안한 방이다. 근래 마음을 사로잡힌 방은 부산에 있는 책방이다. 듣기로는 시인과 전직 사진기자가 꾸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예술가의 방이다. 사뭇 눈길을 끄는, 입구 옆에 놓인 독특한 커피콩 로스터 역시 직접 만든 물건이란다. 책 두어 권 사 들고 바다가 보이는 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내 방 부럽지 않았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사진 이기준(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