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나 혼자

듣고 보고 읽고 즐기고

방에서, 나 혼자

듣고 보고 읽고 즐기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말했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뭐해?” 방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올 상반기에 나온 따끈한 음악, 영화, 책 중 직접 듣고 보고 읽은 몇 가지를 방구석 리스트로 추천한다.

MUSIC

01 4월의 D플랫 | 윤석철 트리오

올봄은 이 앨범이었다. 개나리를 연상하게 하는 노란색과 ‘4월’ 때문은 아니다. 재즈는 봄처럼 흥겨우니까. 추천하는 곡은 ‘독백이라 착각하기 쉽다’. 이 곡을 들으며 거리를 걸으면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이 앨범을 트는 순간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02 long way | 페퍼톤스 

너무 좋아서 몸이 간지러운 기분.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느꼈다. 그들의 노래를 처음 접한 10년 전부터 항상 그랬다. 4년 만에 발표한 정규 6집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1번 트랙인 ‘긴 여행의 끝’의 도입부를 듣는 순간 “역시!”를 외쳤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페퍼톤스의 새로운 앨범을 늘 기다릴 수밖에 없다.

03 자우림 | 자우림

“노을이 지던 골목길 / 너와 걷던 그 길 / 별을 헤며 어느 밤에 나누던 꿈들 / 다시 돌아가지 못 할 그날들 / 아른아른 눈가를 적시네”(‘영원히 영원히’) 학창 시절 함께 밤을 지새우던 음악은 이제 퇴근 후 지친 마음을 감싸준다. 자우림의 열 번째 앨범.

04 사랑의 시절 | 강아솔

이 앨범을 듣기 전에 할 일. 하나, 방의 불을 끈다. 둘, 침대에 눕는다. 셋,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앨범을 재생한다. 앨범은 1번 트랙부터 듣는다. 어두운 방에 혼자 있는 기분을 만끽한다. 생각이 많아진다. 강아솔의 목소리가, 가사가, 음이 그렇게 만든다. 생각을 음악과 함께 하나하나 곱씹는다.

05 jon | 오존

친구가 좋은 가수가 있다며 오존의 이름을 처음 말해줬다. 나도 그 이후 노래가 좋다며 몇 번 오존의 이름을 주변에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딱히 대답은 못 했다. 오존을 수식하는 말들은 강력한데, 예를 들어 ‘차세대 싱어송라이터’ 같은… 나는 그냥, 올 상반기에 오존의 노래를 정말 자주 방에 틀어놨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배경음악처럼 잘 어울렸다.

MOVIE

01 레이디 버드

이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도 나처럼 방구석처박혀 본 적이 있는 아이다. 아니, 우리 모두는 한때 크리스틴이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늘 벗어나고 싶던 가족의 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이었던 재능 많은 배우 그레타 거윅이 연출했다.

02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월드 건너편 싸구려 모텔 매직캐슬에는 여섯 살 꼬마 무니가 미혼모 엄마와 단둘이 산다. 둘을 보면 화가 나다가도 슬퍼진다.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무니가 정말 좋다.

0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 영화를 트는 순간 당신은 두 가지 병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나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병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오를 연기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병이다. 1983년 여름,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스물넷 청년 올리버를 만난다.

04 콜럼버스 

방구석 좁은 화면으로 보기엔 아쉽지만 이 영화를 놓치는 것 또한 아쉽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공간의 영화로, 미국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알려진 인디애나주의 콜럼버스에서 펼쳐지는 건축에 관심 있는 사서 케이시와 건축학자 진의 이야기다.

05 소공녀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미소. 미소가 포기한 단 하나, 집.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06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숲을 산책하고 빗방울 소리를 탐구하는 그를 보고 방 밖으로 나가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 ‘Ryuichi Sakamoto: LIFE, LIFE’를 감상하면 좋겠다.

BOOK

01 먹이는 간소하게 | 노석미

노석미 작가가 쓰는 글을 그녀의 그림만큼 좋아한다. “먹이는 간소하게”는 노석미 작가가 부엌에 걸어놓은 종이 팻말이자 법정 스님의 토방 부엌에 있었다던 말이다. “탐식을 멈추지 못하는 나약한 중생”이라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만, 그녀의 10년 시골 생활과 더해 책에는 간소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로 가득하다.

02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이승우 

1981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등단한 작가는 지난해만 세 권의 책을 냈다. 묵묵히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이승우 작가의 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10년 전에 쓴 소설부터 최근 작품까지, 27편의 짧은 소설이 담겼다. 서재민 화가의 그림 19점도 함께한다.

03 빵 고르듯 살고 싶다 | 임진아

임진아 작가는 일러스트 작업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로부터 1년 뒤에 이 책이 나왔다. 단 한 번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이 책 역시 제목만 보아도 웃음이 나온다. 관계, 일, 나이 듦, 나라는 사람에 대한 그녀의 고민에 나도 몇 번이고 밑줄을 그었다.

04 경애의 마음 | 김금희

보고 좋아 기억해둔 인터뷰가 있다. 정세랑 작가가 《더블유》 매거진과 한 대화다. “좋아하는 작가가 모국어로 쓰는 문학을 읽으며 함께 나이 드는 일은 평생의 친구를 사귀는 것 같은 멋진 경험이거든요. 밤하늘에서 자신의 별자리를 찾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김금희 작가는 나의 별자리 같은 작가로, 《경애의 마음》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05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박연준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 안개와 허기처럼, 그리움과 기차처럼 닮았다. 밤과 다락처럼, 비밀과 그물처럼 닮았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이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글로 번역했다. 길고 괴로운 밤,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읽고 나면 분명 시인 박연준이 궁금해질 테니 시인의 산문집 《소란》을 곁에 두도록 한다.

06 문맹 | 아고타 크리스토프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국경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이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절대 얕지 않아, 긴 밤을 함께 보내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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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일러스트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