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면, 빵: 최고의 주식을 찾아라

원고 마감 기한이 지났건만 써야 할 글은 아직 산더미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책상에 겨우 앉았는데, 어라… 스르르 잠이 온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여긴 어디야? 내 앞에 앉은 세 명은 누군데? 가만 보니 사람이 아니다. 설마… 밥, 면, 빵? 누가 최고의 주식인지를 토론할 테니, 나한테 사회자가 되어달란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이람.

1. 토론 시작

배심원은 귀를 기울여 주세요

차의진(이하 ‘차’) 여기가 어디죠? 전 방금까지 분명히 원고를 쓰고 있었는데…. 당신들은 누군가요? 

여기는 당신의 머릿속 작은 방입니다. 일단 진정하게 숭늉부터 들어요. 

저기, 밥. 사회자에게 벌써 뇌물이라니, 규칙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은데 벌써부터 싸우지 말죠. 오늘 저녁 메뉴로 밥, 면, 빵 중 어떤 걸 먹을지 고민했죠? 평소에도 종종 이걸로 씨름하던데.  

당신이 늘 그 문제로 갈등할 때 우리도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결판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 토론 자리에 당신을 부른 거예요. 

누가 최고의 주식인지를 토론할 테니, 사회자가 되어 주세요. 우리끼리 계속 싸움이 나서 말입니다.
 
토론이 끝나면 다시 원고 쓰러 가도 되죠? 내일까지는 반드시 마감을 끝내야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중간중간 중재하면 되는 거예요. 판단은 책 바깥에 있는 배심원단의 몫입니다. 이제부터 귀 기울여 주세요. 

배심원단? 책 바깥은 또 무슨 소리인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죠. 그럼,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2. 입론

저라는 주식은 말입니다

먼저 세 분 모두 짧게 자신이 최고의 주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밝혀 주세요. 다른 토론자가 발언할 때 끼어들 수 없습니다. 밥, 면, 빵 순서로 진행하죠. 

내가 제일 먼저라니 사회자님도 역시 밥이 최고라는 걸 아시나 봅니다(웃음). 

사회자님, 이런 발언은 제지해 주세요!

자, 본론을 이야기해 주시죠. 그리고 모든 토론자는 발언권을 얻고 말해야 합니다. 

큼큼, 잠깐 흥분을 했군요. 여러분, 밥심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모든 힘은 저, 밥에서 나온다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단어죠. 아무리 맛있는 찬이 상에 가득해도 밥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없다면 허기가 지죠. 그렇게 맛있다는 고깃집에도 공깃밥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기를 다 먹고 나서도 사람들이 누룽지를 찾는 이유는 무얼까요. 밥은 어디서나 빠질 수 없는 주식이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상 마칩니다. 

이제 저 면의 차례군요. 모두 지갑이 가벼웠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땐 어떤 음식이 함께였나요? 뜨끈한 밥 한 공기? 사치스러운 빵? 여러분의 지난날엔 라면, 우동, 국수 같은 면이 함께였습니다.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바쁘고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했죠. 즐거운 날도 저 면이 동행했습니다. 졸업식은 짜장면, 데이트는 파스타, 결혼식은 잔치국수.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면은 특별한 존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발언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빵은 몇 종류나 될지 헤아려 봅시다. 아마 가늠이 안 될 겁니다. 빵은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거든요. 블루베리를 넣으면 블루베리 빵, 멜론을 넣으면 멜론 빵이 됩니다. 블루베리 밥, 멜론 면 들어보셨나요? 으악!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지구의 다양한 식재료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빵이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진짜 주식입니다. 

3. 밥의 반론

주식은 소화가 편해야 하는 법

오호, 아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좋아요. 그럼, 이제 반론 시작하죠. 밥이 먼저 손을 들었군요. 발언해 주세요. 

두 분에게 묻겠습니다. 자고로 최고의 주식이란 소화가 편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위가 약한 사람들에게 아주 치명적이죠. 빵은 소화 안 되는 걸로 이미 유명한 데다, 요즘 면은 매운맛 경쟁의 한중간에 있다고요. 각종 볶음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위장에 타격을 줬는지 아십니까? 

모든 빵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좋은 재료로 소화가 편한 빵을 만드는 제빵사들의 노고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소화가 편한 빵’이라는 표현 자체가 빵은 소화가 불편하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 반박을 어서 인정하세요!

밥이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군요. 밀로 만든 면이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쌀로 만든 면은 어떤가요? 소화가 아주 쉬워서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배가 쉽게 꺼지죠. 저는 점심으로 쌀국수만 먹으면 4시도 안 돼서 배가 고픕니다. 밥은 오랜 포만감을 주면서 배를 따뜻하게 데우죠. 빵은 식사가 아니라 ‘식사 대용’입니다. 

사회자님, 이런 지나친 인신공격은 참을 수 없습니다!

4. 면의 반론

변주가 가능한 다채로운 매력

모두 진정하세요. 다음으로 면, 반박할 것이 있나요?

빵은 다양한 식재료와 어울린다고 했는데요. 사실 변주에 있어서는 면도 뒤지지 않습니다. 파스타 종류는 차고 넘치죠. 토마토, 바질, 크림, 봉골레…. 면을 데쳐 집에 있는 재료를 넣으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되지 않습니까? 사실 빵은 변주가 한정적이죠. 빵과 초장을 비벼 먹을 수 있습니까? 간장은 어떻고요? 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군요. 면은 여러 국에 퐁당퐁당 넣어 먹어도 기가 막힙니다.

발언한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면을 밥으로 대체해도 사실 무리는 없습니다. 밥도 리소토로 만들면 얼마나 다양해지는데요. 면과 빵 모두 밥보다는 다채로울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빵이 있는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밥은 쌀알 모양을 바꿀 수 있습니까? 빵 모양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허, 참.

면도 그렇습니다! 짧은 면부터 긴 면까지 얼마나 다양한데요!

5. 빵의 반론

디저트 배는 따로 있지

토론 분위기가 점점 고조하는데요. 마지막으로 빵의 반박도 기대하겠습니다. 

즐거울 때는 면이 늘 함께였다는 발언에 반박하고 싶습니다. 여성분들은 그런 말도 하지요. ‘밥 배 있고 디저트 배 따로 있다.’ 밥을 먹어도 디저트는 꼭 놓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찾은 디저트는 일상에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예쁜 카페에서 만난 빵과 폭신한 케이크가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데요. 그래서 특별한 날엔 면보다 빵을 찾게 되는 거죠.

 
아무리 특별한 날이라도 케이크를 밥으로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식의 뜻이 뭡니까? “끼니에 주로 먹는 음식”을 주식이라고 합니다.

 
두 분 다 특별함만 강조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보통날에 더 깊이 스며든 주식은 밥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밥이나 먹자.”라고 하지, “다음에 만나면 면 먹자, 빵 먹자.”고 합니까?

 
그만큼 밥은 흔하고 뻔하다는 소리지요!

 
뻔하다니요? 사람들이 나누는 다정한 인사를 모욕하는 발언입니다!

 
자자, 반론은 이만하면 됐군요. 이제 토론을 마무리하죠. 아까 책 바깥에 있는 배심원들이 판단해 줄 거라고 했죠? 저를 그만 보내 주세요.


좋아요, 마감하러 가도 좋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제 팻말을 들어 주세요. 밥, 면, 빵. 누가 최고의 주식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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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의진

일러스트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