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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가 좋다. 아니 싫다. 아니 좋은데… 싫다. 좋으면서 싫고 싫다가도 좋고 좋다가도… 아니 사실 꼴도 보기 싫은데… 가만 있자, 저거 맛있겠는데 한번 만들어볼까?
〈무빙〉과 〈삼식이 삼촌〉 보느라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한 김에 뭐 또 볼 게 없나, 하고 뒤적거리다가 요리사가 주인공인 시리즈를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더 베어〉. 이미 시즌 1과 2는 완결, 곧 시즌 3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OTT에서 볼 거 고르기’라는 과제를 한 방에 끝낸 나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이 시리즈가 2023년 에미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시. 〈더 베어〉는 식당의 뒤편, 그러니까 주방이 배경인 드라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드라마에서 기대할 법한 것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요리, 셰프의 천부적인 재능과 혀를 내두를 만한 직업 정신,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요리에 감동받는 손님들, 수많은 역경을 딛고 끝내 이뤄낸 성공 같은 것은 ‘배경’일 뿐이다. 대신 이 드라마는 진짜 주방을 보여준다. 소스가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커다란 냄비, 더러운 행주, 날카롭고 무딘 칼, 떨어지는 프라이팬,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명령과 욕설과 끝없는 말다툼, 타일 바닥 위에 쏟아지는 요리, 그치지 않는 전화벨 소리. 뜨겁고 비좁고 정신없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미칠 것 같은, 진이 빠지는, 그러니까 증기로 가득 찬 압력솥 안에 들어간 것 같은 그런 주방을.
주인공 카미는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들에서 수련한 실력 있는 셰프다. 그러나 첫 장면에서 그가 눈을 뜬 장소는 싸구려 샌드위치 가게 주방이다. 그는 위기에 처해 있다. 가족 사업인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던 형 마이클이 죽고 그가 가게를 떠맡게 됐는데 손도 대기 전에 이미 자금난으로 망하기 직전이다. 형과 함께 오랜 시간 자유분방하게 일해온 직원들은 고급 레스토랑 주방의 방식을 요구하는 이 샌님 사장을 따르지 않는다.
문제가 그것뿐이라면 이야기는 ‘젊은 셰프의 망한 샌드위치 가게 되살리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카미는 늘 긴장하고 화가 나 있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자주 폭발한다. 이유는 드라마의 제목에 있다. 더 베어. ‘베어’는 그의 성인 베어제토의 줄임말이다. 베어제토 가족에게는 문제가 많다. 심각한 분노 조절 장애에 충동적인 성향의 어머니 때문에 세 남매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들은 내면의 분노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형 마이클은 자기 머리에 총을 쏘고, 누나인 나탈리는 늘 겁에 질린 채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카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드라마 〈더 베어〉는 카미가 동료와 친구, 가족의 도움을 받아 그 산을 하나씩 넘어가는 이야기다. 물론 낡고 더러워진 행주를 아무리 열심히 빤들 새 행주가 될 리 없듯이 카미의 상처와 약점과 결점도 사라지지 않는다. 카미는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저 그런 자신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한고비를 넘기고 또 다른 고비를 맞이할 뿐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의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우리 내면의 어둡고 추잡한 것들은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시카고의 샌드위치 가게 주방에서건, 네팔의 히말라야산맥 절벽에서건, 남태평양의 화물선 위에서건, 서울의 국회의사당에서건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더 베어〉의 시즌 1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샌드위치가 당긴다. 깔끔하고 담백한 샌드위치가 아니라, 오븐에 오래 구워 촉촉하고 부드러운 소고기와 그레이비 소스를 듬뿍 쑤셔 넣은, 육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더티하고 섹시한 샌드위치가.
나는 원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일도 하고 삼시 세끼 요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서서히 요리가 싫어졌다는 이야기는 지난 호에도 쓴 적이 있다. 사실 요리에만 정이 떨어진 게 아니다. 살림에도 정이 떨어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넓은 것인가… 하고 고뇌에 빠져 있는 매일이다.
그래서 《살림지옥 해방일지》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 당장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은 살림에서 벗어나는 법,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법, 살림이라는 지옥에서 해방되는 법, 아니면 똑소리 나는 살림법으로 살림은 지옥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법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나이 오십에 유명 신문사를 퇴사하고 무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퇴사 후 통장에 월급이 꽂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자 그는 고급 맨션에서 낡은 원룸으로 이사를 한다. 집이 좁아지니 그간 신나게 사 모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을 수납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다 버렸다. 버리는 기준은 단순하고 과감했다. ‘이거 없으면 죽어?’ 옷은 열 벌 정도만 남기고, 절전도 할 겸 세탁기도 버리고 냉장고도 버리고 가스레인지까지 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사실 그에게도 오랫동안 살림은 지옥이었다. 매일 쌓이는 더러움을 날 잡아서 해치우고 나면 다시 또 더러움이 쌓이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일. 그런데 가진 것의 대부분을 버리고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집에서 살게 되자 그 ‘아무것도 없음’이 생각지도 않게 그를 ‘살림=지옥’이라는 공식에서 해방시킨다. 옷이 몇 벌 없으니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 세탁기가 없으니 손빨래를 해야 하고, 손빨래를 해야 하니 가볍고 더러움이 잘 묻지 않는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그날 입은 속옷과 행주와 걸레를 손으로 빨아 널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찾아온다. 그에 대해 이나가키 에미코는 이렇게 썼다. “오늘의 더러움은 오늘 중으로 전부 없애고, 내일부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 좋다. 할 일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개운함이 마음도 새롭게 만든다.”
그의 생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하루 세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냉장고가 없으니 쟁여둔 식재료가 없다. 가스레인지도 없고 양념도 최소한, 조리 도구도 단출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매일 밥과 국, 한 가지 반찬이라는 똑같은 식사를 한다. 아니, 그게 가능할까? 한때 온갖 양념을 쌓아두고 요리와 미식을 즐기던 이나가키 에미코는 이 단순한 식단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좋은 쌀로 갓 지은 밥은 그것만으로도 맛이 있다. 담백한 된장국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가장 기분 좋은 변화는 더는 메뉴를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식당에 가서 돈을 내고 사 먹는다. 이렇게 사 먹는 음식은 매일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끼니를 때울 때와는 달리 감격스러울 정도로 맛있게 느껴진다.
그러게, 언젠가 내가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식사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스테이크나 로브스터 같은 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식사는 너무나 단순했다. 윤기가 흐르는 갓 지은 쌀밥, 시원한 겉절이, 배추된장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음식.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이었던 1국 1반찬의 생활이 달리 보였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단순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은 그에게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여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갖기 힘든 것. 사실은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것. 어쩌면 그는 돈을 포기하고, 다르게 표현하면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하고 시간을 얻은 것이다. 시간을 얻은 대가로 그는 가난해졌지만 그 가난함은 흔히 말하는 ‘빈곤’과는 다른 의미다.
나는 돈을 아주 많이 벌지만 온 가족이 매 끼니를 정크푸드로 때우는, 걸레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집에 사는, 더 일하기 위해 종종 수액을 맞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을 쉬지 못하고 일하게 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너무나 빈곤해서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버티고 보일러도 틀지 못하고 겨울을 보내는, 아무리 덥고 아무리 추워도 아픈 무릎으로 기듯이 폐지를 줍는 노인들도 알고 있다. 그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도대체 가난은 무엇일까? 빈곤은 또 무엇일까?
모두가 노후를 두려워한다. 일할 수 없고 소득이 사라지고 빈곤의 구렁텅이에 빠질지도 모르는 노후를. 그런 막연한 불안감은 이나가키 에미코처럼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해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은 누그러든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요리하고 먹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매 끼니는 밥과 국, 반찬 한 가지가 기본이라는 마음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한가할 때 만들거나 식당에서 사 먹으면 된다. 곧 아이들이 집을 떠날 날이 다가오니 몇 년 후에는 남편과 둘이서 살기 좋은 아늑한 작은 집으로 옮길 것이다.
작은 집에 굳이 커다란 가전제품이나 각종 청소 도구를 구비할 필요도 없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거나,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실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내가 원하고 또 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답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인생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닌지 몰라, 하고 순진한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지난 연말 느꼈듯이 우리가 누리던 평온한 삶은 너무나 쉽게 짓밟힐 수 있다. 그럼에도 이나가키 에미코가 썼듯 우리의 생활을 건실하게 꾸려 나가는 한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그 생활을 지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매일매일을 되찾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품고 이 복잡한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 보기로 하자. 그러기로 하자.
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