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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빌딩 숲이 듬성듬성 늘어선 곳보다는 낮은 건물이 빼곡한 편이 좋고, 제일 좋은 걸 택하라면 역시 네온사인과 네모난 건물이 없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펼쳐져 보이는 그런 땅이다. 초록과 파랑이 만나 노랑과 분홍을 틔워내는 곳, 계절의 변화를 땅에서부터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곳. 대단히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보다도 어린애 축구공이 굴러다니고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나 있는 흙바닥 놀이터, 돌과 조개가 널려 있는 물가, 잠잠해서 괜히 한 번 건드려 보고 싶은 조용한 숲, 관리자가 없어도 빼어나게 솟아난 아름드리나무들이 있는 곳이 좋다. 성질이 그러하여 사람이 많은 도시에 오면 쉽게 피로해지고 얼굴이 허옇게 질려 집을 찾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건 또 아니다.
여하간 스스로 도시에 편입되길 바란 적 없는 나한테는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 꼭대기 층 카페란 영 낯이 선 곳이었다. 아직 호텔 운영 시간도 아닌 이른 아침, 열어선 안 될 것 같은 문을 열고 겹겹이 벽에 싸여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겨우 찾아 19층으로 올라선 날이 있었다. 건물 ‘꼭대기’가 아니라 ‘루프탑’이라 불러 마땅한 카페. 꽁꽁 싸여 있는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루프탑 카페는 높은 층고와 널찍한 창을 품은 곳이었다. 아니, 그걸 ‘창’이라 부르는 게 맞나? 벽 한 면이 탁 트인 전면 통유리여서 창문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했고, 그것은 기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제 발로 찾아와야만 했던 그날 그곳이 생경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호텔 루프탑 카페가 전면 창으로 품고자 한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남산과 남산타워, 어디에나 공평하게 펼쳐진 하늘이었을 테다. 내려다보이는 건 시대를 주름잡은 압구정동이지만 네모 속에 가두고 싶어 하는 건 자연이라는 점이, 서울 근교에서 나고 자라 생활 역시 도시 가까운 곳에서 해왔으면서 자연이 좋다 무구하게 읊는 나랑 얼마간 닮은 것만 같았다.
“여기 관광객이 많이 찾는대요. 일본 호텔 브랜드라 일본인이 많다더라고요. 밤에 야경이 멋져서 ‘야경 맥주 맛집’이라던데요? 밤에 한번 와보고 싶어요.” 그런 목소리를 들으며 밤 풍경을 슬몃슬몃 상상한다. 푸른 하늘과 꼿꼿한 남산타워의 형체가 사라진 깜깜한 밤, 빨갛고 노란 불빛이 수놓는 풍경, 때때로 깜빡이고 움직이면서 생명력을 뽐내는 불빛들. 상상 속 풍경은 금세 밝아져 야트막한 (아니, 그렇게 보이는) 남산과 네모난 집, 원근감의 장난으로 낮아 보이는 저 먼 압구정 아파트의 정수리를 드러낸다. 밤보단 낮이, 낮만큼 아침이 좋은 까닭에 상상도 그쪽으로 기울어 버리는 것만 같다. 맛집이 수식하는 게 야경인지 맥주인지 잘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한낮 맥주 맛집이라고 불러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마셔본 적 없는 루프탑 카페 맥주 맛을 상상하기가 어려워 야트막한 동산 꼭대기 나무 벤치에서 쓱 닦아 따는 캔맥주 맛을 선연하게 떠올리면서.
언젠가 지면을 빌려 ‘최초의 소리’에 관해 쓴 적이 있다. 기억하는 내 인생 최초의 장면, 그때 나는 부모님과 손을 잡고 집 앞 길을 산책하고 있었고, 청세포를 간질이는 생경한 소리를 들었다.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고, 그때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피아노’라는 단어를 가졌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기술하지 않은 풍경이 하나 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의 밤을 가로등보다 밝게 비추던 홍등. 그것은 어느 선술집 앞에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늘 자리를 지키던 기물이었다. 지금도 너끈히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그곳 이름은 ‘투다리’. 무언가 풍경을 상상해야 한다면 밤보다 낮을, 낮만큼 아침을 길게 떠올리는 편이지만 유독 어린 시절 집 앞에 있던 굴다리 옆 투다리는 밤 풍경으로 기억된다. 홍등의 강렬함이 그 이유일 테다.
어려서부터 네온사인 없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스운 점은 한 번도 네온사인이 화려한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거다. 한밤을 요령껏 비추던 네온사인은 아침이 오면 비뚜로 선 채 전선과 뒤엉켜 버린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건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마음 한쪽이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야경에 흥미를 갖지 않은 건. 내가 기억에 남기고 싶은 야경은 오로지 투다리다. 투다리와 피아노 학원이 있던 굴다리 앞 길가는 어디를 가든 지나야만 하는 구간이었다. 학교에 갈 때도, 문방구에 갈 때도, 시장에 갈 때도, 떡꼬치를 사 먹으러 갈 때도 그 길목을 지났다.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나는 투다리를 보았다. 홍등에 불이 켜지면 ‘6시가 지났구나.’ 알 수 있었다.
한번은 친구와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달에 훌쩍 떠날 거란 얘길 들었다. 일주일 이상 긴 여행을 선호하는 나와 달리, 친구는 하루이틀, 길어야 사흘 정도 머무는 짧은 여행을 선호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엔 5박 6일 일정으로 꼭 홍콩에 가겠노라 했다. 보통의 여행보다 긴 일정에 이유를 물으니 홍콩의 밤은 짧으니까 도시 야경을 다섯 번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 애의 대답이었다. 그때 진하게 알았다. 나는 도시도, 밤도, 야경도 그리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애초에 상상이 잘 안되어서 ‘밤이 좋다.’거나 ‘야경 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듯하다.
불꽃놀이를, 등불 축제를 보며 “와!” 한 적이 있으니 네온사인이나 인공적인 불빛에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걷어낸 세상을, 밝아진 사위를 상상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러나 투다리만은 예외다. 지금도 투다리 홍등을 보면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떠오른다. 투다리 옆에 있던 피아노 학원은 내 보금자리 같은 곳이었다. 독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처음 피아노 소리를 듣던 때, 그러니까 “지금 들리는 소리는 뭐야? 꼭 물방울이 터지는 것 같아!” 하던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피아노를 치는 데 열중하면서도 어김없이 투다리를 떠올렸다. ‘오늘 할당 치를 끝내고 학원에서 나가도 홍등은 꺼져 있겠지?’ ‘저녁 먹을 즈음에야 불이 들어오겠지?’ 피아노를 치면서 다른 생각을 하면 반드시 틀리게 되어 있음에도, 투다리와 피아노는 내게 꼭 붙어 있는 단짝이어서 나는 알맞은 건반을 알맞은 타이밍에 누르며 ‘반드시’의 규칙을 비껴 나가곤 했다.
엄마와 나만이 아는 몇몇 단어와 소통법이 있다. 어떤 외국 여자 이름을 부르면 “코딱지!” 하는 것, “코딱지!” 하면 그 여자 이름을 말하는 것. 때때로 납작하고 긴, 플라스틱 자 같은 걸로 손등을 탁탁 때리며 “코딱지!” 하기도 한다. 이 아리송한 대화는 지금도 통용되는 우리만의 암호다.
어릴 땐 뭇 어린이들처럼 놀이터에 가는 게 좋았다. 낯 모르는 아이들과 친해져 노는 일은 잘 없었고, 낮이고 저녁이고 부모님을 졸랐다. “놀이터 가고 싶어.” 내가 좋아한 건 특히 그네였는데 발을 몇 번 구르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혼자 탈 수도 있고, 둘이 즐길 수도 있고, 여차하면 셋이나 넷도 가능하기 때문에 더 즐겨 탄 것 같다. 그런 내가 한밤에 놀이터에 가자고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는 꼭 이렇게 대꾸했다. “지금 가면 담배 피우는 아저씨 있어.”
그땐 담배 피우는 아저씨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깜깜한 밤, 담뱃불이 번쩍이는 걸 보면 도깨비불을 본 것처럼 어깨가 움찔했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성큼 다가와 “네 이놈!”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나는 밤에, 혼자 만나는 담배 피우는 아저씨가 가장 무서웠다. 멀리서 흔들거리는 주황 불은 한낮에도 무서웠지만 대비 효과로 유독 선명해지는 한밤엔 더했다. 나는 달리기가 빠른 어린애였지만 어두울 때 만나는 담뱃불 빛 앞에선 달리기 실력도 무용했다. 옴짝달싹 못 하는 두 다리로는 실력을 뽐내기는커녕 한 발짝 걷기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했으니까. 몇 초쯤 지나야만 ‘아, 나에겐 다리가 있지!’ 하고 깨닫는 식이었다. 한밤에 바깥에 혼자 있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해가 짧은 겨울이면 ‘투다리 홍등이 켜질 즈음’에도 사위가 거뭇했는데, 그럴 때 인적이 드문 길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만나면 두 다리가 얼어붙는 것을 어김없이 느끼곤 했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수를 세고 ‘우다다다’ 달리는 것이 보통 일이었기에 담배 피우는 아저씨가 있는 밤의 놀이터는 쉽게 포기하게 됐다.
돌아보면 참 이상하다. 그 당시 아빠도 담배를 피웠고, 따지자면 아저씨였고, 아빠도 한밤에 담배를 피우는 ‘담배 피우는 아저씨’였을 텐데 그 존재가 왜 그리 무서웠을까. 아마 그런 걸 테다. 밤이란 내게 익숙한 시간대가 아니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놀이터는 안전지대였으니까, 아빠가 내게 익숙지 않은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안전지대에서 담배를 피울 리 없다고 여기니까 ‘담배 피우는 아저씨’는 아빠가 아니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한밤에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보면 슬쩍 겁이 난다. 아저씨라고 해도 이젠 내 또래랑 별반 차이 없을 테고, 지금 내 주변엔 성격 좋은 담배 피우는 아저씨도 많으니까 내가 무서워하는 건 어쩌면 ‘담배 피우는 남성 어른’이 아닌 엄마의 음성으로 울리는 “담배 피우는 아저씨”였을 테다. 그러니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위험.
나에게 밤의 풍경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겐 홍콩의 도시, 여의도의 불꽃놀이, 대만의 풍등, 놀이공원의 밤, 호텔 테라스 카페의 전경으로 기억되지만 굴다리 옆 투다리 홍등과 놀이터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의 주홍빛 담뱃불로 요약되는 것. 투다리 홍등은 내게 야경이지만 담배 피우는 아저씨의 담뱃불은 여전히 좀 무섭다는 것. 그럼에도 담배 피우는 아빠는 사랑한다는 것, 어느덧 그런 아빠가 된 친구들도 있다는 것. 나에게 밤마실이란 여전히 ‘담배 피우는 아저씨’ 같은 감홍색의 기이한 여정이며 때때로 ‘투다리 홍등’ 같은 주홍빛의 그리움이다.
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