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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와시의 여름 노래
반딧불이의 목소리
마니와시의 여름 노래
‘마나와시’는 오카야마현 북·중부에 위치한 소도시다. 예스러우면서도 단정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이곳은 여름밤이 되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작은 반딧불이들이 어둠이 내려앉은 숲과 하늘 사이를 누비면서 은은한 노란빛을 내뿜기 때문이다. 말간 강줄기와 신선한 편백나무 숲, 동물들이 여유롭게 노니는 목장과 사람들이 맞닿은 마을들. 지난여름, 나는 마니와시의 노랫소리를 가까이서 들었다. 청량하고 맑은, 여름 색을 띤 목소리였다.
간직하고 싶은
곳
마니와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를 꼽자면 아마 ‘간직’일 것이다. 소중한 것을 계속해서 곱씹고 기억하고 지켜내기 위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쓰야마 보존지구勝山町並み保存地区’는 일본이 가장 부흥했던 에도 시대의 번화한 옛 상가 거리를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정치가와 무사들이 살던 곳을 지금은 사무실, 가정집, 카페 등으로 탈바꿈시켰고, 2009년에는 ‘아름다운 거리’로 꼽히기도 했다.
전통 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골목 뒤편으로는 커다란 산맥이 보이는데,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거리가 마음을 한껏 편안하게 만든다. 가쓰야마 보존지구에서 특별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가게 현관마다 걸려 있는 ‘노렌暖簾’이다. 노렌은 상점의 출입구에 내걸어 놓은 천을 말한다. 공간 내부를 쉽게 들여다볼 수 없게 하는 장치이면서, 가게가 영업 중이라는 표시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각각 가게의 성격과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노렌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곳 사람들의 평범하고 온화한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오르막 계단을 올랐다 내렸다, 골목 사이를 오른쪽으로 돌았다 직진했다 하면 금세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은 아니다. 그래서 좋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흘러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과일 가게의 가판대를 더 오래 구경하고, 구름이 산머리에 닿기를 기다리면서 오랜 시간을 천천히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붐비지 않아 한적함을 오롯이 누릴 수 있고, 소도시만의 평화를 쉬이 찾을 수 있다. 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오르면 이곳을 둥글게 에워싼 강줄기를 만난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집들을 보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쓰야마 거리를 간직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을 불렀다
마니와시의 호쿠보北房 호타루ほたる 마을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미풍이 부는 6월,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반딧불이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렇게 마을은 이 시기에 맞춰 반딧불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원으로 향하는 동안,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노을로 물든 하늘은 금세 검붉은 색깔로 변했다가, 보랏빛을 띠었다가 하면서 어두워졌다. 마을은 조용히 내려앉은 어둠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칠흑같이 새까만 밤이 낯설고 두려웠다. 새삼스럽기도 하지. 밤은 원래 까맣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 아이들의 삐죽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족들, 전통 의상을 입고 온 친구들.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반딧불이가 그렇게 쉽게 보일 리 없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들어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사실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찌르릉거리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반딧불이가 잔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들은 나름의 간격을 유지하며 은은한 불빛을 내보였다. 반딧불이 무리의 등장이 퍽 갑작스러워 깜짝 놀란 나는 옆에 있는 동행자를 끌어안았다. 그 친구도 경외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나를 바짝 안았다. 우리는 그날 처음 본 사이였지만.
사람들은 조심스레 감탄했다. 큰 소리를 내면 사라질 것만 같아서 숨죽여 아름다움을 목도했다. 반딧불이와 인간. 우리는 최소한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불렀고,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도 필시 그 순간의 다정이란 걸 알았다. 정말이지, 사랑이 넘치는 밤이었다.
나도 카메라로 반딧불이를 찍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내 눈과 달리 반딧불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게 눈앞에 있는데, 꼭 세상에 없는 것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니 기분이 어쩐지 이상했다. 자연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던 숱한 기쁨들이 얼마나 많이 인지되지 못한 채 흘러 사라졌을까. 어떤 것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로 나를 이토록 기쁘게 하다니, 숭고한 경험이다.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늘에도 땅에도 잔뜩 별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불렀다.
나의 반딧불이 촬영은 결국 실패했지만, 도시의 네온사인과 야근하는 회사들의 불빛만 보다가 어둠 속 손톱만 한 불빛에 오감을 집중한 것은 무척 귀중한 경험이었다.
물은
정리한다
몸을 닦는 일은 인간 생활의 처음과 끝을 도맡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나 생을 다한 사람 모두 정갈하게 몸을 닦는다. 생애가 아닌 하루를 보아도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자기 전, 우리는 물로 향한다.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작과 끝을 맞추는 새로운 의식.
‘유바라 온천湯原温泉’은 일본에 있는 100개 이상의 온천 중에서 서일본 지역 최고를 나타내는 ‘천하장사 등급’을 받은 온천이다. 또 부근에는 등 뒤로 오카야마 최대 규모의 댐을 두고 자연과 한껏 가까워질 수 있는 ‘스나유砂湯 노천 온천’도 있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스나유 노천 온천은 남녀 함께 즐기는 혼욕탕이어서 들어가기 전에는 용기가 조금 필요하다.
온천으로 온몸을 달군 뒤에는 한 잔의 술이 그리워진다. 조금 벌게진 얼굴을 맛 좋은 술로 달래줄 차례이기 때문이다. 오카야마는 일조량이 워낙 높아 벼가 잘 자라는데, 이곳에서 나고 자란 곡식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다. 오카야마의 유명한 전통주와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며 나른하고 노곤한 저녁을 보내면 좋겠다. 기쿠노유 료칸에서는 온천을 마친 뒤 가벼운 몸으로 푸짐한 한 상 차림을 즐길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면 두꺼운 이불이 돌돌 말린, 깨끗한 이부자리가 나를 기다린다.
자연과 한껏 가까운 온천에서는 오로지 물로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다. 일상의 걱정과 고민을 덜고, 내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는 일. 그거면 충분하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둔 염려의 더께를 이제 물과 함께 밖으로 내보낼 시간이다.
걸어도
걸어도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람이 슬쩍 그리워진다. 사람이 가득한 대도시가 싫어져서 한적하고 고요한 소도시로 향했는데, 사람이 다시 그리운 건 신기한 노릇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倉敷美観地区’는 오카야마 남부, 구라시키에 위치한 미관지구다. 맑은 운하와 회벽, 그리고 검은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소담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에도 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운하를 따라 물자를 운송하곤 했는데, 운하 주변으로 키 큰 버드나무가 오랜 시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수로 안의 비단잉어와 백로의 여유는 사람들을 더욱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날은 사생대회나 백일장 대회가 열린 것 같았다. 같은 교복을 입은 다른 표정의 학생들이 저마다 흰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집중했다가, 물을 한 번 휘저었다가 또 집중하기를 반복했다. 햇볕과 바람이 부드러워 학생들 위로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안정감이 묻어나는 일본 영화 엔딩 장면처럼 보였으니까.
거리 위로 신점을 봐주는 갑판이 보였다.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오가는 걸 보니 오늘도 이곳에서 행운을 비는 사람들이 가득한가 보다. 고개를 돌리면 온통 사람이 보인다. 100엔짜리 잉어 먹이를 사는 사람들, 아이스크림 장수, 목걸이를 고르는 손님과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는 상인.
골목을 누비면서 작지만 다양한 가게들을 만났다. 모두 부담스럽게 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 시선이 편안하다. 소도시의 매력이 무엇인지, 이제는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고,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힘이 있는 곳. 우리를 부르는 작은 도시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듣고 싶어진다.
오카야마의 그곳들
호쿠보 호타루안 北房ほたる庵
반딧불이 축제가 있는 호쿠보우 호타루 마을의 음식점. 다시마 육수에 닭고기와 버섯, 각종 야채를 넣고 그 자리에서 지어먹을 수 있는 솥밥 정식이 유명하다. 짜지 않고 슴슴한 맛으로 마냥 먹을 수 있다. 특히 오카야마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들러서 맛보기 좋은 곳이다. 예약 시, 숙박도 가능하다.
A. 664 Shimoazae, Maniwa,
Okayama Prefecture 716-1433
H. hotaru-an.com
고라쿠엔 정원 後楽園
고라쿠엔 정원은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로 133,000제곱미터 정도의 넓은 면적을 두고 있다. 오카야마 성을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이고 이곳 저곳에서 웨딩 촬영이 한창인 커플들도 자주 있다. 계단을 올라 정자에 가면 더 높은 곳에서 고라쿠엔의 여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에는 우거진 매화숲이 무척 아름답다.
A. 1-5 Korakuen, Kita, Okayama,
Okayama Prefecture 703-8257
T. +81 86 272 1148
시마야 嶋屋
카츠야마 보존거리에 위치한 시마야 식당. 카페같은 차분한 분위기의 이곳은 사실 소바 맛집이다. 따뜻한 소바와 차가운 소바 두 종류 중에서 주문할 수 있고, 정갈한 반찬과 튀김도 함께 곁들어 먹을 수 있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서도 소박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메밀을 삶은 물로 만든 두부도 매우 인상적이다.
A. 154 Katsuyama, Maniwa,
Okayama Prefecture 717-0013
T. +81 867 44 5408
히루젠 저지랜드 목장 ひるぜんジャージーランド
캠핑, 바베큐, 승마시설 등과 함께 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히루젠고원의 최대 관광지이다. 방목하여 자유롭게 땅을 거니는 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고원에서 자란 소들이 만든 우유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이곳의 명물이니 긴 줄을 서서라도 꼭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외에도 우유와 치즈, 과자 등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A. 956-222 Hiruzennakafukuda, Maniwa,
Okayama Prefecture 717-0501
H. hiruraku.com
미카모 크리에이트 스게다니 美甘クリエイト菅谷
편백나무 생산지로 유명한 마니와시의 대표적인 캠핑장. 편백나무 숲의 맑은 공기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 기분이 근사해진다. 무엇보다 편백나무로 지어진 아늑한 방갈로에서 묵는 숙박이 인상적이다. 산천어 잡기, 대나무 소면 먹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무엇보다 조식이 맛있다.
A. 1050-2 Mikamo, Maniwa,
Okayama Prefecture 717-0105
T. +81 867 56 2044
한자키 센터 はんざきセンター
유바라 온천마을 초입의 작은 도롱뇽 박물관이다. ‘한자키はんざき’는 일본의 장수도롱뇽을 일컫는 말로, 전세계적으로 오카야마현 마니와시에서만 서식하는 거대 도롱뇽이다. 깨끗한 1급수에서만 지내는 이 도롱뇽의 모습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장수도롱뇽의 뼈도 전시되어 있다.
A. 1530 Toyosaka, Maniwa,
Okayama Prefecture 717-0406
T. +81 867 62 2011
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
취재 협조 일본정부관광국J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