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고상지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어떤 ‘사람’
고상지
2005년 탱고 거장 파블로 지글러Pablo Ziegler의 내한공연에 감동을 받은 한 여자는 2014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된다. 긴 이야기를 이토록 간단하게 적는 이유는, 반도네온에 관련된 것 말고도 나눈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
반도네온과 함께한 시간을 크게 ‘독학, 일본의 고마츠 씨와의 생활, 아르헨티나의 에밀리오 발카르세 오케스트라 학교 졸업, 현재’로 나눌 수 있겠네요. 아르헨티나에서 학업을 마치고 바로 한국에 들어왔나요?
네, 졸업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돌아왔어요.
보통 학업을 마치면 여행을 하거나, 어떤 여유를 부리곤 하잖아요. 서두른 이유가 있나요?
좋은 점도 많았지만, 아르헨티나 생활은 저와 잘 맞지 않았어요. 일단 정전이 되기 일수였는데, 그러면 변기 물도 안 내려가거든요. 일주일을 그렇게 지내기도 했어요. 그리고 어두워 지면 범죄율도 자연스럽게 올라갔어요. 그곳에서의 범죄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였거든요. 그런 불안감이 꽤나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녁에 시작하는 공연에 가려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택시 안에서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불안할 만하네요.
게다가 음식도 잘 맞지 않았어요. 아닌 곳도 있겠지만, 메뉴를 볼 필요도 없는 곳이 많았거든요. 저는 다양한 음식이 필요했는데. 사소한 투정들이 늘어났죠.
좋은 건 없었나요?
관람료가 저렴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참 많았어요. 가격이 저렴한 무대라도 대단한 뮤지션들이 등장했거든요. 게다가 그들에게 직접 레슨 받을 기회도 있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죠. 그런데 사실 저는 일본에서 먼저 유학 생활을 했거든요. 그때도 좋은 연주자에게 레슨을 받았고요.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에 머물며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일본에 대한 향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일본과 아르헨티나에서의 일들은 뒤에서 조금 더 물어볼게요. 이제 반도네온을 잡은 지 10년이 거의 다 됐는데, 악기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가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왠지 10년이라는 시간이면 ‘지금보다 더 잘해야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탱고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악기지만, 지금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탱고가 아니에요. 물론 대중가요나 록, 힙합보다는 탱고가 더 좋지만, 너무 좋아서 들떠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차분하게 지내고 있어요.
좋은 의미의 차분함인가요?
아니요. 절대 좋은 의미는 아니에요. ‘평생 연주를 하다가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직업으로 삼다 보니 부담감이 커요. 요즘은 라이브 연주보다 녹음실에서의 작업이 편하게 느껴지고, 계속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뮤지션들은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다고들 하던데요.
저는 그런 게 없어요. 무대에서는 틀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려 애를 쓰는 편이고, 오히려 실수에 대한 부담이 없는 녹음실에서의 시간이 편하게 느껴져요. 편곡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 작업에서 재료가 되긴 해요.
좀 의외의 대답이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아무튼, 탱고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요즘 가장 빠져 있는 장르는 뭔가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음악을 주로 듣고 있어요. 곡을 쓸 때도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데, 배운 게 탱고다 보니 이 둘이 섞여서 조금은 특이한 음악들로 나오게 됐어요. 퓨전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쉽게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 만족하고 있나요?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어쨌든 직업으로 음악을 하고 있으니 남들의 호응 없이 마냥 좋을 수는 없잖아요.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언젠가 인터뷰에서 같은 분야 사람들이 없어서 외로웠다는 얘길 읽은 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일본이나 아르헨티나처럼 대가大家가 없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건 외로운 일 같아요. 저는 물론이고 저와 함께하는 연주자분들도 어느 정도 기량이야 있지만, 탱고 스킬은 한참 부족하거든요. 대가가 있다면 우린 그에게 배우고 각자 연습에 더 많이 매진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질 못해요.
메이저 장르가 아니어서 겪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메이저 장르가 아니어서 느끼는 기쁨도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서 저를 가르쳐 주셨던 고마츠 료타 선생님이 기쁨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정상에 선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아직도 배울 게 많은 제게는 힘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고마츠 씨를 만난 얘기에 관해서는 읽었어요. 한국에서 공연하는 상지 씨를 누군가 고마츠 씨에게 알렸고, 응원 메일이 왔다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3년 동안 석 달에 한 번씩 반도네온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 분과 함께 지낼 당시의 이야기는 많지 않더라고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일단 고마츠 료타 선생님은 아주 적은 돈을 받고 저를 가르쳐 주셨어요. 2009년 무렵, 한국에서 전공자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려고 알아보니 한 시간에 7만원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반도네온 대가였던 고마츠 료타 선생님은 그보다 적은 돈으로 저를 받아줬어요. 게다가 한 시간을 약속하고 시작한 수업이 세 시간, 네 시간이 되기도 했죠. 일본에 가면 보통 2주 정도씩 머물렀는데, 이삼일 마다 레슨을 받곤 했어요. 사실 그맘때 반도네온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선생님이 주시는 것에 호응하다 보니 정말 많은 연습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3개월 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레슨에 필요한 2주 생활비를 벌었다는데, 즐거운 생활이었나요?
가요 세션 일을 시작하면서 일본에서 쓸 생활비를 벌 수 있었어요. 다행히 아주 적은 돈으로도 머물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생활은 정말 꿈같았어요.
레슨받는 시간 이외에는 뭘 하면서 보냈나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하는 데 썼어요. 연습하다가 밥을 먹고, 또 연습하고 그랬죠. 일본 음식들은 정말 최고였어요. 편의점에서 파는 호빵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사 먹었어요(웃음). 아, 그리고 가끔 공연이 있었어요. 연습을 위한 이런저런 무대들이요.
비록 3개월에 2주였지만, 3년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잖아요. 돌아보면 많은 걸 얻었다고 판단되나요?
무언가를 얻었다기보다, 일본에서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선생님 주변 사람들과 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요. 아르헨티나에서 반복적으로 꾼 악몽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아주 맛있는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는 내용이었어요. 일본은 그 정도로 향수를 일으키는 곳이었습니다(웃음).
아르헨티나와 비교가 많이 되네요(웃음).
아르헨티나가 그렇게 싫었던 것만은 아닌데, 돌이켜 보면 좀 아찔하죠. ‘악기를 뺏기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야’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시 간다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도 대답을 못 하겠고(웃음).
학교 오디션 날짜에 맞춰서 간 아르헨티나, 그때 만약 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나름 계획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삼 개월 레슨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서서히 일이 들어오던 시기였거든요.
탱고를 오래 기억하기 위한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탱고 교육기관’이라고 들었어요. 커리큘럼이나 학교 분위기, 학생들, 어떤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나요?
불필요한 커리큘럼은 하나도 없었어요. 이론 강의보다는 연주 위주의 수업이 대부분이었죠. 다른 장르보다 전성기가 짧았던 탱고는 시대적 분류 대신 각 악단의 스타일로 구분되곤 했거든요. 한 시대의 음악이어도 악단마다 연주법들이 천차만별이었죠. 입학 후 일 년 동안은 한 악단의 노래를 몇 곡 뽑아서 연습을 했고 다음 해에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실제 그 악단의 멤버였던 대가와 함께 공연을 했어요.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였죠.
같은 분야의 사람이 없어서 느꼈던 ‘한국에서의 외로움’이 그곳에서 해소됐겠어요.
네 맞아요. 그 대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죠(웃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땠나요?
제가 스페인어를 잘 못했어요. 그때 제게 다가와 준 친구들은 정말 착한 친구들이었을 거예요.
아르헨티나에서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르헨티나 가기 전부터,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며 저는 급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도 그랬고, 제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거든요. 지원한 학교에도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고, 졸업도 정말 잘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뒤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멈춰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그런 이유인가요?
아니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재작년에 <무한도전>에 출연한 뒤로 일도 잘 들어오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의 최근 연주 영상을 봤는데, 정말 잘하는 거에요. 함께 배우던 시절에 항상 허점을 보이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말을 잃게 할 정도로 발전했더라고요. 그런 식의 좌절이 몇 번 반복되던 차에, 작년에는 료타 선생님이 보러 온 공연을 망쳐 버렸죠.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앞서 ‘차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 건 그래서 좋은 의미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솔직한 앨범
첫 앨범이니, 아무래도 준비기간이 이전의 모든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디지털 싱글로 두 곡을 먼저 공개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고른 건가요?
아니요. 한 곡을 미리 들려주려고 했고, 미리 영상작업을 해 둔 1번 트랙을 발표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1번 트랙의 일부분을 썼던 게 걸리더라고요.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치챌 것 같았어요. 그래서 1번 트랙보다 긴 곡을 하나 더 골라서 두 곡을 함께 발표하게 됐어요.
9월에 발표하는 정규앨범은 자작곡들로만 이루어져 있나요?
네, 반은 이미 써놓은 곡들이고 나머지 반은 새로 쓴 곡들이에요. 오래된 곡은 4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것도 있어요.
앨범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대답하고 싶나요? 아니면 가장 좋았던 부분을 얘기하고 싶나요? 둘 중 하나만 얘기해 주세요.
즐거웠던 부분은 없어요(웃음). 재녹음을 자주 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고, 조금 더 일찍 내고 싶었는데 몇몇 문제들 때문에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어요. 저 지금 너무 우울한 얘기만 하나요(웃음)?
이번 앨범의 제목이 ‘마이크그레(Maycgre)’네요. 영감을 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은 건지 궁금하네요.
궁금하다고 말해준 두 번째 사람이에요. 질문해 주길 기다렸는데, 다들 관심이 없더라고요(웃음).
워낙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7명의 캐릭터라면 많이 줄인 편일 텐데, 캐릭터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이니셜 순서와 트랙 순서가 같아요. 예를 들어 앞에 있는 두 개의 철자 ‘M’과 ‘A’는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마키나미 마리’와 ‘아스카’의 이니셜이고 세 번째 트랙은 그렌라간 ‘요코’의 이니셜이에요. 그 뒤로는 차례대로 크리스(슈타인즈 게이트), 그리피스(베르세르크), 레이(에반게리온),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에요. 제 음악에 많은 영감을 준 캐릭터들입니다(웃음).
그런데 캐릭터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면, ‘영화 감독’들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상지 씨가 ‘음악 감독’들 예찬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내용이 별로더라도 음악이 좋은 건 보게 되는데, 반대인 경우에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에반게리온 스토리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도 연출과 음악이 훌륭해서 전부 봤어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뭔가요?
‘그렌라간’이요. 앞서 말했듯 2번 트랙은 이 애니메이션의 ‘요코’라는 캐릭터에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됐어요.
앨범에 수록된 곡을 들으며 참 놀랐어요. ‘황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진 않지만, 막상 보게 되면 꿈 같은 분위기에 취하곤 해요. 어딘가에 가고 싶다든지, 무언가를 당장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면 저는 또 전부 잊어버리거든요. 신기하게도 앨범의 몇 곡은 잊고 지냈던 그때 기분을 상기시켜 주던데요.
1번 트랙이요? 아니면 2번 트랙이요?
두 번째 곡이요.
맞아요. 그 곡은 그런 기분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몇몇 기사들을 보면 ‘동양적 색채가 강하다’고 이번 앨범을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애니 오타쿠’라는 말을 순화시킨 거죠(웃음).
지금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상지 씨가 다루는 악기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꽤나 진지한 데다가 그 악기와 상지 씨 외모가 잘 어울리니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부류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네가 좋아하는 걸 절대 말하지 말라’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저도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고요. 그러던 찰나에 유희열 씨와 이적 씨를 만났어요. 저한테 ‘작전’을 세우고 앨범을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죠. 돌아온 대답은 ‘솔직해 지라’는 거였어요. 국내 연주자들이 가지고 있는 우아한 이미지를 벗으면 오히려 더 독특할 수 있다고 응원했죠. 용기를 내서 작업한 게 1번 트랙 영상작업이에요.
그럼 영상작업에는 상지 씨 의견이 많이 들어갔겠네요?
물론이죠. 강애진 감독님과 작업했어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셨고 정말 잘 표현해 주셨어요. 미팅할 때마다 감동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오타쿠 아니에요(웃음).
만화 같은 일상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엘 디아 께 메 끼에라스El Dia Que Me Quieras(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를 들었어요. 정말 좋아서 여러 번 듣고, 원곡도 찾아서 들어봤어요. 잘 몰라서 그런지 저는 이게 더 좋더라고요. 편곡을 직접 하셨나요?
전자피아노와 반도네온 조합을 워낙 좋아해서 이 곡도 그렇게 연주해 봤어요. 이런 경우엔 편곡이 거의 필요 없기도 하고요.
편곡 작업에 시간을 많이 쓴다고, 게다가 자신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네요.
예전에 료타 선생님한테 편곡에 관해 칭찬받은 적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연주로는 받은 적 없었거든요. 따지고 보면 더 자신 있다기보다, 편곡 작업에 시간을 더 많이 써요. 가끔은 반도네온을 연습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요.
반도네온은 버튼 나열에 규칙이 없어 모두 외워야 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따져보면 어떤 한 곡을 외워서 연주하는 일은 다른 악기들처럼 쉬운 일이에요. 어쨌든 외우면 되는 일이니까요. 모든 악기가 그럴 거예요. 반도네온이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연주자가 많지 않아서 여러모로 공유할 수 있는 게 적다는 거죠.
‘촤르륵’ 하고 반도네온이 접힐 때 소리가 참 멋지더라고요. 혹시 연주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순간이 있는지.
접힐 때 소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원래는 그 소리가 들리면 안 돼요. 그래서 녹음과정에서는 그 소리를 다 빼요. 거슬릴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그저 실수 없이 잘 끝내면 좋은 것 같아요.
반도네온을 연주하고, 곡을 편곡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말고 평소에 자주 하는 일들이 있나요?
남는 시간은 무조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아요. 가끔 시간이 남아서 친구를 만나도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요(웃음).
영화 <엽문>에 나오는 견자단에 반해 영춘권을 배우기도 했다는데, 이거 진짜인가요?
네, 실제로 영춘권을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다니다가 2주 만에 힘줄이 끊어져서 그만두게 됐어요. 대련도 아니고, 기본 동작을 반복하다가요.
도대체 어떤 건가요.
보여 드릴까요?(웃음) 이소룡의 절권도가 영춘권에 모태를 뒀다고 해요. 영춘권의 대가가 ‘엽문’이라는 사람이고요.
똑똑하고 좀 엉뚱한 면이 있는 사람 같은데, 혹시 별명 같은 게 있나요?
별명은 없어요(웃음).
갑자기 뜬금없지만, 반도네온이 어떤 악기인지, 스스로 느끼는 대로 말해 주세요.
멋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제 연륜이 부족한 것 같고, 그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어쿠스틱 악기의 울림에 큰 감동을 받지 않아요. 오히려 악보 작성 프로그램의 미디Midi(단순한 전자음)로 들어도 좋은 곡에 감동 받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 음악도 워낙 유명한 곡이라 미디 버전이 있고 오케스트라 버전도 있는데, 저는 미디 버전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런 생각들이 앞으로의 음악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이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저는 드라마 음악이나 영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라이브 연주자보다 더요. 그러려면 제가 만든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아직 정규앨범이 나오기 전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질문에는 대답을 자제하고 있어요. 다만, 운이 좋아서 어떤 곡 작업을 부탁받는다면, 반도네온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곡을 만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녀와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나는 미리 적어 두었던 몇몇 문장들을 황급히 지웠다.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고서 급히 써 놓았던 것, 반도네온 소리에 대한 예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감상이 빗나갔다고 생각해서, 창피해서, 민망해서 지운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만나러 온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에, 반도네온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단순한’ 글들을 지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 관해서 써야 할 텐데, 어쩐 일인지 길게 적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그녀처럼,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애정을 주고받는 행위가 갑자기 허무해 질지도 모르니까.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관계와 마주할 확률도 있을 것이다.
막상 이렇게 끝이 난 인터뷰를 정리하며 듣는 그녀의 연주는 덜 좋거나, 갑자기 더 좋거나 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다.
에디터 전진우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