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되는 종이 7

그렇게, 나의 식탁이 채워진다

그렇게, 나의 식탁이 채워진다

7화 친구네 집

비어 있는 다음 달 월간 페이지에 가장 먼저 채우고 싶은 일정은 친구네 집에 가는 날이다. 우리 모두의 바깥에서 만나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친구의 공간에서 모이기로 하면 현재의 생활에 푹신한 방석 하나가 깔리는 기분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비슷하게 감당하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언제까지고 편하게 앉아 떠들 수 있는, 우리만의 지붕이 생기는 날. 비어 있는 네모 박스 안에 골뱅이표를 그려 넣고 친구네 집이라고 적어 둔다.

바깥 장소에서 나에게 없는 에너지를 받는 나지만, 잘 모르는 바깥 장소 혹은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가까이 섞여 있는 장소는 실은 다소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바깥의 에너지 중에서도 내가 가져오고 싶은 분위기를 쏙쏙 고르게 된 것도 같다.

친구들과 함께 서로 모르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만나 남이 내어주는 음식을 함께 맛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가 고른 바깥의 행복이라면, 친구네 집에 앉아 서로 준비한 음식을 넓게 깔아 놓고 점심과 저녁 상관없이 우리 이야기를 마냥 주고받는 것은 안팎의 행복이다. 친구네 집은 나에겐 바깥이기는 하지만, 친구의 안을 느끼게 되는 특별한 공간이므로.

동그란 원형 식탁이 있는 친구네 집이 있다. 아직 출발하기 전, 나의 집에서부터 친구의 보드랍고 튼튼한 진한 갈색의 원형 식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친구 집에 도착하면 손을 씻고 가장 먼저 그 식탁의 테두리를 손으로 쓱 만진다. 맞아, 이 감촉이었지. 친구네 집은 친구의 편한 모습을 만나는 곳이면서, 가끔 보는 바깥 식탁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서 가져온 맥주와 드립백 커피를 그 위에 슬며시 올려놓으며, 오늘 우리의 시간을 그려 넣는다. 과일과 케이크는 친구네 냉장고에 미리 넣으며 우리의 시간을 연장할 거리들을 잊지 않고자 한다.

또 다른 친구네 테이블은 좌식의 낮은 테이블. 언제나 손수 음식을 만들어 내어주는 친구는, 네모반듯한 좌식 테이블에 아침부터 만든 갖가지 음식들로 나를 맞이한다. 부엌에는 이제 막 요리가 끝나서 열을 식히고 있는 음식도 있고, 아직 열을 가하고 있는 음식도 있다. 바쁜 친구 옆으로 가서 하나하나 완성된 음식들을 테이블로 옮길 준비를 하고 서 있는다. 나는 이 시간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피클이나 청, 잼을 잘 만드는 친구를 위해 챙겨 온 빈 유리병들을 부엌에 꺼내 놓고, 지난번에 받은 양파잼의 후기를 조잘거리며 늘어놓는 시간. 나의 집 바닥과 감촉이 다른 친구네 집 위에 서 있는 기분은, 어떤 장소에서도 느낄 수 없는, 친숙하지만 낯선 감각이다.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서 나의 식탁 앞에 앉는다. 네 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이 자리에, 언젠가 친구들이 가득 모여 앉았던 날을 회상한다. 모처럼 앞치마를 입고, 첫 잔은 무조건 하이볼이라고 우기며 미리 잘라 둔 레몬을 한 명 한 명에게 나눠 주고, 평소 잘 안 꺼내던 유리잔을 세팅하던 날의 나를. “이 잔이 네 개나 있다니.” 하며 좋아하던 친구에게 웃음으로 답하며, 속으로는 ‘이 시간을 위해 사 둔 거야.’ 하고 나만 들리게 말했던 날을. 빈 식탁 앞에 앉아 지난날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나의 식탁이 오늘도 채워진다.

평소에 재미있는 사건을 만나면 마음속 이야깃주머니에 착실히 담아 둔다. 친구네 집에 가서 나의 자리에 앉았을 때 꺼내 놓아야지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아, 완벽히 혼자인 순간은 어쩌면 없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언제나 나의 한 부분이 따뜻해진다.

친구네 집에 갈 때는 기왕이면 제철 음식을 가져가길 좋아합니다. 어차피 할 말은 많을 테지만 그래도 지금의, 오늘의 계절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날씨와 계절 이야기는 식상할지 몰라도, 오늘만의 계절 이야기는 지금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여러분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것과, 나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 중 어떤 날을 더 좋아하시나요? 둘은 사실 비슷한 음식이 다른 그릇에 담겨 있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둘 다 좋아한답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친구를 더 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날이면 별 감흥이 없던 나의 집이 새롭게 보여서 좋아요. 가을은 초대하고 초대받기 좋은 계절. 수다스러운 계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임진아
읽고 그리는 삽화가.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 풍의 생각을 쓰고 그립니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며, ‘임진아 페이퍼’라는 이름으로 지류를 선보입니다. 만화 에세이 《오늘의 단어》를 쓰고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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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임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