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되는 종이 4

잘 모르고 싶고 헤매고 싶다

잘 모르고 싶고 헤매고 싶다

4화 처음 가본 카페

지난달에 쓴 교통 대금이 후불로 출금될 예정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한 달의 시간이 심심하게 지나갔다. 3,600원어치의 이동. 3600이라는 구체적인 숫자 앞에서 왜인지 잠잠해졌다.

한 달의 시간이 심심하게 지나간 건 당연했다. 거의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며, 친구 집에는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고, 미팅은 대부분 취소되었고, 큰 서점에 차를 타고 가서 그대로 차를 타고 돌아왔고, 쌓인 일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오히려 3,600원을 내고 어디에 다녀왔는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한 달 동안 여러 마감이 몰려 바빴다. 다이어리 빈칸에 “잘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그려 넣으며 한 달을 시작했고, 한 주 한 주 고비를 넘기듯이 차근차근 할 일을 했다. 모든 일은 한 번에 끝나지않는다. 계단 같은, 징검다리 같은, 점선 같은 단계들을 지나며 느리게 완료의 날로 다가가다가 어느 날 끝난 줄도 모르게 일이 마무리된다. 일의 끝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느낀다. 작업이 좋았다는 말 한마디가 적힌 메일을 오래 바라보며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다음 할 일을 바라본다.

그렇게 무언가에 계속해서 집중하는 나날을 빼곡하게 보냈고, 나머지 시간은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며 지냈다. 다이어리의 월간 페이지를 다음 달로 넘기며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적어 둔 그림 옆에 빨간 펜으로 “다했다! 잘했어!” 한마디를 크게 적어 넣었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나는, 미래의 내가 이 걱정의 마음을 돌아볼 날을 얼마나 바랐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월간 다이어리에 가장 큰 글씨로 나에게 칭찬을 보냈다.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그림도 그려 넣으면서.

비로소 ‘오늘은 모처럼 그다지 바쁘지 않은 날’이라는 타이틀로 하루를 시작한 날. 이상하게 몸이 처진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낮아진 건지, 둘 다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싶었다.

비슷한 하루에 안심하는 것도 단 며칠이다. 생각보다 오래 지속이 되는 순간 비슷한 기운들이 똘똘 뭉쳐 버거운 무게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한 달 내내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 앞에서,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처리하면서 보냈다. 한 달만이 아니었다. 꽤 오래전부터 그랬다. 아는 장소에서, 나를 향해 온 일을 해내는 건 프리랜서로서 안정적인 일과겠지만, 나에게 다른 장면들을 부지런히 보여주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에 묶어 두는 건 프리랜서로서 건강한 마음이 아니었다.

늘 차려 먹던 빵과 커피를 생략하고 밖으로 나가기로 다짐한 순간, 왜인지 벌써 마음 한쪽에 창문이 뚫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잘 아는 곳이 아닌, 가본 적이 없는 모든 곳. 지도 앱에 부지런히 체크해 둔 가게들을 살펴보며 도착지를 추려보니 오랜만에 여행의 바람이 분다. 어제만 해도 몰랐지만 오늘 먹고 싶은 것, 도착하기 전에는 모를 장소를 상상하며 이동하는 것.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버스에 오르며 교통카드를 찍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

처음 도착한 카페에서는 세 명의 직원과 빈 테이블들이 나를 반겼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던 장소에 드디어 나를 그려 넣는다. 어디에 앉으면 좋을까. 볕이 많이 드는 창가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고 가만히 서있다가 구석 자리로 옮겼다. 볕이 좋은 테이블에 앉기보다는 이 테이블을 바라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바람이 들려온다. 모르는 곳일수록 미리 자세히 알아보고 가는 나지만, 메뉴판도 제대로 안 보고 덜컥 들어와 버렸다. 잘 모르고 싶고, 그래서 헤매고 싶으니까. 모르는 상태에서 딱 지금의 기분을 내세우고 싶으니까.

테이블에 내가 주문한 커피가 놓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며칠 뒤에 또 와보자.’

몰랐던 장소에서의 하루를, 다음 일과에 비슷하게 넣고자 하는 마음. 그래, 결코 비슷한 하루라는 건 없다고, 그간 단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나는 아주 뒤늦게 지난 나를 떠올렸다. 비록 같은 장소였지만 모두 다 다른 날에 다른 마음으로 일을 마주하며 나의 다음을 만들었던 날들이었다. 이제야 지난 한 달을 부드럽게 보며 오늘의 커피를 홀짝였다.

가고 싶은 장소들을 얼마나 잘 챙기나요?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후로는 동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꼭 긴 이동을 하지 않더라도 낯선 시간을 겪을 수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것 또한 여행처럼 잘 챙겨야 하는 일이었어요. 아주 오랜만에 낯선 카페에 가서 두리번거리고 앉아 있자니, 그제야 숨이 천천히 쉬어지면서 평소 안 하던 생각들이 흘러나옵니다. 그런 순간을 겪을 때면 작고 큰 가게들이, 부지런히 문을 여닫는 상점들이 그저 고맙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을 하며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다음에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봐야지, 다음에는 다른 걸 먹어봐야지 하면서, 가까운 다음을 선명하게 그려봅니다.

임진아
읽고 그리는 삽화가.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 풍의 생각을 쓰고 그립니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며, ‘임진아 페이퍼’라는 이름으로 지류를 선보입니다. 만화 에세이 《오늘의 단어》를 쓰고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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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임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