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커피, 시, 고양이 그리고 손문상과 유진목

손목서가

‘손목서가’는 부산 속의 섬, 영도 바닷가에 있는 서점이다. 서점 이름은 주인 부부인 손문상의 ‘손’과 유진목의 ‘목’에서 따왔다. 유진목 시인은 《연애의 책》, 《식물원》 등의 시집과 산문집 《디스옥타비아》를 펴냈고, 손문상 작가는 30년간 언론사에서 일하며 사진을 찍고 만평을 그렸다.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은 바다 옆에서 만나 바다 옆에 살다가 최근 바다 옆에 서점을 차렸다. 손목 부부를 만날 때면 언제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손목서가’ 역시 영도에 아주 예전부터 있는 공간 같다. 그곳에 수없이 와본 사람처럼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

Interview
손목서가 주인 손문상, 유진목

“사실 책은 내가 열어서 읽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나를 그 세계로 집어 넣어줄 수 없거든요.
그 안에까지 들어가게 하려면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손목서가는 오픈한 지 얼마나 됐나요? 준비 기간이 꽤 길었다고 들었어요.

유진목 8월 25일에 오픈했으니까, 이제 석 달 정도 지났어요.

손문상 4월에 부산 영도로 이사를 와서, 한 달 정도는 이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천천히 고민을 했고요. 본격적인 공사는 5월부터 시작해서 8월까지 넉 달 동안 진행했어요.

유진목 오픈하는 날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백 권이 채 안 됐어요. 카페 메뉴는 직접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 저희가 끓인 글루바인, 그리고 직접 담근 매실이 다였죠.


공사는 손문상 작가님이 직접 진행하셨죠?

손문상 네. 공사는 혼자 한 셈이죠. 철근 세우는 등의 큰 공정은 전문가에게 용역을 줬지만 결국 제가 다 관리하고 감독했어요. 후속 처리도 제가 혼자 했고요. 비용을 절약해야 했거든요. 원래 살림집이었어요. 처음 왔을 때 진목이 빨리 나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어요.

유진목 벽지가 켜켜이 겹쳐 있었어요. 덕지덕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 있는 게 좀 겁이 났어요. 원래 있던 이곳에 내가 잘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손문상 수평 수직이 맞는 곳이 없었고, 천장 뜯어내니까 전기 배관에서 물이 쏟아지기도 했어요.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테라스도 원래 집이었어요. 2층 구조도 달랐고요. 테라스를 만들고 1층에 있던 화장실을 2층으로 올리고, 건물 밖에 있던 계단을 안쪽으로 넣었어요. 텅 비어 있는 땅에 새로 건물을 올리는 일보다 더 복잡했어요. 벽지 뜯는 일이 돌 쌓는 것보다 더 귀찮고 어려운 일 같아요.


서점과 카페를 함께 준비하면서 기대한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유진목 도서관 같은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책을 뽑아서 읽는 공간이요. 그게 제 기대였는데…. 지금 현실은 조용히 책 읽는 분들을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과 그러기 힘든 상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책을 소품처럼 대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 되게 속상해요.

손문상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손목서가가 있는 흰여울길이 관광지다 보니까요.

유진목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문화적인 현상 같기도 해요.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이니까요. 책이라는 건 활자이고 활자를 통해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건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이건 서점과 카페를 겸업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전에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책을 사서 간다.’ 여기까지만 보였지, 그 후의 일은 사실 모르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책을 들고 머물다 가시니까, 책이 소품이나 도구가 되는 모습을 여실히 보게 되는 거죠. 사실 책은 내가 열어서 읽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나를 그 세계로 집어 넣어줄 수 없거든요. 그 안에까지 들어가게 하려면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책 내용을 좀더 부각시키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책 옆에 구절들을 써놓기도 해요. 페이지를 함께 적어놓으면 책을 열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좀더 부지런히 적어놓고 싶은데, 사실 카페 일을 같이 하다 보면 많이 할 수 없어요. 저녁이면 녹초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좀더 많이 적어놓고 싶어요.

그러려면 책을 읽어야 하잖아요.

유진목 그렇죠. 서가에 있는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면 그때는 서점 주인으로서 보람찬데 그렇지 못할 때는 조금 초조해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이 구절을 붙여놓으면 그게 인테리어가 되어버릴까 봐 책과 구절을 조금씩 바꿔가면 좋겠다 생각해요.


작가가 서점을 운영하니까 할 수 있는 고민 같아요.

유진목 작가가 되고 나서 책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 건, 이 책을 쓴 저자들 중에 친구들이 생긴 거예요. 내 친구들은 막 움직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인데 저 책들은 어딘가에서 가만히 있는 거죠. 그리고 저희가 다 비인기 저자들이거든요(웃음). 구석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어요. 저걸 어떻게 알릴 수 있지? 그런 생각을 최근에 처음 해보게 됐죠. 사실 독서라는 게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취향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거였는데, 지금은 누군가를 책 안으로 넣어주고 싶어졌고, 어떤 문 같은 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 고민을 하게 되어서 좋아요?

유진목 책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는 늘 비슷비슷했어요. 좋아하는 장르만 읽었는데, 지금은 다양하게 읽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읽어야 하니까.


‘손목서가’는 시인이 운영하는 서점이니까요. 손님들이 생각하기에 시집 컬렉션이 다른 곳보다 좋을 것 같고, 여기 파는 시집은 주인이 다 읽어봤을 것 같고, 그래서 시집 코너를 눈여겨보게 될 것 같아요.

유진목 제가 시인인데요, 시를 많이 안 읽어요. 다른 장르를 더 많이 읽죠. 다만 시집은 제가 읽지 않은 건 서가에 놓지 않아요. 신간을 빨리빨리 들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손문상 강성은 시인이랑 신해욱 시인 왔을 때, 강성은 시인이 시집 코너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유진목다운 시들만 꽂아놨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유진목 박시하 시인도 서가를 보면서 그랬었는데! 여기 있는 책들은 독자가 편안하게 시로 들어갈 수 있는 시집들이에요. 제가 어떤 소설을 좋아할 때는 ‘아, 딴 사람들은 이 소설 안 좋아할 거 같아.’라는 생각이 자주 들거든요. 그런데 시는 제가 좋아한다면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어요. 시에 있어서는 제가 되게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긴데요, 다른 장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 작가라고 많이 하는데 시인은 왜 시인이라고 더 많이 부를까요?

유진목 그런가요? 아, 시인이라는 말을 시인들이 좋아할걸요(웃음)? 시는 베스트셀러가 될 일도 없고, 장당 원고료를 많이 받을 수도 없어요. 작가 중에서도 가장 돈과 거리가 멀죠. 그래서 좀더 정신적인 것에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겠어.”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어도 쓰겠어.” 하는 거죠.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경우는 있는데 소설가가 시를 쓰진 않거든요. 시는 좀 이상한 장르 같아요. 그러면서 또 시인들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얘기하죠(웃음).

손문상 그런 거 아닐까?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림을 혼자 아틀리에에서 그리는 건, 언젠가 누군가는 내 그림을 읽어낼 거라는 기대 때문일 텐데, 시도 써두면 누군가가 그 시를 읽어서 그 사람이 시를 써온 세계에 대해 알아줄 것이다, 하는 마음?

유진목 그런데 시인들은 그 힘이 되게 미약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미약함 때문에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가지려고 하죠.


어떻게 시인이 되었어요?

유진목 저는 아주 예전부터 시를 썼어요.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미칠 것 같은 마음. 가만히 못 앉아 있겠는 마음.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아픈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사춘기라고 하는 건가? 가끔 그때 생각이 나요. 안절부절못하고 그럴 때 뭔가를 쓰고 있으면 괜찮아졌어요. 내가 생각하는 거를 막 썼어요. 그냥 계속 시를 쓰고 있었어요.


그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낭독회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걸까요?

유진목 어릴 때 돈이 없었거든요.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롯데리아에 갈 때 저는 못 갔어요. 저한테 돈은 ‘없으면 그것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돈이 없다는 건, 내가 콘서트를 경험할 수 없다는 거다.‘ 이런 거였거든요. 애들은 돈이 없잖아요. 입장료 반값이면, 만원이에요. 요새 만원이면 보러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낭독회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유진목 저는 시를 읽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해요. 공연 보는 거랑 비슷해요. 연극 볼 때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잖아요. 영화도 그래서 좋아해요. 화면에 나오는 얘기를 듣는 거잖아요. 2016년에 낭독회를 처음 가보고, 저도 해보고 했는데요, 와 정말 좋았어요. 사람들에게 “저희가 읽는 게 시예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어떤 문장이 소리로 흘러가는 걸 들으면서 ‘어, 저런 생각은 나도 해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까 신기하네.’ 같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는 거예요. 여기서는 그게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현실에서 뚝 떨어져 나오는 기분을 느끼고 가시는 거 같아요. 제가 사회를 보니까 앞자리에 앉아 있거든요. 2층에서 해가 지는 걸 처음 봤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낭독회 중간중간 고개 돌려서 바다 보시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손문상 작가님은 그림을 전공하셨어요?

손문상 네, 미대를 나왔죠. 중고등학교 때 곧잘 그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는 몰랐어요. 오히려 문학이나 음악에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반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미대를 졸업해서는 전업 화가가 되기보다는 언론사 종군 기자 같은 걸 하고 싶었죠. 부전공으로 사진을 했거든요.

 

엽서로 만든 사진들은 언제 찍으신 거예요?

손문상 1989년에서 1990년 정도일 거예요. 제가 지역 신문에서 첫 언론사 생활 시작할 때 찍은 사진들이에요. 필름을 아직 가지고 있어요. 묵혀둔 건데 결국 이런 것들은 누군가가 발견하고 읽어주게 되더라고요. 진목이 사진들을 보더니 이걸로 엽서를 만들자고 했죠.

유진목 저 사진을 계란 과자 상자에 막 넣어둔 거예요(웃음). 꺼내 보면서 ‘이걸 언젠가 반드시 뭐에 쓰겠다.’ 했어요. 사진에 이야기가 있어서 좋아요.

 

두 분은 ‘손목서가’를 운영해서 좋으세요?

손문상 하고 싶은 걸 하는 과정 같아요. 이걸 통해서 생업이 안정되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사진도 찍고요. 작업량을 늘리고 싶은 욕구가 평생 있었어요.

유진목 우리 두 사람이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아주아주 신기해요. 기특한 기분?

 

글 쓸 때와는 다른?

유진목 네. 글을 써서는 우리 두 사람을 돌보기 힘들거든요. 귤을 이렇게 펑펑 먹은 적이 없어요(웃음). 친구들한테도 사주고요. 글 쓰는 일은 남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글을 보고 좋아해주시는 분이 열 분이든 스무 분이든 한 분이든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지 저에게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가 좋아서 쓰잖아요. 저는 아니에요. 그래서 많이 못 쓰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느 분이 어떤 시가 되게 좋았다고 하면, 저는 그 시 쓸 때 힘들던 게 생각나요. 나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좋아하시는구나.

어쩌면 이곳도 그런 것 같아요.

유진목 최근에 비바람이 엄청 분 날이 있었어요. 그날 오픈 이래로 처음 손님이 딱 한 명 왔어요. 그날 저는 너무너무 좋았어요. 신간을 살펴보고 책을 펼쳐서 읽고 우리도 커피를 내려 앉아서 마셔보고…. 여기 오신 분들이 “너무 좋으시죠?” 하면 그게 무슨 느낌인지 사실 잘 몰랐는데, 이제는 왜 좋다고 하시는지 알겠어요. 그날이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환영받는 캐릭터가 아닌데 이 공간이 그런 걸 해주는 것 같아요. ‘언제 살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환영을 받을까. 다 ‘손목서가’ 덕분이다. 우리도 최대한 환영해드리자.’라고 생각해요.

 

두 분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요.

손문상 언제나 제 마음속에 있는 작가는 조지 오웰과 김수영이죠. 그 두사람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통해 사회에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 수치심이나 염치 같은 걸 갖고 있던 작가들이에요. 지식을 귀히 여기고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게 사유하던 사람들이에요. 대학 1, 2학년 때 그림을 별로 안 그리고 시집을 엄청 읽었어요. ‘나도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잠깐 한 것도 그때였죠.

 

계란 과자 상자 잘 뒤져봐요. 습작 시도 나올 거 같아요.

유진목 제주도에서 쓴 시가 있어요. “나는 저녁을 거르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렸다(웃음).”

손문상 <침묵>이란 시인데, “섬의 기슭을 타고 구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저녁을 거르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렸다.” 뭐 그런 시예요. 뭘 하나 끄적여봤죠. 어디다 내밀기는 싫은.

유진목 저는 지금 생각나는 작가는 이창동, 그리고 미야모토 테루예요. 이창동 감독님은 스크립터 할 때 현장에서 뵙기도 했고, 존경하는 분이에요. 미야모토 테루는, 제가 서울에서 너무너무 힘든 시절을 보내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일산 변두리로 나가 산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제가 천만원을 가지고 있었어요. 월세로 낼 수 있는 건 55만원이었고요.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은 계속 천만원이고, 집값은 오르고, 그래서 이사를 세 차례 했는데, 같은 동네 안에서 점점 평수가 줄고 누추해지는 거예요. 마지막에 살던 합정동 집은 정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었어요. 즐거운 젊은이들 사이에서 힘들게 지내다가 일산 오피스텔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 이사를 간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깨끗한 욕실이 있는 쾌적한 곳에서 지내고 싶다. 제가 《디스옥타비아》에도 쓴 이야기인데요, 보증금이 남아서 좋은 책상이랑 좋은 매트리스도 살 수 있었거든요. 이사 첫날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워서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거기 어떤 구절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펑펑 운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문장을 문신으로 새겼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그 문장이 뭐예요?

유진목 그 문장이 여기 서점에도 쓰여 있어요.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야 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데, 소설에는 나와요. 딸을 배웅하면서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힘들면 언제든 참지 말고 돌아와라. 그때는 엄마랑 같이 살자.” 그걸 읽으면서 눈물이 탁 터진 거예요. 누군가가 ‘나한테 오면 돼. 참지 말고 돌아오면 돼.’ 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그럴 데가 없이 막 돌아다니던 때니까요. 그 문장을 문신으로 새기고 열심히 글을 썼어요. 등단하기 전이었거든요. 우리 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사실 《환상의 빛》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잠시 품절이에요(웃음). 그런데 심지어 제가 그 자리에 다른 책을 꽂지 않고 자리를 그대로 비워놨어요.

손목서가

A. 부산시 영도구 흰여울길 307
O. 일층은 서점, 이층은 카페. 공연과 낭독회를 비정기적으로 연다.
오전 열한 시에 문을 열고 일몰 후 완전히 어두워지면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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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