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으로의 여행

Travel to the Unknown Island

평범한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 나에겐 여행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디론가 떠나 새로운 것을 찾아보라는 심리적인 화학반응 같은 것 아닐까. 번잡한 대도시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 산 지도 5년째. 신기하기만 하던 이곳의 삶에 조금씩 무덤덤해지던 나는 조용한 곳에서 나만의 휴식을 가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말레이시아 지도를 훑어보다 동해안에 위치한 외딴 섬에 시선이 머물렀다. 리조트라고는 고작 두 곳이 전부인,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산호섬의 이름은 ‘풀라우 라와Pulau Rawa’였다. 느리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라와 섬만큼 적합한 곳은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인 만큼, 그곳으로 가기는 쉽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메르싱Mersing까지 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데, 그곳에서 다시 라와섬으로 가는 배 시간에 맞추려면 무조건 야간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 혼자 야간 버스를 타는 게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미지의 섬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터라 바로 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샀다. 야간 버스를 타고 메르싱으로 향하는 동안 다른 여행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동남아를 누비는 배낭여행자가 된 기분을 만끽했다.

밤 11시가 넘어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무렵, 목적지인 메르싱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고요한 버스터미널에서 여행자들을 맞아준 건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이었다. 졸음을 참을 수 없던 나는 가장 가까운 호스텔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아오자 비릿한 바다 냄새와 함께 소박한 어촌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면 화려하게 빛나는 쌍둥이 빌딩을 비롯해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 불을 밝히는 빌딩의 도시 쿠알라룸푸르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항구에는 말레이시아 동해안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이른 새벽부터 티오만 섬Pulau Tioman행 배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목적지가 다른 나는 마침 라와 섬으로 얼음을 운반 중인 스피드 보트에 올라탔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를 튀어 오르듯 달리는 보트 안에서 나는 프라이팬 위의 새우가 된 기분이었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라와 섬의 하얀 모래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지 꼬박 12시간 만이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내가 머물게 된 곳은 가족이 운영한다는 작은 리조트였다. 새하얀 모래 위에 세워진 리조트는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최고급 시설은 아니어도 그들이 자신들의 리조트를, 이곳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소품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현지인이 대부분일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라와 섬을 찾은 여행객들의 국적이 꽤나 다양해서 말레이시아가 아닌 유럽의 어느 섬에 와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모래성을 쌓는 일본인 가족들, 야자수에 걸린 그네를 타는 꼬마아이,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서양인 부부, 바다에서 흘러온 산호를 줍는 연인들과 바다 위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까지. 마치 잘 그려진 그림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일정과 계획이 없는 여행에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조용한 휴가를 계획했지만 언제나 시간과 일정에 쫓겨 종종거리기 일쑤이던 나는 이곳의 여유로움에 한편 당황스러운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장비를 대여해주기는 했지만 먼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스노클링 투어나 스킨스쿠버 같은 역동적인 레저는 라와 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에 온 현실이 꿈처럼 느껴지다가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다른 여행객들을 곁눈질하는 나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유로운 여행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리조트 주변의 해먹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지겨워지면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수영을 하다 지치면 다시 해먹에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거나, 비치발리볼 하는 다른 여행자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라와 섬의 평온함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섬에서 나와 친구가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리조트의 마스코트 강아지 ‘데이지’였다. 약간은 통통한 몸매를 자랑하던 그녀는 이곳 라와 섬의 자유 부인이었다. 해변에서 머무는 객들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매트에 누워 원래 자기 자리인 양 뒹굴기도 하고, 여행객들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우아하게 헤엄을 치기도 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여행객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는데, 데이지의 실제 주인은 그녀가 살이 오르는 모습이 심히 걱정이 되었는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팻팻데이지fatfatdaisy’라고 설정해놓을 정도였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새 마지막 날이었다. 떠나기 전, 나는 이 섬의 모든 곳을 꼼꼼히 담아두기로 했다. 언제라도 이곳을 꺼내볼 수 있도록 카메라의 프레임이 아닌 오감을 통해 기억하고 싶었다. 따뜻한 열대의 바람과 화장 분처럼 고운 모래, 다양한 모양의 산호와 간지럼을 태우던 물고기들까지. 라와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섬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섬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미지의 섬으로의 여행을 마친 후 나의 마음속에도 같은 이름의 섬이 생겼다. 그곳에서 느낀 설렘과 즐거움, 평화로움 같은 감정과 기억들이 모여 내면의 섬을 만든 것 같다. 일상에서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 그곳의 해변을 거니는 상상을 하곤 한다. 마치 명상이라도 한 것처럼 라와 섬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바빠서 정신이 없는 사이에는 ‘라와스럽게’라는 영문 모를 단어를 내뱉고는 슬그머니 웃기도 했다. 라와 섬을 여행하면서 나는 또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찾는, 다른 방식의 여행을 배웠다. 

라와 섬

www.alangsrawa.com

라와 섬은 말레이시아 동쪽 해안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열대 물고기와 산호초, 매혹적인 동굴을 함께 품은 이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안 도시 메르싱을 거쳐야 한다. 인근에 있는 티오만 섬에 비해 규모가 작은 만큼 보다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Alang’s rawa‘는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숙소로 아담하고 깔끔한 시설을 자랑한다. 온라인으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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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