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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말하는 네 가지 방식
‘미술품을 진열·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미술박물관의 약칭. 회화·조각·공예품 등 문화유산을 수집하여 감상, 계몽, 연구를 위해 전시한다.’ 미술관의 사전적 의미다. 그동안 미술관이라 하면 무언가를 전시하는 곳, 그 자체로만 생각해왔다. 미술관을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활기차고 적극적이게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간단한 질문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시와 함께하는 곳
윤동주문학관
윤동주문학관은 2012년 7월에 개관했다. 전시장으로 발길을 내디딜 때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정지용 시인의 글귀다.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우리는 그를 가슴에 묻었다. 그의 삶은 처연했고, 처절했고, 구슬펐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토록 거친 시대에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를 적어 내려간 청년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종로구는 윤동주문학관을 세우려는 과정에서 부지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난항을 겪었지만, 청운아파트가 철거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수도가압장을 활용하기로 했다.
작고 낡았지만 하얀 건물 외벽이 반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시관 내부에는 윤동주가 살아온 자취를 따라 그의 사진, 육필 원고 그리고 시가 놓여있다. 우물목판에는 그의 시 <자화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우물 안쪽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대화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윤동주, <자화상> 중에서
두 번째 전시실에는 하늘이 뻥 뚫려있어 낮엔 햇살이, 밤에는 별빛이 쉬어간다. 그야말로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들렀다 가는 공간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장소에서는 그와의 장면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있다.
A.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O. 10:00~18:00, 월요일 휴관
역사와 함께하는 곳
남서울생활미술관
정식 명칭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본래 이곳은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구한 말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고종황제는 중립국 노선을 택하고자 벨기에와 교류하게 된다. 벨기에가 조선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사마귀’만 한 나라인데, 당당하게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청국과 서양 외교 관리들은 특히나 벨기에가 그간 축적해온 외세 침탈 저지책과 중립외교책에 관심을 보였고, 벨기에가 수교 교섭을 제안했을 때, 곧바로 응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한국은행과 서울역 등의 신고전주의 건축물은 식민지배라는 격동적인 근대사의 증거가 되는 중요한 유산이라는 이유로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구 벨기에영사관은 무관심 속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도심재개발사업으로 회현동에서 남현동으로 해체·이전되었다.
열강 세력과 잦은 외침에도 ‘중립국’으로 나아가고자 외교적 연대를 이루었던 의미는 잊혀지고 만 것이다. 실제로 《한성순보》 논설에서 ‘국외局外’라는 개념을 나라끼리 전쟁할 때 관계하지 않는 것으로 설정하기도 하였으며, 대대적으로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눈여겨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서울생활미술관 건축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면, 미술관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에 오묘한 기분이 밀려들기도 한다. 미술관 내부의 전시가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남서울생활미술관에는 건물 자체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다.
A.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O. 평일 10:00~20:00, 주말 10:00~18:00, 월요일 휴관
건축과 함께하는 곳
뮤지엄 산
뮤지엄 산Museum SAN은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이라는 자연적 인상을 통해 현재의 독특한 건축물이 설계되었다. ‘산상山上’이라는 고유의 지형과도 잘 어우러지며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단순히 무언가를 전시하는 공간을 위해 하나의 건물을 짓기보다, 주변 환경과의 적합한 균형을 모색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 패랭이꽃, 하얀 자작나무길, 자갈길, 하늘까지 비추는 큰 연못과 사계절을 껴안은 높은 창문까지 뮤지엄 산에 있는 모두가 그렇다.
뮤지엄 산을 설계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말했다. “이곳은 아주 보기 드문 땅이었기에 여기에 주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주입식 교육 속에서 활기를 잃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살아갈 힘(백 살까지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기에 그저 조용한 상자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임스터렐’관은 그중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사물을 인식하기 위한 도구이며 조연이었던 ‘빛’을 작업의 주연으로 끌어올렸다. 빛을 통해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누리고, 그것으로 우리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기회를 준다. 제임스터렐관은 오전 10시 30분부터 30분 단위로 입장할 수 있으며 28명의 인원 제한이 있다.
A.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O. 10:30~18:00, 월요일 휴관
예술가와 함께하는 곳
아르코미술관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은 오랜 빨간 벽돌의 외형에서부터 차분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본래 덕수병원이었던 건물을 미술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임차하여 개시하였고, 김수근 건축가에 의해 재건립되었다. 국내에 미술관이 부족하던 1980년대에 미술회관은 각종 미술단체나 개인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공간을 활용했다. 후반부터는 회관 내에서 자체적으로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활동을 통하여 1990년대 말에는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예술 계통에서 미술관의 역할과 책임을 돌아보고 전문성을 강화한 것이다.
아르코미술관은 한국의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는 ‘대표작가전’과 ‘중진작가시리즈’를 비롯하여, 국내외 실험적인 예술작품의 관련 주제를 되새겨보는 ‘주제기획전’과 ‘국제교류전’을 다루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는 독립 큐레이터를 지원하는 전시도 선보였다. 게다가 젊은 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인사미술공간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부대공간을 운영해왔다.
전시는 일종의 기록이다. 당대 어떤 흐름 위에서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어떤 표현 기법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관객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르코미술관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문제에 한계점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이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A. 서울시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O. 11:00~19:00, 월요일 휴관
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