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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진·이경철 — 대룡마을 그 집
여기는 ‘부산시 기장군 대룡마을 그 집’이라는 주소만으로도 택배가 도착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집이다. 허벅지보다 낮은 작은 나무 문을 열면 한옥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닌 집이 있고, 지붕을 타고 넘는 고양이도 볼 수 있다. ‘그 집’을 감싼 풍경은 조금도 급할 게 없다는 듯 가만하고 유유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집과 함께 살아간다는, 이곳과 함께 늙어간다는 모자를 만났다. 대룡마을 그 집은 안주인 여진 씨가 그려온, 그 언젠가의 미래의 기억이었다.
이 집에 실제로 오다니! EBS <건축탐구 집>에서 보고 집이 참 독특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 자그마한 대문 안에 집이 다섯 채, 마당이 세 개라고요.
여진 저희 집이 엄청 특별한 건 아닌데, 이렇게 관심 가져주실 때마다 의아하고 신기해요(웃음). 여기는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대룡마을 그 집’이에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시는데요. 이사 올 때 모습 그대로 둔 채 불편한 부분만 보수하면서 벌써 10년째 지내고 있어요.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고쳐왔고, 특히 우리 아들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투입되고 있죠(웃음).
경철 엄마가 부르시면 긴장돼요(웃음).
구조가 독특해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양옥의 형태인데, 다른 집은 한옥으로 구성돼 있네요?
여진 여기도 원래는 한옥이었다고 해요. 소가 모여 있던 축사라고 들었죠. 옛날에는 소가 귀하니까 사람 바로 옆에서 같이 살면 잘 산다는 속설이 있었대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 점점 낡아지니까 원래 집 주인의 자녀분이 양옥으로 개조했다고 해요. 한옥의 형태와 구조는 유지한 채 재료만 양식으로 바꾼 거죠.
생활은 보통 양옥 쪽에서 하세요?
여진 공간마다 역할이 있는데요. 침실은 계절에 따라 바뀌어요. 한옥이 워낙 시원하니까 날이 따듯해지면 한옥으로 옮기죠.
경철 공간을 한번 쭉 소개해 드릴게요. 저희 집 구조는 거의 모든 게 있던 그대로인데… 한옥부터 가보실래요?
(밖으로 나와 한옥으로 향한다.) 이게 툇마루라는 거군요. 한옥에 가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집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경철 툇마루도 서까래도 전부 있던 그대로예요. 한옥 본채는 세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여름용 침실과 어머니 사무실도 이쪽이죠. 이 안에 있는 물건은 전부 증조할머니가 사용하시던 것들이에요.
여진 이 동네가 물이 많은 지역인지 지하에 지네가 좀 많거든요. 아무리 약을 쳐도 양옥에는 지네가 계속 나타나는데요. 한옥 쪽엔 없어요. 바닥에서 떠 있는 구조라 그런가, 하고 추측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날씨가 너무 더워지거나 벌레가 많아지면 한옥으로 들어와요. 한옥에도 물론 벌레는 있지만 유해한 벌레가 없거든요. 참 신기하죠?
그러게요, 그것도 조상의 지혜였을까요. 이 앞마당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네요. 징검다리도 있고, 나무도 잘 손질되어 있어요. 안쪽 마당은 텃밭인가요?
경철 마당도 분위기가 조금 다르죠? 엄청 신경 써서 가꾸는 건 아니지만, 마당 일은 조금만 소홀해져도 티가 나요. 일주일만 게을러져도 잡초가 엄청나게 자라거든요. 그래서 매주 한 번씩 잡초를 뽑고, 나무도 다듬어요.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유튜브나 책을 참고해서 해나가고 있죠. 저쪽 마당은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채소들이 너무 잘 자라서 곤란할 정도인데, 채소는 웬만하면 자급자족해서 살고 있어요. 엄마가 요리 준비하시면서 “그것 좀 뽑아 와.” 하시면 마당에서 뽑아 요리해 먹는 거죠. 거의 모든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요.
마트에서 보던 채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싱싱하네요. 저 마루 아래 있는 나무는 혹시 장작이에요?
경철 네. 이 집은 들어올 때부터 바닥 난방이 없었고, 여전히 없어요. 굳이 공사하고 싶진 않아서 난방 없이 10년을 살고 있죠. 보통 벽난로를 때는데, 장작은 저희가 직접 패거나 사 와서 관리하고 있어요. 예쁘게 생긴 게 사 온 장작, 좀 못나고 울퉁불퉁한 것들이 직접 팬 장작이에요.
장작 사이사이 고양이들이 숨어 있네요(웃음).
여진 이 집은 희한하게 동물이 자주 들러요. 특히 다친 애들이요. 이 얘길 들으시면 제가 드라마를 쓰는 줄 아실 텐데(웃음) 한번은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 고양이를 물어다가 집 앞에 둔 적이 있어요. 추운 새벽이었는데 죽은 것 같더라고요. 몸이 빳빳해져 있었죠. 묻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수건을 가지고 와서 몸을 감쌌거든요. 근데 어딘가 꿈틀한 것 같은 거예요. 분명히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는 따듯한 물로 닦아주고 마사지도 해주었더니, 글쎄 눈을 뜨더라고요. 기쁘고 반가워서 그 길로 병원에 데려갔지만 선천적인 문제로 오래 살 순 없다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가는 길은 평안하게 보내주고 싶어서 그대로 데려와 집에서 보살폈어요. 결국 이틀 정도 살다 아주 편안한 얼굴로 떠났죠. 추운 새벽에 길가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예쁘게 눈을 감아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근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매일 어미 고양이가 와서 새끼 고양이 안부를 궁금해했다는 거예요. 묻어주기 전에는 문 앞에 두고 이리 와서 보라고, 마지막 인사를 해주라고 했는데 경계하더라고요. 제가 들어가고 나니까 문 앞에 앉아서는 가만히 이쪽을 한참 보다가 갔어요. 어미랑 새끼가 인사를 나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 이야기는 들어가서 할까요(웃음)?
(양옥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동물 이야기, 더 듣고 싶어요.
여진 여기 오가는 고양이가 참 많은데요. 어느 날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나서 바깥으로 나가 봤더니 두꺼비 한 마리를 둘러싸고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야옹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녀석들을 쫓아내고 두꺼비를 구해줬는데, 얘는 집 안으로 들일 수가 없어서 물도 뿌려주고 지켜봐 줬거든요. 제가 이 자릴 뜨면 또 고양이들이 올 것 같아서요. “여기 오면 먹이가 될 거야, 이쪽으로는 오지 마. 얼른 집으로 가렴.” 하고 옆에 계속 앉아서 지켜봤는데, 그다음부터는 이 두꺼비가 매일 그 시각 저희 집 앞에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오후 5시면 제가 구해준 돌 위에 앉아 빤히 집을 보고 있어요. 그럼 저는 문을 열고 나가서 인사도 하고 말도 걸고 그러죠. 이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수개월을 매일 찾아오곤 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1년에 한두 번쯤 오곤 하죠. 이제 자주 오지 않으니까 그때 걔가 맞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데요. 한번은 사진을 찍어서 그때 찍어둔 사진과 비교를 해봤더니 등 무늬가 똑같더라고요.
전래동화 같아요(웃음). 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이네요. 누구나 한옥살이에 로망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됐어요?
여진 수첩에 항상 그렸어요. 만 번쯤 소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끊임없이 그리다 보면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대룡마을엔 다른 집을 보러 왔는데, 이 집이 눈에 띄어서 혹시 이 집은 안 파는지 물어봤어요. 이 집도 매물로 나온 적이 있대요. 근데 아무도 안 보러 와서 거둬들였다고 하더라고요. 알아보니 생각보다 집값이 비쌌는데, 고민도 하지 않고 원래 살던 집을 내놨어요. 아침 10시에 내놨는데 오후 2시에 팔리더라고요. 이 집을 사라는 계시처럼 느껴졌죠(웃음). 저는 ‘미래의 기억’을 믿어요.
미래의 기억이요?
여진 단순하게 희망하거나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 가는 기억이요. 미래의 기억을 만들고, 그 미래로 가기 위해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항상 생각하는 거죠.
너무 좋은걸요. 지금도 미래의 기억이 있나요?
여진 그럼요. 미래에 저는 변호사가 되어 있을 거예요. 지금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고 있죠. 변호사 시험을 쳐서 변호사가 되면, 판사 시험도 볼 거예요. 근데 판사직에는 정년이 있잖아요. 제 나이로 시간 계산을 해보면 임용받고 6개월 만에 정년퇴직할 것 같지만… 어쨌든 미래의 기억에 가까이 가기 위해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법관이 되고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피아노 학원에 갈 거예요. 노년에 피아노를 배워서 이 집에서 연주하는 게 먼 훗날 제 미래의 기억이에요.
법관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갑자기 전향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닐 것 같은데, 계기가 있어요?
여진 10년 전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저는 공부하는 게 제일 좋아서 의대에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가난해지는 게 겁이 났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되고 회사 대표이사직까지 지냈거든요. 그 명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게 겁나더라고요. 제가 아무것도 안 될까 봐, 이 명함이 없어지면 사람들한테 존재감이 지워질까 봐. 좋은 데서 밥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살아왔는데 누리던 게 없어질까 봐 무서웠던 거죠.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근데요, 10년 후에 지난날을 돌아보니까 ‘그래서 뭐가 남았지?’ 싶었어요. 좋은 차 타려고 미친 듯이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더 늦으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뽀대’ 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게 ‘사’ 자 들어간 직업을 가져보자는 거였어요(웃음).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다가 규칙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 법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선박에서는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여진 선주감독관 일 했다고 얘기하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단 배를 고치는 일이에요. 보통 유조선이나 대형 크루즈인데요. 선박이 완성돼 인도되고 나면 보증 기간 내 생기는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일을 했죠. 선박의 엔진 문제부터 거주구 화장실 고치는 것까지 총망라했어요. 원래 담당은 거주구인데, 오래 일하다 보니까 관련 내용을 거의 다 알게 돼서 모든 부분의 A/S를 진행했죠.
집 이야기를 좀더 해볼게요. 미래의 기억이 왜 한옥이었어요?
여진 아파트가 싫었어요. 자고 있는데 제 머리 위에서 누가 오줌 싸는 것도 싫고, 제가 언제 드나드는지 옆집 사람이 아는 것도 싫었죠. 다 같은 방향으로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 것도 싫었어요. 매일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땅 밟고 싶어.” 그 얘기만 했죠. 근데, 이 집을 사고도 바로 들어오지 못했어요.
왜요?
여진 이사를 와야 하는데 집주인이 집을 안 비워주시는 거예요. 2월에 이사 준비를 마쳤는데 내년 9월에 비워주신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제사를 모셔야 나가지.” 그러시는 거예요. 제사를 안 모시고 나가면 귀신들이 찾아온다고요.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왔는데, 그 이후로도 전 주인 내외가 자주 오셨어요. 어르신들이 바로 뒷집으로 이사하셨거든요. 들락거리시면서 이 나무는 자르면 안 되고, 기와집 뒤에 낙엽이 쌓이면 안 되니까 어서 치워라, 하고 자주 찾아오셨죠. 하루는 밖에 나갔다 왔는데 빨래가 걷어져 있더라고요. 비가 내릴 것 같아 치워두셨대요(웃음). 한밤중에도 찾아오시곤 했어요. 밤이니까 얼른 불 끄라면서요. 타이머가 맞춰져 있어서 저절로 꺼진다고 말씀드려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얼른 불 꺼라.” 하세요(웃음). 대룡마을이 이렇게 재미있어요. 처음엔 적응하는 게 낯설었는데, 이제는 마을 분들을 다 알고 지내니까 친근하게 느껴져요. 한옥살이나 땅 밟고 사는 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적응할 수 있어요. 어떻게 살지도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마을 분들이랑 지내는 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 주거든요.
대룡마을은 부산의 도시와도 확실히 다르네요. 조용하고, 탁 트였고….
여진 도시에 있을 땐 생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있으면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날씨를 생각할 때요. 시골에선 제일 중요한 게 날씨예요. 빨래만 생각해도 그렇거든요.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랑 햇볕이 말려준 빨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어떻게 달라요?
여진 일단은 까슬까슬해요. 햇볕이 모든 걸 한 번 소진시키고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느낌이에요.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도 부드럽고 좋지만, 그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햇볕에 말리면 자연이 다림질도 해주는 것 같아요 빨래는 날씨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중요한데요. 흰 빨래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새가 똥을 싸거든요(웃음). 그런 사소한 것에 제 운을 맡기게 됐어요. 흰 수건을 너는 날엔 주문을 거는 거예요. ‘오늘 새가 똥을 안 싸면 나는 내일 시험을 잘 칠 거야.’ 이런 게 산다는 느낌이에요. 매일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지내게 되거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흰나비를 보고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겠네.’ 하고 좋은 소식을 종일 기다리는 거예요.
매일 좋은 걸 찾아 나가는 삶 같기도 해요. 도심 멀리서 지내는 건 불편하지 않으세요? 여기까지 오면서 멀구나, 깊숙하구나, 계속 생각했어요.
여진 그래요? 저희는 여기서 해운대도 가깝다고 생각해요. 차 타고 30-40분 정도 걸리는데, 그 정도면 이웃 마을이죠(웃음). 전부 우리 생활권이거든요. 대룡마을은 시골이지만, 그것 외에 그리 특별한 동네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부산 근교의 시골 마을? 대룡마을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동네래요. 어느 한 분을 시작으로, 삼삼오오 예술가들이 모인 건데 그대로 정체돼서 발달되지 않은 채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이 마을보다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유난히 마을에 애정이 강한 게 특별하다고 봐요. 그래서 좀더 잘 가꾸려는 면모가 있죠. 근데 그 방법이 개발이 아니라 유지라는 게 마음에 들고요. 도로를 넓히자는 제안이 와도 반대가 심해요. ‘내버려 두자.’ 그게 이 마을의 기본 마인드거든요.
부산에 오기 전엔 프랑스에서 지내셨다고 들었어요.
여진 중학교 졸업하면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거기서 16년 정도 살다가 부산으로 돌아온 거예요. 아들도 프랑스에서 태어났죠. 굳이 한국으로 옮긴 게 아니라 ‘돌아온다.’는 느낌이었어요. 프랑스에서도 참 즐겁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현타’가 오더라고요. 여기선 얼마를 살든 이방인일 수밖에 없겠다는 느낌이었죠. 아무도 저를 차별하지 않는데 외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게, 그걸로 주목받는 게 싫었던 거예요. 한국에 오면 아무도 저를 주목하지 않잖아요. 프랑스에서는 분명히 좋은 집에서 사는 느낌이었어요. 지금 삶은…확실히 가족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과 살아간다는 기분이요.
한국 중에서도 왜 부산이었어요?
여진 여기서 떠났으니까요. 저, 부산 사람이거든요. 제가 프랑스를 좋아한 이유 중 하나가 언제 돌아가도 늘 그 모습 그대로라는 거였어요. 업무 차 여러 나라를 떠돌다 돌아가도 모든 게 그대로였죠. 길도, 건물도, 사람도요. 그래서 굳이 한옥을 고른 것도 있어요. 한옥이라고 하면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잖아요. 그만큼 원형이 유지되는 동네일 확률도 높고요. 대룡마을에서 이 집을 처음 발견했을 때, 집이 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저한테 “괜찮아.” 그러더라고요. 보자마자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죠. 여기다, 미래의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 하고요.
한옥은 양옥과 확실히 다른 점이 많잖아요.
여진 살다 보면 불편한 게 점점 사라져요. 불편한 게 생겨서 보수하는 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데 결국 마지막엔 이런 질문이 남더라고요. “굳이 왜?”
불편함에도 익숙해지는 거네요.
여진 맞아요. 처음엔 추위가 너무 불편해서 외풍이 들지 않도록 고치고 싶었는데요. 지금은 너무 따듯하면 갑갑하다는 기분이 들어요. 약간 서늘하고 코가 시릴 정도의 기온이어야 잠이 잘 오더라고요. 숨통이 트인다는 기분이랄까요. 집에 바람 드는 게 싫다는 감정에서 ‘공기가 통한다.’가 된 거죠. 몸도 환경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아드님은 계속 도시에 산 건데, 한옥으로 오는 게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경철 불편했죠. 근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이 집을 보자마자 ‘너무 좋다. 예쁘다.’라는 생각이 먼저였거든요. 툇마루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불편함은 그런 풍경이 익숙해진 다음부터였죠. 추위와 벌레, 그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간 잘 정비된 아파트에서 불편한 거 없이 살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어야 하는 집으로 오니까 손봐야 할 게 많더라고요. 처음엔 여기서 잘 때도 무서웠어요. 잠귀가 밝은 편인데, 고양이들이 한밤중에 지붕 위를 막 뛰어다니는 소리가 너무 무섭더라고요. 결코 사뿐사뿐 걷지 않아요. 사람이 막 달려가는 것 같아요. 고양이인 걸 아는데도 매일 놀라게 되더라고요.
여진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는데 그게 달빛에 비치면 그 또한 무섭고요. 도시에서 느껴보지 않은 것들이 처음엔 다 공포였어요. 소리도, 그림자도요.
경철 그런 걸 다 지나고 나니까 조그마한 새로운 것들이 보였어요. 동물 같은 거.
여진 맞아요. 우리는 여기서 다른 사람이 못 사는 시간을 좀더 사는 느낌이에요.
다른 사람이 못 사는 시간을 좀더 산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여진 똑같이 24시간을 살아도 우리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도심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지는 않잖아요. 뭔가를 심고, 따고, 고쳐 나가고…. 사실 이것도 전부 노동인데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집이랑 같이 살고 있다, 함께 늙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고요. 비가 온다고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아니라 물방울을 보면서 ‘여기 떨어지는 물방울보다 저기 떨어지는 물방울이 더 예뻐.’ 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경철 계절마다 달라지는 냄새와 소리를 느끼는 게 좋아요. 어느 순간, 이름은 몰라도 소리는 익숙한 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요. 그러면 ‘얘가 우네, 곧 겨울이 끝나겠네.’ 싶어요. 봄에만 우는 벌레거든요.
좀더 자연에 가까운 시간인 거네요.
경철 맞아요. 저는 도시에 살 때 하늘을 잘 안 봤어요. 굳이 고개를 들어서 봐야만 하잖아요. 근데, 여기는 고층 건물이 없으니까 굳이 안 보고 싶어도 볼 수밖에 없어요. 눈앞에 하늘이 펼쳐지는 거죠. 도시에 살 때는 함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어려웠어요. 조금만 돌려도 사람들이랑 눈이 마주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도 많고요. 근데 여기선 제가 어디를 쳐다봐도 자유로워요.
여러 나라에서 지낸 만큼 부산만의 매력을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여진 부산은 정말 다 있어요. 삶의 도시예요. 산, 바다, 강… 자연환경도 다 있고 인정도 있죠. 아, 사투리가 좀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그럴 뿐 부산 사람들은 진심이 따듯해요. 그래서인지 서울 가면 좀 서운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요?
여진 아주 단적인 예지만, 저희가 서울에 간다고 해서 서울 사는 친척이 마중 나오는 일은 없는데요. 저희는 친척이 온다고 하면 공항까지 꼭 마중 가고 배웅도 해주거든요. 부산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래요. 누군가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가까운 역이라도 나가서 맞이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겉으로는 “마, 됐다!” 하는데 속내는 아닌 거죠.
왜 그런 성격이 생긴 걸까요?
여진 항구 도시라 그런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어도 베풀면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던 게 아닐까요? 저는 프랑스에서도 마르세유에 오래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도 그랬어요.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익숙해서 붙잡고 싶은 마음에 뭔가를 좀더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서울은 굳이 내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모여들잖아요. 굳이 뭔가를 더 했다가는 오히려 너무 모여들어서 귀찮아지는 생활이죠.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부산은 산, 바다, 강, 더불어 바람도 많죠.
여진 맞아요. 그래서 막힘이 없어요. 사람들이 시원시원하거든요. 하려면 하고, 말면 마는 마인드죠. 부는 바람을 무슨 수로 막겠어요.
명쾌하네요(웃음). 지역마다 성격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기후나 계절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여진 부산 사람들은 좀 많이 베푸는 편이에요. 물건 하나를 사도 옆에 있는 사람한테 “이거 좋네. 니도 하나 해라.” 하고는 두 개를 사는 식이죠. 그래서인지 부산은 누구랑 대화하든 소통이 쉬워요. 낯선 사람한테 경계심도 덜하고요.
경철 그런 성격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저희 세대에서도 그래요. 제 아래 세대는 어떨지 몰라도, 제 또래만 해도 그런 성격이 분명히 있거든요. 돌아다니다가 친구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물건이 있으면 필요하냐고 물어보지도 않아요. “니 써라.” 하고 사서 갖다주는 식이죠. 그런다고 해서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어요.
여진 ‘왜 사주지?’ 같은 생각은 안 해요. “좋다, 비싼 거 맞제?” 하면 몰라도(웃음). 부산 사람들에겐 계산 없는 배려심이 있어요.
저도 선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누군가는 그게 부담스럽다고 하거든요. 그럼 주춤거리게 돼요.
여진 그러다 보면 선물하기도 뭐하죠? 부산은 그런 거 없어요(웃음). 저희는 서울 가면 더치페이가 그렇게 불편해요.
경철 부산에선 더치페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밥을 사면….
여진 그다음 만남에서 얻어먹은 사람이 “오늘 내 살게.” 하는 거죠. 친구가 10만 원어치 밥을 사줬고, 제가 오늘 2만 원짜리 밥을 사도 상관없어요. 각자 밥을 샀다는 건 똑같잖아요. 부산 사람들이 어쩌다 더치페이를 한다고 하면 이런 경우예요. 밥값이 15만 원 나왔는데 제 수중에 10만 원밖에 없어요. 그럼 “야, 나 10만 원밖에 없다. 나머지는 니들끼리 나눠서 내라.” 그럼 사이좋게 마무리가 되는 거죠.
한 사람은 10만 원, 누군가는 5천 원을 내도요?
여진 네. 서울에서는 자기가 먹은 메뉴를 자기가 내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마, 내가 다 계산하믄 안 되겠나.” 그래요.
친구가 5만 원짜리 밥을 사줬는데, 저는 만 원짜리 커피를 사면 빚지는 기분이 들어서 선물이라도 쥐여주게 돼요.
여진 그런 면 때문에 서울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다들 어떤 식으로 계산하는지도 모르겠고, 푸짐하게 시켜서 다 같이 나눠 먹고 싶은데 분위기 파악이 안 되거든요. 부산에서는 “다 시켜라.” 하고는 다 같이 먹는 문화예요. 있는 사람은 내고, 없는 사람은 적게 내는 게 당연해요.
경철 만약 밥값이 많이 나오고 제가 밥값을 안 냈어요. 그래서 제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저는 그래요. “야, 비싼 거 먹어라. 아메리카노 말고 핸드드립 먹어라.” 그 말 한마디면 되거든요.
여진 우리는 오늘 때깔이 좋은 게 중요해요. 먹고 죽자, 그런 생각이어서 따지고 계산하고 그런 게 잘 없어요.
경철 돈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 그보다도 사람이 먼저인 거죠. 서울엔 좀 딱딱하고 삭막한 느낌이 있어요. 더치페이 문화도 그렇고, 사람들 표정이나 도시 자체도 그렇고요. 물론 가끔 놀러 가면 너무 좋죠. 여기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근데 거기서 살진 못하겠어요.
왜요?
여진 서울은… 잘사는 동네, 좋은 동네에 가야 행복한 사람들,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이 보여요. 그 나머지 동네에선 지치고 피로한 얼굴을 더 많이 보고요. 부산은 그런 경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느껴져요. 사람들 표정에도 격차가 거의 없고요. 해운대에서 보는 사람, 부산역에서 보는 사람, 광안리에서 보는 사람… 다 비슷한 표정이거든요. 저희 집에 오시는 서울 분들이 유독 이 동네나 집을 부러워하시는데, 그건 이곳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해요.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왜 이 집을 부러워하고, 관심이 많은 걸까요?
여진 익숙하지 않아서요. 지금은 다들 비슷한 데 살잖아요. 사각형 거실 뒤에 욕실이 있고, 방은 그 옆에, 다들 비슷하게 생긴 소파를 놓고요. 그래서인지 전원주택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죠. 마당이 있고, 예쁜 정원이 있고…. 근데 이 집은 한눈에 어떤 집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익숙한 집의 형태도 아니고, 전원주택의 모습도 아니니까요. 공간마다 분위기도, 쓰임도 다르고 일관되지 않아서 신선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낡았고요. 낡은 건 대개 지저분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잖아요.
맞아요. 다섯 채 느낌이 전부 달라요.
여진 공간이 생긴 대로 내버려 두었을 뿐인데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경철 공간이 이렇게 생겼으니까 안방이고, 여긴 이렇게 생겼으니까 부엌인 거예요. 저쪽은 침대가 들어갈 것 같으니 게스트 룸으로 쓰고, 손님들 앉을 만한 소파도 같이 두자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죠.
아, 그러고 보니 저 안쪽엔 ‘꼼뚜와르 드 파미Comptoir de Famille’ 쇼룸이 있죠. 프랑스 브랜드 한국 총판을 하신다고요.
여진 마당을 건너가면 나오는 공간인데, 저기는… 저희한텐 그냥 프랑스예요. 사업이라고 해도 예약으로만 쇼룸을 오픈하고 아주 게으르게 해나가고 있거든요. 손님이 와도 좋지만, 안 오면 더 좋은(웃음). 안 팔려도 좋아요. 그저 보고 있는 게 좋은 공간이거든요. 저 공간에 들어가면 프랑스 냄새가 나요. 마당 하나만 건너면 제2의 고향인 프랑스가 있는 거예요.
브랜드 소개해 주실래요?
여진 굉장히 오래된 브랜드예요. 제가 프랑스에서 살 때부터 친숙하게 만나온 생활 소품 브랜드죠. 이 브랜드 소개는 한 장면에서 시작돼요. 누군가 장터에서 물건을 잔뜩 사 와서는 부엌에 늘어놓는 거예요. 그럼 그 주변으로 가족과 이웃이 몰려드는데요. 거기서 다 같이 뭔가를 해 먹고, 웃고, 떠드는 이미지…. 그게 이 브랜드의 느낌이고 콘셉트예요.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선박 일을 할 때 한국으로 수입할 일이 있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떠올랐어요. 감사하게도 보증금이나 계약금 같은 조건 없이 해나갈 수 있기에 이렇게 집 안에 쇼룸을 만들고 느슨하게 해나가고 있어요. 사실 처음엔 시골에 쇼룸을 만든다는 게 누가 되는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근데 이 쇼룸 동영상을 보고는 본사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여기,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같아!”
기분 엄청 좋았겠어요. 꼼뚜와르 드 파미가 집 안에 있어서 여러모로 안심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쇼룸은 상시 개방이 아니잖아요. 예약하고 와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영업하는 것 같진 않아요.
여진 그런데도 사람들이 와요. 정말 신기해요. 그게 사람의 힘인 것 같아요.
경철 이렇게 간헐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고, 또 간혹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하는 정도거든요. 입소문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예약하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누구 소개로 왔다.’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70퍼센트는 입소문, 나머지 30퍼센트는 미디어예요. 여진 저희는 물건을 팔고자 쇼룸을 만든 게 아니에요. 그보다는 프랑스 문화를 알려주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쇼룸에 오시는 분들에게 하나하나 소개를 해줘요. 프랑스 사람들은 커피를 머그잔보다는 넙데데한 그릇 같은 잔에 마신다, 같은 거죠. 직접 그 잔에 커피도 내어드리고, 어떻게 마셔야 가장 맛이 좋은지도 알려드리죠. 그래서 예약을 받더라도 오전에 한 팀, 오후에 한 팀 이상은 받지 않아요. 한번 오시면 잘 안 가시거든요(웃음).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풍기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여긴 한옥인데도 쇼룸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거고요.
그 점이 신기해요. 쇼룸 공간은 한옥인데도 서양 문화가 들어와 있는 거잖아요. 근데 부딪치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여진 그냥 내버려 뒀기 때문이죠. 일부러 꾸미려고 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 브랜드가 더 좋아요. 꾸미려고 하지 않아도, 아무 데나 두어도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요.
모든 게 참 자연스럽네요. 텃밭에서 기른 작물로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진 주로 쌈 채소를 키우고 있는데, 샐러드로 곧잘 해 먹어요. 지금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신선한 채소를 바로바로 따 먹을 수 있는데요. 텃밭을 하고 나니까 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이 예뻐 보이질 않더라고요. 플라스틱 같아요. 그렇게 완벽한 모양으로 자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죠. 자연스럽다는 건 전부 다 예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예쁘지 않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텃밭을 해보면, 진짜 건강한 채소는 흙이 묻고 아무렇게나 자라는 친구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려면 농부가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죠. 처음엔 땅의 생리를 잘 몰라서 고추를 60포기씩 심고 그랬어요.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죠. 올해는 네 포기를 심었는데 그것도 엄청나게 많아요. 요만한 모종에서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게 참 감지덕지해요. 나는 맹물을 뿌려준 게 다인데, 얘는 뭘 이렇게 잔뜩 내어주나…. 가끔은 면목이 없어요. 그 덕분에 치유가 되기도 하고요.
무엇을 치유해 주는 걸까요?
여진 강박, 걱정이요. 도시에 살면 걱정이 좀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 직무에 대한 불만족, 두려움, 실망감…. 물론 그 감정이 시골로 온다고 해서 싹 사라지지는 않아요. 다만 그걸 잊게 해주는 시간이 늘어나죠. 그러면서 점점 그 시간이 길어지고, 나중엔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해줘요. 저는 특히 이럴 때 힘이 나요.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태풍이 와서 작물이 쓰러졌어요, 죽은 줄 알았는데 일어서요. 그럴 때요. 말라비틀어진 작물에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날 살아날 때도요. 그런 걸 보면 사람도 쉽게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겨요. 함께 생존해 나가는 거죠.
지금 삶에 대한 만족도가 정말 크신 것 같아요. 이 집에선 특히 무엇을 할 때 안정된다는 느낌을 받으세요?
여진 테이블에 앉아 통창으로 바깥 한옥을 바라볼 때요. 자주 그 상태로 멍 때리고 있거든요. 지붕이 곧 쓰러질 것 같은 고방이 보이는데, 10년째 저 상태인 게 기특해요. 왠지 안심이 되기도 하고요.
고방…이요?
여진 오, 고방이라는 말을 안 쓰나요? 옛날 말이에요. 창고.
사투리인 줄 알았어요(웃음). 두 분은 사투리 억양이 강하지 않은 것 같아요.
경철 예? 아니에요. 서울 가면 숨만 쉬어도 부산 사람인 줄 알던데요(웃음). 공식적인 자리에선 최대한 억양 없이 이야기하려 해요. 아무리 그래도 인터뷰 중에 “하모~” 그런 말을 할 순 없잖아요(웃음).
여진 사실 사투리는 억센 단어나 거친 억양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택하고 가려서 써야 할 때가 있어요. 사투리는 특히 존댓말이 명확해서 좀더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고요. “치라, 됐다, 마.” 우리끼리는 이러지만 어른들에겐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한번은 사투리 때문에 민원을 넣은 적도 있어요. 도로 현수막에 “안전벨트 단디 해라.”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이건 친구들한테나 쓰는 말이지, 대중한테는 쓸 수 없는 문장이거든요. 그걸 보는 순간 욱하더라고요.
어…, ‘단디’라는 게 그런 의미인가요? 단단히 하라는 말이라고 이해했어요.
여진 그렇긴 한데 어느 정도 비하의 의미가 있어요. ‘단디 해라.’라고 꼭 쓰고 싶었다면 ‘안전벨트 단디 하이소.’ 정도는 되었어야 한다고 봐요.
경철 보통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뉘앙스거든요. 예를 들어, 뭔가를 잘 못하고 있는 사람한테 “니 단디 해라.” 하는 거죠.
아, ‘똑바로 해라.’의 의미가 있는 거군요.
경철 맞아요. 질책의 뉘앙스죠.
여진 사투리로 설명하자면 ‘빙신같이 그것도 똑바로 못하나. 제대로 해라.’인 거예요(웃음).
다 같은 한국인인데도 말이 다르다 보니 오해가 생길 여지도 있겠어요.
경철 한번은 부산 친구랑 서울에 있는 재즈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직원이 그러더라고요. “싸우시는 거예요?”
여진 다 친해서 그런 거거든요. 저희는 거리감이 느껴지면 입을 닫아요. 만일 제가 누군가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했다면 그건 진짜 화가 난 거예요. ‘이제 난 당신이랑 상종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의미거든요. 당신이 죽어도 난 내 일을 하겠다.
와, 그 정도까지요? 그럼 표준어로 표현되지 않는 부산만의 말도 있어요?
여진 “맞나?” 굉장히 여러 의미가 있어요.
경철 의성어가 될 수도 있고, 감탄사일 수도 있죠. ‘리얼리?’라는 의미도 있고요.
여진 ‘오 마이 갓’도 되고, ‘그게 말이 되나?’라는 의미도 돼요.
저한테는 ‘리얼리?’라는 의미와 들어주고 있다는 호응의 표시로 다가와요.
여진 그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잘 듣고 있지 않아도 건성건성 “맞나~” 할 수도 있어요.
경철 이런 게 부산 사투리만의 매력이죠(웃음).
여진 말이야 어떻든 제가 본 가장 따듯한 도시는 부산이에요.
경철 살고 있을 땐 모르는데 잠깐 벗어나면 크게 느끼게 돼요.
왜 그럴까요?
여진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도시는 시골에 비해,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일 거예요. 자연스럽게 서울은 원주민 비율이 낮고, 부산은 원주민 비중이 높겠지요. 잘 살고 싶어서 떠나거나 떠나온 사람이 아니라 이 도시에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좀더 편안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굳이 쫓아다니는 게 아니어서요.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겠네요. 부산은 두 분에게 무엇인가요?
여진 집이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어서 좋은 곳.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특별한 곳!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