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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슬아·이훤·이찬희
입김이 살짝 보이는 차가운 날씨다. 바람이 불면 몸을 옹송그리는 날씨에 ‘헤엄 출판사’와 ‘작업실 두 눈’이란 명패가 붙은 집의 문을 연다. 마당에 살짝 내리쬐는 볕뉘가 참 예쁘다 생각하면서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닫힌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사이로 해사하게 웃는 슬아와 그 뒤로 빼꼼 얼굴을 내민 훤이 보인다. 뒤이어 도착한 찬희가 한자리에 모이자 가장 먼저 오간 건 안부, 그다음엔 웃음. 모두의 웃음은 곡선을 그리며 집 안을 메웠고 웃음소리에도 움직임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웃음을 따라 들썩이는 어깨와 얼굴, 가끔씩 치는 손뼉 같은 것이 퍽 다정하다. 어떤 움직임은 이토록 유하고 따듯하다. 그윽하게 피어나는 가족의 그것을 사랑의 몸짓이라 불러보기로 한다.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 그런지 이 집 진짜 따듯하다. 들어오면서 창으로 훤이 상체가 살짝 보이는데 엄청 반갑더라.
슬아 오르막길이라 오는 데 힘들었지? 요즘은 좀 바빠서 친구들도 일할 때야 겨우 만나는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라도 보니까 다행이다 싶어.
훤 집에서 만나니까 더 반가워(웃음). 커피랑 차 내려줄게. 잠깐 몸 좀 녹이고 있어.
아, 이런 분위기에선 존댓말 못 하겠어(웃음). 우리 오늘 편하게 얘기할까?
슬아 난 좋아. 이렇게 셋이 인터뷰하긴 처음이라 기대돼. 사실 질문지도 낱낱이 숙지하진 않고 읽어만 봤어.
훤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웃음).
찬희 나도 그래. 살짝만 봤는데 다정한 느낌이어서 좋더라.
좋아. 우선 슬아랑 훤이 결혼 축하해! 이젠 슬아, 훤, 찬희 모두 제도가 인정하는 가족이 된 거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도 친구보다 날 더 모른다고 느낄 때도 있잖아. 서로 소개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슬아 앉은 방향으로 해볼까? 찬희가 훤이를, 훤이 나를, 내가 찬희를.
찬희 훤이 형 본명이 진우잖아. 진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던데 나는 외자 이름을 좋아해서 훤이 형이라고 부르고 있어. 나는 작업자로서의 훤이 형도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훤이 형이 좋아. 몇 번 셋이 같이 무대에 오를 일이 있었는데, 그때 형이랑 연주도 같이 했거든. 난 누군가와 함께 연주하는 게 사람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만약 형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길에서 우연히 만났더라면 큰 키랑 반듯한 용모 때문에 어른 같다고 생각했을 거야. 근데 형이랑 이야기해 보고 연주까지 해보니까 이 사람은 소년이란 느낌이 확 들더라고. 나이가 어린 것과 소년은 좀 다른 것 같아. 소년은 하나의 물성 같지 않아? 형을 보면 걱정이 없다는 느낌, 걱정 없이 살아온 사람 같단 느낌이 있어. 모자람 없이 살았는데 티 안 나는 스타일(웃음).
훤 찬희한테 소개를 듣는 거 되게 새롭다(웃음). 그럼 내가 슬아를 소개해 볼게. 바깥에서의 슬아는 무너지지 않고 혼자 의연하게 가녀장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집에서의 슬아는 자주 취약해. 정확히는 집에서만 취약해.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둘 모두 가장 편히 대할 수 있는 자리가 집이라서 그런가 봐. 아, 그리고 슬아는 주변 친구들한테 마음을 많이 써. 그러니까 사실은 강한 사람이기도 한 거지. 한 가지 더 이야기해 보자면 꼼꼼해서 모든 걸 보고 있는 사람이야. 작업할 때뿐 아니라 생활할 때도 그래. 이번 주에 강연 세 개가 있고, 이비인후과에 가야 하고, 왁싱숍도 가고, 새 책 출간한 친구들의 홍보와 마음을 살피는 일정이 있다고 쳐봐. 나라면 분명히 놓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슬아는 모든 걸 보고 있어. 캘린더에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정리해 놓기 때문에 웬만하면 틀어지지 않지. 생활과 작업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선수 같아. 마라톤과 단거리 동시에 뛰며 선두에 있는 느낌이랄까.
슬아 훤이가 방금 나를 “모든 걸 보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찬희가 그런 점에선 나랑 닮은 것 같아. 찬희는 멀티태스커야. 언제나 여러 일을 동시에 해. 그래서 곤두서 있을 때가 많지. 동시에 뭔가를 많이 생각하니까 정신적으로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런 점에서 찬희도, 나도 일종의 강박을 공유하고 있어. 근데 그런 나한텐 훤이가 일종의 이완제 역할을 해주거든. 훤이가 없으면 나는 쉴 새 없이 굴러가. 내 정신 상태는, 오르막길에서 내려가는 카트 같아. 생각도, 일도 멈출 수가 없는 거지. 나는 찬희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찬희는 뭐로 이완할까 걱정될 때도 있어. 근데 찬희의 이런 성향은 확실히 재주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찬희와 나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면서 야망을 공유한 사이잖아. 야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인생의 피로도가 너무 다르거든. 재주가 뛰어나면 피곤할 수밖에 없어.
찬희 누나한테 훤이 형이 이완제라면 나한테는 먹는 게 그래. 처방 받은 약의 도움도 받고 커피로도 다스리지. 약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는 확실히 달라. 아예 먹지 않는 단식도 도움이 되고. 아, 완벽한 이완제가 하나 있다, 만화. 1권을 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끝까지 봐야 하는 성격이라 완독한 만화가 진짜 많아. 어릴 때부터 만화는 달고 살았어. 그 덕분에 굴러가는 카트도 가끔 멈출 수 있는 것 같아.
이번 호 주제어가 움직임이자 운동이거든. 그때 머릿속에 딱 떠오른 게 슬아랑 훤의 결혼식이었어. 슬아의 엄마인 복희가 훌라를 췄잖아. 생각해 보면 슬아의 아빠인 웅이도 프리다이버로 활동하고 계시고. 다섯 명을 모두 만나면 재미있겠단 생각으로 기획한 건데, 핵심 인물 두 분이 빠졌어(웃음). 그렇다고 해서 세 사람이 움직임과 거리가 멀진 않은 것 같아.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훤 우선, 나는 사진가로 일할 때의 움직임에 관해 생각해 봤어. 작업 성격에 따라 속도나 보폭이 달라지거든. 지금 떠오르는 건 인터뷰 촬영 현장이야. 인터뷰 안에서는 사진도 시각 언어이기 때문에 텍스트만큼 중요하잖아. 그런데도 보조 언어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어서 좀 안타까워. 그러나 주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든 현장에선 주인처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 좋은 주인이 되려면 현장에서 사진가가 자신의 존재를 잘 숨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인터뷰이가, 피사체가 사진가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거나 충분히 편안해지도록 모시는 게 좋은 주인이 되는 방법일 거야. 사진가의 움직임 중 하나는 사라지는 것, 희미해지는 것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어.
슬아 훤이랑 작업할 때 이런 부분이 좋았어. 좋은 사진가는, 음… 영혼이 겸손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돋보이려는 마음이 적어. 지금은 네가 절친이라 편하게 촬영하고 이야기하지만 인터뷰라는 건 사실 긴장되는 자리잖아. 거기에 카메라까지 대동하면 인터뷰이가 조금 위축될 수 있단 말이야. 카메라는 권력이고 시선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해. 나 또한 카메라가 가까이 오면 무기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 그러니까 존재감을 싹 지우고 인터뷰이를 모시는 사진가는 믿음직스럽고 좋은 일꾼이 되는 거지.
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주시하게 되는 구도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는 건 구조적으로 균형이 많이 기울어져 있어. 그래서 최대한 뒤로 숨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을 이끄는 게 중요하지.
찬희 나는 ʻ움직임을 본다’는 행위가 뭔가를 고를 때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해. 특히 나한테 시각적인 요소는 하나의 기준이자 잣대여서 사소한 움직임까지 유심히 보는 편이야. 이것도 일종의 강박일까? 누군가의 걸음걸이, 젓가락질, 아주 작은 행동까지 전부 살피게 되거든. 그러면서 역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존재라고 인지하게 되지. 뭔가를 보고, 보이는 걸로 판단하는 건 선택과 소거가 가능해지는 일 같아.
흥미로워. 좀더 얘기해 줘.
찬희 예를 들어서 밴드 라이브 무대를 볼 때 말이야, 나는 음악을 다 꺼버려도 된다고 생각해. 보는 행위가 남아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무대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각적으로만 판단하더라도 좋은 움직임을 보이는 밴드는 높은 확률로 음악도 좋을 거야. 만약… 움직임만 좋고 음악이 별로더라도 사실 상관없지 않을까? 이건 쇼잖아. 그래서 나도 내 움직임을 항상 곰곰이 생각해. 확실히 보는 건 좋은 체망이 되어주는 것 같아. 움직임만 보고도 좋다, 나쁘다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
훤 시선을 체로 쓴다는 말이 재미있어.
찬희 체로 거르지 않고도 순수하게 어떤 움직임을 정말 아름답다고 느낄 때도 있어. 걷는 것만 봐도 울 것 같은 사람이 있거든. 근데 반대로 걷는 것만으로도 때리고 싶은 사람도 있어(웃음). 사실 나는 혼자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어. 삼인칭의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본다고 생각하면 움직임 하나하나가 짠한 느낌이 들거든. 그래서 움직임이라는 건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요소 같아. 더 제대로, 잘 움직이기 위해 정진해야 할 것 같고.
훤 그런 한편, 들키는 것이기도 하잖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아까 슬아가 좋은 사진가는 영혼이 겸손하다고 했잖아. 그것도 평소 움직임과 관련된다고 생각해. 평소에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사진기를 든다고 해서 갑자기 겸손해질 수는 없는 거니까.
인터뷰 현장이 아닌 곳에서의 움직임도 궁금해. 나는 동료 사진가를 보면서 피사체는 가만히 두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슬아는 훤을 보고 ‘멈춘다’고 이야기하더라고. 훤은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지. “찍는 건 본다는 것을 전제한다. 보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멈추어야 하고. 멈출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응시할 시간을 번다. 동시에 필연적으로 멀어진다. 사진은 이 모든 경과를 포괄한다.” 결국 움직이고 멈추는 모든 게 사진가의 움직임이 아닐까 싶어.
훤 완전 맞아. 그리고 협업할 때와 개인 작업할 때의 움직임은 확실히 달라. 협업할 때의 내가 사라지는 사람이라면 개인 작업자로서의 나는 움직임이 많고, 빠르고, 분주해져. 대상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걸 못 보게 되기도 해. 어디에 몰두하고 있느냐가 분명해지지. 그 작업이 나에게 얼마큼 중요하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기도 하고. 어떤 순간엔 체망에서 선별할 시간마저 없거든. 지난 10년 동안 전시하고 발표한 시리즈들 보면 사진이 대체로 고요해 보이잖아. 정적이고. 사실은 재빨랐기 때문에 찍은 이미지들도 많아.
찬희 나는 그럴 때의 움직임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 체망이 필요 없을 때. 한번은 훤이 형이 차세대 멤버들이랑 슬아를 촬영할 일이 있었는데 형의 디렉팅이 너무 좋아서 우리가 형이 말하는 대로 군말 없이 움직였어. “이리 모여!” 하면 형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이고, “이쪽으로 와!” 하면 생각도 안 하고 다 그쪽으로 가는 거야. 한번은 드러누워서 카메라를 위로 올리고 여기 붙으래. 그런 이상한 움직임도 하라니까 빨려 들어가서 하게 되더라고. 집에 와서 돌이켜 보니까 체망에 거를 새도 없이 우릴 움직인 형이 너무 멋있는 거야. 시선이 체망이 된다는 건, 사실 본능적으로 느끼는 멋진 움직임 다음 단계 이야기 같아. 의식하기 전에 알게 되는 근사한 움직임이라는 게 있잖아.
앞서 찬희가 말한 “걷는 것만 봐도 울 것 같은 사람”도 그런 거겠지?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움직임 얘기도 궁금해.
슬아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작년에 본 장기하 <공중 부양> 공연이야. 내 친구들인 무용수 윤대란과 가수 장기하가 같이 공연했는데 그 공연의 핵심은 움직임이라고 느꼈어. 독특한 기획이었는데, 윤대란이 먼저 장기하의 평소 생활 모습을 관찰했대. 집에서 일상적으로 밥 먹고, 생활하고, 움직이는 걸 수집한 거지. 그러고는 장기하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분석해. 그걸 안무로 짜서 같이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는 거야. 윤대란도 굉장히 유명하고 뛰어난 무용수인데 이 공연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장기하의 그림자처럼 똑같이 움직여. 그게 엄청나게 감동적이더라고. 장기하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은 온전히 자기처럼 걷는 거였어. 연극하는 사람들은 걷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말 있잖아, 그런 경험을 거친 거지. 이 공연을 보면서 나다운 움직임은 진짜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어.
훤 나도 그 공연을 같이 봤는데 윤대란이 장기하랑 정말 똑같이 움직였거든. 얼마큼 연습해야 저렇게까지 모사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 우린 타인의 움직임을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주시하지 않잖아. 혼자 있을 때의 움직임을 누군가가 연구하고 연습해서 타인처럼 움직인다는 데서 오는 뭉클함이 있었어.
찬희 계속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얘길 하려면 영화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최근에 <블루 자이언트>(2023)라는 극장 애니메이션을 봤거든. 이거 진짜 명작이야. 난 한 번도 영화관에서 두 번 본 영화가 없는데 <블루 자이언트>는 또 보게 되더라고. 나는 잘 안 우는 사람이어서 나한테 눈물이란 울음을 참는 지점까지거든. 근데 <블루 자이언트>는 볼 때마다 오열했어. 두 번째는 차세대 멤버들이랑 봤는데 얘들도 오열하더라. 다 같이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울었지. 그러고 나서 영화관을 나왔는데, 내가 맨 뒤에서 걸었거든. 너무 많이 울면 어지러워서 휘청거리게 되잖아. 같은 감동을 공유한 멤버들이 비틀거리면서 걷는데… 그게 진짜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느껴졌어.
아, 방금 이야기 너무 좋다. 계속 생각날 것 같아. 사실 오늘 인터뷰가 복희의 훌라로 기획됐다고 했잖아. 복희는 없지만 그날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 엄마가 딸의 결혼식에서 훌라를 추는 모습은 내가 이전엔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어.
슬아 엄마는 유명해지는 걸 꺼려서 매체에 노출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복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한 인터뷰가 네가 한 2019년 《AROUND》였지(웃음). 엄마는 유명세를 겪어야만 성공하는 직종에 우리가 종사하는 것도 좀 가여워하시거든. 그렇게나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라 아무리 딸 결혼식이라고 해도 훌라도 안 추고 싶다고 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작은 교습소에서 배울 뿐이라고 하시면서. 근데 나는 엄마가 내 결혼식에서 훌라를 춰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았어. 몇 달간 설득해서 겨우 수락받았지. 그 이후로 엄마가 결혼식 날까지 몇십 번씩 혼자 연습하시더라고. 출 때마다 눈물이 나더래.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더라고.
울지 않을 때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내가 다 눈물 날 것 같아. 아버지 웅이 얘기도 해보고 싶어. 프리다이버로 살아오신 게 아니라 50대에 새 직업을 가지신 거잖아.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아.
찬희 아빠는 나랑 누나를 키우기 위해 직업을 정말 많이 바꿨지. 막노동을 오래 하셨고 행사용품 렌털업도 긴 시간 해오셨어. 아빠는 여러 일을 많이 해온 만큼 많이 벌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어두웠어. 아마 여유와 자유의 문제였을 거야. 나도 아빠랑 같이 막노동을 해왔는데 난 주말에 공연하면서 일할 때 쌓인 스트레스나 힘듦을 해소했거든. 근데 아빠는 쉴 때 OTT 보는 게 전부인 거야.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하고. 일 때문에 5분에 한 번꼴로 전화를 받곤 했는데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아빠가 나이 들고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 어느 날엔가, 아빠가 차세대 멤버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처럼 살고 싶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때 아빠한테 어떤 결심이 선 것 같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 생각하신 게 아닐까 싶어. 그렇게 선택한 게 프리다이버야. 지금은 전보다 더 바빠지신 것 같지만 아빠는 점점 더 멋있어지고 있어. 아빠 눈이 점점 투명해지고, 모습 또한 순수한 소년이 되어가는 것 같아. 지금에서야 진짜 ʻ나’처럼 보인달까. 난 아빠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다는 것도, 그게 몸 쓰는 일인 것도 좋아. 심지어 엄청 잘하시는 것 같더라고.
대단한 일이야.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몸 움직이는 게 힘들어지잖아.
훤 정말 그래. 그날 복희와 웅이의 움직임을 보면서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어. 일단, 복희가 하는 훌라는 움직임이 그렇게까지 크거나 격하지 않아. 물론 팔을 곡선으로 만들고 골반을 퉁기기도 하지만 나는 그게 꽤 절제된 동작이라고 생각해. 그토록 고요한 춤인데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고. 한번은 복희가 아닌 다른 사람 훌라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자꾸 울컥하는 거야. 꾹꾹 눌러 담은 작은 춤 동작 안에서 말하는 것들이 엄청 크게 들렸던 것 같아. 한편, 웅이가 하는 프리다이빙은 내가 볼 땐 훌라보단 체력 소모가 크다고 느껴지거든. 실제로 해보진 않았지만 움직임도 크고 강한 것처럼 보여. 근데 프리다이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해에 들어가는 게 꼭 명상 같다는 거야. 복희와 웅이를 보면서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완전히 별개란 생각이 들었어.
슬아 움직임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사람 기질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 복희와 웅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달라. 복희는 박자를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노래방에 가면 화면에 흐르는 노랫말과 부르는 부분이 약간씩 달라. 복희만의 필을 담아 엇박자로 부르는 거지. 근데 웅이는 정직한 정박이야. 나도 완전히 아빠 쪽이었는데 노력해서 이제야 엄마 쪽에 가까워졌어. 얼마 전에 아빠랑 노래방에 갔는데 확 와닿더라. 아, 내 천성은 이거지 하고(웃음).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정박이 아빠의 노래에 있는 거야.
노래를 부른다는 것도 사실 움직임이잖아. 몸 안에서 소리가 움직이는 일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밴드를 하는 찬희도 움직임과 연결된다고 생각해.
슬아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찬희가 운동을 진짜 잘해. 청소년기 때 학교에서 씨름 제일 잘했어.
찬희 배드민턴, 스케이트 다 잘했지. 선수급으로 잘하는 건 팔씨름이랑 씨름. 거의 져본 적이 없어.
훤 찬희는 씨름 선수라고 모래판에 올려놔도 믿을 것 같아. 인상부터 기세까지(웃음).
찬희 팔씨름은 연습과 기술 연마도 꽤 본격적으로 했지. 비슷한 체급에선 다 이길 자신도 있어. 팔씨름은 국제 스포츠여서 기술도 많고 대회도 있어. 상대와는 오로지 손만 닿아 있지만 손을 딱 잡으면 느낌이 와. 이 사람한텐 이 기술을 써야겠다, 이 순간에 확 끌어당겨야겠다, 하고. 한창 빠졌을 땐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팔씨름 한판 하실래요?” 그랬어. 팔씨름은 신사적인 운동이어서 정정당당한 겨루기가 가능하거든. 가장 신사적인 부분은 마지막이지. 지건 이기건 경기가 끝나면 무조건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ʻ탁’ 잡아. 손을 맞잡고 “좋은 승부였습니다.” 하고 마치는 게 룰이야.
팔씨름에도 기술이 있는지 몰랐어.
찬희 팔씨름은 손과 팔은 물론이고 복근부터 발가락 끝까지 온 힘을 다 써야 해. 기술마다 자세도 달라지지. 우선 팔씨름을 잘하려면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고 연마용 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좋아. 팔 길이에 따라 연습하는 법이나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해. 팔씨름은 지금도 내 피를 뜨겁게 달구는 장르야.
슬아 팔씨름은 보통 상대의 팔을 넘기는 거라고 생각하잖아. 근데 찬희 말론 그게 아니래. 내 쪽으로 상대 팔을 가져오는 거래.
찬희 파이가 작아서 그렇지 팔씨름은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스포츠야. 유튜브에도 팔씨름 영상이 꽤 있거든. 고수끼리 대결하는 거 보면 전율이 일어. 명승부 영상엔 “형님들, 개 쩌는 경기였습니다.” 이런 댓글 쓸 때도 있어(웃음).
훤이는 구기 종목에 능한 것 같던데. 농구나 배드민턴 같은 거. <송년회>라는 시에도 농구 얘기가 나오지. “감독석 옆에 앉더니 나에게 몰래 들어오라고 한다 / 농구에 관심 없는 나는 구두를 신고 감독 옆에 앉은 친구 옆에 앉는다 / 4쿼터가 12초 남았는데 / 그 파티에 있는 서른 명이 줄줄이 경기장에 들어서는 바람에 / 경기가 중단된다 /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며 큰 소리로 선언한다”
훤 배드민턴은 슬아랑 같이 할 만한 운동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취미처럼 하는 거라면 농구는 꽤 사활을 걸고 학창시절부터 해왔어. 농구에 끌린 이유 중 하나는, 일단 농구공이 커서 보통 사람들은 공을 한 손으로 쥘 수 없다는 거야. 쉽사리 통제되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데서 오는 희열이 있지. 하체를 완전 낮춘 채로 수비하고, 드리블하고, 그 공을 골대에 넣기까지 여러 번 다양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성취했다는 느낌이 커. 또 매력적인 건 한 골을 넣기까지 몸싸움이 되게 많거든. 생각보다 거칠고 여러 번 부딪쳐. 드리블할 때도 접촉이 많고 레이업Lay Up(백보드에 가깝게 점프하여 공을 바스켓 위쪽에 올려놓듯 한 손으로 던지는 슛) 할 때도 수비하고 있는 상대의 몸을 느끼고 저항하면서 움직여야 하니까. 그걸 ʻ바디 컨트롤’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 중심 잡는 연습을 꽤나 하게 돼. 몸싸움이 많아서 부딪히고 넘어질 때도 많은데 그때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 보니까 다섯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면서 얻는 쾌감도 있어. 한 사람이 공을 계속 가지고 가면서 골을 넣는 게 아니라 서로 보냈다가 돌려받으면서 하나의 골을 만들어 가는 거야. 농구 팀이 유난히 유대가 좋은 건 소수의 선수가 같이 만들어 낸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아. 의식적으로 동료에게 반복해서 패스하는 걸 ʻ공을 돌린다’고 하는데, 틈을 찾을 때까지 공이 순환하게 만드는 거라고 보면 돼. 보통은 한 사람이 독보적으로 골을 넣는 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농구는 공을 양보하고 양보받으면서 하는 이타적인 스포츠야.
슬아 훤이는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더 이 악물고 하게 된 것도 있지 않아? 인종차별도 이유가 됐을 거고. 동양에서 온 안경잡이는 아마… 최약체였을 거야.
시대 영향도 클 것 같아. 지금이야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한국어도 많이들 배우지만 훤이 고등학생 때라면….
훤 학교 학생 3천 명 중에 동양인은 열 명도 안 됐어. 변방의 국립 고등학교라 더 그랬지. 그때만 해도 “너희 나라에선 뭐 먹고 살아?”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몸으로 하는 일뿐이고 그게 농구였던 거야. 농구에는 유독 사나운 트래시 토킹Trash Talking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힙합에서 하는 디스 비슷한 거야. 좀 거칠 때도 있지만 게임의 일부고 문화지. 예를 들어 경기 전에 상대 팀에서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쟨 내가 맡을게.” 그러는 거야. 근데 말투랑 분위기가 어떠냐면…. (과장되게 하체를 낮추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퍽퍽 치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I Got Him!” 하는 식(웃음).
슬아(웃음) 대놓고 “넌 내 밥이다.” 그러는 거네.
훤 그렇지, 넌 죽었다는 눈빛으로. 당시엔 나만 동양인이고 영어도 미숙하다 보니까 아무리 게임의 일부라도, 개인적으로 날 모욕하는 게 아니어도 위협적으로 느껴졌어. 트래시 토킹이라는 게 말로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게 하거나 상대편을 조롱하고 흔드는 거니까. 그런 문화 속에서 농구를 계속했어. 운동장 말고는 내가 설 자리가 없었거든. 처음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매번 ʻ발렸어’(웃음). 그럴 때마다 모멸감을 느끼면서 집에 돌아가는데 농구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하굣길에 계속 농구공을 드리블하면서 걸었어. 집에 와선 농구 경기만 보고.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나를 알아봐 달라는 오기로 계속한 건데, 나중에는 점점 더 실력이 쌓이면서 순전한 즐거움으로 하게 되더라. 아, 당시에 살던 동네가 흑인이 많은 곳이었거든. 그래서 생겨난 좀 특이한 분위기도 있었어. 한번은 나를 수비하던 상대편에게 크로스오버라는 페이크 동작을 했는데, 걔가 중심을 잃고 바닥을 살짝 짚었어. 그랬더니 경기 중인데 흑인 친구들이 막 몰려와선 나를 들고 뛰고 난리가 난 거야. 그걸 농구장을 닫는다고 표현하더라고(He Shut Down The Gym). 큰 소리로 흑인 친구를 창피 주고, 더 큰 소리로 나를 치하하는 그 문화가 생경하면서도 재미있었어. 그들만의 축하 방식인 거지. 사는 곳만 달라져도 확실히 다른 움직임, 다른 언어가 있더라고.
그러고 보니 찬희가 말한 팔씨름이나 훤이의 농구는 상대가 있고 경쟁하는 운동인데 슬아가 하는 운동은 그런 종류는 아닌 것 같아. 요가, 댄스, 필라테스….
슬아 난 팀 스포츠엔 관심이 없어. 애초에 운동이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몸이 아프니까 건강해지기 위해 선택한 거였어. 실용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택한 거지. 나는 스물두 살에 데뷔해서 일을 좀 빨리 시작했잖아. 그래서인지 몸도 일찍 아프더라고. 허리, 어깨, 목…. 꽤 빨리 중년의 마음으로 ʻ이거 큰일 났다. 나 이제 계속 아프겠다.’ 싶어서 20대 초중반부터 꾸준히 운동했어. 처음엔 매일 달리는 걸로 시작했지. 앉아 있는 것도 체력이 달려서 체력을 늘리겠단 생각이었는데, 달리기의 시작은 의외로 글쓰기 수업에서였어. 나는 작가로 데뷔하고 나서도 어떻게 하면 글이 더 좋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소설 합평 수업을 세 개 정도 수강했거든. 근데 갈 때마다 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훼손되는 거야. 특히 소설 합평 수업 특유의 피드백 시간이 힘들었어. 엘리트주의 같은 게 느껴지고 재미도 없더라고. ʻ난 여기 있으면 글 쓰기 싫어지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
훤 합평은 자칫 잘못하면 비평을 위한 말하기가 되잖아. 그 집단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도 생기고.
슬아 맞아. 내 글을 보여주고 싶은 곳이 여긴 아닌 것 같더라고. 난 성실한 사람인데도 수업하러 가기가 너무 싫은 거야. 그래서 어느 날, 수업 가다 말고 갑자기 한강으로 가서는 마구 달렸어. 그날부로 수업도 그만뒀고 매일 달리기 시작했지. 상쾌했어. 달리면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더라고. 365일 꾸준히 달리다 보니까 마음먹으면 뭔가를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 ʻ일간 이슬아’가 매일 글 한 편을 보내주던 메일링 서비스잖아. 그것 또한 매일 달려온 게 큰 동력이 됐어.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으로 점점 체계적으로 몸을 부위별로 돌볼 수 있는 필라테스, 요가 같은 걸 하게 된 거야.
슬아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택한 거라면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운동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찬희를 처음 본 게 10년 전쯤 작은 클럽에서였거든. 작은 무대에, 작은 남자애가, 작은 하모니카로 연주를 하는데 그 호흡이 너무 크고 소리도 우렁찬 거야.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 하모니카를 그렇게나 본격적으로 부는 건 호흡이 엄청나게 필요한 일이잖아. 난 단소만 불어도 머리가 아픈데 쟤는 어떻게 저걸 저렇게 힘차게 불까 생각한 기억이 나(웃음).
찬희 숨차거나 힘들다는 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진짜 힘들어지는 것 같아. 그때의 난 힘들거나 숨찬 걸 별로 개의치 않아 했어. 어렸기 때문에 실제로 덜 고단했던 것도 있고. 그때 하던 공연도 물론 힘들지 않던 건 아니야. 공연이 끝나면 매번 땀 범벅이고, 숨을 헉헉대는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지. 그렇게 해서 나오는 음악이 더 멋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 쇼라는 건 시각적인 게 합쳐지는 거여서 숨을 헐떡이면서 연주하는 게 관객에게 더 와닿을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은 어때?
찬희 오늘도 목이 좀 쉬어 있는데 요새는 공연을 많이 해서 자주 이런 상태라 관리가 확실히 필요해.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음악에 기술도 생겼고 노래가 좀더 어려워지기도 해서 체력 배분이 중요해졌지. 물도 많이 마시고 병원에서 처방 받는 약도 많아졌어. 아, 찬물 샤워도 진짜 많이 해. 요즘은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서 찬물 쓰는 게 전보다 힘들어지긴 했는데, 찬물 샤워를 하면 식도만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거든. 진짜 추운 날 달리기하면 목구멍이 뜨끈해지는 느낌 있잖아. 딱 그 느낌이 나. 나는 그 감각이 노래를 엄청 세게, 힘들게 부를 때랑 비슷하더라고. 그게 무대를 해나가는 데 도움이 많이 돼.
차세대 요즘 작업을 보면 움직임이랑 관련된 것들이 눈에 많이 띄어. ‘뜀틀’이란 노래 제목도 그렇고, “어린아이처럼 어디든 올라타”라는 가사도 그렇고.
찬희 음악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담기는데 나는 요즘 미니멀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그러니까 거창한 결과물을 위해 가장 좋은 걸 뽑아내기보다는 꾸며내지 않은 현재와 과정을 기록하고 싶은 거지. 이를테면, 지금 여기 다섯 명이 있잖아. 이 다섯 명의 캐릭터를 가장 멋스럽게 이야기하기보단 한 명 한 명 어떤 사람이고, 바깥 날씨는 어떻고, 지금 먹는 토마토랑 떡 맛은 어떤지… 그런 걸 자연스럽게 담고 싶은 거야. 최근에 발표한 [사막에서 온 사람]도 사실 움직임에서 시작된 앨범이야. 영화 <듄>(2021)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거든. <듄> 세계관의 최강자는 모래 괴물인 ʻ샤이 훌루드’인데, 이 존재는 사막의 생태계랑 자연환경을 책임지기 위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모래의 일정한 진동으로 침입 여부를 판단하지. 그래서 사람들은 사막을 걸을 때 일정한 진동을 피하기 위해 특이하게 걷거든. 걸음에 리듬을 주면서, 규칙적인 박자를 피해 변주를 주는 거지. 나는 그 장면에서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어. 영화를 보다 말고 “이거지!” 하고 손뼉을 쳤어. 그 스텝을 한동안 실제로 하고 다니기도 했고. ʻ사막에서 온 사람’에는 그런 움직임을 담고자 했어. 실제로 이 곡을 녹음할 때 <듄>의 사막을 생각하면서 동해안 이곳저곳에서 모아온 모래로 소리를 더했어. 모래들을 손으로 ʻ스윽’, ʻ스윽’, 휘저으면서 핸드 스텝을 녹음한 거지. 한 100번쯤 들으면 모래알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아주 작게 녹음했거든.
녹음 과정에도 일종의 움직임이 녹아 있네.
찬희 그렇지. ʻ뜀틀’이란 곡을 만들 때도 아이들의 움직임을 떠올렸어. 우리가 잃어버린 거 있잖아, 유년기에만 할 수 있던 것들. 그런 걸 시각화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 언젠가부터 앨범에 담고 싶은 것들을 음악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해비치]를 만들 때도 그랬어. [해비치] 작업 땐 담고 싶던 게 가사로 남기도 했지. “좋은 한때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면 꼭 아쉬운 그림인 게”
훤 그 노랫말 정말 근사해.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어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야.
찬희 한때 시각 디자인이나 사진에 뜻을 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 시각적인 걸 생각하며 작업하면서부터는 뭔가 많이 달라졌어. 소리에 더해 움직임도 생각하게 됐거든. 악기를 녹음할 때도 “앉아서 할래, 서서 할래?” 하고 묻고. 그루브에는 자세가 꽤 중요해. 그래서 합주할 때도 “너 좀더 뒤로 가. 넌 조금 옆으로 옮기고.” 하는 세팅이 필요한 거지. 물론 기본적으로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지만 쇼라는 게 시각적인 걸 간과할 순 없잖아. 간단해 보여도 움직임을 생각하는 거랑 안 하는 건 달라. 나는 특히 흑인 그루브를 좋아하는데 흑인들은 무대에서 자주,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리거든. 근데 안 넘어져. 기우뚱, 기우뚱, 균형을 잃지만 그 상태로 움직이고 나중엔 우뚝 일어서지. 나도 그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음악에 담고 싶어서 요즘은 음악보다도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어. 차세대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 나만 할 수 있는 그루브를 보여주고 싶은 거지. 노래도 계속 그런 식으로 불러나가고 싶고.
댄서나 운동선수처럼 움직임이 주요 행위가 아닌 직업에서도 움직임에 집중한다는 게 재미있어. 생각해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하든 움직임은 동반된단 생각도 들고.
슬아 아, 훤이도 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직임이 하나 있어. 훤이가 키보드를 자주 바꾸거든? 글을 쓰다 잘 안돼, 그럼 키보드를 바꿔.
기분 전환을 위해서야, 진짜 작업이 잘돼서야?
훤 둘 다야(웃음). 심지어 메일 쓰는 키보드, 산문 쓰는 키보드, 시 쓰는 키보드 다 따로 있어. 키 캡도 바꾸고 스위치도 바꾸고, 하나의 키보드도 계속 다르게 조립하면서 변화를 줘.
슬아 스트레스받을 땐 세 시간 동안 키보드 키 캡을 바꿔. 하나하나 해체해 가면서. 훤이 말로는 자기만의 뜨개질이라고 하더라고.
훤 물 밑에 잠겨서 가만히 고요를 만드는 것처럼 나는 키보드를 해체하면서 잠잠해지는 거야. 기분만 전환돼도 좋은데, 키보드를 바꾸면 작업이 잘된다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어. 산문은 빠르게 많이 써야 하고 퇴고도 잦으니까 오타가 덜 나고 경쾌한 키보드를 쓰고 있어. 타건감 때문에 조금 더 신나서 쓰게 되기도 하고. 글의 특성상 자주 수정해야 하는데 타자 치다 걸리면 예민해지니까. 한창 작업할 땐 그런 자그마한 것도 은근히 거슬리거든. 근데 시 쓸 땐 서두 서두르지 않고 싶어서 타자도 느려지는 배열의 키보드를 써. 이 키보드 볼래? (독특한 모양의 키보드를 가지고 온다.) 이건 엘리스 배열이라고 하는데, 이 키보드는 산문 쓸 땐 절대로 안 써. 오른손과 왼손 사이 간격을 두고 써야 해서 보통 배열보다 느리게 움직이게 돼서 빠르게 칠 수 없거든. 이 키보드는 시나 메일을 쓸 때 사용해.
지금 이 공간엔 컴퓨터도 없는데 시야에 보이는 키보드만 하나, 둘, 셋, 넷…. 국소 부분만 움직이는 거지만 작은 움직임에도 에너지는 필요하잖아. 먹는 것도 중요한 일 같아. 문득 떠오르네. 찬희가 차세대 멤버 소개할 때마다 “밥하는 찬희입니다.” 그러잖아.
찬희 나는 밥해 먹고 산 지 벌써 13년이 넘어가니까 밥하는 사람이란 소개가 어색하지 않아. 지금은 밴드 멤버들이랑 사는데 오늘도 밥해놓고 나왔고, 어제도 했고, 내일도 하겠지. 장도 보통 내가 보는데 한 번도 할인하지 않는 걸 사본 적이 없어. 할인하는 재료로만 요리하다 보니까 여러 요리를 시도하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걸 먹게 되는 거 같아. 나는 탄수화물을 최대한 적게 먹는 편이라 헬스인이 먹는 식단으로 끼니를 만들곤 해. 멤버들이랑 공연 끝나면 술도 자주 마시는데 어디 아픈 데 없이 건강한 거 보면 잘 챙겨 먹고 있나 보다 싶어.
슬아는 글쓰기보다 건강 돌보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글방에 오는 아이들이 잠 못 자고 오면 “잠이랑 밥이 글쓰기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고 들었어.
슬아 잘 먹고 잘 자는 건 정말 중요해. 나도 요새는 절대로 밤새워서 쓰지 않아. 잠과 밥은 사람한테 영향을 많이 끼치거든. 우린 보통 채소 위주로 밥을 먹고 과일도 진짜 많이 먹어. 아침에 눈뜨면 과일이랑 견과류를 한 바구니 놓고 “파티다!” 그러면서 우걱우걱 먹기 시작하지. 아침마다 한 사람당 한 바구니씩은 먹는 것 같아.
채식을 지향한단 걸 알아서 오늘 뭘 들고 올까 고민이 많았어. 토마토 가져오길 잘했다, 금세 싹 먹어서 기분 좋았어(웃음).
훤 아침마다 한 사람당 이만큼씩 먹는걸? 진짜 맛있었어.
슬아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복희가 곧 해물파전이랑 떡볶이를 들고 올 텐데 우리 그거 먹으면서 좀 쉬자. 오늘 진짜 열심히 했잖아!
어? 복희 씨 오신다고? 식탁 정리할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