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끝에 찾아오는 것

문승지—디자이너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큼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디자이너 문승지는 매사에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다. 늘 나아가 멈추지 않는 것. 하지만 결코 그 과정이 숨 가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에겐 오히려 자연스럽다. 혼자 묻고 답하는 시간이 반복되어, 한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게서 답을 찾은 사람이 가진 여유와 당당함이 느껴졌다.

제주에서 연휴를 보내신다고 들었어요.

오랜만에 고향에 가요. 아버지와 백록담을 오르기로 했어요. 새해가 되면 매년 하는 저희 가족만의 의식 같은 건데 등반을 하지 않으면 올해를 시작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 보니 가족들과의 시간이 점점 더 귀해지는 걸 느끼고요.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저한테도 소중한 약속이 됐어요.

 

기대되겠어요. 제주 작업실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직접 방문하지 못해서 아쉬운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구옥의 창고 공간을 고쳐서 만든 작업실이에요. 할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셨는데 월남전이 막 끝나고 제주로 돌아오셔서 할머니와 처음 장만한 집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세요.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집이라 저에게는 추억이 무척 많은 집이기도 해요. 할아버지 세대부터 남아온 흔적이 있고요. 벽에는 제가 한 낙서 자국도 있고 신문지로 벽지를 메꾼 흔적도 있어요. 집에 새겨진 때를 지우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흔적을 남겨두고 그 안에 제 작품들을 가져다 놨어요.

 

집과 어떤 추억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제주 전통 가옥의 무드와 일본식 가옥의 이미지가 함께 있는 굉장히 묘한 건축 형태를 가진 집이에요. 대부분 전통 가옥은 화장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화장실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있는 건 줄 알았어요(웃음). 작은 마당에는 비파나무부터 소철, 야자수까지 다양한 나무들이 있고요. 할머니랑 비파나무에 앉아서 놀던 기억이 아직 선명해요.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들은 점점 개발되고 있는데 변하는 풍경들을 보면서 이 집을 꼭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근데 사실 제주 작업실은 저보다 할머니가 더 잘 쓰고 계세요.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할머니가 속해 있는 ‘녹색할머니회’의 아지트가 됐어요. 나름 할머니만의 카페를 만들어 놓으신 거죠. 작업실에 제가 만든 의자, ‘포브라더스’를 가져다 놨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한 번씩 앉아 보시면서 놀고 계신 거예요(웃음). 포브라더스에 담긴 의미와는 상관없이 잘 쓰이고 있어서 더 좋아요. 할머니는 손주가 만든 가구 자랑도 하시고요. 작업실이 여러모로 알차게 사용되고 있어요.

정겨운 풍경이겠네요(웃음). 할아버지께서 직접 집을 지으실 정도면 어릴 때 공간이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만한 환경이었겠어요.

전혀 아니에요. 저는 디자인 분야와 전혀 관련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운동 좋아하는 제주 촌놈이었거든요(웃음).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디자인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계기는 있었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웃음)….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작은 사고를 친 적이 있어요. 장난이었지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죠. 당시 선생님이 저희를 엄청 혼내시면서 제 친구는 육상부로 보내시고 저는 발명부로 보내주셨어요.

 

발명이요?

재밌죠(웃음). 방과 후 활동 중에 하나였는데 저를 강제로 보내셔서 얼결에 과학상자를 만들게 됐어요. 그 친구는 육상부에서 매일 뛰다가 육상 고등학교까지 갔고요. 저도 떠밀려 하다가 재미가 붙어버렸는데 결과가 꽤 좋았어요. 과학상자 전국대회나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지금도 구글에 치면 그때 제 작품이 나와요.

 

아주 비상한 학생이었네요.

그때 기억이 디자인을 시작할 때 밑바탕이 됐던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 대학을 제품디자인과로 가게 됐어요. 제주를 벗어나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건물들 사이로 바쁘게 사는 모습도 부러웠고, 강남역에 있는 스타벅스에도 가보고 싶었어요(웃음).

 

이전 인터뷰에서 제주 바다가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말하신 게 떠올라요.

매일 봤으니까요. 끝도 없는 바다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서울에 갈 이유를 찾고 있다가 계원예대 입시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수시 100%’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성적은 빼고 면접만 볼 때라서 운 좋게 합격한 거죠(웃음). 학교 실습실에서 일하면서 가구 쪼가리를 가지고 저 혼자 뭔가를 막 만드는데 중학교 때 과학상자를 만들면서 집중하던 제가 오버랩 됐어요. 순식간에 몇 시간이 사라지더라고요. 드디어 저 자신이 제대로 몰두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가구를 공부해야겠다는 확신이 섰죠. 가구디자인과 교수님을 찾아가서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시더라고요. 전공을 두 개로 삼은 셈이었어요. 졸업작품도 두 배로 만들었고요. 힘든 것도 모르고 너무 열심히 학교를 다녔어요. 여태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다가 크게 깨달았으니까요. 뭘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었어요.

원래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나 봐요.

학교 공부는 싫어했죠. 제가 배우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거든요. 노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가구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을 때 더 강렬히 와닿았어요.

 

다시 작업실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제주도 작업실 외에 실질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레이블, ‘팀바이럴스’ 사무실인 거죠? 

그렇죠. 제주도 작업실은 추억을 간직하자는 의미에 더 가까워요. 최근에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작업실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리됐어요. 집보다 오래 있는 곳이 작업실이잖아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공간인데, 그 전에는 빛도 안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팀바이럴스를 함께 운영하는 동료들과 계속 고민하다가 속된 말로 우리가 망해도(웃음) 좋은 환경에서 일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지금 사무실은 테라스도 있고 빛도 잘 들어요. 라운지 공간도 있고요. 이사를 하고 나서 일이 훨씬 잘되고 생각도 잘 열려요. 저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작업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여긴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화하면서 쉬어가기도 하고 동시에 실험하는 곳이기도 해요. 가볍게 테라스에서 팀원들과 앉아서 사는 얘기 하는 작은 시간들이 정말 중요해요. 어디 갔다 왔는데 뭐가 좋더라, 하는 사소한 대화들이요. 이런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번뜩이는 순간들이 반드시 와요.

 

작업 공간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거군요.

사실 대화가 모든 아이디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사색이 중요해요. 요즘 저에게 중요한 화두가 멍 때리기예요.

 

명상이 필요한 걸까요?

그렇죠. 단순히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게 저에겐 작업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멍 때리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가면 집중이 더 잘될 때가 있고요. 사실 요즘 명상이 너무 필요한 시기예요. 레이블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거든요. 창의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일을 하다 보니 머리를 식힐 구석이 필요한 거죠.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데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특별한 활동에서 찾고 싶지는 않고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루고 싶어서 지금은 열심히 멍 때리고 있어요.

 

좋은 가구 디자인은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가구 디자인의 기본은 뭘 말하는 걸까요?

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의자가 가져야 하는 사이즈와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숫자들이 있어요. 그런 게 잘 지켜져야 해요. 그리고 그 의자에 앉을 사람을 고려하는데 저는 한 사람을 위한 의자보다는 다수를 위한 의자를 만들고 싶어요. 결국 스탠더드 가구를 만들고 싶은 꿈인데,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려면 그 뒤에 어마어마한 설계가 필요하거든요. 그걸 해냈을 때 디자이너로서 가장 행복하고요. 제가 설계한 의자를 저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쉽게 양산되며 동시에 버려지는 재료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가 디자인하면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에요. 물려줄 수 있는, 오래 기억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멀리 보았을 때 어쩌면 빈티지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거네요.

그렇죠. 정답은 거기 있겠네요. 빈티지라는 건 결국 오래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증명한 거니까요. 우리는 왜 빈티지를 구매할까, 생각해 보면 사실은 스탠더드였기 때문이에요.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빈티지를 사는 건 아닐 거예요. 결국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스탠더드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과거의 저는 콘셉트를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나아가고 싶은 방향성에 관해 생각이 점점 다듬어 가고 있어요.

첫 브랜드 ‘엠펍’의 창업 이야기와 이어지네요.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든 브랜드였죠. 콘셉트가 굉장히 명확했어요.

엠펍을 만들었던 기반은 사실 졸업작품에서 나왔어요. 반려묘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 ‘캣터널’이라는 소파를 만들면서 첫 회사를 창업한 거예요. 그때는 에너지가 너무 넘칠 때였어요. 작품을 만들 때는 교수님의 반대도 있었는데, 거의 농성하듯(웃음) 학교에서 천막까지 치고 교수님 바로 앞에서 작업을 하면서 열정으로 만든 작품이었거든요. 당시에 저는 캣터널로 창업을 하겠다는 호기로운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서부터 제 인생이 꼬인 거예요(웃음). 엄청난 빚을 진 실패를 경험했죠.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사업을 해버린 거예요. 지금의 팀바이럴스가 회사가 아닌 레이블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때의 경험에 기반해요. 디자이너가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디자인과 경영은 전혀 다른 영역이고 이 영역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하는데 그때 저 혼자서는 역량이 부족했던 거예요.

 

고민이 많았겠어요.

졸업 직후였고 잘못하면 평생 디자인을 못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과감히 접고 저의 개인 브랜드 ‘mun’을 만들게 된 거죠.

 

실패를 겪으면 주저하기 마련인데, 계속 멈추지 않았어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포브라더스로 해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성공적인 데뷔도 이뤘고요. 자신을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 점에서 비롯된 이력일까요? 

저는 호기심을 넘어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조금 심한 수준인데 뭘 하든 계속 물음표를 만들어요. ‘그래서 왜 이 디자인을 해야 해?’, ‘난 이걸 왜 해야 하는 걸까?’ 같은 생각들이 끊이질 않아요. 그 물음을 채우기 위해서 또 다른 소스를 찾는 사람이기도 해요. 나쁜 말로는 의심인 건데 좋게 말하면 호기심인 거죠. 어릴 때부터 사소한 물음이 많아서 피곤한 스타일이었어요(웃음). 이제는 그런 의심들도 긍정적으로 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실패해도 부딪히려 했고요.

 

물음을 채우려 하는 건 디자이너로서 가장 좋은 역량이죠.

해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리는 선을 왜 이렇게 그려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가 나와야 하죠. 그게 결국은 디자인의 핵심 스토리가 되고요.

 

자연에서 자란 경험이 디자인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너무 크죠. 어릴 때 숲을 보고 흙을 밟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바다에 갔고요. 배 타고 나가서 다이빙하는 게 일이었죠. 제주에선 천국 같은 노을을 매일 볼 수 있어요. 에메랄드빛 바다를 지루할 정도로 봤고요. 그 모든 경험들이 작업할 때 무의식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끄집어내려 하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자연의 오묘한 색감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평온했던 순간들이요. 서울은 답답하고 빠르잖아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인데 어릴 때 봐오던 수평선이 주는 감각이 무의식에 존재하는 덕에 작업을 하는 태도에 있어서 분명히 도움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자연에서 자란 사람들은 꼭 다시 자연을 좇게 되는 것 같아요.

크면 클수록 그렇죠. 저는 최근 기억보다 어릴 때 기억이 더 선명해요. 여행을 가더라도 맛집이나 도시를 가는 게 아니라 꼭 시골로 동선을 짜고요.

 

가구부터 제품, 공간까지 디자인 영역이 넓은데 그 안에서 더 발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디자인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건 프로젝트 종류에 상관없이 저희 팀원들의 역량이 넓기 때문이에요. 팀워크가 아주 좋거든요.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팀과 함께 일하면서 빼곡히 느끼고 있어요. 가장 편한 작업은 결국 가구인데, 좋아하는 일일수록 지금을 생각하지 않고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싶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민한 것들이 경력과 같이 쌓이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디자이너가 가지는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죠. ‘나’라는 아카이빙이 쌓이면서 나오는 결과가 곧 작품으로 증명되는 거고요. 결국엔 제가 만드는 가구가 아이콘이 됐으면 해요. 제가 사고 싶은 빈티지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들처럼요. 지금의 저는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문득 승지 씨의 집에 놓인 가구들이 궁금해져요. 집은 공개 안 하는 거죠?

네(웃음). 제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저희 집에 제가 만든 가구를 못 놓고 있거든요. 제가 만드는 가구는 아직 제작가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집에 놓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국엔 제 가구로 오롯이 제 공간을 채우는 게 목표이기도 해요.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죠(웃음). 되게 아이러니해요. 사실 이런 지점이 저희 팀 모두가 겪는 고충이에요. 일교차 같은 건데, 저희는 늘 누군가를 위해 고심해서 디자인을 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디자인을 하기는 어려워요. 이건 정말 고민이네요. 최근에 충격받은 게 허리가 너무 아파서 왜일까 생각해 봤는데 소파가 문제였더라고요. 전에 살던 집 앞에 버려져 있던 소파가 맘에 들어서 리폼해서 쓰고 있었거든요.

 

조금 슬프네요.

그렇다고 뭐 엄청 부족한 건 아니에요. 집에 있을 건 다 있어요(웃음).

 

그렇죠(웃음). 또 다른 고민이 있나요?

삶에 대한 고민은 건강이에요. 일이 한창 바쁠 때라 일과 운동 사이의 접점에서 계속 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건강을 놓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여행을 못 가는 것도 고민인데 예전에는 떠나고 싶으면 가능한 바로 떠나는 사람이었거든요. 꼭 팬데믹 상황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팀이 커지고 책임과 부담감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변하는 게 두렵기도 해요. 그래도 시스템을 점점 더 잡아가다 보면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도 긍정적인 상황이네요. 일이 잘되고 있다는 거니까요. 요즘 문승지를 가장 즐겁게 하는 건 뭐예요? 

여행 계획 짜는 거요.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으면 가이드 회사에 있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여행 생각 하는 걸 좋아해요. 지인들 사이에서는 ‘문투어’라고 불리고요. 사실 계획이라고 해서 별건 없고 목적지만 정해두고 끌리는 대로 가는 거예요. 식당도 눈에 보이는 데로 가요. 저기가 맛집이라고 해서 저한테도 맛집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늦잠도 자고 눈앞에 보이는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현지 친구들도 사귀고 그러는 거죠.

 

문투어를 믿고 떠나면 뭘 얻을 수 있을까요?

기억이요. 너무 선명할 기억. 아주 오랫동안 잔상처럼 남을 거예요. 관광을 떠났다는 느낌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듯 일상을 보냈던 추억을 남겨줄 수 있어요.

그에게 작업 루틴을 묻고는 아차 싶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에겐 애써 지켜갈 루틴은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짐작한 대로 그는 매일 출근 시간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루틴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대답 속에 그 무엇보다 확고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숨어 있었다. 한 사람을 위한 아트 퍼니처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꿈꾸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설계가 필요함을 아는 사람. 쉽고 명쾌한 말투 속 느껴지는 단단하고도 섬세한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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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