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한강 카누잉
한강 카누잉
물과 가장 가까운 지금 우리
한강의 파도를 상상해 본 적 없다. 숨소리나 몸부림도 당연히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가을 어느 날 나는 잘 만들어진 나무 카누 두 대를 빌릴 수 있었고, 그걸 한강에 띄웠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노를 저어 강의 몸 위를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그건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며칠 간 생각한 것을 여기에 적는다.
한강에 배를 띄우던 날 우리는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 그리고 두 감정을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과연 재미있을까’하는 의심도 조금. 카누를 빌려올 때 그곳에 걸려있던 사진들(어린 아이부터 노인, 많은 사람들이 카누 위에서 즐거워하던)을 실컷 봐서인지 의외로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강 근처에 도착해 배를 뒤집고 번쩍 들어 옮기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았다. 서울에서는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공원을 걷거나 운전을 하고, 카페에 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뭐 그런 것들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은 나무로 된 카누를 거꾸로 들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 조금 들떠 버린 것이다. 카누에 올라 물 위로 미끄러지자 바람이 불었다. 우리가 정지해 있을 땐 불지 않던 바람이 움직일 때마다 어딘가에서 불어왔다. 숨겨진 바람을 찾은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패들Paddle(카누를 조종할 때 쓰는 노)을 반복해 저었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저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괜한 패들링으로 배가 뒤뚱거리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앞 뒤에 앉은 사람과 함께 적당히만 저어도 물 위를 빠르게 나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곧 카누의 속도와 흔들림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한강이 제대로 보인 건 그때부터였다.
완전히 다른 시각, 나는 언제나 한강의 주변에서 차를 타거나 걸으며 이쪽을 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안쪽에서 바깥쪽을 보고 있었다. 정말 단순한 일이지만, 가끔 그런 익숙함이 무너질 때 특별한 감동을 받곤 한다. 강의 한가운데서 바라본 바깥은 이쪽과는 참 다른 곳처럼 여겨졌다. 지금처럼 기분 좋게 바닥이 움직이지도 않을 테고 주변에는 사람이나 자동차, 보이지 않는 소음들이 항상 스칠 듯 가까이 있을 것이다. 몇 시간 뒤면 또다시 강의 바깥에서 이곳을 보게 될 거라는 사실에, 나는 카누 위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당장 주어진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폭이 넓어지는 강
한강은 정말 넓었다. 예전에 강원도의 동강에서 고무보트를 탔을 때도 깨끗한 물과 넓은 강 폭에 놀란 적이 있었다.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한 것처럼 그곳에 가서 여러 번 배를 탔고, 강 주변의 숲에 들어가 캠핑도 했다. 덥고 지루한 날이 계속되면 차를 타고 영월까지 간 다음 실컷 수영을 하다 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강은 그보다 적어도 세네 배는 더 넓었다. 물론 이곳에서 수영을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카누에 앉아 한강을 여행하는 지금처럼, 즐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왜 그 동안 한강을 바라만 봤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잠시 후엔 내 머릿속 놀이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강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 말 그대로 ‘확장’이었고, 그것은 더 나아가 ‘어디든지 시각을 바꾸면 놀이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내게 주었다. 넓은 강의 한가운데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게 한강을 다시 보여준 카누
최초의 카누는 통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탔던 카누는 가볍고 탄성이 좋은 적삼나무를 얇게 자르고 붙여서 만든 것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는 카누의 역사일 뿐 각개의 큰 단점은 없어 보인다. 어떤 것은 예전 것이 좋고 또 어떤 것은 지금의 방식이 옳다. 하지만 모든 카누에는 공통점이 있다(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말하는 것이 카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로 무동력, 오로지 패들로 저어 움직인다는 점이다. 바람이나 물살에도 물론 영향을 받겠지만, 그건 기계로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이 단순한 원리가 왜 화두에 올라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 나는 “맞아요.”하며 웃어 넘기기 보다는 지금까지 카누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거나, 카누에 앉아 있던 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쨌든 카누를 탔고 적잖은 즐거움을 느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카누는 내게 서울의 자연과 가까워지게 해준 최고의 ‘장비’다. 장비 없이 즐기는 수영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카누잉에는 수영할 때 찾을 수 없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수영이 물과 함께 뒹구는 즐거움이라면 카누잉에는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호흡을 따로 조절하지 않아도 될 때 생기는 여유는 내게 주변을 세심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선물했다. 나는 카누를 타기 전까지 출렁대는 한강의 몸통을 결코 상상해본 적 없었고 손이나 발을 물에 담그고 싶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한강을 따라 은은하게 켜진 노란 가로등을 더 사랑했다. 한강 한 가운데 떠있는 밤섬이나 노들섬의 생태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곳을 사진으로 남겨보고 싶고 걸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지만, 이전에는 평생 단 한두 번 이름이나 들어보고 지나쳐버렸을 공간이었다.
카누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던 때의 얘기도 하고 싶다. 몇 시간쯤 지나면, 물살에 따라 흔들리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무의식적으로 패들을 젖게 될 때가 있다. 배가 흔들릴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함도 시시해져 버리고 함께 타고 있는 친구와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렇게 지루함이 다가와 우리를 배에서 내리게 하기 몇 분 전, 예상치 못한 고요한 순간이 잠시 있었다. 아무 기대도 없고, 다만 내려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때 배를 두드리는 물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작은 소리였지만, 우리도 세상도 모두 조용하게 앉아있는 오후 네 시쯤이어서 잘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여러 번 반복됐다. 배에 처음 타서 패들링을 멈췄을 때 한강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더 작지만 반가운 소리로 한강이 다가온 것이다. 카누에 더 오래 앉아 있는다면, 이 위에서 차양을 쳐놓고 낮잠이라도 잔다면 어떨까, 나는 과연 한강의 어디까지 구경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이곳에서 수영을 세네 시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물 가까이에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을 것이다. 배를 두드린 그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바로 이어졌다. 어쩌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무심하게 한강을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움직이고 있는, 견디거나 졸고 있는 한강의 기척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람선과 제트스키를 타거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조용한 순간도 꼭 지켜봐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버스를 타고 갈 때도, 공원을 걸을 때도 한강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나는, 폭이 넓은 강의 깊이에 관해서도 몇 번은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고, 사는 곳 근처의 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오늘은, 아마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앞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꿔 놓겠지.
카누를 타고 싶다면
‘춘천 물레길’에서는 다양한 카누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간단한 카누잉부터 캠핑까지 즐기는 코스까지 마련되어 있고,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비교적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북한강에서 카누를 타다 보면 중도, 붕어섬 등의 작은 섬을 구경할 수도 있고, 시간대 별로 안개와 노을 속에서 노를 저을 수도 있다.
강원도 춘천시 송암동 644-23
mullegil.org
카누를 구매, 대여하고 싶다면
춘천 물레길의 우드 카누를 제작하는 기업은 ‘블로클로버’다. 이들은 제작뿐 아니라 교육, 대여도 해주고 있는데, 대여의 경우 카누의 이동수단을 직접 마련할 수 있는‘경험자’에 한해서 진행되고 있다. 카누의 구조를 재치 있게 활용한 가구, 생활용품 등도 판매하고 있다.
blueclover.co.kr
에디터ㆍ포토그래퍼 전진우
협찬 블루클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