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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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위한 안내서

동네 마트에서 온 전단과 백화점에서 온 카탈로그로 우편함이 가득찰 때가 있다. 페이지마다 물건이 빼곡한 종이에 마음이 동하는 건 ‘재고 정리’, ‘대폭 할인’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의 나열 속에서 물건에 대한 매력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국과 스위스에서, 물건을 위한 안내서를 만드는 두 여자가 있다. 그들은 직접 사용하는 물건을 소개하고, 그 물건을 둘러싼 삶의 모습을 기록한다. 성실하고 솔직한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맴돈다. “그거, 어디서 샀어?”

INTERVIEW 41호 이진주, 82호 김자영

그러니까 그 물건,
어디서 샀어?

카탈로그는 어떤 물건을 다루는 곳인가요?
유럽의 디자인 생활용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작은 상점이에요. 스위스에 사는 41호와 한국에 사는 82호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디자인뿐만 아니라 품질도 뛰어난,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정해요. 모든 상품은 직접 사용해본 후,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들을 바탕으로 매월 테마에 맞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서로 10년 넘게 알고 지냈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요.
2002년에 처음 만났어요. 대학교 설계실에서요. 십 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매일 카페에 앉아 시시콜콜 수다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고, 뜸하게 연락하며 생사만 간신히 확인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서로의 삶을 궁금해했어요. 긴 시간 쌓여온 신뢰와 이해가 있는 사이고요.

카탈로그는 오랜만에 함께 한 여행에서 시작되었다고요.
82호 6년의 회사생활을 꽉 채우고 직장인의 꿈인 휴직을 얻었어요. 오랜만에 하는 혼자만의 여행이라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도시에 머물며 일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죠. 그렇게 포르투를 시작으로 과거를 되짚는 여행을 했어요. 41호와는 2003년, 저희가 새내기를 막 지난 시점에 함께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 기억이 단편적인 조각으로 흩어졌지만 41호를 오랜만에 유럽에서 다시 만나니 잊고 있던 기억을 채워 넣는 기분이 들었어요. 무엇을 해도 즐겁고 다할 수 있을 것 같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죠. 

41호 82호가 유럽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왔을 때는 제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이 아주 궁하던 시기였어요. 그 당시 82호도 딱 그런 시간을 거치던 중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평소에 ‘물건 고르기’를 좋아했고 주변에서 ‘그 물건 어디서 샀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어요. 거기서부터 카탈로그가 출발한 것 같아요. 도소매 업으로 등록된 작은 상점으로 시작했지만 그 당시 저희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멀리 있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포함했죠. 오늘도 하나씩 해가는 중입니다

41호, 82호라는 닉네임이 귀여운데, 혹시 현재 사는 집의 호수인가요?
41호와 82호라는 닉네임은 각자가 사는 곳의 국가번호에서 따왔어요.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로 거주지를 택한 것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두 집의 사물을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카탈로그 홈페이지의 ‘탐구생활’ 코너를 보면 판매하는 물건을 실제로 즐겁게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개하는 제품 대부분은 저희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들이에요. 그만큼 제품의 특성이나 장점을 잘 알고 있어서 소개할 때 자신이 있어요. 단점이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요. 다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제품의 경우에는 온라인상에서 사진과 몇 줄의 설명만으로 물건의 장점을 설득해야 하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카탈로그에서는 트렌디한 디자이너의 작품이거나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은 제품보다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을 선별해서 소개하려고 해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라 한국 소비자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유용한 제품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두 분 모두 건축을 하고 있다고요.
건축가는 저희 둘 모두의 오랜 꿈이에요. 카탈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개인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회사에 다니는 것도, 공부하고 여행하는 것도 모두 그 언저리에서 머물고 싶어서죠.

같은 일을 하려면 관심사도 비슷하고 취향도 잘 맞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편인가요?
물론 전공이 같아 공통 관심사가 많고, 얼리어답터를 주장하며 저희보다 쇼핑을 더 즐기는 남편을 두었다는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지기는 했지만 표현방식은 조금씩 달라요. 취향도 마찬가지고요. 예를 들어 저희 둘 다 라디오를 즐겨 듣지만 41호는 말이 나오는 라디오를, 반면 82호는 될 수 있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 라디오를 더 좋아해요. 취향이 비슷하기에 카탈로그가 생겨났고, 또 취향이 다르기에 카탈로그를 더 객관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마음에 드는
단 하나의 아이스크림 스쿱을 찾아서

사실 저는 생활용품의 아름다움을 늦게 깨달은 편이에요. 예전에는 ‘생활’용품이다 보니 가격을 제일 먼저 생각했었거든요. 두 분이 ‘디자인’ 생활용품이란 것을 인식하게 된 건 언제쯤인가요?
건축, 글, 사진 모두 자신을 표현하는 매체라면 생활용품 역시 그런 것 같아요.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한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되는 것이니까요. 디자인 용품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독립하고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 생기면서 그 안을 채우는 생활용품 하나하나가 ‘어떻게 생기고 만들어진 물건인가’가 더 중요해졌어요.

듣다 보니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만드는 이의 정성과 가치관이 뚜렷이 보이는 제품을 발견할 때 신이 나요.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마감과 디테일이 좋은 것이어야 하고요. 일상생활을 즐겁게 해줄 재치 있는 사물도 종종 골라요. 사용할 때마다 미소가 지어져 추억이 쌓이기 좋은 것들이죠. 특히 아기와 관련된 물건을 고를 때는 아기가 이 물건과 함께 있는 장면을 상상해봐요. 다양하고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더라도 카탈로그에서 다루려고 해요.

특별히 ‘건축가의 시각에서 골랐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있나요?
스위스의 원목 장난감인 네프Naef에요. 지속 가능한 산림의 나무만을 사용하는 가치관,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블록의 아름다움만큼 저희의 마음을 끌어당긴 점은 단순한 모양의 블록을 쌓아 수없이 많은 창의적인 공간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특히 Naef Spiel의 도형 16개는 무수한 오브제와 공간을 만들 수 있어요. 네프의 엄격한 품질관리 덕에 내 아이에게 물려줄 만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장난감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아직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아쉽지만 네프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벗어난, 모두를 위한 놀이도구일 거예요. 판매하는 저희도 무척이나 애정이 가지고 있고 또 자신 있는 제품입니다.

필요한 물건과 갖고 싶은 물건을 소비하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이스크림 스쿱을 예로 들고 싶어요. 시중에는 많은 아이스크림 스쿱이 있고 필요성의 관점에서만 보았을 때는 그 많은 종류의 스쿱이 모두 같습니다. 그저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담아낼 수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 중 갖고 싶은 아이스크림 스쿱은 무언가 달라요. 사용이 쉽거나, 품질이 우수하거나, 디자인이 아름답거나, 혹은 제품에 이야기가 담겨있어 ‘이 세상 단 하나의 완벽한 스쿱’을 찾고 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죠. 저희에게는 카탈로그에서 판매 중인 제롤 아이스크림 스쿱이 그런 제품이에요. 이 스쿱은 처음 고안되었던 1935년의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아직도 생산되고 있어요. 기능뿐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과 역사를 가진 물건이기에 더 특별해요. 갖고 싶은 물건은 결국 설렘을 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한 물건이 갖고 싶어지는 물건이 될 때 그 소비가 즐겁고 가치 있어지니까요.

매달 테마에 맞춰 물건을 소개하는 것 외에 기획하고 있는 이벤트가 있나요?
우선 카탈로그의 카탈로그, 다시 말해 ‘좋은 물건들에 대한 기록’을 만들어서 공유하고 싶어요. 저희에게는 그간의 판매 일지가 될 것이고, 구매자에게는 카탈로그의 상품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또 올겨울에는 첫 번째 팝업스토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카탈로그의 다양한 제품들이 잘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 많은 분들이 실제로 보고 만져볼 수 있었으면 해요. 언젠가는 오프라인 카탈로그 상점에 다른 구상을 덧붙인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한 가지 일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을 텐데요. 카탈로그를 운영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어떤 것인가요?
새로운 경험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기대감이 저희를 신나게 해요. 카탈로그가 1년 뒤, 2년 뒤에 어떻게 변해갈지 꿈꾸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더라도 꿈을 꾸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요. 물론 저희가 무언가를 쏟아내기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겠죠. 아직도 크고 작은 사고가 매달 벌어지고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같이 카탈로그를 이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돼요. 또 비밀스러움도 카탈로그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희 둘을 모두 아는 지인 중에는 카탈로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비밀연애도 아니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둘만 간직한 비밀처럼 은근한 재미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좋은 물건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41호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물건, 내 아이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만큼 품질 좋은 물건
82호 이야기가 담긴 물건, 담길 수 있는 물건

카탈로그에서 고른
네 가지 물건

01 네프깜파닐레 | 스위스 | 17만 9천원
테트리스 컴퓨터 게임이 블록놀이로 만들어져 공간감을 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02 맥주 거품기 | 덴마크 | 5만 6천원
부드러운 맥주 거품을 만들어 맥주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거품을 만들 수 있어서 술자리에서 은근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03 십자 고무줄 | 독일 | 한 세트(24개)에 1만 6천원
천연고무로 만들어진 십자 모양의 고무줄은 각종 서류, CD 케이스, 책이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준다.

04 아로마 스톤 | 독일 | 3만 9천원
무화학 점토와 코팅제로 만들어진 아로마 용품으로 에센셜 오일을 돌 위에 뿌려주면 방 안에서 은은한 향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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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자료 제공 카달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