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땅의 영원을 바라며

Silent Land, Solid Forever

덕분에 대전의 아름다운 면모를 만났어요. 그곳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독립 사진가이자 영상창작자 하윤필름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영감을 기록하고 있어요. 대전에서는 주로 학업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틈날 때마다 도시의 골목과 윤슬을 포착하는 산책을 즐겨요. 제가 운영하는 ‘하윤필름’은 바쁜 현대인들이 잠시 숨을 고르길 바라며 만든 공간이에요. 주로 도시의 풍경을 영화적인 감성으로 담아내고, 완벽한 미학보다는 그날의 공기와 습도가 느껴지는 찰나의 기록을 공유하고 있어요.

 

대전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면서 느낀 매력도 있을 듯해요.

학업 때문에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대전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그전까지 이곳은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경유지 정도의 이미지였는데요. 실제로 마주한 첫인상은 단정하고 여백이 많은 도시였어요. 서울의 속도감이 익숙한 저에게 대전은 좀 더 느리게 호흡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특유의 안정감 있는 다정함이 느껴졌죠.

 

고향은 대전이 아니라고 접했어요. 어떻게 이 도시에 머물게 되었어요?

일상과 자연의 경계가 유연하다는 점이 아름다워요. 서울처럼 화려한 랜드마크가 시선을 압도하진 않아도,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내리쬐는 빛이나 갑천의 물결처럼 소소한 풍경이 위안을 주죠. 특히 계획도시 특유의 정돈된 길과 그 사이사이에 숨은 아날로그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모습이 사진가로서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최적화된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에요.

 

여유로운 분위기가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인물이나 가까운 사물보다, 도시 풍경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어요?

도시는 수많은 사람의 감정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유기체처럼 느껴져서요. 도시를 포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빛과 그림자의 대비예요. 평범한 공간을 영화적 서사로 바꾸면서, 기술적인 완벽함보다는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되는 찰나의 미학을 기록하려고 해요.

완벽함보다 사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져요. 

한때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매몰되어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진이 저만의 기억과 감정을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아요. 이제는 단순히 예쁜 이미지를 만드는 걸 넘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프레임에 담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과정을 좋아해요.

 

작업물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은 무척 특별할 것 같아요.

제 시선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그 결과물에 누군가 공감해 줄 때 연결되어 있다는 만족감을 느껴요. 사진을 보는 분들이 잠시나마 창밖을 내다보는 듯한 여유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또 주변의 무심한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바라고요.

 

감각적인 선곡과 함께 풍경을 영상으로도 담아내고 있죠. 대전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를 꼽아볼까요? 어울리는 곡도 함께요. 

대전의 중심을 흐르는 ‘갑천변 산책로’를 추천할게요. 어울리는 곡으로는 카더가든의 ‘나무’를 선택하고 싶어요. 갑천은 도시의 소음과 평화로운 자연을 동시에 품은 장소인데,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멜로디가 갑천에 반사되는 노을빛과 무척 닮았어요. “인사하네요 근심없게”라는 가사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대전의 여유롭고 단단한 정서를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해요.

 

대전 하면 ‘재미없다’는 수식어도 함께 언급되곤 하잖아요. 작가님은 이 말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노잼 도시’라는 별명은 대전이 자극적이지 않고 평온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기분 좋은 애칭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이곳의 진짜 재미는 ‘발견의 재미’예요. 대놓고 드러나 있는 화려함 대신, 동네마다 숨겨진 카페나 조용한 공원 그리고 대학가 주변의 소박한 정취를 직접 찾아낼 때 느끼는 희열이 커요. 일상의 밀도를 높여가는 은근한 재미가 대전의 진면목이라 믿어요.

 

학업을 마치면 다른 지역으로 터를 옮길 수도 있겠지요. 먼 훗날 대전에서 촬영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면, 이곳을 어떻게 기억할 것 같나요?

대전은 나만의 시선을 가다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청춘의 배양소로 기억될 것 같아요. 20대의 제가 사진가로서 저만의 색을 찾아 헤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한 모든 과정이 이곳 풍경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흘러 사진을 다시 꺼내 본다면, 대전은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동시에 가장 평온하게 보호받던 삶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거예요.

 

사진은 찰나를 멈추는 힘이 있죠. 대전의 수많은 순간 중에서도 변하지 않고 기록되길 바라는 모습이 있나요? 

도시의 확장과 변화 속에서도 적당한 거리감과 여백의 가치만큼은 그대로이길 바라요. 타인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친절을 베푸는 정서나,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도 언제든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여유로움이 기록을 통해 보존되었으면 해요. 그게 바로 제가 대전을 프레임에 담으며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이 지역만의 원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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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Photographer 하윤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