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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사람이 쓴 몸과 감각의 기록
“몸의 존재마저 잊고 산 삶의 고비마다 한참씩 침묵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내 몸이 정신에게 신호를 보내온다 싶으면, 그때마다 매번 손에 펜을 쥐고 놀라운 현상들을 주목했지.”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의 한 구절이다. 다섯 사람이 몸의 일기를 썼다. 몸이 보낸 신호에 대한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다섯 개의 반응. 일기는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고 깨달음의 기록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하나 브랜드라이터, 수필가
몇 달 전에 이사를 앞두고 물건을 정리하다가 안 쓰는 기계들을 넣어둔 상자를 열게 되었다. 메모와 사진들이 남아 있어 차마 버리지 못한 폴더형 휴대폰(모토로라 블랙 레이저)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한 손에 쥐고 열었더니 익숙한 딱, 소리와 함께 납작하게 펴졌다. 키판을 몇 번 누르자 이것을 쓰던 한 10년쯤 전의 감각이 그대로 떠올랐다.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았다. 차례로 오래된 디카며 캠코더를 만졌더니 나도 모르게 배터리를 철컥철컥 끼웠다 빼고 이리저리 조작하는 동작이 아직도 손에 익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여러 해 전의 몸이 깨어나는 바람에 그 무렵의 기억도 여지없이 따라왔다.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는 줄도 몰랐던 일련의 능숙한 동작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내가 그 기계들을 다시는 잡아볼 수 없었다면 나는 그 동작들이 내 몸에 남아 있다는 걸 영원히 알지 못했겠지. 한번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사람은 그것을 잊지 않듯이 내 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기기들의 감각은 아주 오랫동안 내 몸속에 머무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불멸》에서, “사람은 많되 몸짓은 별로 없다”며 “몸짓들이 우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도구”라고까지 말했다. 흥미롭게 뒤집은 주장이다. 나는 최근 수영을 시작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수영은 하지 못했던 나였다.
물은 생활에 항상 쓰인다. 물을 마시고, 물로 몸을 씻고 설거지를 한다. 하지만 물에 몸을 담그고 나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몸이 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몸이 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내 몸은 사소해지고 온통 물에 반응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 내가 썼던 기기들이 그랬듯이 물이 내 몸에 온통 어떤 감각들을 새겨놓고 있다. 몸은 물 밖과는 완전히 다른 몸짓들을 꺼내어 놓는다. 쿤데라 식으로 뒤집어 말하자면 내 몸은 물을 만나 이전에 내가 미처 몰랐던 언어를 발화하는 중이다. 수영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내 몸에 들어있는지조차 몰랐을 언어다. 몸이 내어놓는 물의 언어를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경이롭다.
유희경 시인, 극작가,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대표
어느 날 저녁 왼눈을 잃었다. 남은 생의 왼편이 지워져버렸다. 어쩐지 이전의 날들도 함께, 조용히. 시야를 잃는다는 것은 소리 없이 공간이 지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 저녁 이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자주 놀란다. 불쑥 나타나는 누군가의 뒷모습, 멈춰 서는 자동차나 자전거 그런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죽음이 왼쪽으로부터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곤 했다. 한편으로 찾아오는 상실감은 이런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왼쪽에서의 당신. 이따금 왼팔에 스치며 존재하는 왼쪽의 당신. 왼쪽에서 나와 함께, 나란히 그리고 조용히 걷고 있는 그런 당신.
웃고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어떤지. 애써 보려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때론 당신을 놓치기도 할 거라는 불안이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늦추며 사라져버린 당신을 기다린다. 올봄에는 이런 경험도 했다. 벚꽃이 쏟아지던 거리. 우리는 멈춰 있었고 아마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나의 왼편에 선 당신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감정에도 기척이 있구나. 그럴 땐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벚꽃 잎들은 불쑥 오른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알고 싶어졌다.
나의 기척은 당신 오른편에서 안녕한지. 아니, 이러한 나의 기척을 당신이 알고는 있는지. 그래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나는 돌아보지 않았고 여전히 벚꽃 잎은 쏟아지고 있었고 여전히 당신은 나의 왼편에서. 그날 이후 나는 왼쪽의 일로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당신을 자꾸 나의 오른편에 두려는 무용한 노력도. 그런 일은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고, 문득 알게 되는 감정의 기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조금씩 알게 되는 일이 아닐는지.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조용히 지워져버린 나의 왼편에 지금 당신은 없다. 확인하지 않아도 당신은 정말 없는 것이다. 어떤 기척도 내게 오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보지 않고도 안다.
황선우《W Korea》 피처 디렉터
다큐멘터리 <댄서>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의 몸은 그가 훨훨 날아오르게 해주는 날개이자 한편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다.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위해 고통스러운 훈련을 거듭해야 하지만 그걸 멈추는 일도 불가능한 것이다. 왜 춤을 계속 하는가에 대한 그의 자답은 이렇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로열 발레단 동료들은 폴루닌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야수라고 불렀다. 먹잇감을 노리다가 낭비 없는 동작으로 낚아채는 근육질의 맹수가 그라면, 보통 사람인 나의 비루한 신체는 느릿느릿 허우적대는 나무늘보라던가 뒤뚱대는 판다쯤 될 것이다.
5월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의 안타까움 하나는 맥주를 못 마신다는 점인데, 스스로 정한 일이라 억울해할 수도 없다. 월말에 있을 하프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은 절제하자고 혼자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대개 이렇게 반응한다. “얼마나 뛴다고? 뭐 21킬로미터? 도대체 왜?” 땡볕에 땀 흘리고 얼굴을 태워 가며 미세먼지를 마시겠다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사서 하는 고생이다. 게다가 나무늘보의 기록이란 얼마나 하찮겠나. “할 수 있으니까.”라고 자신 있게 답하기도 어려운 것이, 레이스를 마치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참가 신청을 할 때도,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뛰고 있는 당일의 매 킬로미터 내내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그렇게 두 번의 하프마라톤을 경험했고 이번이 (완주한다면) 세 번째다. 도대체 이걸 왜 할까? 어쩌면 달리고 있는 동안만은 의심과 불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서 확실히 멀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 몸에는 단순한 감각만이 남는다. 거친 호흡, 맹렬하게 열린 땀구멍,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하는 관절, 저려오는 발바닥으로 이루어진 내 몸에는 어떤 걱정이나 근심도 침입해 들어올 틈이 없다. 무거운 육신을 조금씩 앞으로 옮겨놓는 일 외의 문제들은 인생에서 흐려진다. 그리고 두시간 반쯤이 흐르면 어떻게든 끝이 난다. 그날 점심을 먹으며 참을 만큼 참았다가 마시는 맥주 맛은, 정말로 좋다.
김혜원《어라운드》 에디터
다이어트로 한동안 간이 덜 된 음식만 먹었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이 유일한 소스였다. 나는 언제나 ‘비움이 있어야 채움도 있는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며 지갑을 비우곤 했는데, 비울수록 채워지는 건 따로 있었다. 그건 혀의 감각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서촌에서 오랜만에 만난 S선배와 족발을 먹었다. 5개월 만에 발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선배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고른 메뉴였다. 몇 분 후 알게 됐는데, 선배는 발리에서 지내며 어느새 반 채식주의자가 되어있었다. 다이어터인 나의 주식은 샐러드로, 나 또한 (이성을 잃지 않은 한) 채식주의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족발과 막국수는 참으로 맛있었고, 우리는 과식했다. 오랜만에 입으로 들어온 맵고 짠맛에 혀가 잠시 놀란 것도 같았으나 혀는 곧 그것을 ‘감칠맛’이란 이름으로 치환해 뇌로 보냈다. 고기와 막국수, 마늘을 넣은 상추쌈이 몇 번이나 입안으로 사라졌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선배와 나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너 때문에 고기도 먹고 과식했잖아.” “전 선배 때문에 족발 시킨 거란 말이에요…. 그래도 맛있었죠?” “응.” 우리는 술 한 잔 마시지 않았으나 과도하게 섭취한 단백질과 조미료에 취해 실없이 웃었다.문제는 다음 날 일어났다. 나의 뇌와 더부룩한 속은 어제의 과식을 잊고 싶은데, 혀는 어제의 맛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맵고 짠맛이 마치 공기처럼 혀 주위를 맴돌았다. 물을 마셔도 짠 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혀는 더 많은 밀가루, 더 많은 고기, 더 많은 간이 된 음식을 원했다. ‘이미 다 아는 맛인걸? 어제 많이 먹었잖아.’ 달래봐도 간사한 혀는 마치 뱀처럼 날 유혹했다. ‘먹어, 먹어,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으니 그것은 혀가 뇌를 유혹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표백제로 혀를 박박 씻어내거나 두 손으로 혀를 뽑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나는 유혹에 넘어갔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포장해주세요.” 치킨은 내가 아는 맛이었다. 여전히 바삭하고 기름졌으며 양념은 진득하니 달콤했다. 나는 고기와 튀김을 원하지 않는 예민한 혀로 다시 되돌리기 위해 3일을 고생했다. 저녁마다 이성과 혀가 싸웠다. 다행히 나는 꽤 이성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뭐든 두 배로 짜고 쓰고 맵게 느끼는 혀로 다시 돌아왔으니 말이다.엄마가 반찬을 만들고 난 뒤 간을 보라고 하면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겠어. 얼마만큼 짜야 짠 거야?” 짜고 싱거움의 기준을 모르겠다는 나에게 언니들은 맛도 모르고 먹는다며 놀렸다. 지금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엄마, 짜.” 예민한 딸은 이제 까다로운 입맛까지 갖게 됐다. 엄마는 내가 퍽 귀찮아진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내 혀가 좋다. 그리고 웬만하면 영원히 그랬으면 좋겠다. 치킨 앞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음식이었다고, 영원히 과거형으로 쓰고 싶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젊을 때는 몸을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시느라 살이 찌기는커녕 너무 말라서 문제였고, 술병으로 하루 이틀 일어나지 못하면 오히려 훈장이라 생각했다. 가끔 술 마시다 피를 토하는 친구가 있어도, 잠시 걱정하고는 잊어버렸다. 적당히 몸을 학대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회복력이 좋은 청년 시절이었다. 몸보다는 정신이 우선이라고 믿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지, 겉으로 아무리 꾸며봐야 빛 좋은 개살구야. 그렇게 믿었다. 몸이라는 것은 그저 그릇이고, 형식이고, 눈에 보이는 것뿐이라고 떠들어댔다. 정신을 갈고 닦아야지 몸에 신경 쓰는 것은 소인배가 하는 짓이라고 믿었다. 몸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이 먼저일까, 세파에 쓸려 정신이 희미해진 것이 먼저일까. 서른 즈음에 디스크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의사는 신경이 눌려 그렇다고 했다. 수술 대신 물리치료만으로 어느 정도 나은 후에는 가끔 침을 맞았다. 그 후로 일을 하건, 지나치게 놀건 과로를 하면 신호가 왔다.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바닥의 물건을 집다가 허리가 삐끗한다. 갑자기 움직이거나 무거운 것을 든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다. 몸이 신호, 아니 경고를 준 것이다. 과로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라고.몸보다 정신이 우위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도 않는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마음도 함께 흘러내린다. 힘들고 아프고 그럴 때면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나고 잔 실수가 많아진다. 생각도 편향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만 올바르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내용과 형식이 하나라는 것은 대학 미학 시간에 이미 배운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공감하게 된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것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병들 여지가 적어지는 것은 맞다. 몸의 신호, 경고는 무척이나 정직하다. 몸은 거짓을 말할 수 없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몸이 더 중요해진다. 몸의 세포가 늙기 시작하는 것은 18세부터라고 한다. 어릴 때를 제외하면 누구나 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젊을 때는 잘 몰랐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도 육체의 한계 따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고한 정신으로 몸을 지배한다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몸을 다스리는 것이 정신을 빛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그만큼 겸손해진 것일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무시하면 엄청난 재난으로 몸의 복수가 닥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몸은 정직하다. 내가 한 만큼 보답을 해주니까. 내가 소홀히 하면 반드시 여파가 있으니까. 인생은 그렇게 공평하다.
에디터·사진 김혜원
글 김하나, 유희경, 황선우, 김혜원, 김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