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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희
사람이 열심히 살기 시작하는 때는, 진정으로 열심이기 시작하는 때는 열심히 안 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다. 그래서 러닝 트랙과 등산로와 수영 레인에 중장노년층이 버글버글한 것이다. 엄마가 달여준 한약을 몰래 버리고, 단체 산행길 중 무단 이탈하며, 마라톤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쳤구나’ 하던 나도 이제는 운동을 하고 꼬박꼬박 영양제를 챙겨먹는다. 그리고 나의 소망은 이것으로 바뀌었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한 사람이 되자.
기뻐할 새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40대가 되었다. 사실 나는 언제나 빨리 나이가 들기를 바라왔다. 젊음이라는 것이 구석구석 미묘하게 맞지 않아서 얼른 벗어 던지고 싶은 불편한 옷같았기에, 얼른 40대가 되어서 편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고대하던 40대가 되니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아프다. 살이 빠지지 않는다. 죽어라고 빠지지 않는다. 몸의 선도 달라져서 전에는 잘 어울리던 옷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얼굴, 늙은 여자의 얼굴. 과연 40대는 좋은 나이일까.
마흔이 넘었다고 갑자기 다른 인격으로 변신할 수는 없으니 내 마음은 예전 그대로다. 좋아하던 노래를 여전히 좋아하고, 좋아하던 영화도 여전히 좋다. 좋아하던 스타일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이 그대로인 것과는 별개로 나의 외모와 말과 행동은 달라졌다. 나는 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를 지르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한겨울이면 북극곰처럼 껴입고, 운동장에서 힘껏 허리를 돌린다. 그 괴리감이 나를 머쓱하게 한다.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는 중년의 소설가 가쿠다 미쓰요가 자신이 섭렵한 온갖 종목의 운동에 관해 쓴 산문집이다. 그러니까 온통 운동하는 이야기인데, 중요한 것은 이 작가는 사실 운동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싫어하면서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고, 인터벌 운동을 하고, 산을 오르고, 트레일 러닝을 하고, 요가를 하고, 볼더링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궁금해서다.
아, 어쩌면 이것도 중년이 되어 달라진 점일 수 있겠다. 싫고 좋음의 범위가 넓어지고, 심지어 그 경계가 흐릿해져 버린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싫다, 좋다로 판단해 버리는 것은 어릴 때나 하는 짓. 더 나이가 든 우리는 ‘그래도 뭔가 더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싫다고 다 싫은 것이 아니며,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란 온갖 종류의 모순을 껴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가쿠다 미쓰요처럼은 아니지만, 나도 꾸준히 운동이라는 것을 해왔다. 요가는 무려 7년이나 했고, 가벼운 달리기는 30대초반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한때는 주말마다 등산도 했다. 한두 번이지만 스노보드도 타보았고, 실내 암벽 등반도 해보았다. 수영을 배워 보기도 했고, 헬스클럽에 등록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요가를 7년이나 했는데도 나는 물구나무도 못 선다. 10년 가까이 짬이 날 때마다 달리고 있지만 내 최고 기록은 7킬로미터를 벗어나지 못했다(그나마 시간은 재지도 않는다).
마라톤 대회에 나갈 생각은 없느냐고? 무슨 소리.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몸은 절대로 마라톤 대회 같은 데는 나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향상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나는 운동을 한다. 내가 운동을 하는 데는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오래 살고 싶다거나, 살을 빼고 싶다거나, 그 운동이 어떤 운동인지 궁금하다는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좋다. 더불어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유감인걸, 후후후. 아아, 나도 이 기분을 안다. 막상 달리러 나갔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달릴 수가 없게 되면 발걸음이 가볍다. 신이 난다. 나도 운동이 싫고, 즐겁지도 않다. 운동이 즐거워 죽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뒤의 성취감은 역시 중독적이다. 생각해보면 운동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운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게 뭐야.
보통 나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을 끼고 널브러져서 인스타그램이나 뒤지고 있다. 한두 시간을 그러고 있다 보면 옛 애인의 행적을 좇는 실연당한 여자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이제 그만 해야 해! 하지만 멈출 수 없어!’) 그러다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내쉬며 트레이닝팬츠를 입고 운동화 끈을 묶고서 운동장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다리가 무겁다. 그러나 조금씩 기운이 난다. 나는 이 느낌을 알고 있다. 내 온몸의 근육들과 혈관들과 장기들이 분주히 일하기 시작하는 느낌. 그러면서 생각한다. 대부분은 내가 별로지만, 이럴 때는 썩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나는 어쩌면 괜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튼튼해질 것이다. 튼튼하게 사는 하루하루가 모여 튼튼한 인생이 될 것이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한 늙은 여자가 될 것이다.
넷플릭스의 짧은 다큐멘터리 <나는 스모 선수입니다>(2018)의 곤 히요리는 여자 스모 선수다. 전통적인 남성 스포츠 스모의 세계에서 여자들은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모를 해온 곤 히요리는 스모로 인정받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열심히 해서 여자 스모가 인기를 얻으면 정식 종목이 되어 남자 선수들과 함께 겨룰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듬직한 어깨, 두터운 팔, 탄탄하고 굵은 허벅지의 여자 스모선수들은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한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위에 기저귀 같은 마와시를 차고 모래판 위에서 두꺼운 두 다리로 버티며 상대를 밀어내고 상대에게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끝내 밀리면, 모래판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면 아이처럼 엉엉 운다. 아, 이 얼마나 단순한 세계인가. 모래판 위에 남거나, 모래판 밖으로 밀려 떨어지거나.
모래판 밖의 곤 히요리는 그저 체격이 좀 큰 20대 초반의 보통 여자애다.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에 밝은 인상, 상냥한 말투와 수줍은 듯 부드러운 웃음. 그러나 모래판 위에서의 그는 진지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얼굴로 양 다리를 벌린 채 무릎을 굽히고 한 발씩 한 발씩 앞으로 전진한다. 그때의 그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저 스모 선수일 뿐이다. 그가 스모를 하는 이유는 스모의 규칙만큼이나 단순하다. 어릴 때부터 해왔고, 언제나 잘했으며, 지금도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곤 히요리는 말한다. 모래판 위에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것이 아마 운동이라는 것의 어마어마한 매력일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이 되는 것. 몸이 알아서 하는 것.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롤 모델이 없는 세계에서 자신의 롤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것. 이 불리하기 짝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충실한 자세다. 순간에 충실하면 그 충실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충실한 인생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들이 어딘가 좋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런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곤 히요리의 이야기는 그런 낙관적인 기대를 남긴다.
오로지 끝나고 나서 마실 술을 생각하면서, 이게 끝나면 더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달리는 가쿠다 미쓰요의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런 불건전한 마인드로 잘도 건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좋다. 삐딱한 마음으로 건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마음의 삐딱함을 몸이 바로잡아 주니까. 몸의 건전함을 마음의 삐딱함이 풀어 주니까.
아주 피곤한 날, 머리가 복잡한 날, 나를 위한 나의 처방은 간단하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한다. 집 뒤편의 공원을 걷기도 하고 좋아하는 카페까지 가는 길을 걷기도한다. 내 다리는 내 마음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에는 달린다. 달리면서 마음의 피로와 몸의 피로를 같게 하려 노력한다. 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지치면 피로의 무게도 견딜만해 진다. 아니, 아예 녹다운된다고나 할까. 녹다운되어야 할 때 녹다운되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나 모래판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때로는 모래판 밖으로 멋지게 떨어져 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의 정신은 현재보다는 과거와 미래를 배회하는 것 같다. 여기가 아닌 다른 먼 장소에 가 있기도 한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때 우리의 정신은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숨을 헐떡이고, 팔과 다리의 근육이 당기고, 발바닥이 따끔거릴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이 작은 몸뚱이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산소로 호흡하고, 대지를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파도를 가르면서, 눈 위를 헤치면서 우리는 이 세계와 이어진다. 그렇게 자기와 친해지고 세상과 친해지는 일, 그것이 바로 튼튼해지는 일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가쿠다 미쓰요 | 인디고(글담)
〈나는 스모선수입니다〉(2018) 맷 케이 | 다큐멘터리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