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대화하는 법

신경과전문의·작가, 올리버 색스

몸과 마음이
대화하는 법

신경과전문의·작가, 올리버 색스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면 이렇다. “올리버 색스의 책은 미국에서만 수백만 부가 넘게 팔렸고,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었으며, 그는 1년에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받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경과전문의였던 올리버 색스는 왜 그렇게까지 사랑받았을까. 마음의 문제로 보이는 몸의 문제를 파악한 올리버 색스의 신중함은, 어떻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일까.

마음은 몸에 깃든다. 어릴 때 동화를 보며 생각하는 마음의 집이란 심장 어딘가인 경우가 많지만 뇌과학자이자 신경과전문의였던 올리버 색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의 활동과 그로 인한 마음의 작용이 바로 몸, 그중에서도 뇌라는 점을 자신이 평생 만나온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글로 들려주었다.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말의 결이 얼마나 다양한지도.

환자라는
‘스토리’를 읽다

올리버 색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상’으로 한 사람을 약간이나마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로빈 윌리엄스는 올리버 색스를 연상시킨다. 외견에서의 유사함도 없지는 않지만, 올리버 색스의 초기작 《깨어남》이라는 책을 영화화한 <사랑의 기적> 에서 올리버 색스 역할을 바로 로빈 윌리엄스가 맡았기 때문이다. 《깨어남》은 신경과전문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뇌가 얼마나 이해 불가능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자, 이후 올리버 색스의 저술에서 강점으로 평가받는 ‘스토리텔링’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의학을 소재로 한 논픽션이 극영화로 만들어져 로빈 윌리엄스와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다는 것부터가 그 매혹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설명하면 이렇다. 어릴 때 뇌염을 앓은 레너드(로버트 드 니로)는 열한 살 때부터 손이 떨리는 증세가 나타나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에서 살게 된다.그는 후기뇌염 기면증으로 판정받는데, 정신은 잠들고 근육은 강직되는 병. 레너드가 수십 년간 입원한 병원으로 세이어 박사(로빈 윌리엄스)가 부임해온다. 그 즈음, 파킨슨병 환자에게 엘도파라는 약이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접한 세이어는 이들의 증세가 그 병의 증세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약물치료를 하게 된다. 엘도파를 투약받은 레너드는 기적적으로 깨어나고,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수면병은 1920년대의 유행병이었다고 한다. 한번 걸리면 수십 년간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깨어남’은 해피엔딩으로 이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은 많은 기면증 환자들이 깨어난 뒤 겪게 된 부작용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불화, 그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 등을 담아낸 책이다. 시체와 다름없는 상태로 죽을 때까지 누워 있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폭발하듯 깨어나 활동하고 그 상황을 기록한 이 책은 극영화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성공

《깨어남》의 경우처럼 뇌의 이상으로 겪는 설명 불가능한 증상들, 타인에게 설명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환자들의 사연을 경청하고, 그들이 지금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올리버 색스의 태도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병원에 가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올리버 색스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몸에서 벌어지는 일은 마음의 그것과 달리 더 ‘알기 쉬운’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몸의 일부인 ‘뇌’의 오작동으로 인한 각종 증상은 때로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제목부터 특이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제목이 된 사연이 딱 그렇다.

어떤 남자 환자가 있다. 음악선생님인 이 환자는 성격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물건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아내의 얼굴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 모자를 집어 올릴 때 모자 대신 아내의 얼굴을 집고 들어 올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환자를 대할 때 올리버 색스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우리가 낯선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파악해갈 때 쓰는 방법, 호감을 갖고 조심스럽게 중심에서 먼 곳부터 알아가는 시도를 한다. 이를테면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재킷 상의에 꽃을 꽂아둔다. 그것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묻자 환자는 난처한 얼굴이 되는데, 냄새를 맡고 나서야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올리버 색스는 이런 방식으로, 환자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시각에 관련된 것인지 후각이나 다른 감각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인지를 천천히 파악해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으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 자신이 겪는 일이 어떤 병인지 들어본 적도 없는 환자들이 올리버 색스를 찾아온다. 너무나 이상한 증상이라 주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무시당하는 상황에 자주 처했을 환자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 비로소 본인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얻는다. 이것은 의학적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재능의 문제로 보인다.

작별의 순간에도
글을 쓰다

“갑자기 초점과 시각이 명료해진 것을 느낀다.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에 내어 줄 시간이 이제 없다. 나 자신, 내 일, 친구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리버 색스에게 임박한 죽음은 삶을 대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올리버 색스는 그중 하나로 세상을 향한 글쓰기를 실천했다. 올리버 색스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던 ‘나의 주기율표’라는 글에서 항암치료가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지를 담담한 문장으로 적어갔다. “아직 매일 수영을 하지만 요즘은 더 천천히 한다. 호흡이 약간 가빠진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외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알리는 올리버 색스 재단의 페이스북 계정에 따르면 그는 마지막 날들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냈다. 피아노를 쳤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수영을 했고, 훈제연어를 먹었고, 글을 몇 편 완성했다. 몸과 마음, 파악 가능한 세계와 측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 사이에서 대화하는 법을, 올리버 색스는 잘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질문하기, 편견을 갖지 않고 상대의 말에 집중하기, 그리고 쉽게 단정하지 않기. 매번 특이한 환자들의 사연을 읽으며 질병을 하나의 흥미로운 소재로 소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올리버 색스가 가진 그런 진중함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소개하는
올리버 색스 서적

뮤지코필리아(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알마ㅣ574쪽

‘뮤지코필리아’는 음악Music과 사랑Philia의 합성어다. 올리버 색스는 인간 본성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음악적 성향을 선천적인 것으로 여겼다. 번개 맞고 갑자기 음악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사연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음악과 관련된 특이한 증상을 경험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음악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임을, 음악을 사랑하는 올리버 색스가 차분하게 풀어낸 책.

온 더 무브
알마ㅣ496쪽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자 회고록. 수십 년 동안 환자들에 대해 말해온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았음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라 말했던 올리버 색스는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자신의 평생을 두고 말한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에는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이 가득하다.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면서 뇌, 의식, 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삶의 기록.

고맙습니다
알마ㅣ64쪽

올리버 색스는 2015년 8월 30일 여든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에세이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고맙습니다》다. 질병의 의학적 드라마와 인간적 드라마를 하나로 엮어 인간 존재의 특수하고 보편적인 측면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글을 적어간다. 미화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가 삶의 8개월간 쓸 수 있었던 이 글들은 그의 어떤 책보다 얇지만, 서가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고 함께 나이 들며 읽어가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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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다혜

사진 올리버 색스 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