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언덕 위에 선 남자

그가 뿌리내린 곳은 단단한 모래언덕이 자리한 땅. 앞으로는 파도가, 뒤로는 바람이 밀려오며 그의 손을 연신 카메라 셔터에 올려두던 땅. 세상의 이목과는 먼 시골 마을에서 카메라를 든 한 남자는 성실하고도 세심한 관찰자를 자처하며 보이는 것을 기록했다. 모래언덕을 펄쩍 뛰어보던 사진가 우에다 쇼지Ueda Shoji를 따라 모노크롬 세계를 응시한다.

모래와 하늘과 바다의 세계

세상 모든 기록은 결국 쓰는 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의미를 담았건, 누구에게 보이건 자신의 일부분을 뚝 떼어내어 넣었기에, 기록은 그 무엇보다 쓰는 이를 또렷이 말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우에다 쇼지의 사진을 보면 그가 사랑하던 것들을 알아챌 수 있다. 아내와 네 명의 자녀, 집 근처 모래언덕, 이웃들, 귓불까지 바짝 자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동네 아이들과 바람이나 파도에 떠밀려온 잡동사니. 앉은자리에서 한눈에 볼 수 있을 법한 일상적 소재이기에 우에다의 필름에는 유달리 희소한 장면이 기록되진 않았다. 모래언덕이라는 배경과 간결한 소재, ‘이웃집 가족’이나 ‘늙은 어부’처럼 간결한 제목 아래 그저 마음속을 뭉근히 맴돌던 애정을 붙잡아 두었을 뿐이지. 

1913년, 일본 돗토리현에서 나막신 사업을 하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우에다는 어릴 적, 이웃집 청년이 집에서 사진을 현상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기록 도구를 알게 됐다. 예술을 좋아했던 소년은 열여섯 살에 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카메라로 습작을 찍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엔 곧장 도쿄로 향해 몇 달간 사진을 배웠다. 말 한마디 없이도 너른 등을 내어주는 모래언덕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어엿한 청년이 된 우에다는 대도시가 아닌 시골 작은 변방 마을인 고향에 뿌리내리기로 마음먹는다. 사진관을 개업한 뒤 만난 아내 노리에는 그의 열렬한 응원가이자 뮤즈였다. 지역의 여러 사진가들과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고 때때로, 실은 매우 자주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바로 그 모래언덕에서.

ⒸSHOJI UEDA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

“단순화된 모래와 하늘과 바다의 세계, 어디를 보고 어디를 골라도 모두 사진이 된다. 모래언덕은 말하자면 ‘빼기의 미학’이 있는 풍경의 장소다.”

ㅡ우에다 쇼지

그곳은 바닷바람이 거센 탓에 만들어진 돗토리의 특별한 자연 지형이다. 방대하게만 느껴질 법한 야외 공간을 우에다는 놀이터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카메라를 들 때는 네모난 프레임 속 사람의, 동물의, 꽃과 잡동사니들의 자리를 하나씩 잡아주었고, 옆을 보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특정한 행위와 시선을 취하도록 지정하기도 했다고.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1939),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1949)을 비롯하여 이렇게 탄생한 모래언덕 위 사진들은 여태까지 우에다의 걸작으로 꼽힌다. 철저히 계산된 연출 사진임에도 현실감이 사라진 배경에는 이름 모를 세계의 환상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는 피사체에게선 사랑스러움이 엿보인다. 내 섣부른 추측대로라면, 우에다도 역시 그들과 그 세계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나는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오

모래언덕 연작은 인물 군상뿐 아니라 정물, 풍경, 추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인위적 개입 없이 우연한 스냅으로 기록하는 리얼리즘의 영향으로 ‘눈의 표면'(1954) 같은 작업물도 선보였으나, 시골 사람들의 담백하고도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담기 위해 다시금 사람과 눈을 맞췄다.

ⒸSHOJI UEDA

‘모델과 예술 사진작가들’ 

“도쿄에서는 팔리는 사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도쿄에 진출했다면 나도 여성 누드와 광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빨리 망쳐버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에 머무르면서 원하는 대로 찍고 싶었다. 하지만 도쿄로부터 한 발짝 물러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ㅡ《브루터스BRUTUS》, 1985년 4월호 중에서

그런 우에다에게 아내의 죽음은 너무나도 쓰라렸다. 깊은 상실감에 빠져 더 이상 카메라를 들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지인을 동원해 패션 브랜드 화보 촬영을 맡겨본다. 이른 나이부터 화보 작업에 뛰어드는 패션 전문 사진가들과 달리, 우에다는 무려 70세의 나이로 신인 패션 사진가가 된 것이다. 고민 끝에 걸음이 이끈 곳은 자신의 영원한 놀이터인 돗토리의 모래언덕.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가뿐하던 청년이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노인이 되었지만, 사진을 대하는 단정한 마음은 바랜 적 없다. 뿔테 안경을 쓴 눈 위로 이마 주름을 만들던 우에다는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환상적인 세계를 또 한 번 그려냈다. 

우에다는 존경받는 사진가의 자리에 올라선 후에도 자신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 불렀다. 여든일곱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까지도 그 소개는 변함이 없었다고. 아마추어는 아주 조금 더 가볍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봐도 손에 쥔 것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 ‘돈이 되는 기록’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기록’에 열중하는 아마추어로서의 자유와 기쁨, 열정은 대적할 만한 것 없이 값지다. 그렇다면 우에다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마도 수북하게 쌓인 필름들, 뷰파인더 너머 상대와 진심으로 눈 맞추며 써낸 기록들이 소리 높여 말해주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SHOJI UEDA

‘눈의 표면’

ⒸSHOJI UEDA

자화상 ‘점프하는 나’

“(자신의 작업물에 대해)카메라를 통해 만난 사람에 관한 서술이며, 찍힌 사람에게는 오늘을 살아온 증거로서의 작은 전기가 되길 바란다.”

ㅡ우에다 쇼지가 ‘작은 이야기’ 연작에 대해 소개하며

그가 뿌리내린 곳은 언덕이 등을 내어주던 땅. 앞으로는 파도가, 뒤로는 바람이 밀려오며 오늘을 살아온 증거를 남기게 하던 땅. 유행하던 사조나 분파 대신 나고 자란 땅에 영원히 머물며 기록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를 떠올려 본다. 우에다 쇼지의 사진에선 지난날의 그와 훗날의 우리가 남아 있다.

ⒸSHOJI UEDA

‘모래언덕 위의 군상’

삶의 서사가 예술이 되는 곳, 피크닉

회현동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입구를 벗어나 언덕배기를 오른다. 오래된 골목에 자리한, 마찬가지로 오래된 상점과 주택들을 스쳐 지나가면 마침내 ‘피크닉piknic’이 보인다. 만날 때마다 사뭇 다른 표정을 띤 채, 회현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뿌리 내린 피크닉에서는 현대 음악, 산업 디자인, 정원 등을 주제로 다채로운 전시가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사진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사울 레이터, 2022년 프랑수아 알라르에 이어 새로운 해의 봄이 오기 전까지 진행될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까지, 한 사람의 삶이 들려주는 서사를 아름답게 매만져 선보이기 때문. 특히 우에다 쇼지의 경우, 한국에서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기에 어린 시절 습작부터 모래언덕 연작, 어린이들의 초상, 정물과 후기 컬러 사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대표작을 한데 아울렀다. 층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감상하는 동안, 공간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 힘껏 밀려온 파도가 지면에 닿아 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그가 되어 언덕 위에 올라선 기분이랄까. “어디를 보고 어디를 골라도 모두 사진이 된다.”던 우에다의 말을 떠올리며, 기록 더미를 자유로이 누빈다.

A.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
O.〈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2024. 10. 12.-2025. 3. 2.
수-일 10:30-18:30, 월·화 휴무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명주

자료 제공 피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