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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ime to Turn Around
미군공항, 바닷바람에 드센 아낙들이 많다던 엄마의 푸념, 허허벌판을 가로질러야 학교가 나오고 뒷산 무덤은 해마다 산불에 까맣게 타 들어가던 기억, 유년 시절 8할의 추억이 깃든 동네, 그렇지만 여전히 모르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 것만 같은 군산. 떠나온 지 벌써 한참이 지났지만 이따금 그곳을 생각했다. 지인의 당일치기 여행담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군산을 하루동안 어성어성 잘 보고 왔다는 그의 말에 예정된 주말 계획을 조금 변경하기로 했다. 서울 사는 딸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에게는 밤늦게나 도착할 것 같다는 전화 한 통을 남기고 전주행 대신 군산행 버스에 오른 것이다. 그간 우리 가족은 군산을 떠나 전주로 이사를 했고, 나는 서울에 온 지 십 년쯤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17년 만의 군산행인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렸을까, 나는 마치 시네마천국의 토토라도 된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산들이 무리 지어 있는 섬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군산. 사방을 둘러싼 산과 숲을 떠올리면서 ‘산이 많아 군산인가?’ 하는 식의 생각을 할 때쯤, 갑자기 시야가 걷히더니 저 멀리 햇살이 바다의 잔물결에 조각조각 부서지는 광경이 보인다. 곧이어 머리 위로 ‘군산항’이라고 적힌 파란 팻말이 지나갔다. 서울과 군산의 거리도, 일렁이는 물빛에 환해지는 기분도, 실은 닿을 수 없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경암동의 철길마을로 향했다. 가보고 싶던 몇 군데 중 유일하게 외떨어진 곳이었다. 마을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면 몇몇의 사진 찍는 커플들,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고 할 일을 하는 주민 두어 명이 전부였다. 왠지 평화로워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5킬로미터의 철길 양 옆으로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철도 위까지 세간이 펼쳐져 있었다. 1940년대에 놓인 철도 위에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화물열차가 다녔다고 하니 꽤 오래 열차가 다닌 셈이다. 하루에 두 번, 열차가 지나는 시간이 되면 주민들은 펼쳐두었던 살림살이와 강아지를 안으로 들여놓고 느린 열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한때 삶을 가로지르던 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모습을 쭉 지켜봐 온 동네 사람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쪽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철길을 따라 걷는 동안 소담한 꽃이 자라나는 화분, 아주 낡았지만 여전히 앉고 싶어지는 낭만적인 소파, 양지에 널어놓은 어린 아이의 운동화, 그런 것들이 조용히 사람 사는 냄새를 피워 올리는 것을 보았다. 열차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처럼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을 위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제야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마을을 빠져 나와 향한 곳은 장미동이었다. 군산은 바다와 평야가 인접해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곡물수탈의 근거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바람직한 이유는 아니지만 당시 가장 번영기를 누렸던 군산은 아직도 곳곳에 근대식 건물들이 많았다. 특히 장미동 일대의 근대미술관, 근대역사박물관에는 서양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했던 개화기의 유행이나 신지식인들의 생활상, 무엇보다 일제에 잔인하게 희생당했던 조선의 뼈아픈 모습들이 고스란히 재연되어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들이었다. 늘 기억 속에 있었지만 군산을 생각하면 낯선 기분이 들었던 것도 이런 아픔에 배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가 걸음을 재촉했다.
시끌벅적한 꼬마 견학생들 무리를 지나 정처 없이 걸었다. 어디선가 짜디짠 소금 냄새가 났다. 잡초가 무성한 옛 기찻길 뒤로 몇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는 풍경이 시선을 끌었다. 뒤이어 내항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보이고, 멀리까지 물이 빠진 바다도 모습을 드러냈다. 군산에 살던 어릴 적에는 하구둑을 따라 이어진 바다의 초입 부근밖에 가 본 일이 없어서 도처의 바다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일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뜻밖의 만남이 반가워서, 내가 이 정도로 바다를 좋아했나 싶었다. 부둣가의 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이곳 분위기에 익숙한 듯한 누군가가 음악을 들으며 물 빠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한참이나 부두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떼었다. 등 뒤로 바다를 벗삼아 사는 이들의 사투리 섞인 걸쭉한 농담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도로 쪽으로 건너와 옛 군산세관을 향해갈 때쯤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근처의 처마로 피신했는데, 아무래도 수 분내에 멎을 것 같지 않았다. 빗줄기가 잠시 약해진 틈을 타 길 건너의 카페로 뛰어들어갔다. 그제야 군산에 온 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음을 알았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는 군산 시내를 씻어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을 전하니 데리러 오겠다 하신다. 혼자서 여행을 끝마치고 싶었지만 함께 옛 동네를 돌아보자는 말에 선뜻 알았다는 대답이 나왔다. 소나기를 피해 들렀던 이 카페는 ‘미즈카페’라는 군산의 명소 중 하나였는데, 일제강점기 물자약탈을 위해 세워진 무역회사 ‘미즈상사’를 개조한 공간으로 현재는 다다미방 구조를 유지, 보수한 2층까지 손님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카페 문 앞에 걸린 태극기만이 이곳이 한국임을 알려 주었다.
다음 골목에서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옛 군산세관과 마주했다. 1908년에 준공된 유럽양식의 건물로,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라고 했다. 붉은 벽돌과 하늘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문이 독특하고 멋스러운 외관을 이루고 있었다. 내부도 관람이 가능했는데 단출하게 세관의 변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공간을 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 내리는 오후,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옛 건물을 혼자 돌아보자니 왠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히로쓰 가옥으로 더 많이 알려진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가려면 맞은편으로 건너 한참을 가야 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마땅한 지도 하나 없이 물어 물어 가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곳곳에 즐비한 옛 건물들 틈에서 삼십여 분을 헤매다 결국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애석하게도 가옥은 몇 발짝 안 가 나타났다. 여담이지만, 의도치 않게 택시를 자주 이용하면서 느낀 건 여행객을 흥미롭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세 분의 기사 아저씨 모두 호기심 반, 반가움 반의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히로쓰 가옥에 데려다 준 아저씨도 이곳이 처음이라며 목적지에 함께 내려 한참을 구경하더니, 지붕 위의 고양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곤 기웃기웃, “뭘 찍어? 아아, 고양이!” 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순박한 관심은 어딘지 정겹고 재미있었다. 가옥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포목상 히로쓰가 지었다는 이 전통 가옥은 뒤쪽까지 생각보다 큰 풍채를 자랑했다. 2층에서 내다보이는 아기자기한 정원은 비 내린 오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는데, 함께한 일행이 있었다면 정원을 보며 차를 한잔 마시고 가도 좋을 풍경이었다. 한편으로 이런 정취 좋은 집에서 조선인에게 만행을 저질렀을 히로쓰에게 내심 원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옥을 나와 인근에 위치한 초원사진관을 발견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알려진 이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도착하셨다. 이곳까지 혼자 무슨 바람이 들어 왔느냐고 묻는 당신의 표정에도 남다른 감회가 감돌았다. 우리가 살던 군산의 지곡동은 확실히 바닷가 근처의 느낌과는 달랐다. 무언가 전보다 많이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 많은 것이 그대로였다. 어쩜 이 많은 이야기들을 다 잊고 살았는지, 함께 놀던 친구들 모두 잘 살고 있을까? 내 또래의 누군가를 마주쳤다면 아마 난 그를 추억 속의 누군가로 믿고, 애써 기억해내려 했을 것이다.지는 석양과 함께 여행도 끝자락으로 내달렸다. 마지막으로 들른 금강하구둑의 장항바다는 기억 속의 모습보다 적막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아버지와 하구둑 주변에 새로 생긴 짬뽕집에서 짬뽕 한 그릇을 먹었다. 모처럼 어린 나이의 소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래 기다린 엄마는 너무 늦었다며 성화였다. 다 커 버린 남동생은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반가운 우리 집, 하루의 여행이 특별했던 건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은 군산은 불현듯 해후한 옛 친구 같아서 아직 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익숙한 듯 낯설었고, 서먹한 만큼 애틋했다.그날 밤, 나는 떠나올 때보다 왠지 더 묘한 기분이 되어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 다시 불을 밝혔다. 걸어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괜히 노트에 끄적거렸다. 이 바람이 이루어지는 데는 다시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군산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는 곳이 많으니 당일여행을 계획한다면 월요일을 피해서 가는 것이 좋으며, 시내에 비치된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이용해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요금은 3천원. 군산의 바다는 탁하고,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의 특징을 모두 가졌다. 동해처럼 푸르고 깊은 매력은 아니지만 친숙한 삶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군산시 장미동의 근대역사박물관 뒤편에 펼쳐진 바다에 꼭 한번 가보길.
글 사진 이향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