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여기에서 빛을 찾아 보세요
나무 액자를 만들며 살아가는 나와 이제 여덟 살이 된 개 한 마리. 우리가 3층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2년째 씩씩하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어제는 혼자서 새벽까지 일해서 외로웠다.” 자다 깬 완두를 내 앞으로 불러서 쓸쓸한 마음을 말하던 오늘 아침에도, 한 번도 본 적 없던 빛이 한쪽 창을 뚫고 들어와 반대편 창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일터와 집이 한 공간에 있어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나의 일은 나무 덩이를 가공해 얇은 액자로 만드는 것, 거기에 필요한 기계가 집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평소에 집이 아니었다가 커다란 청소기와 작은 청소기로 계속해서 나무 가루를 한참 빨아들여야 그때부터 잠시 집이 된다. 일을 끝낸 후에 작업복을 툭툭 털고서 저녁으로는 무얼 먹을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장소는 비록 그대로일지라도, 나는 집에 돌아온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지낸 지도 이제 2년째. 얼른 나아져야 한다고 가족들은 가끔씩 찾아와서 말하곤 한다. 한편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저 괜찮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해야 정말 나아지는 것인지 아직 고민 중이고 그런 고민들은 어쩐지 늘 천천히 하고만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젠가 이 고민이 고민 같지 않을 때 저절로 술술 해결돼 버리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늘 그랬으니까 말이다.
이곳이 답답하고 시끄러운 상자 같이 느껴질 때, 나는 그저 창문을 생각한다. 커다란 창문이 일곱 개나 있다고 생각하면 상자 속에서 좁아진 내 마음에도 창문이 생기고 곧 바람이 통한다. 빛이 들어온다. 창문은 안과 밖을 분리하며 동시에 연결해 주는 마법 같은 선이다. 언제든 열고 닫을 수 있다면 나는 상자에 갇힌 게 아닌 ‘담긴’ 사람이 될 수 있고, 담겨 있다가도 어딘가로 흐를 수가 있다.
창문으로 눈 내리는 풍경도 여러 번 보았고, 바로 앞에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 윗부분의 변화도 늘 봐왔다. 거기서 들어온 햇빛은 깜깜한 밤에도 내 몸에 분명히 묻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 안쪽에 머무는 아늑함. 앞서 말한 것들이 우리 몸을 살게 하는 음식과 은유로써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상자 속에 살고 있는 나와 완두가 3층의 온실에서 창을 통해 자라고 있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액자를 천 개 정도 만든 것 같다. 어쩌다가 액자를 만들며 살게 됐을까, 나 자신에게 여전히 물으면서도 꾸준히 나무를 사 와서 다듬어 나갔다. 큰 기계 소리에 놀라던 완두가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멀찍이 누워 쿨쿨 낮잠 자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뭉클한 기분이 들고, 일할 용기를 얻는다. 물론 일이 아무리 밀려도 도와주는 법이 없지만.
2미터가 넘는 나무 덩이를 크기에 맞게 자르고 평평하게 만들어서 여러 갈래로 켠 다음에 유리와 뒤판이 들어맞게끔 자리를 만든다. 그런 다음에 그림에 맞게 길이를 잘라서 모서리를 붙여 액자 형태를 잡는다. 서로 잘 붙어 있도록 연결 부위에 촉을 박아 넣은 후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전체를 다듬어 준다. 오일을 바르고, 필요한 철물을 달아 주고… 작은 액자나 큰 액자나 손이 비슷하게 가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일이다. 아무래도 작은 액자를 만들면 제값을 못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스스로 작은 액자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으니까.
액자를 다 만들어 놓고 그림까지 끼우고 나서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그림을 방해하나?’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서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아예 만들지 않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는 내 일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 열심히 만들기. 없어지게 하기. 없어지는 역할로 존재하기. 액자 만드는 일을 하면 할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져 간다.
아침 6시 혹은 7시쯤에 잠깐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다가 창가에 서서 집 전체를 구경할 때가 있다. 내가 제일 자주 쓰는 기계 앞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거기에 걸쳐진 모든 것들의 짙고 깊은 그림자들이 집 안 곳곳에 잠시 기록되어 있다. 오래 머물 것처럼 고요하고 선명하지만 내가 눈을 떼고 뒤돌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아직은 겨울인 요즘에는 침대에서 자던 완두가 아침에 사라지고 없을 때가 있는데, 찾아보면 늘 햇볕이 들어오는 자리에 가서 누워 있다. 해 드는 자리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니까 완두도 거기에 맞춰 움직였으려나, 그 꺼벙한 표정으로, 완두는 세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신비로운 귀여움. 나는 눈부신 창가를 등지고 내가 원래 누워 있던 침대 쪽의 창문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본다. 아침 집 구경의 하이라이트. 거기에는 딱히 빛이랄 게 없지만, 지난밤에 분명 안 보이던 것들이 색과 결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빛을 찾아보세요.’ 누군가 묻는다면 어디를 가리켜야 할까. 가리킬 순 없어도 나는 거기에 존재하는 빛의 형태를 좋아한다. 힘없는 빛. 따지고 보면 모두를 비추지만 아무도 그걸 빛이라고 말하지 않을 때의 그 빛.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은 엉겅퀴>
이 시는 라이너 쿤체의 <은 엉겅퀴>전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우연히 읽은 시는 언젠가부터 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등록되어 있다. 내가 액자를 만들며 살아보기로 했던 그 즈음일 것이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