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풍경이 멈출 때

단지 기차를 오래 타기 위한 여행을 다녀와서.

혼자의 기분이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해보게 됐다. 어찌어찌 장소는 포르투갈이었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구나.’ 여행지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앉아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 건 스물네 살 때 제주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그때는 용감하게도 혼자였다. 그 이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집을 떠나는 일에는 꼭 누군가가 함께했다. 친구들과 가족들. 연인들. 혼자 비행기를 탄 적은 많아도 도착한 장소에는 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행복하고 이상할 게 없는 동안 나는 혼자 여행하는 일은 까맣게 잊어가고 있던 것이다.

10월의 아름답던 포르투갈 여행은 그 무렵 나에게 실패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며칠 새 혼자 식당에 가는 일도 지겨워지고 거리도 금방 익숙해져서 사진을 찍거나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거리에는 온통 혼자가 아닌 사람들뿐. 설레는 이야기에서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알게 되는 일도 잘 없었다. 시무룩해진 나는 서울 집에서 하던 것처럼 장을 봐 와서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곤 했다. 집에 돌아가야겠다, 하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취소 수수료와 새 티켓을 합친 비용이 너무 비싸서 괜히 갇혀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사는 게 참 신비로운 점은 실패조차 그 의미가 변하고 심지어 같은 실수도 다시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겨울을 보내고 난 나는 그 헛헛한 시간들을 종종 떠올려 보며 한편으로 다시 그래보고 싶은 마음이 되기도 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은 부산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고 편집부에서 메일을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작동되어 마침내 즐거운 마음으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양 부산행 티켓을 한 장 샀다.

동해선 여행

부산을 떠올리면 늘 윤대녕 작가 생각이 났다. 오래전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 그가 게스트로 나와 이동진, 김중혁 작가와 함께 그의 장편 소설 《피에로들의 집》을 소개한 적 있다. 여러 이야기 중 기억에 남아 메모해 둔 내용은 목포역에서 부산의 부전역까지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에 관한 것으로, 과거 동서 간 통근 열차로 쓰이던 노선이 이용객이 적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운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곱 시간 십육 분이 걸립니다.” 작가가 운행 시간을 분 단위까지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하루 근무 시간과 비슷한 시간 동안 온전히 한자리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점이 귀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내용은 5년이 넘게 스마트폰 메모장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겨 나선 것이다. 부전역이 있는 부산 서면에 도착해서는 돼지국밥을 한 그릇 사 먹고 근처 중고 서점에 가 《피에로들의 집》을 구했다. 목포까지 가는 기차는 하루에 한 차례만 운행되고 오전 6시쯤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부전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일찍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기차에서 그리고 목포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또 다른 기차에서까지 할 일이라고는 이 책을 다 읽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짧은 여정이라 그랬겠지만, 혼자라는 생각도 좀처럼 들지 않았기에 나는 마음과 시야가 동시에 조금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함께인 기분

부전역을 떠난 무궁화호 열차는 목포까지 가는 길에 크고 작은 모든 역에서 정차했다. 간이역이라고 불리는 지방의 작은 역들의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어서 내가 원래 성글게 알고 있던 지역 정보에 기분 좋은 낙서가 덧입혀지는 것만 같았다. 물금역, 반성역, 이양역, 다시역, 능주역. 뜻 모르고 읽기만 해도 괜한 궁금함이 생기던 글자 조합들은 가사가 없는 음악처럼, 오래 기억되지 않고 금세 잊혀서 시처럼도 읽을 수 있었다. 역 이름이 서서히 들리지 않게 됐을 무렵 나는 어제 읽다 덮어둔 《피에로들의 집》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다들 고아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상처 입고 치료하지 못한 채 거리에 섞여 있는 사람들. 그들이 모여 마지못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혜화의 아몬드나무 하우스, 피에로들의 집이다. 목포에서 부전역까지의 여정은 소설 초반에 한 차례, 거의 마지막 장에서 또 한 차례 묘사된다. 다른 인물이 다른 시점에서 각각 경험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는 그날의 나도 한데 묶일 수 있게 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지 사정을 모르지만, 아마 윤대녕 작가의 경험도 그 이야기 안에 한데 묶일 것이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기차를 탄 게 아닌 사람들을 이 이야기는 끌어모은다. 일곱 시간이나 홀로 멍하니 앉아 있는 일은 처음에는 창밖으로 무얼 흘려보내는 기분이 들게 하지만, 결국에는 생각을 멈추게 하고 장면을 멈추게 한다. 저기에 서 있으면 어떨까. 저 마을, 저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나 하며 멍한 채로 나아가는 동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동안 어디에 속해 있었는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내리며 자신이 속하고 싶은 세계를 감지한다.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나는 무얼 알았냐 하면, 책과 함께한 여행에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관해 알았다. 읽기와 떠올리기, 믿기. 옆자리에 없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상에는 사실 혼자인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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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