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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너머에서 쉬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장소들은 한정적이다. 아무리 헤매도 세상의 일부만 구경하고 경험할 뿐일 텐데, 가끔은 세상의 모든 곳을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지친 마음을 종종 맡겨두던 장소가 세상에 몇 군데 있다. 외딴 바닷가라든지 자주 찾아가던 가게처럼 실재하는 공공의 장소일 때도 있고, 애초에는 없는 곳인데 자꾸 상상하다 보니 정말로 그 안에서 잘 쉴 수 있게 된 장소들도 있다. 이 글은 후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모래성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해변에 내 손으로 지었다는 점 그리고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면 삶의 파도가 밀려와 곧장 지워지곤 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열 살 무렵, 친구들과 어딘가 놀러 가고 싶었던 나를 엄마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집에 잡아둔 적 있다. 내 마음도 모르고, 나를 데리러 온 친구들을 무심히 돌려보내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 모습이 너무 미워서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 내 울었다. 분노에 휩싸여 상상했다. 집을 빠져나가서 사라져 버리는 상황을 말이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는 아파트 단지 한쪽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 셋이서 각자 집에 있는 만화책과 담요, 과자 따위를 가져다 놓고 시간을 보내던 곳. 웬만해서는 아무도 올 일이 없는 구석진 장소였다. 시시콜콜 시간을 보내던 그곳은 더없이 깊숙한, 상상 속 동굴이 되어주었다. 거기에 들어가서 며칠이고 나오지 않으리라. 없어진 나 때문에 엄마는 놀라고 당황하고 끝내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나는 사실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는데, 그 상상만으로도 서러움이 한풀 꺾였다. 실컷 울고, 오래 숨는 상상에 빠져서는 제풀에 지쳐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유년의 오후를 몇 번이나 보냈을까. 나는 훗날 사람들 속에 섞여 지내며, 그런 상상 속 공간을 더 많이 만드는 법을 점차 터득해 나갔다.
아파트 단지의 지하실부터, 결코 가볼 수 없을 것 같던 지구 반대편의 한적한 거리, 죄수들이 갇혀 있을 좁고 지저분한 독방도 내 상상 속에서는 나의 쉴 곳이나 다름없었다. 낯선 곳에 가 있는 나를 떠올리면 실제로 내 주변이 상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 느껴졌다. 외로운 독방에 갇혀 있는 상상을 하다가 거리로 나가면 햇빛은 더없이 눈부시고 따뜻했던 것이다. 때로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히로시 요시무라Hiroshi Yoshimura 같은 뮤지션의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이 내게 숨을 곳이 되어주기도 했다. 공간에서 음악으로 장소성이 사라지면서 나는 더 많은 순간들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쩐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세상에서 나만 듣고 있을 것 같은 그 음악들은 나의 친구이자 넓은 침대였고 고요한 호수였다.
“세상 사람들 너무 대단하지 않아?” 서른 무렵이 된 나에게 어느 날 회사 앞으로 찾아온 친구가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 타고 출근하고 월세를 내거나 필요한 물건들을 갖추고 하는 모든 것들 있잖아. 그런 것들을 다들 당연한 듯 해내고 있다니. 가끔은 그 모든 게 나를 막막하게 해.” 그러면서 친구는 그 모든 이들을 칭찬하고 다독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 같기도 했다. 나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아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하고 내 생활을 들여다보았다. 그때도 알 수 있었다. 상상 속 세계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거짓말과 진실도 구분하지 못하며, 다만 떠오른 것에 반응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스운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서운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건 모두 내 생각의 결과이고 상상의 실체라는 말일까. 내가 그동안 무얼 꿈꾸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계획적인 사람이야.” 언젠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언제나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놀란 나에게 친구가 덧붙인 말은 완두에 관한 내용이었다. “네가 가구 회사에 다닐 때 늘 하던 말은 완두와 살 거라는 얘기였어.” 그 당시 나는 출퇴근하며 동물을 돌볼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완두를 맡겨 놓고 가구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기술을 배워 독립하면 완두를 혼자 두지 않아도 된다는 계획이 있었다. 간절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2년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이 3년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친구의 관찰과 건네준 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한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내 상상 속 이야기들을 이렇게 꺼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파도가 밀려와 또다시 무너뜨리기 직전에 말이다.
모래성처럼 아득한 장소들. 그 기분들과 꿈들. 그렇게 지어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나를 지켜주던 상상 속 공간들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여러 시절 살아온 삶이 마치 바닷가에 앉아 파도와 말없이 보낸 평화로운 한나절 오후 같다는 기분도 든다. 잠시라도 삶을 이렇게 느껴볼 수 있다니. 감사함을 말하고자 나는 어디에 대고 고개 숙여야 할까.
글·사진 전진우